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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2.1. 제44구역

제44구역에 대한 발굴조사는 크라스키노 성의 주거 구역에 대한 조사를 계속해서 실시하기 위해 2010년도에 시작하였다(도면 5, 6, 7). 제44구역은 앞서 확인된 유구들을 조사하기 위해 제40구역의 남쪽으로 인접하게 설정되었다. 2010년도의 발굴조사에서는 이 구역에서 3개 인공층이 조사되었고, 이곳에서 하나의 건축면에 속하는 유구들이 발견되었다. 제44구역의 중앙과 동쪽 부분에서는 석벽 기초와 초석이 있는 1호 건물지 공간이 조사되었다. 서쪽 섹터의 남쪽 부분에서는 석축 기단 위에 세운 2호 건물지가 위치하였다. 이 구역에서는 그 외에도 일부씩만 노출된 다른 4기의 유구가 더 확인되었다. 동쪽 섹터의 이(И)-엔(Н)-24-29방안에서는 문화층이 군대 참호에 의해 파괴된 상태였다.
제44구역은 모양이 뒤집어진 ‘П’자 모양이고 제40구역의 남벽, 서벽, 동벽 및 제48구역의 북벽과 경계를 같이 한다. 제44구역의 면적은 2010년도에 비해 34㎡가 줄어들어 133㎡가 되었는데 이는 제44구역과 제48구역을 합하고 그리고 너비 1m의 새 둑을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게'(Г')-27-엔(Н)-27방안에 설정된 서-동 방향의 둑 1개가 제44구역과 제48구역을 구분하였다. 두 번째 둑은 북-남 방향으로서 붸(В)-23-27방안에 설정되었으며 제44구역을 동쪽 섹터와 서쪽 섹터의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제44구역의 남북 길이는 11m, 동서 길이는 17m이다.
서-동 방향의 제 44구역의 상면은 현장 보존조치 시설물을 제거한 후 상대적으로 고른 편이었다(평면도 4, 도면 68~70). 서쪽 섹터의 북쪽과 남쪽의 레벨 차이는 약 4㎝(-94 / -98㎝)로 남쪽이 약간 낮았고, 동쪽 섹터의 북쪽과 남쪽 레벨 차이는 25㎝(-71 / -96㎝)로 역시 남쪽이 낮았다.
2012년도 발굴조사에서는 2개 인공층위가 정리 조사되었는데 이곳에서 서로 다른 건축면에 속하는 유구들이 확인하였다.
 

동쪽 섹터

동쪽 섹터 20호 주거지 발굴조사
제44구역 동쪽 섹터에서는 이(И)-엠(М)-17-21방안에서 매우 일부만 남아있는 20호 주거지의 흔적을 조사하였다. 제4인공층을 평균 약 10~12㎝ 깊이로 제거한 다음에(평면도 5, 도면 71, 72), 동쪽 섹터의 이(И)-엠(М)-17-21방안에서 단단한 갈색 사질토의 넓은(3.2×5.5m) 얼룩(주거지 내부 퇴적토)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도면 73, 74). 이 얼룩은 서쪽으로는 가는 입자의 황갈색 사질토(엔(Н)-17-19방안, 1.2×3.5m), 남동쪽으로는 크기가 88×44㎝ 및 200×70㎝인 갈색의 작은 입자 모래 얼룩들(엠(М), 엔(Н)-20, 21방안과 엘(Л)-엠(М)-21, 23방안) 및 크기가 140×3㎝인 무른 황갈색의 큰 입자 모래 얼룩(엠(М)-21, 22방안), 남쪽으로는 발굴구역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단단한 알록달록한 갈색 사질토층과 각각 접하고 있었다. 단단한 갈색 사질토의 남동쪽 경계 부분에는 다양한 입자와 색깔의 모래 얼룩들이 수 개 인접하고 있었다. 섹터의 북벽과 서벽으로 넘어가는 얼룩의 서쪽 경계를 따라서는 그 가장자리에서 평균 약 1m의 거리에 남서쪽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길이 2.4m의 크고 작은(36×20㎝, 20×14㎝) 돌들의 열이 나 있었다(엘(Л)-20, 엘(Л)-19, 엠(М)-18방안)(도면 75). 이 돌들의 레벨은 -89㎝에서 -95㎝ 사이에 위치하며 인공층의 레벨은 -93㎝에서 -105㎝ 사이다. 이(И)-19방안의 단단한 갈색 사질토 얼룩 내에서 황갈색 점토의 작은 얼룩들이 확인되었으며(40×16㎝, 18×8㎝), 그와 나란히 큰 크기와 중간 크기의 돌들이 개별적으로 놓여 있었다4(0×20㎝, 30×22㎝, 레벨 -82 / -92㎝).
이 유구의 내부 퇴적토에는 다량의 토기편과 다른 유물들이 섞여 있었다. 유구 내부 퇴적토의 윗부분에서는 기와로 만든 놀이 알들(이(И)-18방안, 레벨 -94㎝, 엠(М)-19방안, -101㎝, 이(И)-20방안, -96㎝)과 윤제 토기 기벽으로 만든 놀이 알들(까(К)-21방안, 레벨 -96㎝, 엠(М)-19방안, -101㎝)이 각각 발견되었다(도면 76, 77). 토기편들 중에서는 엠(М)-20방안에서 출토된 태양 기호가 있는 윤제 토기 저부편(№68, 레벨 -91㎝)이 구분된다(도면 78). 까(К)-21방안에서는 철제 과대장식(№27, 레벨 -93㎝)이 출토되었다(도면 79).
다음의 제5인공층에서는 두께 7~10㎝의 층이 정리 조사되었다(평면도 6, 도면 80, 81). 섹터의 북쪽 부분과 남쪽 부분 사이에 레벨 차이(20㎝까지)가 심하였던 관계로 남쪽 부분에서는 조금 덜 깊게(5㎝까지) 토층을 제거하였다. 그 결과 단단한 갈색 사질토 얼룩은 모가 둥근 보다 분명한 장방형의 모양을 가지게 되었고 크기가 약간 줄어들었다. 이 얼룩의 크기는 동서로 길이 약 2.8m, 남서-북동으로 길이 약 4m였다. 얼룩의 동쪽 경계 부분이 크게(거의 1.5m) 늘어났는데 그 가장자리를 따라 석렬이 확인되었다. 엘(Л)-20방안, 엘(Л)-19방안, 엠(М)-18방안에서 새로운 돌들이 노출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중간 크기의 것들이다(14×16㎝/40×22㎝, 레벨 -90 / -98㎝). 이제 그것들은 너비 0.4m, 길이 2.6m의 분명한 선을 형성하였다(도면 82). 엘(Л)-20방안(34×14㎝, 레벨 -95㎝), 엘(Л)-19방안(30×30㎝, 레벨-92㎝)에서와 같이 큰 크기의 돌들도 있지만 수량이 적은 편이다. 새로 노출된 돌들의 레벨은 제4인공층 제거 후에 노출된 돌들보다 2~3㎝ 낮으며, -90㎝부터 -98㎝까지이다. 모든 것을 통해 볼 때에 석축 구조물에는 점토를 발랐는데 엘(Л)-19-20방안에서 돌을 따라 40×14㎝ 크기의 얼룩 모양을 한 창백한 갈색 점토층(레벨 -107㎝)이 남아있다. 주거지 주변의 상황도 바뀌어 북동쪽으로는 단단한 갈색 사질토가 작은 입자의 황갈색 모래와 접하고, 동쪽으로는 갈색 사질토와, 남쪽으로는 거친 입자의 모래 및 단단한 황갈색 사질토가 포함된 갈색 사질토와 각각 접한다(도면 83). 주거지 내부 퇴적토 까(К)-17, 18방안에서 새로운 돌들이 추가로 확인되었다(16×12㎝, 12×12㎝, 20×10㎝, 레벨 -103, -102, -98㎝).
주거지 내부 퇴적토 내 이 깊이의 석축 구조물(돌들 사이와 그 부근)에서 홍옥을 마연하여 만든 목걸이 알이 6점 출토되었다(№71, 엘(Л)-18방안, 레벨 -91㎝; №73, 엘(Л)-18방안, 레벨 -104㎝: №74, 엘(Л)-20방안, 레벨 -107㎝: №75, 엘(Л)-18방안, 레벨 -106㎝: №76, 엘(Л)-20방안, 레벨 -108㎝: №90, 엠(М)-18방안, 레벨 -107㎝). 그 중에서 4점은 구상이고(№71, 73, 74, 90), 2점은 양원추형이다(№75, 76)(도면 85~95). 과거 2010년도 발굴조사에서 엘(Л)-18방안의 이 보다 높은 층에서 유사한 양원추형의 홍옥 목걸이 알(레벨 -59㎝)이 출토된 바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주 001
각주 001)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й экспедиции на Краскинском городище в 2010 году. Фонд изучения истории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ИИАЭ ДВО РАН. Сеул, 2011-. С. 230. 동북아역사재단·러시아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2011), 『2010년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성 한·러 공동 발굴보고서』, 동북아역사재단,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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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엘(Л)-20방안에서는 금속 유물편이 출토되었다(№81, 레벨 -108㎝)(도면 84). 추정 주거지 범위 내에서는 토기편들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 중 까(К)-20방안에서는 침선 기호가 표시된 윤제 토기 경부편, 뚜껑 손잡이 등이 출토되었다(도면 96~98).
따라서 제44구역의 동쪽 섹터 북서쪽 부분 이(И)-엠(М)-17-21방안에서는 심하게 파괴된 주거지의 잔재가 조사되었다. 이 주거지의 내부 퇴적토에는 화재의 징후가 없으며, 그을음 자국도 없다. 주거지의 구조를 복원하는 것은 일부만 보존된 관계로 불가능하였다. 다만 그 주거지는 지상식이었고, 남동-북서 방향으로 나 있었으며, 모양은 모가 둥근 장방형이었다는 점만은 지적할 수 있다. 발굴구역 내에 포함된 이 주거지의 크기는 2.8×4m이다. 석축 구조물이 구들의 잔재일 가능성도 있지만 고래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석축 구조물의 잔존 높이는 15~23 №71, 엘(Л)-18방안, 레벨 -91㎝(석축 구조물 기저부 레벨은 -107 / -109㎝, 위 부분 레벨은 -87㎝ /-93㎝), 길이는 2.8m, 너비는 0.4~0.5m이다. 주거지의 내부 퇴적토에 해당하는 단단한 갈색 사질토의 두께는 10~15㎝이다.
 
21호 주거지 발굴조사
제44구역 동쪽 섹터 북서 부분의 석축 구조물 제거 및 5~8㎝ 깊이로의 정리 조사 후에 새로운 돌 층이 노출되었다(평면도 7, 도면 99, 100). 이 새 돌 층의 레벨은 -103 / -108㎝ 사이다. 앞서 엘(Л)-엠(М)-18-20방안에서 조사된 석축 구조물과 이 돌들과의 사이에는 작은 돌들이 차 있는 토양층(5~8㎝)이 존재한다. 석축 구조물과 이 돌들의 방향은 사실상 일치한다. 석축 열은 큰 돌들(예를 들어, 42×36㎝, 레벨 -108㎝, 엘(Л)-20방안: 34×28㎝, -112㎝, 엘(Л)-19방안)과 중간 크기 돌들(예를 들어, 20×12㎝, 레벨 -108㎝, 엘(Л)-19방안; 20×14㎝, 레벨 109㎝, 엘(Л)-19방안)이 이루고 있다(도면 101). 석열의 길이는 2.5m, 너비는 0.4m이다. 이 석열의 서쪽 엘(Л)-19방안에는 잔 목탄과 불에 탄 점토들이 섞여있는 얼룩(60×24㎝)이 인접한다. 돌들은 주거지의 내부 퇴적토인 단단한 암갈색 사질토 층(3.3×3.6m)에 들어있다. 이 주거지의 윤곽과 방향은 앞의 주거지와 거의 동일하다. 이(И)-17, 18방안과 엘(Л)-17, 18방안에서는 무질서하게 놓여있는 돌들이 노출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중간 크기의 것들이다(18×12㎝, 레벨 -104㎝). 단단한 암갈색 사질토 층은 북동쪽으로 크기가 1.8×0.8m인 작은 입자의 갈색 모래 얼룩(까(К)-엘(Л)-17방안), 동쪽으로 크기가 3×0.4×0.8m인 갈색 사질토 얼룩(엘(Л)-엠(М)-17-19-17방안), 크기가 3.48×0.7×2.4m인 작은 입자의 황갈색 모래 얼룩(엠(М)-엔(Н)-17-20방안), 그리고 크기가 1.1×0.9m인 단단한 황갈색 사질토 얼룩(까(К)-엠(М)-20-21방안)과 각각 인접한다. 남쪽으로는 주거지가 제(З)-엠(М)-21-25방안의 섹터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단한 갈색 사질토 얼룩과 경계한다.
이 유구의 내부 퇴적토에서 출토된 토기편들(도면 125: 1, 2) 이외의 유물로는 까(К)-21방안에서 출토된 주철제 솥 동체부편(№89, 레벨 -112㎝)이 있다(도면 102, 103). 돌들과 나란히 엘(Л)-19방안에서는 홍옥으로 만든 구상의 목걸이 알(№72, 레벨 -113㎝)이 발견되었는데 제5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 출토된 목걸이 알들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도면 104, 105). 따라서 또 하나의 아래에 위치하는 유구가 발견된 것이다. 이 유구의 방향과 윤곽은 바로 위의 주거지와 거의 일치한다. 이 유구들을 하나의 구조물로 연결하는 것은 석축 구조물 돌층들 사이에 갈색 사질토 모양의 간층이 존재하여 불가능하다.
 
제44구역 동쪽 섹터에서 조사된 다른 유구들
제44구역 동쪽 섹터에서는 제4인공층 제거 후에 제5인공층 상면에서 파괴된 구조물들의 잔재가 수기 노출되었다.
첫 번째 유구는 제4인공층 정리 조사 후에 엠(М), 엔(Н)-21, 22방안에서 노출되었다(도면 71). 이 유구는 모가 둥근 준장방형의 암갈색 사질토 얼룩(1.6×0.9m)으로서 북서쪽으로 무른 황갈색 굵은 입자의 모래 띠(1.4×0.3m)(엠(М)-21, 22방안)와 경계하고 있었다(도면 106). 제5인공층 제거 후에 갈색 사질토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넓은 면적에 걸쳐 확인되었다(제5인공층 제거 전보다 거의 2배)(도면 80). 갈색의 단단한 사질토 구역 중앙에는 거의 바른 장방형인 무른 황갈색 굵은 입자의 모래 얼룩(1.1×0.8m)이 위치하며, 북쪽 모서리에서는 암갈색 사질토 층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 유구의 동쪽 구역에서는 동벽으로 ‘나가는’ 얇게 분포된 목탄(거의 그을음)이 집중 포함된 띠(0.8×0.4m)가 확인되었다. 단단한 갈색 사질토 구역 내의 층에는 거친 입자의 모래, 토기편들, 작은 목탄들 등이 섞여 있었다. 엠(М)-22방안에서는 철제 비녀못 편(№80, 레벨 -109㎝)이 출토되었다(도면 107, 108). 이 층에서는 또한 4점의 놀이 알들도 발견되었다. 그 중 2점은 기와로 만들었고(엠(М)-22방안, 레벨 -96㎝), 다른 2점은 윤제 토기 기벽으로 만들었다(엔(Н)-22방안, 레벨 -98㎝, 엠(М)-23방안, 레벨 -100㎝).
이 유구는 자그마한 경제 건축물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규모는 2×2.15m이다. 유구의 방향은 북동-남서 방향, 다시 말해서 20호 주거지와 평행하는 방향이다.
두 번째 유구. 엘(Л)-22-23방안에서 20호 주거지의 남쪽 모서리와 나란히 남서-북동 방향으로 난 돌무지가 노출되었다(평면도 5, 도면 71, 109). 기본적으로 돌들은 큰 크기가 아니었으며(12×6 / 10×14㎝, 레벨 -86 / -96㎝), 레벨로 보아 발굴구역 동쪽 섹터 북쪽 부분의 20호 주거지와 동일 건축면에 속한다. 그렇지만 이 두 유구 사이에는 큰 단절부가 있고 서로 평행하게 위치하기 때문에 이 두 유구가 하나의 건축물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이 돌들은 알록달록한 갈색 사질토 층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크기가 88×44㎝인 갈색 작은 입자의 모래 얼룩과 경계한다(엠(М), 엔(Н)-20, 21방안). 제5인공층 정리 조사 후에 까(К)-22-23방안, 엘(Л)-23방안에서 이 돌무지에 큰 돌들이 추가되었다(22×22㎝ / 20×32㎝, 레벨 -101 / -108㎝). 그리고 그 주변은 층이 이(И)-23-24방안에서 알록달록한 사질토와 경계하는 단단한 갈색 사질토로 대체되었다. 정리 조사 후 이 유구 아래에서는 새로운 돌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 구조물은 큰 돌의 남쪽으로 까(К)-24방안을 지나는 1930년대의 군대 참호(부식 사질토)에 의해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제4인공층 제거 후에 부분적으로 정리 조사되었고(78×4㎝), 상면이 편평하였고(레벨 -109 / -110㎝) 단단하고 알록달록한 갈색 사질토층과 부식 사질토 층 사이에 위치하였다(도면 71, 110). 돌과 그 곁에 중간 크기의 자갈돌이 수개 놓여 있었다(12×14㎝ / 22×16㎝, 레벨 -99 / -107㎝)(도면 111). 그 돌은 건축물 기둥의 초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돌들 중에서 엘(Л)-22방안에서는 윤제 토기 기벽으로 만든 놀이 알이(레벨 -98㎝), 돌무지에서 50㎝ 떨어진 곳(까(К)-22방안)에서는 윤제 토기 기벽으로 만든 다른 놀이 알이(레벨 -98㎝) 각각 발견되었다.
세 번째 유구. 동쪽 섹터의 서쪽 부분에 주로 데(Д), 예(Е)-24방안과 제4인공층 제거 후의 돌들에서 서쪽으로 3.2m 거리에서 돌들이 채워져 있는 단단한 갈색 사질토의 둥근 얼룩이 발견되었다(도면 71). 이 둥근 얼룩은 기둥을 위한 기초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유구는 동쪽 섹터의 이 부분에 대한 계속된 조사 동안 그대로 남겨 두었는데 이 레벨에서의 다른 유구들과의 관련성을 파악하기 위한 조치였다(도면 80, 99). 얼룩의 크기는 88×80㎝, 상면의 레벨은 -109㎝이며, 얼룩 안의 돌들은 길쭉한 모양의 돌 1개(42×14㎝, 레벨 -102㎝)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작은 크기와 중간 크기(14×8㎝ / 20×10㎝, 레벨 -102 / -107㎝)였다(도면 112). 이 얼룩 가까이에서 제4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 예(Е)-25방안에서 숫돌이(№28, 레벨 -106㎝)(도면 113), 남쪽으로 예(Е)-26방안에서 철제 못(№66, 레벨 -96㎝)이 각각 출토되었다. 서쪽으로 게(Г)-25방안에서는 삼채 토기편(№ 20, 레벨 -109㎝)이 출토되었다(도면 114). 바로 이곳 발굴구역의 남서쪽 부분에서는 토기 기벽(게(Г)-26방안, 레벨 -107㎝, 게(Г)-24방안, 레벨 -108㎝, 줴(Ж)-26방안, 레벨 -107㎝)과 기와(제(З)-23방안, 레벨 -106㎝, 예(Е)-23방안, 레벨 -110㎝)로 만든 꽤 많은 수량의 놀이 알들이 발견되었다.
제5인공층 정리 조사 시에는 게(Г)-24방안에서 구멍들이 뚫려있는 토제 입방체 유물(№77, 레벨 -112㎝)(도면 116, 117), 기와와 윤제 토기 기벽으로 만든 놀이 알들(줴(Ж)23방안, 레벨 -111 / -112㎝, 제(З)-23방안, 레벨 -110㎝와 -113㎝), 부정형의 철제 유물편(레벨 -103㎝)(도면 115) 등이 출토되었다.
네 번째 유구. 엘(Л), 엠(М)-26방안에서는 제4인공층 정리 조사 후에 단단한 알록달록한 갈색 사질토 층에서 구조물의 일부임이 분명한 석열이 노출되었다. 이 석열은 엘(Л)-27방안으로 둑으로 계속 이어졌다. 돌들은 큰 크기였고(20×12㎝ / 32×20㎝, 레벨 -102 / -105㎝), 조밀하게 놓여 있었다(도면 71, 118). 남서-북동 방향으로 난 석열의 길이는 둑 부분을 제외하고 74㎝, 둑 부분의 계속된 부분을 포함하여 185㎝이다. 석열 주변에서 토기 기벽으로 만든 놀이 알이 출토되었는데 레벨은 -114㎝이다.
발굴구역의 문화층은 이(И)-엔(Н)-24-26방안에 위치하는 군대 참호에 의해 훼손되었다. 군대 참호 경계 내의 부식 사질토에는 다음과 같은 현대의 금속과 교란된 고고학 유물들이 다량 들어있었다. 철판 조각(№67, 엠(М)-25방안, 레벨 -118㎝), 금속 제품 조각(№26, 엔(Н)-26방안, 레벨 -109㎝), 토기 기벽으로 만든 놀이 알(이(И)-26방안, 레벨 -114㎝)(도면 119, 120). 그 외에도 인공층 제거 시에 제(З)-26방안에서 부정형의 철제유물 조각들(레벨 -109㎝)이 발견되었다.
꽤 중요한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발굴구역의 동쪽 섹터에서 조사된 대부분의 유구들은 남서-북동 방향이라는 사실상 동일한 방향을 가진다. 그 유구들의 비슷한 레벨 지표들을 참고할 때에 고대에 이 유구들은 단일한 동시기의 건축 복합체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며, 그 유구들의 방향은 성 내의 전체 건축 구획에 의하였을 것이다.
 

서쪽 섹터

제44구역 서쪽 섹터 남쪽 부분과 제48구역 서쪽 섹터 북쪽 부분의 유구들
제44구역 서쪽 섹터에서는 깊이 10~15㎝로 제4인공층을 정리 조사한 후에 섹터의 남쪽 부분인 게'(Г'), 베'(Б')-26-붸'(В')방안, 아'(А')-23방안 그리고 아(А), 베(Б)-25, 26방안에서 2호 건물지의 아래로 돌무지가 노출되었다. 일부 돌들은 굵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게'(Г'), 베'(Б')-26-붸'(В'), 아'(А')-23방안에서 남서-북동 방향으로 나 있는 좁고 긴 띠(0.5×0.7×4.3m)를 이루는 밝은 황갈색 사질토 층과 그 나란히 위치하는 단단한 알록달록한 갈색 사질토 층 안에 놓여 있었다(평면도 5, 도면 126; 127). 돌들은 대개 작은 크기와 중간 크기였다(6 ×14㎝ / 18×12㎝). 돌 상면들의 레벨은 -91㎝ / -101㎝ 사이이며, 층 상면의 레벨은 -104㎝ / -107㎝ 사이였다. 개별적인 큰 돌들은 게'(Г')-26방안(30×14㎝, 레벨 -93㎝)과 붸'(В')-26방안(42×16㎝, 레벨 -99㎝)에서 확인되었다. 돌들이 집중된 곳은 베'(Б')-26방안과 붸'(В')-26방안이다(도면 128). 첫 번째의 굵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밝은 황갈색 사질토 띠와 나란히 그와 같은 두 번째의 띠 얼룩(3.1×0.5×1.05㎝)이 분포하지만 두 번째에는 돌들이 없다. 돌들이 방향을 바꾸는 모서리는 붸'(В')-25방안일 수 있으며 그리고 남동쪽 붸'(В')-26방안으로 진행될 수 있다. 만약에 베'(Б'), 붸'(В')-24, 25방안에 분포하는 돌들이 같은 돌들 선의 연장이라면 방향을 바꾸는 곳은 붸'(В')-24방안이 되고 남동 방향으로 아'(А')-24, 25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그 경우에는 이 석열에 베(Б)-25, 26방안의 황갈색 점토 얼룩(46×40㎝)과 나란히 위치하는 아'(А')-24방안의 편평한 상면이 있는 큰 돌(26×22㎝, 레벨 -101㎝)과 아(А), 베(Б)-25, 26방안의 2개 돌(16×30㎝ / 22×16㎝, 레벨 -92 / -107㎝)이 포함될 것이다. 전체적인 상황을 볼 때에 석열은 아'(А')-23방안에 위가 있고 게'(Г')-26방안과 베(Б)-26방안에 기저부가 있는 삼각형 모양을 이룬다. 제44구역의 제5인공층을 제거하자 돌들의 조밀도가 줄어들었으며, 게'(Г')-26방안과 베'(Б')-26방안에서는 작은 크기와 중간 크기의 돌들이 추가되었고, 석열은 분명한 경계를 상실하였다(도면 129; 평면도 6, 도면 131). 발굴구역에는 이제 베'(Б'), 붸'(В')-25-베'(Б'), 아'(А')-22, 23방안의 단단한 알록달록한 갈색 사질토 층 내에서 굵은 입자 모래가 섞인 밝은 황갈색 사질토의 띠(3.1×0.7×0.9m)가 오직 1개만 관찰되었다(도면 130). 아(А), 베(Б)-25방안에서는 새로운 큰 돌들이 노출되었다(26×20㎝와 20×16㎝, 레벨 -114 / -116㎝). 이 돌들은 제4인공층에서 발견된 돌들과 남-북 방향으로 하나의 열을 이룬다. 섹터의 동쪽 부분에서는 둑 쪽으로 이어져 발굴구역 동쪽 섹터에서도 확인되는 단단한 암갈색 층이 노출되었다
동시에 제48구역의 서쪽 섹터 북쪽 부분 데'(Д')-28-29-붸'(В')-28-30-아(А)-28방안에서는 제4인공층 제거 및 우리 생각에 2010년도에 노출된 2호 구조물과 관련된 돌들 중 많은 수를 제거한 후에 레벨이 평균 -85 / -103㎝인 새로운 돌무지가 나타났다(도면 126; 131). 이 돌들도 제44구역 서쪽 섹터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단단한 알록달록한 갈색 사질토 층에 위치하며 그리고 크기가 20×20㎝ / 60×50㎝ 사이의 큰 돌들(붸'(В')-베'(Б')-29, 30방안)과 중간 크기의 돌들(20×20㎝ / 40×20㎝, 붸'(В'), 게'(Г')-29방안과 아(А)-28방안)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돌무지는 윗부분은 베'(Б')-30방안에, 기저부는 28방안에 위치하는 삼각형 모양을 이룬다(도면 132).
따라서 두 발굴구역의 서쪽 섹터들에서 둑에 의해 운 좋게 양분된 석축 구조물이 조사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모든 자료를 고려할 때에 석축 기단의 이 구조물은 규모가 평균6 .1~6.2m×3.6~3.8m이며 면적은 22~23㎡이다.
돌들 사이와 단단한 알록달록한 갈색 사질토 층에서 적지 않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제44구역의 서쪽 섹터 경계 내에서는 기와와 윤제 토기 기벽으로 만든 ‘놀이 알들’이 출토되었다(베'(Б')-26방안은 레벨 -108㎝, 베'(Б')-25방안은 레벨 -110㎝, 붸'(В')-25방안은 레벨 -109㎝, 아'(А')-25방안은 레벨 -107㎝, 붸'(В')-25방안은 -109㎝, 아'(А')-24방안은 레벨 -109㎝, 아(А)-23방안은 레벨 -105㎝)(도면 133). 또한 이 구역에서는 베(Б)-25 방안에서 철제 축(№19, 레벨 -111㎝)(도면 134), 아'(А')-23방안에서는 철제 못 조각(№21, 레벨 -104㎝), 베'(Б')-25방안에서는 구멍이 있는 철제 유물(№22, 레벨 -108㎝)(도면 135; 136), 아'(А')-24방안에서는 청동 버클(№23, 레벨 -108㎝)(도면 137~139), 베(Б)-26방안에서는 철제 화살촉편(№24, 레벨 -105㎝)(도면 140), 베(Б)-25방안에서는 철제 못편(№25, 레벨 -107㎝)(도면 141)이 각각 출토되었다. 또한 제4인공층에서는 수많은 윤제 토기편들(도면 142: 1, 3; 143; 144: 1; 145:4; 146: 2; 147; 148; 149: 2, 3; 150), 동물 뼈 조각(게'(Г')-26방안, 레벨 -104㎝), 길이 8㎝와 14㎝의 목판 잔재들(아'(А')-25방안), 석탄과 목탄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구의 범위 내에서 다량의 토기 자료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제48구역의 서쪽 섹터 내에서는 베(Б)-29방안에서 정요 시유 자기 구연부편(№92, 레벨 -119㎝)이 출토되었다(도면 126; 151; 152). 그 외에도 이곳에서는 게(Г)-29방안에서 철제 유물편(№61, 레벨 -106㎝)이 발견되었다(도면 153).
제44구역의 서쪽 섹터에서는 제5인공층 정리 조사 시에 토기 기벽 및 기와로 만든 놀이 알들이 발견되었다. 6점은 붸'(В')-2방안의 레벨 -115 / -119㎝, 아(А)-26방안의 레벨 -119㎝, 베(Б)-26방안의 레벨 -118㎝, 아'(А')-25방안의 레벨 -118㎝에서, 2점은 아'(А')-23방안의 레벨 -114 / -115㎝와 게'(Г')-22방안의 레벨 -117㎝에서 각각 출토되었다. 제5인공층에서는 베(Б)-26방안의 레벨 -116㎝, 베(Б)-25방안의 레벨 -114㎝, 베(Б)-23방안의 레벨 -107㎝에서 각각 부정형의 철제편이 출토되었다.
베'(Б')-21방안에서는 구멍들이 뚫려있는 토제 입방체 유물편(№78, 레벨 -118㎝)(도면 157~159), 아'(А')-24방안에서는 두 번째의 토제 입방체 유물편(№79, 레벨 -117㎝)이 각각 출토되었다(도면 160; 161). 제5인공층 정리 조사 시에는 철제와 주철제의 유물들이 베(Б)-24방안(№82, 레벨 -114㎝), 베'(Б')-17방안(№83, 레벨 -117㎝), 아(А)-23방안(№87, 레벨 -108㎝)에서(도면 163), 철제 화살촉편들이 아'(А')-23방안(№84, 레벨 -117㎝), 붸'(В')-26방안(№85, 레벨 -121㎝)에서 각각 발견되었다. 붸'(В')-26방안에서는 계란 모양의 자갈돌이 발견되었는데(№103, 레벨 -120㎝), 아마도 생활에 사용하였을 것이다. 석축 기단 건물 지역에서는 다량의 토기편과 기와편들이 출토되었다(도면 164; 165: 4; 166: 3; 167; 168: 3; 169: 1, 2; 170: 2, 3).
마지막 정리 조사를 하면서 돌들을 제거하였는데 그 아래에서는 새 돌들이 발견되지 않았다(평면도 7, 도면 171). 베'(Б')-25-26방안에서는 크고 단단한 소토 조각들이 발견되었다(레벨 -125㎝).
제44구역과 제48구역의 두 서쪽 섹터 경계 내에서 조사된 석축 구조물의 잔재들은 일부만 남아있는 하나의 건물에 속하였다. 돌들로서 건물의 기단 가장자리를 강화하였던 것이다. 이 건물은 단단한 갈색 사질토에 축조되었고 장방형의 모양을 가졌으며 장축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나 있었다. 시기적으로 이 유구는 위 건축면의 2호 건물 이전에 축조되었다. 따라서 이 건물은 제2건축면에 속한다. 장축 길이는 6.1~6.2m, 단축 길이는 3.6~3.8m이며, 석축기단 건물의 면적은 22~23㎡이다. 이 건물의 용도는 분명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일부는 파괴되었고 일부는 너비 1m의 둑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에서는 구들이나 노지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향후 둑을 정리 조사할 때에 추가 자료가 더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주민들의 다양한 생활-경제 활동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사용이 중지된 이후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되었다가 더 나중에 그 위로 석축기단의 2호 건물이 세워졌을 것이다.
 
제44구역 서쪽 섹터의 11호 주거지 조사
제5인공층에 대한 15~20㎝ 깊이의 정리 조사 후에 서쪽 섹터의 북쪽 부분(게'(Г')-베'(Б')-17-18방안) 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 층 아래에서 상면이 편평한 큰 돌들로 된2 줄의 석열 모양을 한 구들 일부가 노출되었다(평면도 6, 도면 131; 172). 석열들은 남동-북서 방향으로 나 있었다. 붸'(В')-18방안에서 게'(Г')-17방안 방향으로 나 있고 발굴구역의 서벽 너머로 나가는 첫 번째 석열은 8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그 돌들의 크기는 20×12㎝부터 28×18㎝까지이며, 레벨은 -117㎝에서 -126㎝까지이다. 이 석열은 붸'(В')-18방안에서 편평한 상면이 있는 크고 길쭉한 장방형의 돌(36×25㎝, 레벨 -114㎝)에 의해 마무리된다. 이 석열의 전체 길이는 1.48m, 너비는 14~26㎝이다. 석열의 남쪽 부분에 게'(Г')-18방안에는 석열에 포함되지 않는 크지 않은 돌이 4개 위치한다(8×6 / 14×8㎝, 레벨 -121 / -125㎝). 두 번째 석열은 첫 번째 석열에서 북쪽으로 28~34㎝ 거리에 서로 평행하게 나 있으며, 40개의 큰 크기, 중간 크기 그리고 작은 크기의 돌들로 이루어져 있다. 게'(Г')-17방안, 붸'(В')-17방안, 붸'(В')-18방안, 베'(Б')-19방안에 위치하는 큰 크기의 돌들(약 10개)은 석열의 기본을 이루며 그 크기는 25×12㎝부터 18×40㎝까지이다. 가장 큰 돌들은 게'(Г')-17방안(20×40㎝, 레벨 -112㎝), 게'(Г')-붸'(Б')-17방안(22×34㎝, 레벨 -121㎝), 그리고 베'(Б')-18방안(18×40㎝와 28×14㎝, 레벨 -116㎝와 -119㎝)에 각각 위치한다. 중간 크기의 돌들(14×10㎝부터 16×12㎝까지, 레벨 -117 / -124㎝)과 작은 크기의 돌들은 상대적으로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지만 붸'(В')-17, 18방안의 몇몇 작은 것들을 제외하고는(10×4㎝부터 14×8㎝까지, 레벨 -119 / -124㎝) 석열을 이탈하지 않았다(도면 174). 이 석열의 길이는 2.9m, 너비는 22~42㎝이다. 이 높이에서의 레벨은 이웃하는 석축 구조물과 함께 -122㎝ / -129㎝이다. 두 번째 석열에서 50㎝ 거리에 발굴구역의 북벽 가까이에서 직경 약 5㎝, 높이 약 3㎝인 탄화 목재 조각이 확인되었다(도면 175).
잔존하는 구들은 숯이 포함된 단단한 암갈색 사질토 층에 위치하며, 이 층의 경계는 사실상 구조물 자체의 경계와 일치한다. 다만 구들의 남쪽으로 게'(Г')-18방안과 붸'(В')-18방안에서는 층이 넓어지며 둥근 얼룩들(48×40㎝와 92×50㎝)의 형태로 돌들과 40~50㎝ 떨어지게 된다. 그와 같은 사질토로 된 띠(88×12㎝)가 석열들 사이의 붸'(В')-18방안에서 확인되었다. 구들이 속하게 되는 주거지의 내부 퇴적토는 다양한 입자의 모래가 섞인 발굴구역의 동벽, 북벽, 서벽으로 나가는 단단한 갈색 사질토 층(게'(Г')-베'(Б')-17-18방안)과 관련된다. 바로 이 층에서는 수 개의 황갈색 얼룩과 갈색 모래 얼룩(40×22㎝와 48×24㎝)(도면 176) 그리고 베(Б)-17방안에서의 가는 입자 및 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 얼룩들(60×40㎝와 54×21㎝)이 관찰되었다. 남쪽으로 (게'(Г')-붸'(В')-17-18방안에) 주거지의 내부 퇴적토(다양한 입자의 모래가 섞인 단단한 갈색 사질토)로 작은 명황색 점토 얼룩들이 섞인 황갈색 가는 입자 모래층(2.16×0.2×0.7m)이 겹쳐졌다. 한편, 이 층은 (게'(Г')-19방안에서) 남쪽으로 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크기는 1×0.7m이다)과 경계한다. 이 레벨에서 유구를 현장 보존 조치하였다.
돌들과 나란히 주거지 내부 퇴적토(다양한 입자의 모래가 섞인 단단한 갈색 사질토) 범위 내에서 다음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금속 유물편(№83, 베'(Б')-17방안, 레벨 -117㎝)(도면 177), 기와(게'(Г')-17방안)과 토기 기벽(베'(Б')-17방안, 레벨 -123㎝)으로 만든 4점의 놀이 알.
2012년도 발굴조사 결과 제44구역 서쪽 섹터의 북쪽 부분에서는 이 발굴구역에 일부가 포함된 주거지에 대한 발굴이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이 유구의 서쪽 부분은 발굴구역의 북서쪽 모서리 쪽으로 분명 나가고 있다. 이 주거지는 2009년도에 제40구역의 경계 내에서 레벨 -129 / -132㎝ 높이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주거지의 윤곽선이 확인되었다. 이 주거지는 모서리들이 방위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주 002
각주 002)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й экспедиции на Краскинском городище в 2009 году. Фонд изучения истории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ИИАЭ ДВО РАН. Сеул, 2011-. С. 128. (동북아역사재단·러시아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2011), 『2009년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성 한·러 공동 발굴보고서』, 동북아역사재단,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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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2009년도에 조사된 구들의 석축 구조물은 보존 상태가 아주 나빴다. 11호 주거지의 내부 퇴적토에서 발견된 돌들의 일부는 레벨이 -115㎝, -119㎝, -129㎝였는데 제44구역 서쪽 섹터의 돌들과 매우 잘 상응한다. 이 돌들은, 비록 그렇게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2012년도에 발견된 석열들과 하나의 열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주거지의 경계와 주변 구조물들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오직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제44구역 서쪽 섹터의 북쪽과 서쪽 부분에 대한 확장조사가 필요하다.
2012년도에 제44구역에서는 일부가 보존된 그리고 유구 전체가 발굴구역에 모두 포함되지 못한 4기의 대형 유구가 노출되었다. 발굴구역 동쪽 섹터의 20호 주거지와 21호 주거지, 발굴구역 서쪽 부분의 건물지와 11호 주거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 외에도 발굴구역의 동쪽 섹터에서는 다양한 유구들(4기 이상)이 확인되었는데 모두 비슷한 방향으로 하고 있었고 20호 주거지와 동일시기에 건축을 한 것이었다. 21호 주거지와 11호 주거지는 레벨이 낮게 위치하였고 다음의 건축면에 속한다. 2012년도에 이 유구들(21호와 11호 주거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완료되지 못하였다. 이 유구들의 경계가 표시되었고 내부 퇴적토의 윗부분이 조사되었다. 이 건축물들과 다른 유구들과의 관계를 밝히고 그것들의 구조적 특성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제44구역에 인접한 지역들에 대한 조사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 각주 001)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й экспедиции на Краскинском городище в 2010 году. Фонд изучения истории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ИИАЭ ДВО РАН. Сеул, 2011-. С. 230. 동북아역사재단·러시아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2011), 『2010년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성 한·러 공동 발굴보고서』, 동북아역사재단, 230쪽. 바로가기
  • 각주 002)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российско-корейской экспедиции на Краскинском городище в 2009 году. Фонд изучения истории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й Азии, ИИАЭ ДВО РАН. Сеул, 2011-. С. 128. (동북아역사재단·러시아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2011), 『2009년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성 한·러 공동 발굴보고서』, 동북아역사재단, 128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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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44구역 자료번호 : kr.d_0010_003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