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크라스키노발해성

3. 성의 북쪽 부분 발굴조사: 제47구역

크라스키노 성터의 북쪽 부분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1년도에 시작되었는데 당시 석축기단 건축물의 일부, 18호 주거지, 그리고 도로유구가 조사되었다. 이 유구들은 모두 위 건축면에 속한다. 2012년도에는 섹터 1과 1'에서 확인된 석축기단 건축물의 나머지 부분을 조사하여 2011년도에 노출된 위 건축면의 유구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석축기단 건축물의 방향을 고려하여 섹터 1과 1'의 남서쪽으로 확장구역을 설정하였다(도면 313). 1m 너비의 둑을 남기고 지표를 정리한 다음에(도면 327), 5×10m의 구역을 설정하여 이를 섹터 4로 명명하였다(평면도 1; 도면 314). 나중에 이 섹터의 경계 부분에 주거지의 일부가 들어간 것이 확인되고 난 다음에는 섹터 4에서 남서쪽으로 5×10m 크기의 섹터 5를 새로이 설정하였다. 새로이 설정된 두 섹터에서는 2011년도에 표시한 아라비아 숫자와 알파벳을 계속 연장하여 방안을 표시하였다(도면 313). 2011년도에 조사된 유구들과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섹터 1'~2에의 현장 보존조치 시설물을 모두 제거하였다. 섹터 2의 현장 보존조치 시설물을 제거할 때에 도가니편이 수습되기도 하였다(도면3 36; 337).
2012년도에 발굴된 제4섹터와 제5섹터에서는 토층이 2011년도에 섹터 1'~3에서 조사된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도면 315~326).
- 표토, 두께 8~20㎝,
- 부식 사질토, 평균 두께 12~28㎝,
- 옅은 갈색 사질토, 두께 10~20㎝,
- 다양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 평균 두께1 ~24㎝, 곳에 따라 갈색 사질토 렌즈가 포함.
전체적으로 제47구역의 섹터 4와 섹터 5에서의 발굴조사 결과 위 건축면에 속하는 2줄 고래의 구들이 있는 19호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19호 주거지 발굴조사
섹터 4. 지표면에 대한 레벨 측량 다음에(도면 328) 표토와 부식토를 제거하였는데(평면도 2; 도면 329) 그 아래에서 부식 사질토로 된 얼룩과 띠들이 포함된 옅은 갈색 사질토층이 노출되었다(도면 329~332). 이곳에서 레벨이 -188 / -196㎝되는 깊이에서 섹터 1'-1에서 확인된 석축기단 건축물의 계속된 부분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건축물은 발굴구역의 북동벽 부근 예(Е)-1-2방안이라는 제한된 부분에서만 확인되었다. 발굴구역의 남서쪽 부분인 제(З)-3'-4방안에서는 노출된 돌들이 모서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윗부분은 제(З)-2'-1'방안에 위치하였다(도면 333~334). 제1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 제(З)-6'방안과 예(Е)-3방안에서 철제 화살촉편(№ 1, 레벨 -180㎝)과 철제 손칼편(№2, 레벨 -179㎝)이 출토되었다(도면 338~341). 표토와 부식토 제거 시와 그 다음의 정리 작업 시에 수습된 놀이 알들과 윤제 토기편들은 기본적으로 섹터의 북서쪽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다(도면 342~344).
옅은 갈색 사질토층을 두께 5~10㎝로 정리 조사한 다음에(도면 345) 예(Е)-줴(Ж)-1, 2방안의 석축기단 건축물 일부와 19호 주거지로 명명된 주거지의 2줄 고래 일부가 각각 조사되었다(도면 354~361). 구들은 모서리 부분이 줴(Ж)-1, 2방안에서 길이 170㎝의 석축기단 건축물과 바로 인접하고 있었다. 구들의 동쪽 섹터는 석축기단 건축물과 방향이 같으며 북-남 방향으로 4m 길이(구들의 너비는 약 1.7m이다)로 나 있고 섹터 4의 까(К)-2, 3방안 북서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구들의 북쪽 섹터는 길이 5.9m(너비 1.6m)로 남아있었으며, 석축기단 건축물과 직각으로 인접하고 그리고 줴(Ж)-1, 2방안에서 까(К)-3방안으로, 다시 말해서 동-북 방향으로 나 있었다. 구들의 잔재는 다양한 입자의 주로 중간 크기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에 위치하였다.
구들의 뒤쪽 벽을 정리 조사하는 중에 까( К)-2방안에서 2점의 철제 창(№4, 5, 레벨 -179㎝)(도면 347~353), 제(З)-2방안에서 주철제 솥의 다리편(№6, 레벨 -178㎝)(도면 362)이 각각 출토되었다. 까(К)-3방안과 이(И)-5'방안에서는 기와로 만든 놀이 알들이 발견되었다(도면 363; 364). 제2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는 윤제의 발해 토기편들이 다량 출토되었다(도면 365~369).
섹터 5. 구들의 뒤쪽 섹터가 둑 아래로 지나간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난 다음에 섹터 4의 남서벽 방향으로 발굴구역을 확장하기로 결정을 내렸고(도면 313) 5×10m 크기의 섹터 5를 설정하였다(도면 370; 371). 섹터 5에서 표토와 부식토를 제거하자 창백한 갈색 사질토층이 노출되었는데 그곳에는 현재의 도랑도 함께 확인되었다. 이 도랑은 에르(Р)-1'-3방안 - 뻬(П), 에르(Р)-5방안에서 문화층을 파괴하면서 지나갔다(도면 374~377). 오(О)-4'방안에서는 장방형 돌의 상면이 노출되었고(도면 376), 뻬(П)-3'방안에서는 상호 교차하는 구멍들이 있는 발해 ‘입방체’의 편이 출토되었으며(도면 378; 379), 그 외 토제 고리(도면 380)와 놀이 알들(도면 381; 382)이 수습되었다. 다량의 윤제 토기편이 표토, 부식 사질토를 제거한 다음에 수습되었다(도면3 83~385).
제2인공층(창백한 갈색 사질토층) 정리 조사 후에 섹터 5에서 다양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이 노출되었다(도면 386~389). 창백한 갈색 사질토층에 대한 정리 조사 중에 뻬(П), 에르(Р)-5'-3'방안에서 개별적인 돌무지들이, 엠(М)-오(О)-4'-5방안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진 돌들이 노출되었다. 엠(М)-엔(Н)-5'방안에서는 길이 142㎝, 너비 20~46㎝인 2줄의 평행하는 숯 포함층 띠가 확인되었는데 구들의 고래일 것이다(도면 391). 그것들은 북-남 방향으로 나 있고 사실상 19호 주거지의 동쪽 섹터와 평행을 이룬다. 추정 고래에서 남쪽으로 1m 거리에서 2개의 둥근 모양 적색 사질토 지점이 조사되었다. 그 중 1기는 뻬(П)-5'방안(크기 48×80㎝)에, 다른 1기는 오(О)-4'방안(48×98㎝)에 각각 위치하며 두께는 5~7㎝이다(도면 392). 오(О)-4'방안의 적색 사질토 지점 북서쪽에서 크기가 8×16×68㎝인 장방형 사암 돌이 기초 부분까지 정리 조사되었다(도면 392). 정석배 교수가 추정하였듯이, 그 장방형 돌은 크기와 재질이 최근 얼마 전까지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민족들의 가정에서 나무 방망이를 이용하여 거친 직물을 부드럽게 만들 때에 받침으로 사용한 ‘다듬잇돌’과 매우 흡사하다. 그와 같은 돌에 대한 기록이 9세기에 일본을 방문한 발해사신 양태사의 시에 남아있다. 그는 어느 날 저녁 다듬이 소리를 듣고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를 썼다. 주 001
각주 001)
발해 제3대왕 문왕(文王)이 일본에 파견한 사신 양태사(楊泰師)는 고향을 그리며 〈밤에 다듬잇 소리를 들으며〉(夜聽擣衣聲) 라는 시를 남겼다. 이번 발굴은 문헌으로만 전해오던 발해 다듬잇돌의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8세기 전후 발해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다. 김은국,「발해 염주성 발굴성과와 의미」,『동북아역사재단 NEWS』 2012년 9월호, 동북아역사재단, 22~23쪽.
닫기
발굴구역의 남쪽 모서리 부분에서는 제3인공층 상면 레벨에서도 에르(Р)-1'-3방안에서 오(О)-에르(Р)-5방안으로 문화층을 파괴하고 지나가는 현대 도랑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옅은 갈색 사질토층을 정리 조사하고 다양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의 윗부분을 조사할 때에 다음과 같은 철제, 주철제, 토제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 엔(Н)-5방안에서 철제 화살촉(№8, 레벨 -180㎝)(도면 397; 398), 엠(М)-5방안에서 철제 배목(№9, 레벨 -187㎝)(도면 399; 400), 엔(Н)-4방안에서 주철제 솥 다리편(№12, 레벨 -185㎝)(도면 403; 404), 엔(Н)-4방안에서 주철제 솥 기벽(№19, 레벨 -187㎝), 엔(Н)-4방안에서 철제 손칼 날편(№16, 레벨 -189㎝)(도면 405; 406), 오(О)-2방안(№15, 레벨 -184㎝)(도면 411)과 오(О)-5방안(№17, 레벨 -179㎝)(도면 408; 409)에서 철제 못들.
 - 뻬(П)-2'방안에서 수기와 막새기와편(№7, 레벨 -181㎝)(도면 393~396), 엔(Н)-3'방안에서 토제 구슬(№ 10, 레벨 -188㎝)(도면 401; 402), 에르(Р)-2'방안에서 납유를 시유한 토기 동체부편(№11, 레벨 -179㎝)(도면 412), 엠(М)-4방안(№13, 레벨 -193㎝)(도면 413)과 엔(Н)-1'방안(№14, 레벨 -190㎝)(도면 414)에서 토제 고리들, 오(О)-2'방안에서 거의 온전한 벽돌(№18, 레벨 -173㎝)(도면 409; 410).
제2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 옅은 갈색 사질토와 다양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의 위 부분에서 토기기벽과 기와편으로 만든 놀이 알들(도면 415), 윤제 토기편들(도면 416~422), 기와편들(도면 423~428) 등이 출토되었다.
섹터 5에서 예상과는 달리 19호 주거지의 구들이 더 이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둑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도면 325; 429; 430). 둑 아래에서 구들의 뒤쪽 섹터가 하나 더 노출되었다.
다음에는 섹터 4와 섹터 5 전체 발굴구역에 대해 두께 평균 10~12㎝로 제3인공층 - 다양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 -을 정리 조사하였고 구들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하였다(도면 431; 433~434). 그 결과 엘(Л)-2, 3방안에서 적갈색 사질토 띠로 둘러싸인 적색 사질토 얼룩이 정리되었는데 크기가 94×106㎝인 노지였다. 이 노지에 대해서는 C-C'선을 따라 단면조사를 하였고, 19호 주거지의 다양한 지점들에 대해 A-A'선, B-B'선, D-D'선, E-E'선, F-F'선, G-G'선을 따라 단면도를 작성하였다(도면 431; 432; 435).
따라서 구들의 동쪽 섹터는 완전하게 보존된 상태였다. 엘(Л)-엠(М)-4'방안에서는 수직으로 세운 돌들의 열이 발견되었는데 남-북 방향으로 다시 말해서 19호 주거지 구들 동쪽 섹터와 평행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다. 이것은 구들 서쪽 섹터의 흔적이라고 추정할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수직으로 세워진 돌들은 구들 고래의 벽들이기 때문이다. 그 돌들은 제2인공층 정리 조사 후의 고래자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구들 서쪽 섹터의 동벽(주거지 안쪽으로 난)일 가능성이 높다. 이 섹터의 길이는 5m로서 구들 동쪽 섹터보다 더 길었을 것이고, ‘다듬잇돌’ 및 두 번째 노지였을 가능성이 있는 적색 사질토 얼룩들과 나란히 마무리된다.
19호 주거지는 북-남 방향으로 나 있고 출입구는 남쪽에 있다. 주거지의 길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약 8.5~9m, 북쪽에서 남쪽으로 6.4m이상이다. 주거지의 남쪽 경계는 에르(Р)-5'방안에서 뻬(П)-2'방안으로 약 3m 길이로 나 있는 석열일 것이다. 이 석열 이상으로는 돌들이 보다 산만한 상태로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주거지의 면적은 54.4~57.6㎡에 달하는데 이는 2005년도에 제34구역 내에서 조사된 1호 주거지의 크기 - 57.6㎡-와 상응한다. 물론 이 두 주거지의 방향은 서로 차이가 난다. 주 002
각주 002)
Отчет об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ях на Краскинском городище Приморского края в 2005 году. - Сеул: ФондИсследованийКогурё, 2006. - 239 с. (고구려연구재단·러시아 극동 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2006), 『2005년도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성 발굴보고서』, 고구려연구재단, 239쪽.)
닫기
구들의 동쪽 섹터에서 서쪽으로 까(К)-1, 2방안에서는 암색 및 짙은 오렌지색 점토 얼룩들이 포함된 갈색 사질토 고리 모양의 둥그스름한 얼룩이 노출되었다. 이 얼룩의 크기는 132×90㎝이다(도면 436~441). 추가적인 정리 조사와 단면 조사를 통해 이것은 황갈색 점토를 바른 구덩이 1의 잔재임이 확인되었다(도면 443~445). 그 내부 퇴적토는 짙은 오렌지색의 점토 조각들 및 얼룩들이 포함된 갈색 사질토로 이루어져 있었다. 구덩이의 바닥과 그 내부 퇴적토에서 토기 기벽들과 수 개의 자갈돌이 발견되었다. 비록 구덩이의 내부 퇴적토와 바닥에서 작은 목탄 조각들이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에는 불에 달구어진 층이 없었기 때문에 그 구덩이가 추가의 노지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구덩이 1이 경제적 기능을 가졌음에는 틀림없다.
제3인공층 정리 조사와 구덩이 1에 대한 추가 조사 중에 다음과 같은 철제, 주철제, 그리고 토제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 줴(Ж)-3방안에서 주철제 솥의 다리편(№20, 레벨 -211㎝),
 - 철제 유물편들. 엘(Л)-5'방안에서 철제 창편(№21, 레벨 -195㎝)(도면 446; 447), 오(О)-1'방안에서 철제 손칼(№24, 레벨 -180㎝), 엠(М)-3방안에서 철제 뾰족한 유물(№25, 레벨 -195㎝), 엠(М)-1방안에서 철제 심봉(№26, 레벨 -193㎝), 엠(М)-1방안에서 철제 판(№29, 레벨 -200㎝)(도면 452; 453),
 - 토제 유물편들. 뻬(П)-3'방안에서 “발해 입방체”(№22, 레벨 -180㎝)(도면 448; 449), 오(О)-2'방안(№23, 레벨 -180㎝), 엔(Н)-2방안(№27, 레벨 -202㎝), 그리고 엘(Л)-1'방안(№28, 레벨 -203㎝)에서 토제 고리들(도면 450; 451), 에르(Р)-5'방안에서 정요 자기 동체부편(№30, 레벨 -188㎝), 뻬(П)-4'방안에서 토제 구상유물(№31, 레벨 -194㎝), 그 외 다량의 윤제 토기편들과 놀이 알들(도면4 56~486).
제47구역에서의 발굴조사는 이 단계에서 종료되었고 이 구역의 모든 섹터는 현장 보존 조치되었다(도면 487; 488).

  • 각주 001)
    발해 제3대왕 문왕(文王)이 일본에 파견한 사신 양태사(楊泰師)는 고향을 그리며 〈밤에 다듬잇 소리를 들으며〉(夜聽擣衣聲) 라는 시를 남겼다. 이번 발굴은 문헌으로만 전해오던 발해 다듬잇돌의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8세기 전후 발해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다. 김은국,「발해 염주성 발굴성과와 의미」,『동북아역사재단 NEWS』 2012년 9월호, 동북아역사재단, 22~23쪽. 바로가기
  • 각주 002)
    Отчет об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ях на Краскинском городище Приморского края в 2005 году. - Сеул: ФондИсследованийКогурё, 2006. - 239 с. (고구려연구재단·러시아 극동 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2006), 『2005년도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성 발굴보고서』, 고구려연구재단, 239쪽.)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3. 성의 북쪽 부분 발굴조사: 제47구역 자료번호 : kr.d_0010_003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