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리스트

고구려문화유산자료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화피전자고성(樺皮甸子古城)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중기~기타
  • 문서번호S000312
  • 위치(출토지)渾江市[臨江市] 六道溝鄕 樺皮甸子村
  • 지역임강(林幹市)
  • 유형성곽>평지성
  • 형태사항길이 58m, 너비 40m, 殘高 0.5-18m로 전체 둘레는 약 180m 전후임. 14점 
 

출토지

 

혼강시[임강시] 육도구향 화피전자촌 (渾江市[臨江市] 六道溝鄉 樺皮甸子村)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2004년 7월 10일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백산시문관판, 집안시박물관
(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 白山市文管判, 集安市博物館)
張福有, 張殿甲, 遲龍, 孫仁杰 등이 참가하여 전체적인 현황 파악 및 유물 채집함. 『東北史地』2004-5에 발표함.
2004년 9월 12일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
張福有, 遲龍, 孫仁杰 등이 참가하여 전체적인 현황 파악 및 유물 채집함. 『東北史地』2004-5에 발표함.
1960년 4월혼강시문물보사대
(渾江市文物普査隊)
성곽의 현황 파악 및 간략한 기록함.
1974년 마을 주민이 성돌을 채취하여 민가를 짓다가 靑花白磁 1점을 발견했다고 함.
1984년 5월과 6월 27일통화시문물보사대
(渾江市文物普査隊)
5월에 유적의 조사 및 촬영이 이루어지고, 재조사 및 실측과 기록이 6월에 행해짐. 두 차례의 조사에서 유물 채집함. 『渾江市文物志』 중의 ‘樺皮甸子城址’에 발표함. 조사 착수에 앞서 1984년 3월 8일에 渾江市 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함.
1987 5월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혼강시문물관리위원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渾江市文物管理委員會)
石肖元, 張立夫, 張立新, 王洪峰등이 참가하여 임강댐 수몰지구 조사차 성곽의 전체 현황 파악함. 『博物館硏究』1988-3에 발표함.
1995년 5월백산시문물보사대
(白山市文物普査隊)
張殿甲 등이 참여하여 성곽 현황 파악 및 유물 채집함. 『北方文物』2000-2에 발표함.

 

구조특징

 

성곽 방향은 135°로 평면은 동서 방향으로 긴 장방형으로 사각이 균일하지는 않음. 성곽 내부는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으며, 0.8m 정도의 고도차가 있음. 土石混築이라고 하지만(『渾江市文物志』), 동벽 북단의 절단면이나 북벽 중반부의 절단면으로 보아 강돌과 깬돌을 섞어서 허튼쌓기를 한 石築 성벽일 가능성도 있음. 석재는 강돌과 깬돌이 섞임. 동벽과 남벽의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편이지만, 동벽 북단은 절단되어 성벽 단면이 드러나 있고, 남벽 서단 모서리도 민가에 의해 일부가 파괴되었음. 서벽과 북벽은 훼손 정도가 심한데, 서벽 남단의 각대로 추정되는 부분은 송전탑 건설로 많이 훼손되었음. 북벽의 동반부는 성벽이 거의 모두 유실되었고, 서단도 민가에 의해 많이 훼손되었음. 특히 2단 충적대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북벽 아래쪽에는 흘러내린 성돌이 많이 퇴적되어 있음. 동북모서리엔 붉게 탄 흙덩이가 흩어져 있음. 동벽 외곽의 경작지에서 기와, 벽돌, 토기편 등이 대량 출토되었음. 유물 산포지의 면적은 길이 100m, 폭 30m임. 건물지 또는 취락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됨.

 

역사적 의미

 

유물 출토현황이나 성벽구조로 보아 당시 성곽 안팎에는 비교적 큰 취락이 저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위치상 군사요새로 보이지는 않으며, 동마록포자고성이나 협피구고성처럼 압록강 수로상의 역참으로 추정됨. 특히 축조 방법, 규모, 위치 등이 상류 30㎞ 지점에 있는 동마록포자고성과 같음. 이곳에서 강을 거슬러 협피구고성을 경유하여 동마록포자고성까지는 하루 일정이라고 함. 남쪽 언덕상의 王八脖子窯址 및 동남쪽 2㎞ 거리에 위치한 東甸子古墳群 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됨. 동마록포자고성에서는 일찍이 高句麗 시기의 도끼날형 화살촉과 근대철기가 출토되었는데 樺皮甸子古城의 연대 역시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됨. 樺皮甸子古城은 곧 고구려 중기 이후에 세워진 평지성임. 동벽 외곽에서 고구려 시기의 기와나 토기편이 출토된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함.
고구려는 342년 前燕 慕容皝의 침공을 받아 환도성이 함락당하자, 이듬해인 343년(고국원왕 13) ‘平壤東黃城’으로 移居했다고 함. 여기의 ‘平壤東黃城’을 ‘平壤’ 동쪽의 ‘黃城’으로 해석한 다음, 平壤을 集安 良民甸子古城으로 비정하고, 그 동쪽에 위치했다는 黃城을 임강 화피전자고성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최근 제기됨. 화피전자고성이 양민전자고성의 동쪽에 위치했다는 것, 화피전자고성이 위치한 지역이 압록강 상류에서 가장 넓은 충적분지의 하나라는 점, 주변에 유적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 피난을 목적으로 잠시 移居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 주변에 고구려 고분군이 밀집했으며 규모가 커다는 점, 주변에 야생동물이 많다는 점, 발해시기 서경압록부 소재지였던 임강의 동쪽에 위치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함(『東北史地』2004-5).

 

자연환경

 

압록강이 남에서 흘러들어와 성의 서쪽 200m 지점에서 방향을 꺾어 북쪽으로 유유히 흘러감. 압록강 右岸에 비교적 넓은 초승달 모양 臺地가 펼쳐져 있는데, 고성은 이 대지의 남쪽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음. 古城이 위치한 압록강 연안의 대지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강 연안에 바로 인접하여 좁고 기다란 1단 대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 안쪽에 1단 대지보다 5-10m 정도 높은 2단 대지가 펼쳐져 있음. 古城은 2단 충적대지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압록강변에서 바라보면 상당히 웅장하게 보임. 또한 고성은 충적대지의 남쪽 끝단에 위치하여 충적대지 방향인 북쪽을 제외하면 삼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음.

 

유물정보

 

다양한 유물 채집됨.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王洪峰, 「臨江電站庫區古遺存調査綜述」『博物館研究』 1988-3, 1988
· 國家文物局 主編, 「樺皮甸子城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4
· 王禹浪·王宏北, 「中國吉林省渾江市三道溝河臨城八隊高句麗古城址」『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1994
· 張天鵬, 「文物」『渾江市志』, 中華書局, 1994
· 余昊奎, 「臨江 東馬鹿村古城」『高句麗 城』 Ⅰ(鴨綠江 中上流篇), 國防軍史硏究所, 1998
· 張殿甲, 「鴨綠江中上游高句麗·渤海遺址調査綜述」『北方文物』 2000-2, 2000
· 魏存成, 『高句麗遺跡』, 文物出版社, 2002
· 孫仁杰·遲龍·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東北史地』 2004-5, 2004
· 張福有, 「高句麗平壤東黃城考」『東北史地』 2004-5, 2004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