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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크라스키노 성 북쪽 부분에 대한 발굴조사. 제47구역

지구물리학적 조사 결과 크라스키노 성의 북동쪽 부분에서 그 윤곽이 성의 모양을 연상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도면 479). 이는 크라스키노 성의 이 부분에, 벽에 의해 성의 다른 부분들과 구분되는 구역이 있을 수 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유사한 모습의 방어시설이 있는 구역을 동방의 성곽들에서는 내성 혹은 금원이라 부른다. 지구물리학적 자료를 검증하고 크라스키노 성 중앙 부분의 토층을 파악하기 위해, 추정 내성의 서쪽 부분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제47구역을 설정하였다. ‘성벽’의 존재가 확인될 경우 절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구획하였다. 새 발굴구역의 반대편 가장자리는 더 서쪽에 위치하는 또 하나의 지구물리학적 조사 결과에 근거하여 결정하였다. 두 번째의 결과는 규모가 매우 큰 기단 건물과 관련된다.
따라서 제47구역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설정되었고, 면적은 4×34m, 즉 136m2였다(도면 480). 지표면을 정리한 다음에(도면 481) 발굴구역에는 망상의 미터 방안 선을 쳤고, 토층 확인을 위해 3개의 둑을 남겼으며, 지표면 전체에 대해 레벨 측량을 하였다(도면 482~487, 평면도 1, 섹터 1'~3). 발굴구역의 방안 번호는 북서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아라비아 숫자로,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는 알파벳으로 표시하였다. 4개의 섹터에 대해서는 아라비아 숫자로 섹터 1', 섹터 1, 섹터 2, 섹터 3으로 각각 명명하였다.
발굴조사 기간 동안 이 발굴구역에서는 위 건축면의 유구들이 여러 기 조사되었다. 발굴구역 내의 토층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도면 489~510):
1. 표토와 부식토 - 두께 20~35cm.
2. 다양한 크기와 사립과 석립이 섞인 연갈색 사질토층 - 두께 14~34cm.
3. 거친 입자의 사립이 섞인 명황갈색 사질토층 - 두께 10~30cm.
4. 거친 입자의 명황갈색 사질토층 - 일부 구간에서 확인.

●석축기단 건축물

제47구역에서 발견된 유구들은 모두 표토와 부식토를 제거하고 난 다음에 노출되었다(도면 511~515, 평면도 2, 섹터 1'와 1). 그중 한 유구인 석축기단 건축물은 섹터 1'와 섹터 1의 북동쪽 부분에서 노출되었는데, 지구물리학적 조사 결과와 상응하는 위치다. 이 부분의 지표에는 매우 큰 크기의 안산암 돌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무게로 인해 부식토층까지 내려 앉아있었다. 석축기단 건축물은 섹터 1'에서 다양한 크기와 사립과 석립이 섞인 연갈색 사질토층의 윗부분에서 자갈돌 무지 모양을 하고 발견되었다. 석축기단은 섹터 1의 붸(B),게(Г)-1방안의 다양한 크기 입자의 모래와 석립을 포함하는 무른 회갈색 사질토층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 사질토층에는 제2인공층 제거 후에 입자가 작은 소토와 목탄도 섞여있음이 확인되었다(도면 516~518, 평면도 3, 섹터 1). 이 레벨에서는 갈색 사질토층에서도 석축기단을 따라 작은 소토 입자들이 확인되었고, 그 외에도 작은 및 중간 크기(길이 5~10cm)의 자갈돌들이 보였다. 비록 석축기단 건축물은 일부만 노출된 상태이지만 그 장축 방향은 북-남쪽임을 지적할 수 있다.
석축기단의 한쪽 가장자리에 노출된 가장 아랫부분의 돌들은 갈색 사질토층에 놓여 있었고, 모양이 정형성을 띠었으며, 납작한 형태이고, 길이는 30~40cm, 두께는 15~20cm이다. 석축기단의 높이는 이 부분에서 20cm를 넘지 않았다(도면 519). 석축기단 가장자리 돌들은 기단 내의 자갈돌들과는 크기와 모양에서 차이를 보였는데, 안쪽의 돌들은 크기도 작고 모진 모양이었다. 이 돌들은 일부 석축기단의 위 표면에 깔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도면 520~523).
제3인공층 제거 후에 석축기단 건축물의 동쪽에서 거친 모래 입자가 섞인 명황갈색 사질토로 채워진 용도 불명의 얕은 수혈이 1기 노출되었다(도면 524~528, 평면도 4, 섹터 1). 일부 발굴구역 범위 밖으로 나가있는 이 수혈은 크기가 4.5×3m이었다. 이 수혈은 아마도 석축기단 건축물과 그 주변 아랫부분 레벨의 표면을 고를 때에 메워졌을 것이다(도면 529~533, 평면도 5, 섹터 1). 수혈 자체를 조성할 때에는 명황갈색의 거친 입자 모래층을 파고 내려갔다. 이 층의 아래에는 거친 모래 입자가 섞인 밝은 황갈색 사질토가 위치하였는데, 이 사실은 수혈 바닥에서 다음 인공층을 제거할 때에 확인되었다(도면 534~539, 평면도 6, 섹터 1).
석축기단 건축물 바로 가까이에서는 토기편들(도면 551~577) 이외에 토제 고리(No. 27, 제4인공층, 베(Б)-1방안, 레벨 -210cm)(도면 540)도 출토되었다. 나머지 유물들은 대개 석축기단 건축물에서 2~5m 떨어진 거리 혹은 더 이상의 거리에서 출토되었다:
삼채 납유 용기 동체부편(No. 17, 제3인공층, 레벨 -203cm)(도면 541), 아(A)-3방안 출토.
철제 못편(No. 24, 제4인공층, 레벨 -207cm), 베(Б)-3방안 출토.
주철제 솥 동체부편(No. 2, 제1인공층, 레벨 -186cm)(도면 544: 2), 아(A)-4방안 출토.
철제 화살촉, 붸-4방안 출토(No. 12, 제3인공층, 레벨 -201cm)(도면 545), 베(Б)-3방안 출토(No. 25, 제4인공층, 레벨 -207cm)(도면 546).
작은 청동 판상 유물편(No. 7, 제3인공층, 레벨 -205cm), 붸(B)-5방안 출토.
납작한 철제 고리편(No. 16, 제3인공층, 레벨 -205cm)(도면 547), 붸(B)-5방안 출토.
철제 칼편(No. 32, 제4인공층, 레벨 -203cm), 아(A)-7방안 출토.
삼채 납유 용기 동체부편(No. 1, 제1인공층, 레벨 -185cm)(도면 549), 베(Б)-8방안 출토.
주철제 수레바퀴 비녀못(No. 10, 제3인공층, 레벨 -204cm)(도면 550), 붸(B)-9방안 출토.

●18호 주거지

18호 주거지는 섹터 2의 남동쪽 부분에서 노출되었으며(도면 480, 485), 석축기단 건축물 가장자리에서 남동쪽으로 15m 거리에 위치한다. 표토와 부식토 제거 후에(도면 578, 579, 평면도 2, 섹터 2) 작은 토기편들이 다량 섞여 있는 다양한 크기의 사립과 석립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의 게(Г)-16-17방안에서 나중에 석축 난방시스템, 즉 구들의 일부로 밝혀진 자갈돌이 여러 개 노출되었다. 이 자갈돌들은 레벨이 -180/ -191로서 그 깊이가 석축기단 건축물과 거의 동일하다. 연갈색 사질토층을 5~8cm 두께로 일부 제거하자, 붸(B)-게(Г)-16-18방안에서 구들의 모서리를 이루고 있는 새로운 돌들이 노출되었다(도면 580~582, 평면도 3, 섹터 2).
다음 단계의 조사에서는 갈색 사질토층을 (두께 15~20cm로) 모두 제거하였다. 그 결과 18호 주거지의 석축 구들 구조물이 모두 노출되었다(도면 583~587, 평면도 4, 섹터 2). 토층 파악을 위해 북-남 방향으로 게(Г)-19-20방안 - 아(A)-17방안에 둑을 남겼다. 이 주거지는 다양한 크기의 사립과 석립이 섞인 두께 20~45cm의 갈색 사질토층과 관련되었음이 밝혀졌다. 주거지 구조물 자체는 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밝은 황갈색 사질토층에 축조되었다. 그렇지만 주거지는 일부만 남아 있었다. 주거지의 전체 크기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주거지는 두 줄 고래의 구들 모양으로 확인되었으며, 가장 높은 부분은 구들의 두 섹터가 만나는 모서리 부분으로, 석축기단 건축물의 가장자리와 동일 레벨이었다. 축이 남동으로 약간 기운 서-동 방향의 구들 섹터가 가장 잘 남아 있었다. 그 길이는 약 4m이다. 이 구들 섹터의 동쪽 부분은 레벨 측량 결과 서쪽 섹터부터 훨씬 레벨이 낮음이 확인되었다. 이 두 구들 섹터에 위치하는 돌들의 레벨 차이는 약 50cm이다. 그와 같은 레벨 차이는 지하수의 작용으로 인한 토양의 움직임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북-남 방향으로 배치된 구들의 다른 부분은 약 1m 길이만 남아 있었고, 더 이상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아(A)-붸(B)-15-16방안). 구들 고래의 벽은 자갈돌과 할석으로 만들었다. 너비 평균 30~40cm의 고래 뒤도 자갈과 할석으로 덮고 진흙으로 보강하였다. 둑을 남긴 상태로 구들에 대해 추가 정리 조사를 하자(도면 588~596, 평면도 5), 구들의 몇몇 부분에 고래 내부에서 그을음 흔적이 확인되었다(붸(B), 게(Г)-16방안과 붸(B)-18방안, 도면 597). 다시 한 번 정리 조사를 하고 아(A)-붸(B)-19-20방안의 일부 돌을 제거하자 고래 일부가 다시 노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들의 다른 한 모서리와 굴뚝 자리는 그 위치가 확인되지 못하였다(도면 601~606, 평면도 6). 18호 주거지는 석축기단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위 건축면에 속하며, 곁의 도로 유구와 같은 방향으로 평행하게 위치한다. 18호 주거지의 입구는 도로 쪽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쪽에 있었을 것이다.
주거지의 내부 퇴적토를 정리 조사하는 중에 매우 희귀한 청동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식물문양이 부조되어 있는 돌궐유형의 띠끝꾸미개(No. 20, 제4인공층, 레벨 -215cm)(도면 607), 게(Г)-15방안 출토.
투공과 원 점문이 있는 돌궐유형 띠꾸미개(No. 28, 제4인공층, 레벨 -225cm)(도면 608), 베(Б)-16방안 출토.
핀셋편(No. 29, 제4인공층, 레벨 -215cm)(도면 609), 게(Г)-17방안 출토.
철제와 주철제 유물 중에는 다음의 것들이 출토되었다:
주철제 솥 동체부편, 베(Б)-16방안 출토(No. 3, 제1인공층, 레벨 -197cm), 게(Г)-16방안 출토(No. 5, 제2인공층, 레벨 -198cm), 베(Б)-18방안 출토(No. 26, 제4인공층, 레벨 -249cm)(도면 610, 611).
미니어처 철제 꺾쇠(No. 9, 제3인공층, 레벨 -211cm), 붸(B)-15방안 출토.
철제 배목편(No. 13, 제3인공층, 레벨 -233cm)(도면 613), 베(Б)-20방안 출토.
철제 못(No. 14, 제3인공층, 레벨 -210cm)(도면 612), 아(A)-16방안 출토.
공구의 일부와 닮은 철제 유물(No. 21, 제4인공층, 레벨 -231cm)(도면 614), 붸(B)-18방안 출토.
철제 창고달(No. 23, 제4인공층, 레벨 -246cm)(도면 615), 게(Г)-20방안 출토.
철제 고리가 있는 유물(No. 31, 제4인공층, 레벨 -215cm)(도면 616), 아(A)-12방안 출토.
그 외에도 주거지와 관련된 갈색 사질토층에서 다음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석제 둥근 추(No. 18, 제3인공층, 레벨 -206cm)(도면 617), 붸(B)-17방안 출토.
토제 마연기(No. 19, 제4인공층, 레벨 -206cm), 게(Г)-14방안 출토, 다량의 토기편(도면 618~635).

●도로 유구

이 유구는 우리가 ‘내성’의 성벽이 있을 것이라 추정하였던 섹터 3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지구물리학적 조사를 통해 성벽 모양의 현상이 확인된 바 있다. 표토와 부식토를 제거하자 발굴구역의 표면에 다양한 크기의 사립과 석립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이 노출되었다(도면 636, 637, 평면도 2). 사질토층의 윗부분은 문화층의 파괴 결과 변형된 전형적인 표면의 모습을 하였고, 이 레벨에서는 어떠한 유구도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섹터 3의 북쪽 모서리 부분에서 작은 크기(직경 10~20cm)의 자갈돌이 여러 개 노출되었고 여러 점의 토기편이 수습되었을 뿐이다.
다음 단계에는 다양한 크기의 사립 및 석립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을, 모든 자갈돌과 토기편들을 원래 자리에 남겨둔 채로, 두께 약 5cm로 정리 조사하였다(도면 638~642, 평면도 3). 그 결과 대각선 방향으로 난 남북 방향의 유구가 잘 노출되었다. 게(Г)-27방안에서 아(A)-25방안까지 밝은 황갈색 입자의 거친 모래 띠가 너비 26~50cm로 나있었다. 이 모래 띠에서 서쪽으로 발굴구역의 북서쪽 벽까지 그리고 동쪽으로 1.7~2.40m 거리까지의 갈색 사질토층에서 크기가 평균 직경 10~20cm인 자갈돌이 다량 발견되었다. 토기편의 분포도 상당히 밀도가 높은 상태였다. 하지만 토기편들은 대개 크기가 작았고 씻겨진 상태였다. 이와 함께 섹터 3의 동쪽 모서리 부분인 아(A), 베(Б)-28-30방안과 붸(B), 게(Г)-29,30방안의 밝은 황갈색 사질토층에도 토기편의 집중도가 매우 높았다. 이미 이 단계의 발굴조사에서 우리는 예상하였던 성벽 대신에 도로를 찾아내었음을 깨달았다.
그 다음에는 갈색 사질토층을 모래 띠의 서쪽과 동쪽으로 평균 5~8cm 두께로 정리 조사하였다(도면 643~646, 평면도 4). 그 결과 도로 유구의 표면이 보다 구체화되었다. 첫 번째의 모래 띠에서 서쪽으로 2~2.20m 거리에 두 번째의 평균 너비가 30~45cm되는 밝은 황갈색 거친 모래 띠가 노출되었다. 이 두 개의 모래 띠는 너비가 약 2m인 차마도 양쪽 가장자리의 노반 배수구 유구였다. 차마도 양쪽 가장자리를 따라서 너비 약 1.5m의 갓길이 나있었는데, 역시 평면 배치로 보아 작은 및 중간 크기의 자갈을 포함하는 다양한 크기의 사립 및 석립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과 관련된다. 노반의 모든 층들에는 작은 토기편들이 다량 포함되어 있었는데, 모든 정황으로 보아, 도로에 깔았던 자재의 일부일 것이다.
도로 유구와 관련된 문화층들에서는 토기편들(도면 651~660) 이외에도 다음의 몇몇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주철제 솥편 2점, 베-23방안 출토(No. 4, 제1인공층, 레벨 -204cm), 아(A)-28방안 출토(No. 6, 제2인공층, 레벨 -199cm)(도면 647).
철제 관상(管狀) 유물편(No. 8, 제3인공층, 레벨 -208cm)(도면 648), 아(A)-23방안 출토.
철제 얼음 신발 바닥 미늘편(No. 11, 제3인공층, 레벨 -214cm)(도면 649), 게(Г)-22방안 출토.
철제 갈고리(No. 15, 제3인공층, 레벨 -205cm)(도면 650), 아(A)-25방안 출토.
제47구역 범위 내에서 위 건축면에 대해 조사를 하는 중에, 크라스키노 성에서는 일반적인 유물로 간주되는 다량의 놀이 알이 출토되었다(도면 661~664). 섹터 1의 제2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는 아(A)-10방안에서 규화목 조각이 발견되었다(도면 665). 이 규화목은 반경 5km 내의 거리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크라스키노 성의 이 부분에, 다시 말해 노출된 도로 유구 아래로, 제기된 성벽의 존재 여부에 대한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기 위해 발굴구역의 남서벽을 따라 1m 너비의 트렌치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트렌치에서는 두께 10~15cm로 6개의 인공층이 추가로 정리 조사되었다(도면 665~676). 그 다음의 조사는 강한 비로 인해 중단되었다. 지하수가 트렌치를 완전히 채웠고, 그로 인해 발굴조사를 마무리하지 못하였다. 트렌치 내에서는 제9인공층 제거 다음의 표면에 대한 평면도도 작성하지 못하였다. 트렌치 내의 제9인공층 정리 조사 시에 게(Г)-23방안의 레벨 -295 깊이에서 청동 검집 메기(No. 30)(도면 683)라는 대단히 귀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트렌치의 토층은 가장 위의 도로 레벨 아래로 자갈돌 집적과 굵은 모래 띠들로 구분되는 2개 이상의 도로가 더 있음을 보여 주었다.
잠정적으로(도로 유구에 대한 조사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표현을 쓴다), 차마도 양쪽 가장자리를 따라 너비 약 1.5m의 갓길이 조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도로의 양쪽에는 명확하게 파악되는 것은 아니지만 너비 1m 이상의 무너진 배수로가 지나간다. 토층을 통해 볼 때에 노면은 약간 볼록하였고, 가운데 부분에서 가장자리 쪽으로 약간 경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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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 성 북쪽 부분에 대한 발굴조사. 제47구역 자료번호 : kr.d_0009_003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