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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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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로투 고분군(葫蘆套 古墳群)

  • 이도하자 고분군(二道河子 古墳群)

  • 이도하자 1호분(二道河子 1號墳)

  • 대율자 고분군(大栗子 古墳群)

  • 리스트여닫기 장천 고분군(長川 古墳群) 출토지 임강시 4도구진 장천촌 북쪽에 위치함(臨江市 四道溝鎮 長川村 北側位置).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1987년 5월임강전참고구문물보사대(臨江電站庫區文物普査隊)石肖元, 張立夫, 張立新, 王洪峰, 張殿甲가 참여하여3개 구역에서 고분 확인.구조특징 비교적 넓은 범위에 분포함.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3개 구역으로 구획되는데, 1구는 장천 2대촌 북쪽 과수원에 위치하며 2구는 新學校 북쪽 산간 평지에 위치하고 3구는 본래 老學校의 옛 터인 장천 1대촌 뒤에 위치함. 구역 사이의 거리는 각기 2里 정도임. 2구역은 고분이 가장 많이 분포했으나 이미 과수원과 계단식 밭이 들어서면서 대량으로 파괴된 상태임. 현재 몇 기만이 잔존하나, 원래 모습이 훼손됨. 3구역은 보존 상태 양호했으나 현재 다수 고분이 집을 짓기 위해 取石되면서 소멸되어 감. 6기 정도는 보존 상태 양호한 편임. 그중 3기는 기단적석총으로 둘레 길이 5-6m 내외임. 연접 적석총은 1기로 길이 12m, 너비 5m이며 과수원을 만들때 고분의 외형이 파괴됨. 기단적석총은 2기로 기단이 없어져 외형은 무기단 적석총과 유사함. 기단석 위에 熔石이 확인되고 있어 매장할 때에 화장풍속이 있었다고 추정됨.역사적 의미 장천 고분의 형식과 구조, 부장품은 고구려 고분과 유사하므로 고구려 유적으로 추정됨.자연환경 고분의 서북 약 3㎞ 거리에는 4도구진이 위치함. 장천은 4도구하 우안의 커다란 대지에 위치하며 대지 남쪽으로는 압록강, 북쪽으로는 긴 산맥이 자리함. 狹長한 지세로 평탄 개활지가 펼쳐져 있음.유물정보 현지인들에 의해 훼손된 1·2구역 토기(陶罐), 철제 칼(鐵刀), 전촉(箭頭), 3구역에서 토기(陶罐), 동제 장식(銅飾), 철제 괭이(鐵䦆) 등이 수습됨. 1987년 조사 당시 철제 괭이와 석제 화살촉 각 1개를 회수.참고문헌 · 王洪峰, 「臨江電站庫區古遺存調査綜述」『博物館研究』 1988-3, 1988

  • 파구 고분군(坡口 古墳群)

  • 고가영 고분군(賈家營 古墳群)

  • 입대 고분군(砬臺 古墳群)

  • 리스트여닫기 동전자 고분군(東甸子 古墳群) 출토지 임강시 6도구진 동전자촌(일명 동화피전자촌) 서쪽 대지와 後山 남쪽 언덕에 위치함. (臨江市 六道溝鎮 東甸子村(東樺皮甸子村) 西側臺地, 後山 南側崗 位置).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2004년 7월 10일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백산시문관판, 집안시박물관(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 白山市文管判, 集安市博物館)張福有, 孫仁杰, 遲勇, 張殿甲, 谷芃 등이 참여했고 1987년 조사대용과 동일함.1960년 4월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백수십여기의 고분 발견함.1984년 5월 및 6월 조사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2개의 구역으로 나뉘며, 고분 60여 기 확인함.1987년 5월임강전참고구문물보사대(臨江電站庫區文物普査隊)石肖元, 張立夫, 張立新, 王洪峰, 張殿甲이 동전자촌 서쪽 대지에서 30여기 고분 확인, 동전자 후산 남쪽 언덕에서 5기 고분 확인함.구조특징 고분군은 2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음. 도로 남쪽에 형성된 마을의 서쪽 대지상 분포하는Ⅰ구역과 도로 북쪽, 마을 동쪽 後山 언덕위의 분포 구역(Ⅱ)임.Ⅰ구역 고분군의 대부분이 기단적석총에 해당됨. 둘레 길이 5-6m 정도이나 10여m에 이르는 고분도 있음. 계단적석총은 소수만 확인됨. 계단의 보존 상태는 불명확하고 계단석은 비교적 크며, 자연석을 이용하거나 가공한 것도 있음. 계단의 수는 2-3단임. 기단적석 연접묘는 2기 정도이고 보존 상태 양호함. 일부 고분은 기단석 훼손으로 무기단적석총 형태로 변형. 고분의 방향은 180~230°이고 고분은 깨진 돌로 봉해졌으며, 일부는 함몰갱이 확인됨. Ⅱ구역 고분군에선 대규모 계단적석총이 확인됨.역사적 의미 동전자 後山의 대형계단적석총 M1과 M2의 축조방식은 집안 통구 고분군 산성하구의 兄塚·弟塚과 유사하므로, 이들 무덤과 비슷한 고구려 4·5세기로 추정됨. 후산 고분은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며, 큰 규모로 미루어 귀족의 고분일 가능성이 큼. `동전자 고분군은 혼강 경내 최대의 고분으로 고구려의 세력 범위, 풍속습관, 사회생활, 고분 분기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임.자연환경 원래 ‘高麗墓子’로도 불렸음. 동전자 동쪽 4㎞ 거리에 6도구향이 위치하고, 동전자 남단에는 압록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감. 동전자는 압록강 右岸의 狹長한 충적대지 위에 자리함. 대지 남쪽에는 압록강, 북쪽에는 많은 산들에 접하고 있는데 동서 길이 2.5㎞, 남북 너비 약 1㎞임. 대지 중앙에서 남쪽으로 치우진 곳은 압록강의 옛길인 저지대였으나, 지금은 농경지로 개간됨. 대지 북쪽은 높이가 6m 정도에 이르는 2급대지임. 동전자 주민은 대지의 북쪽에 치우친 곳에 거주하며 동전자촌 중앙에는 임강과 장백을 잇는 臨長도로가 관통하고 있음.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王洪峰, 「臨江電站庫區古遺存調査綜述」『博物館研究』 1988-3, 1988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孫仁杰·遲勇·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東北史地』 2004-5, 2004

  • 동전자 1호분(東甸子 1號墳)

  • 동전자 2호분(東甸子 2號墳)

  • 동전자 4호분(東甸子 4號墳)

  • 동전자 8호분(東甸子 8號墳)

  • 동전자 10호분(東甸子 10號墳)

  • 동전자 2구역 1호분(東甸子 2區域 1號墳)

  • 동전자 2구역 2호분(東甸子 2區域 2號墳)

  • 서마록포자 고분군(西馬鹿泡子 古墳群)

  • 용강 고분군(龍崗 古墳群)

  • 리스트여닫기 임성고성(臨城古城) 출토지 임강진(현재 임강시 소재지)에서 삼도구하를 따라 동쪽으로 5㎞ 정도 떨어진 임성 8대[임동촌] 북쪽의 산봉우리에 위치함(臨江鎭 東側 5㎞ 距離 臨東村 北側嶂 位置).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2004년 7월 10일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백산시문관판, 집안시박물관(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 白山市文管判, 集安市博物館)張福有, 張殿甲, 遲龍, 孫仁杰 등이 참여하여 개괄적인 현황 파악함. 『東北史地』2004-5에 발표함.1983년 6월혼강시문화국(渾江市文化局)소량의 토기편을 채집하고 1984년 3월 8일에 渾江市 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됨.1984년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실측과 기록함. (『渾江市文物志』중의 ‘臨城城址’)구조특징 성은 三道溝河를 향해 남쪽으로 뻗은 언덕산의 정상에 위치함. 성이 위치한 산봉우리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이며, 성 안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음. 동벽 바깥은 가파른 낭떠러지이고, 북벽과 서벽 바깥은 높이 3-5m 정도의 벼랑임. 남벽 바깥으로는 너비 20m 길이 50m 정도의 평탄한 대지가 펼쳐져 있는데 밭으로 경작되고 있음. 성곽의 평면은 전체적으로 조금 찌그러진 공모양임. 성벽은 많이 허물어져 성돌을 가지런하게 쌓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듦. 다만 성돌이 대부분 성벽 주변에 무너진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성곽의 윤곽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은 상태임. 동벽 바깥은 가파른 절벽, 북벽과 서벽 바깥은 높이 3-5m 정도의 암벽으로 각 성벽은 이러한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함. 석재는 대부분 깬돌인데 잘 다듬지는 않았음. 강돌도 일부 섞여 있음. 크기는 대체로 길이가 20-40㎝ 사이임. 성 안은 유적의 흔적은 명확하게 보이지 않음. 서벽 안쪽에 약간 깊은 구덩이가 있는데,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음.역사적 의미 臨城고성은 三道溝河 하류에 위치하여 압록강과 여러 지류연안의 水路 교통을 공제하던 전략적 요충지로 추정됨. 부근에서 별다른 군사주둔지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비록 규모는 작지만 임성고성 자체가 방어용 城堡였던 것으로 추정됨. 고구려 중기에 축조되어 발해시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됨.자연환경 압록강 지류인 三道溝河가 마을 동북쪽에서 흘러들어와 마을 남쪽을 지나 古城이 위치한 산기슭 아래에서 활모양으로 성의 동·남·서를 휘감아 돈 다음, 방향을 꺾어 남쪽으로 흐르다가 臨城村 부근에서 압록강으로 유입됨. 성터가 있는 산봉우리는 북쪽 산줄기에서 三道溝河를 향해 남쪽으로 쭉 뻗은 언덕산에 위치했는데, 높이 약 200m 정도로 우뚝 솟아오른 것이 마치 누워있는 소와 같으며, 三道溝 河谷을 기다랗게 가로막고 있음. 山城 맞은편 산기슭에는 臨江-長白 도로가 있고, 산성 북쪽 산기슭 아래로는 臨江-大湖석탄광[煤礦] 철로가 통과하고 있음. 성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臨江鎭과 압록강, 남쪽으로 臨江-長白도로, 동쪽으로 三道溝 골짜기, 북쪽으로 楊木頂子山脈 등이 한눈에 들어옮.유물정보 토기편과 도끼날형[鏟形] 철제 화살촉 등 채집함. 토기는 니질회색토기(泥質灰陶)와 황갈색토기(黃褐陶)로서 비교적 두꺼운 편인데, 토기 형태를 판별하기는 어려움.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國家文物局 主編, 「臨城城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王禹浪·王宏北, 「中國吉林省渾江市三道溝河臨城八隊高句麗古城址」『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1994 · 余昊奎, 「臨江 臨城古城」『高句麗 城』 Ⅰ(鴨綠江 中上流篇), 國防軍史硏究所, 1998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4 · 孫仁杰·遲龍·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東北史地』 2004-5, 2004

  • 리스트여닫기 화피전자고성(樺皮甸子古城) 출토지 혼강시[임강시] 육도구향 화피전자촌 (渾江市[臨江市] 六道溝鄉 樺皮甸子村)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2004년 7월 10일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백산시문관판, 집안시박물관(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 白山市文管判, 集安市博物館)張福有, 張殿甲, 遲龍, 孫仁杰 등이 참가하여 전체적인 현황 파악 및 유물 채집함. 『東北史地』2004-5에 발표함.2004년 9월 12일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張福有, 遲龍, 孫仁杰 등이 참가하여 전체적인 현황 파악 및 유물 채집함. 『東北史地』2004-5에 발표함.1960년 4월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성곽의 현황 파악 및 간략한 기록함.1974년 마을 주민이 성돌을 채취하여 민가를 짓다가 靑花白磁 1점을 발견했다고 함.1984년 5월과 6월 27일통화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5월에 유적의 조사 및 촬영이 이루어지고, 재조사 및 실측과 기록이 6월에 행해짐. 두 차례의 조사에서 유물 채집함. 『渾江市文物志』 중의 ‘樺皮甸子城址’에 발표함. 조사 착수에 앞서 1984년 3월 8일에 渾江市 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함.1987 5월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혼강시문물관리위원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渾江市文物管理委員會)石肖元, 張立夫, 張立新, 王洪峰등이 참가하여 임강댐 수몰지구 조사차 성곽의 전체 현황 파악함. 『博物館硏究』1988-3에 발표함.1995년 5월백산시문물보사대(白山市文物普査隊)張殿甲 등이 참여하여 성곽 현황 파악 및 유물 채집함. 『北方文物』2000-2에 발표함.구조특징 성곽 방향은 135°로 평면은 동서 방향으로 긴 장방형으로 사각이 균일하지는 않음. 성곽 내부는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으며, 0.8m 정도의 고도차가 있음. 土石混築이라고 하지만(『渾江市文物志』), 동벽 북단의 절단면이나 북벽 중반부의 절단면으로 보아 강돌과 깬돌을 섞어서 허튼쌓기를 한 石築 성벽일 가능성도 있음. 석재는 강돌과 깬돌이 섞임. 동벽과 남벽의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편이지만, 동벽 북단은 절단되어 성벽 단면이 드러나 있고, 남벽 서단 모서리도 민가에 의해 일부가 파괴되었음. 서벽과 북벽은 훼손 정도가 심한데, 서벽 남단의 각대로 추정되는 부분은 송전탑 건설로 많이 훼손되었음. 북벽의 동반부는 성벽이 거의 모두 유실되었고, 서단도 민가에 의해 많이 훼손되었음. 특히 2단 충적대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북벽 아래쪽에는 흘러내린 성돌이 많이 퇴적되어 있음. 동북모서리엔 붉게 탄 흙덩이가 흩어져 있음. 동벽 외곽의 경작지에서 기와, 벽돌, 토기편 등이 대량 출토되었음. 유물 산포지의 면적은 길이 100m, 폭 30m임. 건물지 또는 취락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됨.역사적 의미 유물 출토현황이나 성벽구조로 보아 당시 성곽 안팎에는 비교적 큰 취락이 저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위치상 군사요새로 보이지는 않으며, 동마록포자고성이나 협피구고성처럼 압록강 수로상의 역참으로 추정됨. 특히 축조 방법, 규모, 위치 등이 상류 30㎞ 지점에 있는 동마록포자고성과 같음. 이곳에서 강을 거슬러 협피구고성을 경유하여 동마록포자고성까지는 하루 일정이라고 함. 남쪽 언덕상의 王八脖子窯址 및 동남쪽 2㎞ 거리에 위치한 東甸子古墳群 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됨. 동마록포자고성에서는 일찍이 高句麗 시기의 도끼날형 화살촉과 근대철기가 출토되었는데 樺皮甸子古城의 연대 역시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됨. 樺皮甸子古城은 곧 고구려 중기 이후에 세워진 평지성임. 동벽 외곽에서 고구려 시기의 기와나 토기편이 출토된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함. 고구려는 342년 前燕 慕容皝의 침공을 받아 환도성이 함락당하자, 이듬해인 343년(고국원왕 13) ‘平壤東黃城’으로 移居했다고 함. 여기의 ‘平壤東黃城’을 ‘平壤’ 동쪽의 ‘黃城’으로 해석한 다음, 平壤을 集安 良民甸子古城으로 비정하고, 그 동쪽에 위치했다는 黃城을 임강 화피전자고성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최근 제기됨. 화피전자고성이 양민전자고성의 동쪽에 위치했다는 것, 화피전자고성이 위치한 지역이 압록강 상류에서 가장 넓은 충적분지의 하나라는 점, 주변에 유적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 피난을 목적으로 잠시 移居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 주변에 고구려 고분군이 밀집했으며 규모가 커다는 점, 주변에 야생동물이 많다는 점, 발해시기 서경압록부 소재지였던 임강의 동쪽에 위치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함(『東北史地』2004-5).자연환경 압록강이 남에서 흘러들어와 성의 서쪽 200m 지점에서 방향을 꺾어 북쪽으로 유유히 흘러감. 압록강 右岸에 비교적 넓은 초승달 모양 臺地가 펼쳐져 있는데, 고성은 이 대지의 남쪽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음. 古城이 위치한 압록강 연안의 대지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강 연안에 바로 인접하여 좁고 기다란 1단 대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 안쪽에 1단 대지보다 5-10m 정도 높은 2단 대지가 펼쳐져 있음. 古城은 2단 충적대지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압록강변에서 바라보면 상당히 웅장하게 보임. 또한 고성은 충적대지의 남쪽 끝단에 위치하여 충적대지 방향인 북쪽을 제외하면 삼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음.유물정보 다양한 유물 채집됨.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王洪峰, 「臨江電站庫區古遺存調査綜述」『博物館研究』 1988-3, 1988 · 國家文物局 主編, 「樺皮甸子城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4 · 王禹浪·王宏北, 「中國吉林省渾江市三道溝河臨城八隊高句麗古城址」『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1994 · 張天鵬, 「文物」『渾江市志』, 中華書局, 1994 · 余昊奎, 「臨江 東馬鹿村古城」『高句麗 城』 Ⅰ(鴨綠江 中上流篇), 國防軍史硏究所, 1998 · 張殿甲, 「鴨綠江中上游高句麗·渤海遺址調査綜述」『北方文物』 2000-2, 2000 · 魏存成, 『高句麗遺跡』, 文物出版社, 2002 · 孫仁杰·遲龍·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東北史地』 2004-5, 2004 · 張福有, 「高句麗平壤東黃城考」『東北史地』 2004-5, 2004

  • 리스트여닫기 협피구고성(夾皮溝古城) 출토지 임강시 육도구향 소재지 남쪽 3㎞ 협피촌(臨江市 六道溝鄉 所在地 南側 3㎞ 夾皮村).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2004년 7월 10일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백산시문관판, 집안시박물관(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 白山市文管判, 集安市博物館)張福有, 張殿甲, 遲龍, 孫仁杰 등이 참가하여 개괄적인 현황을 파악함. 『東北史地』2004-5에 발표됨.1960년 4월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성곽 내부에서 석제 화살촉, 刮削火石, 토기편, 창(三稜槍), 철제 화살촉, ‘長平’자 모양의 동전 등의 유물 채집함. 당시 ‘淸 太祖의 古城’이라고 칭했다고 함.1984년 5·6월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5월에 전체 현황을 조사, 6월에 실측과 기록 시행함. 『渾江市文物志』중의 ‘夾皮溝城址’에 발표함. 조사 착수에 앞서 1984년 3월 8일에 渾江市 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함.1987년 5월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혼강시문물관리위원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渾江市文物管理委員會)임강댐 수몰 지구 조사차 전체 현황 파악 및 유물 채집함. 『博物館硏究』1988-3에 발표함.20세기 전반 1935년에 간행된 『臨江縣志』에 따르면 당시 臨江縣 동남 130里 거리의 夾皮溝에 ‘高麗城子’라 불리는 古城이 있었다고 함. 당시 성벽은 무너졌으나, 성벽 기단 부근에는 벽돌이나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었으며, 네 성문의 형적 또한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함. 전체 둘레는 약 2方里였다고 함.구조특징 평면은 불규칙한 장방형으로 동, 북, 서 3면에 돌로 성벽을 축조했으며,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남쪽에는 성벽을 축조하지 않은 것으로 보임. 모래사장으로 이어지는 동, 북, 서 3면에 성벽을 축조했음. 성벽은 북쪽이 높고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져 지표와 평평하게 되며,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남쪽에는 본래부터 성벽을 쌓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됨. 산돌과 깬돌을 허튼쌓기로 층층이 축조했는데, 북벽 서반부에서는 11층까지 확인할 수 있음. 성곽 외벽의 벽면은 비교적 평평하고 가지런한 편이며, 성벽 안쪽에는 흙으로 메웠기 때문에 성벽의 두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음. 1960년대 조사 당시에 이미 성곽 내부에 성벽과 비슷한 높이로 흙이 쌓여 있는데, 성으로 흙이 유입될 만한 개울이나 계곡이 없으므로 자연적으로 퇴적된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됨. 1980년대 조사 당시 동벽의 북단, 북벽의 동단, 서벽의 남단 등의 성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함. 지금도 북벽 동단부는 성벽 축조상태를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임. 최근 臨江-長白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성곽 남단부를 덮어 남단뿐 아니라 동벽과 서벽의 남단도 도로에 덮혀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됨. 동벽은 압록강으로 나아가는 小路에 의해 성벽이 상하단으로 분리되어 전체적인 축조양상을 명확히 파악할 수는 없음. 북벽 서반부는 퇴적으로 인해 성곽의 축조양상을 파악할 수 없으며, 서벽의 북반부는 성벽 자체가 유실된 것으로 파악됨. 성곽 서북쪽 강변에서는 모래와 자갈 채취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성곽에 대한 훼손이 지속될 것으로 보임.역사적 의미 夾皮溝는 큰 산 사이에 있고, 계곡이 깊고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어 陸路 교통이 불편함. 夾皮溝古城은 압록강 수운과 관련될 것으로 추정됨. 특히 古城이 강가에 위치해 있으며, 모래사장으로 이어지는 동, 북, 서 3면에만 성벽을 축조하고,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남쪽에는 성벽을 축조하지 않았음. 그리고 성곽 내부는 흙으로 메워 성벽과 평평하게 하였음. 古城의 북쪽은 바로 강가이며, 증수기 때가 되면 강물이 불어나 성벽 아래까지 넘치고, 심한 경우 수몰되기도 함. 이는 군사적 방어나 거주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임. 따라서 고성은 압록강을 오가던 선박이나 뗏목을 정박하던 선착장[碼頭]으로 추정됨.자연환경 古城의 북쪽은 압록강이고, 서쪽에 夾皮溝 골짜기, 동쪽과 남쪽에는 산들이 연이어져 있음. 夾皮溝는 큰 산 사이의 좁은 협곡으로 산비탈이 계단식 지형에 속하는데,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개울이 北流하여 古城 서벽 외곽을 지나 압록강에 유입됨. 압록강이 서쪽에서 흘러들어와 古城의 북쪽을 지난 다음, 夾皮村 동쪽에서 방향을 꺾어 북쪽으로 흐르다가 六道溝河 河口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서쪽으로 흘러나가는데, 流向이 古城 부근에서 180° 바뀜. 古城 남쪽에 위치한 夾皮村은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과 서쪽은 모두 험준한 산맥임. 夾皮村 북쪽에 臨江-長白 도로가 지나가고 있는데 최근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고성의 남단부를 덮어 버렸음. 古城의 남쪽은 점차 낮아지는 산록과 맞닿아 있고, 북쪽은 압록강가임. 古城은 압록강 右岸의 모래사장에 자리잡고 있는데, 북쪽으로 불과 20여m 거리에 압록강이 있으며 성곽은 강 수면보다 2m 정도 높음.유물정보 1960년대 : 석제 창, 석제 화살촉, 토기편, 철제 화살촉, 동전 등 출토됨. 1987년 : 니질회색토기(泥質灰陶), 사질갈색토기편(夾砂褐陶片), 석제 칼 편(石刀片) 등 채집함.참고문헌 · 羅寶書·邱在官, 『臨江縣志』, 臨江藝文齋印刷所, 1935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王洪峰, 「臨江電站庫區古遺存調査綜述」『博物館研究』 1988-3, 1988 · 國家文物局 主編, 「夾皮溝城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4 · 王禹浪·王宏北, 「中國吉林省渾江市三道溝河臨城八隊高句麗古城址」『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1994 · 張天鵬, 「文物」『渾江市志』, 中華書局, 1994 · 余昊奎, 「臨江 東馬鹿村古城」『高句麗 城』 Ⅰ(鴨綠江 中上流篇), 國防軍史硏究所, 1998 · 魏存成, 『高句麗遺跡』, 文物出版社, 2002 · 孫仁杰·遲龍·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東北史地』 2004-5, 2004

  • 리스트여닫기 동마록포자고성(東馬鹿泡子古城) 출토지 임강시 육도구향 동마록촌 압록강 右岸에 위치함(臨江市 六道溝鄉 東馬鹿村 鴨綠江 右岸 位置).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2004년 7월 10일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백산시문관판, 집안시박물관(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 白山市文管判, 集安市博物館)張福有, 張殿甲, 遲龍, 孫仁杰 등이 참가하여 개괄적인 조사와 측량함. 『東北史地』2004-5에 발표됨.1950년 말경 성곽 서쪽 400여m 떨어진 東馬小學院 內에서 철제 삼족기(三足鐵器), 철제 화살촉(鐵鏃) 등이 출토되었다고 함.1983년 가을혼강시문화국(渾江市文化局)1984년 3월 8일에 渾江市 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함.1984년 봄과 6월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봄에 유적지 기록 및 사진 촬영, 6월에 실측함. 『渾江市文物志』중의 ‘東馬城址에 발표됨.구조특징 성벽 내부를 흙으로 축조하고, 바깥을 다듬은 돌로 축조한 토석혼축 성벽이라고 함. 성곽 안팎이 모두 밭으로 개간되어 심하게 허물어졌지만, 성곽의 전체적인 윤곽은 잘 드러나 있음. 1984년 당시 동벽과 남벽만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동벽 상부는 흙더미로 퇴적되어 있으며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원형을 파악할 수 없음. 남벽 서반부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지만, 동반부는 흙으로 퇴적되어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원형을 파악할 수 없음. 북벽과 서벽은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성벽 가장자리를 따라 성돌이 퇴적되어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아직 성벽 기단부를 볼 수 있음. 1984년 당시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북벽에 원래 문이 하나 있었으나, 이미 북벽과 같이 훼손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함. 성 내부는 매우 협소하고 돌더미가 널려 있음. 간혹 건물 기초 흔적으로 보이는 것도 있음역사적 의미 고성은 2단 충적대지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주변 지세도 비교적 평탄하여 방어와 거주에 적합한 城寨로 추정됨. 또한 압록강을 따라 하류 30㎞ 이내에 이와 서로 유사한 고성이 두 곳이 있는데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여겨짐. 특히 압록강을 향해 있는 남벽에 남문이 있고, 그 바깥에 있었다는 돌계단은 1단 충적대지를 통해 압록강으로 나아가던 통로와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됨. 성곽 내부에서 출토된 도끼날형 철촉은 고구려 시기의 화살촉과 비슷하다고 추정됨. 고구려 중기 이후에 축조되어 청말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 내부에서 발견된 활시위는 청 말에 변경의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생활하였던 유민이 남긴 것으로 추정됨.자연환경 일찍이 이 일대에는 말과 사슴이 많아서 馬鹿泡子라 불렸다고 함. 지금은 충적대지 일대를 농지로 개간하여 비옥한 산간분지로 변함. 동쪽에서 흘러들어온 압록강이 남쪽으로 완만하게 만곡하여 서쪽으로 흘러나가면서 강의 북쪽에 길이 2㎞, 폭 500m 전후의 충적대지 형성함. 충적대지는 2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압록강에 인접하여 좁고 길다란 1단 충적대지가 있고, 그 북쪽으로 1단 대지보다 5-10m 정도 높은 2단 충적대지가 넓게 펼쳐져 있음. 동마록촌은 2단 충적대지의 북쪽 산기슭 아래에 위치함. 고성은 2단 충적대지의 동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있으며, 남쪽 100여m 거리에 위치한 압록강과는 아래쪽 충적대지를 통해 연결됨. 충적대지는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는데, 남, 동, 서 3면의 산은 경사가 가파르지만, 북쪽으로는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산줄기가 이어짐.유물정보 화살촉, 창등이 출토됨.참고문헌 · 王禹浪·王宏北, 「中國吉林省渾江市三道溝河臨城八隊高句麗古城址」『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1994 · 余昊奎, 「臨江 東馬鹿村古城」『高句麗 城』 Ⅰ(鴨綠江 中上流篇), 國防軍史硏究所, 1998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國家文物局 主編, 「東馬鹿泡子城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北方史地硏究』, 中州古籍出版社, 1994 · 孫仁杰·遲龍·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東北史地』 2004-5, 2004

  • 파구유적(坡口遺蹟)

  • 고가영 고분군 대형고분(賈家營 古墳群 大形古墳)

  • 고가형 고분군 소형고분(賈家營 古墳群 小形古墳)

  • 리스트여닫기 칠도구유적(七道溝遺蹟) 출토지 임강시 육도구향 칠도구촌 (臨江市 六道溝鄉 七道溝村)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1984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6월에 유적을 발견하고, 현황과 층위 파악 및 유물을 채집하였으며, 『渾江市文物志』중의 ‘七道溝遺址’를 발표함.1987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혼강시문물관리위원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渾江市文物管理委員會)5월에 石肖元, 張立夫, 張立新, 王洪峰이 참가하여 임강댐 수몰지구 조사차 고분군과 더불어 유적을 조사하고, 『博物館硏究』1988-3에 발표함.구조특징 1984년도 조사시에는 七道溝村 동북쪽에 흙을 채취하던 커다란 採土場에 위치하고, 길이 150m, 너비 100m. 깊이 1.8-2.0m 규모의 흙구덩이가 있음. 층위는 지표하 0.30-1.00m는 경작층과 교란층, 1.00-1.50m는 문화층, 1.60m 이하는 황토층으로 생토층이고, 지표하 1.0-1.5m의 문화층에서 파괴된 재구덩이[灰坑]가 나타났으며, 토기편이 다수 출토되었다고 함. 1987년도 조사시에는 2단 대지상에 짙은 회색의 암키와와 수키와, 흑요석, 토기편 등이 많이 흩어져 있었는데, 범위는 남북 100m, 동서 50m임. 문화층인 마을 북쪽은 유적 서편에 해당하는데, 이곳에 채토를 하던 커다란 흙구덩이가 있음. 크게 3개의 층위로 나뉘는데, 제1층은 두께 20㎝로 표토층, 제2층은 두께 80㎝로 黑褐土의 문화층, 제3층은 黃沙土로 생토층임. 제2층의 문화층에서 불탄 흙덩어리, 숯, 토기편 등이 출토됨. 1984년 조사시에 토기편이 다수 출토되었고, 1987년 조사시에 평기와, 수키와, 흑요석, 불탄 흙덩어리, 숯,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음.역사적 의미 유적에서 서쪽으로 500-1,000m 거리에 길이 300m, 너비 150m에 이르는 고구려 시기 고분군이 분포하는데, 대부분 적석묘이며, 고분군 남쪽에는 봉토석실묘도 있음. 七道溝 유적은 1984년 조사 때 새로 발견된 유적으로,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서측에 분포한 고분군으로 보아 고구려 시기의 마을 유적으로 추정되나, 黑曜石이 대거 분포한 것에서 보듯이 고구려 건국 이전부터 취락이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높음.자연환경 임강시 육도구향 칠도구촌의 동북쪽에 위치함. 유적지에서 서북쪽으로 10여㎞ 거리에 六道溝鄕 소재지가 있고, 유적지에서 동쪽으로 1㎞ 정도만 가면 臨江市와 長白縣의 경계이며, 臨江-長白 도로가 유적지 북쪽을 지나가고 있음. 압록강 북안에 상하 2단의 대지가 산으로 둘러싸여 盆地를 형성했는데, 압록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盆地 서남단에서 流向을 북쪽으로 꺾은 다음, 盆地 서북단을 지나고나서 다시 방향을 꺾어 西流하고 있음. 盆地 서북쪽에 비교적 넓은 1단 충적대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논으로 경작되고 있고 그 사이를 七道溝河가 가로질러 압록강에 유입됨. 盆地 동남쪽에 동서 방향의 2단 대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동쪽으로는 높은 산과 접해 있고, 남쪽 100m 거리에 압록강이 있고, 서북쪽으로는 평탄한 1단 충적대지가 펼쳐져 있음. 2단 대지의 남북 너비는 200m에 불과하며, 그 위에 七道溝村이 자리잡고 있고, 유적은 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2단 대지 西端의 小學校 북쪽에는 고구려 시기의 적석묘가 다수 분포해 있음.유물정보 토기 저부 1점, 토기편 다수, 암키와 1점, 수키와 1점, 흑요석기(刮削器) 2점, 석기 2점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王洪峰, 「臨江電站庫區古遺存調査綜述」『博物館研究』 1988-3, 1988 · 國家文物局 主編, 「七道溝遺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칠도구 고분군(七道溝 古墳群)

  • 칠도구 1호분(七道溝 1號墳)

  • 칠도구 2호분(七道溝 2號墳)

  • 칠도구 6호분(七道溝 6號墳)

  • 리스트여닫기 동전자유적(東甸子遺蹟) 출토지 임강시 육도구향 동전자촌 (臨江市 六道溝鄉 東甸子村)연대 원시시대 말기~고구려초기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1957 현지 농민인 李秀海가 3-5尺 깊이의 저장 구덩이를 파다가 토기 항아리 2개 채집함. 일찍이 성벽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함.1958 농지를 경작하다가 돌도끼, 돌화살촉, 돌보습 등이 출토함.1960 1960년 기록에서 유적의 동서 길이는 645m, 남북 너비 400m이고, 지표면에서 토기편, 자기편, 어망추 등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당시 西面의 고분군과 유적지는 인접하여 이어져 있었으며, 압록강과 도로 중간의 좁고 긴 지대를 유적과 고분군이 점유하고 있었다고 함.1984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6월에 유적의 현황을 파악했고, 거의 파괴되었다고 함. 『渾江市文物志』중의 ‘東甸子遺址’로 발표했으며, 유적 조사에 앞서 1984년 3월 8일에 渾江市 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됨.1987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혼강시문물관리위원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渾江市文物管理委員會)5월에 石肖元, 張立夫, 張立新, 王洪峰이 참가하여 임강댐 수몰지구 조사차 고분군과 더불어 유적을 조사하였고, 『博物館硏究』1988-3에 발표함.구조특징 압록강에 인접한 2단 충적대지상에 분포하며 마을유적이기 때문에 정형화된 평면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태임. 1950년대에 성벽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渾江市志』), 다른 자료에는 관련 언급이 없어서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움. 1984년 6월 渾江市 文物普査隊가 재조사할 때는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고, 원래 있던 100여 기의 고분군 역시 많이 파괴되어 몇 십 기만 남아 있었다고 하나, 1987년 조사에서는 유적의 전체적인 범위와 함께 石器類를 다수 채집했다고 함. 1957년에는 현지 농민이 저장 구덩이를 파다가 토기 항아리 2개 채집하였고, 1958년에는 농지를 경작하다가 석제 도끼, 석제 화살촉, 석제 보습 등 출토되었으며, 1960년대 기록에서는 토기편, 자기편, 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다고 나와있으며, 1987년 조사에서 석기류를 다수 채집함.역사적 의미 고분군은 1960년대만 하더라도 유적과 인접하여 백여기 이상의 고분이 밀집해 있었지만, 1980년대에는 몇 십 기만 남아 있었다고 함. 그렇지만 지금도 동전자촌 서쪽 경작지와 마을 안쪽에서 수십기의 적석묘를 확인할 수 있으며, 마을 뒤쪽 산기슭에서는 거대한 적석묘가 여러 기 분포해 있음. 유적에서 압록강 하류를 따라 약 2㎞ 정도만 내려가면 樺皮甸子古城이 나오며, 상류를 거슬러 약 8㎞ 정도 가면 夾皮溝古城, 다시 20여㎞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東馬鹿泡子古城이 나옴. 유적에서 臨江-長白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모퉁이를 돌아가면 본래 언덕 위에 臨江 王八脖子窯址가 있었으나 현재는 도로 개설 등으로 모두 유실되었음. 유적지 인근에 고구려시기의 고분군이 대량으로 분포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대체로 고구려 시기의 마을유적으로 추정되나, 유적지 안에서 주로 石器가 발견되고 있어 당시 거주민의 생산력 수준은 비교적 낮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고구려 건국 초기의 일반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됨. 1950년대에 성벽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渾江市志』), 다른 자료에는 관련 언급이 없어서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우나, 실제 성벽이 존재했다면 단순한 마을유적이 아니라 압록강 수로와 연관된 古城일 가능성이 높음.자연환경 고분군은 臨江市 六道溝鄕 東甸子村 남쪽 200m 지점의 경작지에 위치함. 유적지에서 동쪽으로 4㎞ 거리에 六道溝鄕 소재지가 있고, 臨江-長白 도로가 충적대지 북쪽의 산기슭 아래로 통과하고 있으며, 압록강과 도로 사이의 충적대지에 유적지가 광범위하게 분포함. 동쪽에서 흘러들어온 압록강이 완만하게 서쪽으로 흘러나가면서 강의 북쪽에 길이 2㎞, 폭 200-300m 전후의 2단 충적대지를 형성했는데, 압록강에 인접하여 좁고 길다란 1단 충적대지가 있고, 그 북쪽으로 1단 대지보다 5m 정도 높은 2단 충적대지가 넓게 펼쳐져 있음. 동전자 마을은 2단 충적대지의 북쪽 산기슭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臨江-長白 도로에 의해 마을이 두 개로 분리되어 있음. 유적지는 대지 서단의 2단 충적대지에 위치하여 있으며, 남쪽 50여m 거리에 압록강이 있음. 충적대지는 사면이 모두 경사가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여 하나의 자그마한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대지는 농지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음.유물정보 토기 구연부 2점, 석제 도끼 2점, 석제 칼 3점, 어망추 1점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王洪峰, 「臨江電站庫區古遺存調査綜述」『博物館研究』 1988-3, 1988 · 國家文物局 主編, 「東甸子遺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張天鵬, 「文物」『渾江市志』, 中華書局, 1994

  • 왕팔발자요지(王八脖子窯址)

  • 리스트여닫기 육도구동광지(六道溝銅礦址, 夾心崗古銅鑛址) 출토지 임강시 착초정자향(현재의 보산진) 향산진 (臨江市 錯草頂子鄉[現在 寶山鎮] 銅山鎮)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1984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6월 하순에 동광 발견의 한 사람인 錯草頂子鄕 黨委 書記 周正發 등이 참가하여 광산 간부 등의 도움을 받아 동광의 흔적을 확인하고, 『渾江市文物志』중의 ‘六道溝銅鑛址’에 발표함.1995백산시문물보사대(白山市文物普査隊)5월에 張殿甲 등이 참가하여 古銅鑛 부근의 寶山鎭(原名 錯草頂子鄕) 下亂泥塘四社(舊名 後小溝)의 경작지에서 冶鍊 유적을 발견하고, 『北方文物』2000-2에 발표함.1885(光緖 11) 臨江市 六道溝 동북쪽 산에서 깊이 6m인 오래된 채광 갱도 4개를 발견했고, 이때 제련시에 남긴 찌꺼기[鑛渣]도 많이 발견함.1887-1958 동광 개발 연혁을 보면, 1887년경 鄭鐸民, 孟蘭亭, 郝金堂 등이 채광을 시도하다가 기술적 낙후로 모두 그만뒀고, 1923년부터 개발되어 ‘臨江銅鑛’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1932년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채광을 함. 1940년 이후에는 구리보다 군사적 목적에서 몰리브덴[鉬]을 주로 채광했고, 중국 정부 성립 이후 동광 매장량을 조사했으며,1958년부터 광산을 건설해 채광하다가 1983년에 폐광함.1954-1958 이 무렵 중국 정부가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준비에 착수했는데, 당시 沈陽地質勘探公司 108隊[吉林省 冶金 地質 601 勘探隊]의 周正發이 六道溝 銅山鎭(舊名 老黑頂子) 일대를 탐사하다가 2호 동굴에서 오래된 좁은 갱도를 발견했고, 당시 601대가 그린 갱도의 평면도가 欓案 자료로 남아 있음.구조특징 礦脈은 동서 2,600m, 남북 1,000m 범위에 분포하고, 礦石品位는 대체로 0.2% 정도이며, 개별 富礦脈 品位는 20% 정도임. 鑛床은 矽卡岩型의 小型 礦床, 黃銅礦, 斑銅礦과 輝鉬礦 등이 매장됐는데, 매장량(1950년대)은 총 245만톤, 銅 1.7만톤, 몰리브덴[鉬] 1,824톤임. 1885년에 깊이 6m인 채광 갱도 4개를 발견했다고 함. 1950년대에 광산 개발을 위해 이 일대를 탐사하다가 2호 동굴에서 발견한 갱도는 方圓形으로 폭이 0.7m에 불과하며, 깊이는 알 수 없었으나, 갱도에서 靑銅製 등잔과 목제 가래 등이 발견됨. 臨江銅鑛에서 일했던 인부들이 古礦洞의 현황에 대한 전언에 따르면, 채굴하다가 고갱도 발견했고, 고갱도에서 소나무 횃불[明子]을 발견했다고 함. 현대의 갱도는 平行 巷道式 채굴법을 채용하여 여러 갱도를 평행으로 굴진한 다음 다시 주 갱에서 관통해 폭파시켜 광석을 채취하므로 처음 팠던 갱도는 모두 커다란 동굴로 변함. 이에 비해 古坑道는 수직 구덩이식[竪井]을 위주로 했고, 대부분 富礦脈을 따라 굴진해 분포 상태가 불규칙함. 1950년대 말 이래 20여년간 채광하면서 고동광은 거의 모두 사라짐. 1950년대말 六道溝鄕 曲柳樹[현재의 錯草頂子鄕 立新村, 夾心崗이라고도 불림)일대의 冶鍊址에서 석제 도끼, 석제 화살촉, 철제 화살촉, 철제 솥, 동제 불상(銅佛), 마제 석촉이 발견되었고, 부근에서 아궁이[炕址]와 재 구덩이[灰坑] 등도 발견됨. 이 일대 언덕에는 冶鍊址와 목탄과 야련 찌꺼기[溶渣] 등이 남아 있음. 동광 전문가에 따르면 노천 야련은 온도가 높지 않아도 되며, 목탄을 연료로 사용해도 가능하다고 함. 冰湖村 산 위의 冶鍊址는 吉林 冶金 地質 602隊를 퇴직한 趙興國씨의 회상에 따르면, 1950년대 冰湖村 산 위에 가득 흩어져있는 銅渣堆가 발견되었는데, 이 동 찌꺼기들은 近代의 것이 아니었다고 함. 1995년 曲柳樹[夾心崗] 야련지에서 서남쪽으로 2㎞ 정도 떨어진 寶山鎭(原名 錯草頂子鄕) 下亂泥塘4社(舊名 後小溝) 경작지에서 발견되었는데, 유적지 북쪽 300m 거리에 四社, 남쪽 50m 거리에 七道溝河가 있으며, 七道溝河 右岸 2단 대지 위에 위치해 지세는 확 트였고 평탄함. 유적지 규모는 동서 약 200m, 남북 약 100m로서 토질이 비옥하며, 층위는 耕土層 약 15-20㎝, 그 아래 문화층에 탄층[炭層]과 붉게 탄 흙덩이[紅燒土]가 있음. 유적지 표면에 토기편과 銅渣(동 찌꺼기) 등이 흩어져 있고, 현지 학생이 四社 동측의 두 번째 산골짜기에서 동 찌꺼기를 채집함. 1950년대에 발견한 古坑道에서 청동제 등잔과 목제 가래가 발견되었고, 曲柳樹[立新村, 夾心崗] 일대의 冶鍊址에서 석제 도끼, 석제 화살촉, 철제 화살촉, 철제 솥, 동제 불상(銅佛), 마제 석촉 등을 발견했다고 함. 寶山鎭(原名 錯草頂子鄕) 下亂泥塘四社 冶鍊址에서는 동찌꺼기와 함께 토기편을 다수 채집함.역사적 의미 근현대 坑道와 다른 古坑道 현황, 주변의 冶鍊址에서 채집된 유물과 야련 찌꺼기 등으로 보아 고대 銅鑛 및 冶鍊 유적으로 추정되며, 고구려시기부터 개발되어 발해 시기에도 채굴했을 것으로 추정됨. 高麗에 銅이 많다는 『宣和奉使 高麗圖經』의 기록, 周나라 世宗이 비단을 고려의 銅과 교환해 鑄錢했다는 『五代史証』의 기록 등은 본래 고구려 경내에도 銅礦이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추정됨. 『冊府元龜』권999에는 ‘唐 文宗 開成 元年(836년) 6월에 淄靑節度使가 상주해 발해가 銅을 정련해 보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당시 압록강 수로를 경유하던 ‘朝貢道’를 통해 발해가 당과 무역하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 기록의 銅은 臨江 銅鑛에서 채굴해 제련(冶煉)한 純銅을 六道溝 河谷-압록강 수로를 거쳐 唐의 淄靑節度使가 주재하던 登州까지 보냈을 가능성이 높음.자연환경 臨江市 六道溝鄕에서 동북쪽 13㎞ 떨어진 錯草頂子鄕[현재의 寶山鎭] 관할의 銅山鎭 서측 산 위에 위치하며, 지금은 폐광된 臨江銅鑛에서 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평탄한 산등성이에 위치함. 古銅鑛이 위치한 산등성이는 해발 760m, 比高 300m로 평탄하며, 둥그스럼한 방형으로 면적은 20여만㎞2에 이름.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國家文物局 主編, 「夾心崗古銅鑛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張天鵬, 「鑛業」『渾江市志』, 中華書局, 1994 · 張殿甲, 「鴨綠江中上游高句麗·渤海遺址調査綜述」『北方文物』 2000-2, 2000

  • 리스트여닫기 하남둔유지(河南屯遺址) 출토지 임강시 사도구향 하남둔촌 (臨江市 四道溝鎮 河南屯村)조사내용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1984혼강시문물보사대(渾江市文物普査隊)6월에 유적의 현황을 파악하고, 유물을 채집하였으며, 『渾江市文物志』 중의 ‘河南屯遺址’를 발표함.1987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혼강시문물관리위원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渾江市文物管理委員會)5월에 石肖元, 張立夫, 張立新, 王洪峰이 참가하여 임강댐 수몰지구 조사차 고분군과 더불어 유적을 조사하였으며, 『博物館硏究』1988-3에 발표함.1995백산시문물보사대(白山市文物普査隊)5월에 張殿甲 등이 참가하여 성곽 현황 파악 및 유물을 채집하고, 『北方文物』2000-2에 발표함.2004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백산시문관판, 집안시박물관(吉林省長白山文化硏究會, 白山市文管判, 集安市博物館)7월 10일에 張福有, 張殿甲, 遲龍, 孫仁杰 등이 참가하여 전체적인 현황 파악 및 유물을 채집하고 『東北史地』2004-5에 발표함.구조특징 1984년 조사 당시에 벽돌공장 북쪽 일대에서 布紋 기와편과 소량의 토기편을 채집했는데, 색상은 회갈색과 황갈색 두 가지 종류가 있고 회갈색이 비교적 많고, 기종은 단지, 바리 등임. 1987년 조사 당시 유적의 분포범위는 마을의 도로를 중심으로 대략 동서 200m, 남북 100m 전후이고, 층위는 제1층 표토층 25㎝, 제2층 황색 모래층 45㎝, 제3층 흑갈토층 15-20㎝이며. 제2층에는 유물이 거의 없고, 제1층·제3층에 유물이 많다고 함. 도로 서측에는 기와편, 동측에는 토기편이 많음. 1995년 조사 당시에는 분포 범위가 남북 100m, 동서 50m이고, 2004년 조사 당시에는 분포 범위가 남북 300m, 동서 200m임. 1984년 조사 당시 담장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고, 1987년 당시 유적지 북쪽 부분에는 민가가 자리잡고 있어 유적의 훼손이 심했다고 하며, 1995년 당시 유적 동남부는 마을의 민가로 뒤덮임. 1984년 조사당시 유물 채집 지역 서남쪽에 흙으로 다져 쌓은 담장이 있었는데, 당시에 이미 많이 무너져 殘長 50m, 높이 0.2-0.4m, 최고 높이 1m 정도에 불과했다고 함. 2004년 조사 당시 유적의 서남쪽에 殘長 50m, 높이 0.4-1m, 기단 너비 6m의 城址가 있었다고 함. 2004년 조사 당시 성지 내부의 몇 곳에서 정연하게 배열된 채 높이 솟은 경작지의 흙담이 있었는데, 건축물의 흔적으로 파악됨.역사적 의미 하남둔 유적에서 출토된 기와편이나 토기편 등은 대체로 발해 시기 유물로 추정되는데, 이에 발해시기의 성터 또는 절터로 추정하며, 대체로 西京鴨綠府에 소속된 神州 관할의 神化縣이나 釗門縣 소재지로 추정하고 있음. 한편 하남둔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편들이 고구려 토기의 특징을 비교적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파악하기도 함(王洪峰).자연환경 臨江市 四道溝鄕 河南屯村 북쪽 3㎞의 하남둔에 위치하며, 서북쪽 4㎞에 四道溝鄕 소재지가 있으며, 북쪽 약 500m에 五道溝河가 있음. 압록강가의 대지상에 마을이 있는데, 현대 벽돌 공장이 있고, 이곳에서 오도구하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四道溝 坡口遺蹟이 나옴. 河南屯은 압록강의 右岸, 오도구하의 南岸에 위치하고, 五道溝河와 압록강 합류지점 동남쪽에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압록강이 하남둔 서쪽에서 유유히 北流하다가 오도구하와의 합류처를 지난 다음, 사도구하와 합류하면서 流向을 서쪽으로 꺾어 흘러나가고 있음. 특히 하남둔 유적의 압록강 건너편에는 상당히 넓은 충적대지가 펼쳐져 있으며, 하남둔 대지의 동남쪽 산기슭도 경사가 상당히 완만한 편임.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王洪峰, 「臨江電站庫區古遺存調査綜述」『博物館研究』 1988-3, 1988 · 國家文物局 主編, 「河南屯遺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張天鵬, 「文物」『渾江市志』, 中華書局, 1994 · 張殿甲, 「鴨綠江中上游高句麗·渤海遺址調査綜述」『北方文物』 2000-2, 2000 · 孫仁杰·遲龍·張殿甲, 「鴨綠江上流右岸考古調査」『東北史地』 2004-5, 2004

  • 임강 1구역 제10호분(臨江 1區域 第10號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