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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제48구역

2011년도에 크라스키노 성 북서부분의 주거구역들에 대한 발굴조사는 새로운 발굴구역인 제48구역에서 계속 진행되었다. 제48구역은 2010년도에 발굴조사가 실시된 제44구역에 인접한다. 제44구역에서는 기단 건물터가 노출되었는데, 기단 건물터의 대부분은 더 남쪽으로 제44구역 경계 밖에 위치한다. 2010년도에 발견된 이 기단 건물터의 경계를 한꺼번에 노출시키고 모든 구조적 특징들을 한꺼번에 조사하기 위해, 새로운 발굴 시즌에는 제44구역의 남쪽으로 제48구역으로 명명된 새로운 발굴구역을 설정하기로 결정하였다(도면 267, 268). 새 발굴구역의 크기는 주로 지구물리학적 조사 결과를 참고하여 결정하였으나, 표토 제거 도중에 일부 석축 구조물들이 처음 설정한 구역의 범위 밖으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다시 구역의 범위를 일부 수정하였다. 새로운 제48구역도 동서남북 방향으로 설정되었으며, 그 내부는 1m 단위의 방안들에 의해 세부 구획되었다(도면 269, 270).
제48구역의 전체 면적은 210m2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제48구역은 제44구역의 남벽 및 서벽 일부와 접한다. 제48구역의 최대 길이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11m, 서쪽에서 동쪽으로 24m이다. 발굴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지표의 풀과 관목을 제거하였다(도면 271, 272). 그 다음에는 발굴구역에 평면도와 같이 망상으로 미터 방안 선을 쳤다. 제48구역의 방안의 표시는 이전 연도들의 방안 표시를 참고하여 북쪽에서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숫자로, 서쪽에서 동쪽으로는 알파벳으로 각각 표시하였다. 토층 조사를 위해 북-남 방향으로 두 개의 둑을 남겼는데(줴'(Ж')-28-37방안, 데(Д)-30-38방안), 이 둑들은 발굴구역을 중앙 섹터, 동쪽 섹터, 서쪽 섹터라는 3개의 섹터로 나누었다(도면 269).
전체적으로 레벨 차이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중앙 섹터에는 남쪽이 낮은 24cm(-46/ -70cm), 동쪽 섹터에는 39cm(-49/ -88cm), 서쪽 섹터에는 31cm(-66/ -35cm)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는 가장 가의 두 지점을 기준으로 53cm(-35/ -88cm)인데, 이는 발굴구역의 남서부분에 대규모의 것을 포함하는 넓은 돌무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발굴구역의 표면은 다년간에 걸친 성 내부의 경작활동으로 인해 파상의 모양을 띤다.
발굴 조사된 부분의 층위 양상은 다음과 같다(도면 273~310):
1. 표토(두께 5~10cm).
2. 부식 사질토(5~15cm).
3. 갈색 사질토(6~22cm).
4. 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4~40cm).
5. 동쪽 섹터 - 작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16cm 이하), 매우 짙은 회갈색 사질토(12cm 이하),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26cm 이하).
6. 중앙 섹터 - 매우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6cm 이하).
문화층에 대한 정리 조사는 층위와 얇은 인공층에 따라 실시하였고, 필요한 경우에는 세부 정리 조사를 하였다. 모두 3개의 인공층이 조사되었는데, 이 인공층들에서는 하나의 위 건축면에 속하는, 다시 말해서 동시기에 기능하였던 유구들이 발견되었다. 유구들 간의 상호관계는 층위 및 평면배치 상태를 통해 검토되었는데, 발굴구역의 벽과 둑의 토층도 및 3개의 평면도에 반영되어 있다. 전체적인 그림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확보된 결과에 대한 기술을 유구 중심으로 하기로 한다.
표토. 발굴조사 시작 전에 표토에 대해 지자기탐사를 하였다. 지자기탐사는 나중에 각각의 토층 혹은 인공층에 대해서도 실시하였다(도면 311, 312). 첫 번째 인공층으로 제거한 것은 표토와 부식토였다(도면 313). 이 층의 평균 두께는 20cm였다.
유적의 표면에서 정기적인 경작활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표토 아래의 부식토층에서 경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도면 314~317). 이 층들에서는 발해시기의 다양한 유물들이 꽤 자주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표토와 부식토층에서 토기 동체부와 와편으로 만든 놀이 알이 다량으로 28점이나 출토되었는데, 이들은 각각 서쪽 섹터에서 7점, 동쪽 섹터에서 8점, 중앙 섹터에서 13점 발견되었다(도면 332). 그 외에도 10점의 부정형 철제 유물편, 19세기에 속하는 3점의 시유토기편이 수습되었다(도면 330, 331).
다량의 토기편과 와편(도면 333~350) 이외에 이 층에서는 다음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청동 유물들 - 보존상태가 좋은 배목(No. 1, 붸(B)-34방안, 레벨 -60cm)(도면 318), 부정형의 청동 유물편(No. 6, 엠(M)-30방안, 레벨 -65cm)(도면 319, 320).
철제 유물들 - 철제 화살촉(No. 2, 게'(Г')-30방안, 레벨 -71cm)(도면 321), 배목 편(No. 8, 붸(B)-38방안, 레벨 -87cm)(도면 322), 화살촉(?) 편(No. 9, 제(З)-37방안, 레벨 -80cm)(도면 323), 부정형의 철제 유물편들.
주철제 유물편들(No. 3, 베(Б)-31방안, 레벨 -73cm).
토제 유물들 - 수제 지붕 장식편(No. 4, 엘'(Л')-29방안, 레벨 -65cm)(도면 325), 토제 고리편(No. 5, 엘'(Л') -29방안, 레벨 -84cm), 정요 시유 자기편(No. 7, 엘(Л)-33방안, 레벨 -72cm), 삼족기와 벼루 다리편들(도면 328, 329).

●2호 건물터 석축기단

표토 제거 후에 동쪽 섹터에서는 갈색 사질토가 노출되었는데, 그 표면에 경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도면 314~317, 평면도 2). 이 사질토에서는 표토 바로 아래에서 예(E)-35방안부터 이(И)-32방안까지 고른 열을 이루는 중간 크기의 돌들이 발견되었는데, 남서-북동 방향이었고, 건축물의 석축 기단 잔존물들이었다(돌의 크기와 레벨은 다음과 같다: 이(И)-32방안에는 40×34cm, 레벨 -66cm, 제(З)-32방안에는 32×24cm, 레벨 -70cm, 제(З)-33방안에는 36×30cm, 레벨 -71cm, 제(З)-34방안에는 40×20cm, 레벨 -69cm, 줴(Ж)-34-35방안에는 32×18cm, 레벨 -75cm, 줴(Ж)-35방안에는 18×10cm, 레벨 -74cm)(도면 351, 352).
게-30방안(중앙 섹터)과 예-30방안(동쪽 섹터)에서 짧은 석열이 노출되었는데, 아마도 2010년도에 제44구역의 남쪽 부분에서 확인된 바 있는 2호 건물의 벽 석축기초일 것이다(돌의 크기와 레벨은 다음과 같다: 예(E)-30방안에는 24×32cm, 레벨 -72cm, 35×32cm, 레벨 -78cm, 32×36cm, 레벨 -76cm, 게(Г)-30방안에는 평균 15×12cm, 레벨 -72/-73cm)(도면 353, 354).
노출된 석열들에 대해 말하자면, 게(Г)-30방안의 한 석열은 제44구역의 서쪽 섹터 남쪽 부분에서 발견된 바 있는 기단 석열의 연장이고, 두 번째 석열은 2010년도 야외조사 시즌에 제48구역의 동쪽 섹터에서 발견된 것의 연장으로서, 2호 건물터의 ‘띠 모양’ 기단의 북동 및 남동 부분이라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 석열들은 이(И)-32방안에서 각을 이루며 연결된다(도면 351~355). 석열들을 동일한 유구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동일한 레벨과 기단 내부의 다양한 크기의 모래 입자가 섞인 무른 갈색 사질토 다짐이다. 그 외에도 이 건물터의 경계 내에서는 그 경계 밖에서보다 토기 자료가 훨씬 드물게 발견된다. 경계 밖에서는 토기 자료가 다량으로 그리고 꽤 균등한 분포를 보이며 발견되었다. 잠정적인 산정에 따르면 건물터의 면적은 약 66m2이다. 동쪽 섹터에서 노출된 벽의 길이는 약 6m이고, 2010년도에 발견된 벽은 2011년도에 발굴된 것을 합하였을 때에 길이가 약 11m가 된다.
제2인공층 제거 후에(도면 356~358) 기단의 내부에서 예(E)-줴(Ж)-34-35방안(100×80cm)과 제(З)-이(И)-31-32방안(120×80cm)의 석벽 바로 가까이에서 작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에서 굵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 얼룩이 노출되었다(이 얼룩 아래에는 입자가 작은 사질토가 위치한다)(도면 359~362, 평면도 3). 동일한 색깔과 구조의 층이 예-30방안의 돌 부분에서도 확인되었다(도면 363, 평면도 3). 이것은 기단의 표면이 누차에 걸쳐 평탄화되었고 다져졌음을 증명한다. 이에 대해서는 중앙 섹터의 아래 갈색 사질토층에서 다른 암석 성분의 모래가 섞인 사질토를 깔은 얼룩이 발견된 사실이 뒷받침한다(도면 364).
중앙 섹터에는 기단 범위 내의 아(A)-게(Г)-31-34방안에서 갈색 사질토가 장방형의 모양을 한 채 노출되었다(길이 - 남서-북동 방향 230cm, 남동-북서 방향 200m)(도면 365, 366). 이 장방형 유구는 서쪽, 동쪽, 북쪽은 (다양한 입자 및 작은 입자의 모래가 다량 섞인) 얇은 갈색 사질토로 둘러싸여 있었고, 남쪽은 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로 둘러싸여 있었다. 후자는 이 섹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노출되었다. 노출된 단단한 갈색 사질토로 된 장방형의 유구 내에서 2점의 금속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1점은 철제 칼편(No. 10, 베(Б)-33방안, 레벨 -78cm)(도면 367)이다. 이 유구가 특별하게 준비한 그 어떤 건축물의 기초일지 모른다는 의견을 검증하기 위해 너비 20cm, 길이 470cm의 둑을 남기기로 결정하였다(이 유구의 면적은 4.6m2이다). 둑은 남동-북서 방향으로 남겼다.
제2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 건물의 기단 내부와 그 주변에서 다음의 것들을 포함하는 일련의 금속 유물들과 그 편들이 출토되었다:
식물문양이 있는 금동 꺾쇠(No. 12, 베(Б)-31방안, 레벨 -85cm)(도면 368).
철제 유물 - 철제 칼편들(No. 10, 베(Б)-31방안, 레벨 -78cm; No. 14, 이(И)-28방안, 레벨 -88cm)(도면 367, 373), 부싯쇠편(No. 11, 예(E)-30방안, 레벨 -84cm)(도면 369), 과대장식(No. 13, 게(Г)-33방안, 레벨 -90cm)(도면 370), 화살촉(No. 15, 줴(Ж)-35방안, 레벨 -82cm)(도면 371, 372), 못(No. 25, 게(Г)-32방안, 레벨 -86cm)(도면 374).
토제 유물 - 명문이 있는 토기 동체부편(No. 16, 제(З)-36방안, 레벨 -86cm)(도면 375), 기호가 있는 토기 동체부편(No. 18, 아(A)-37방안, 레벨 -94cm)(도면 376), 토제 고리(No. 17, 줴(Ж)-35방안, 레벨 -88cm)(도면 377), 어망추(No. 19, 게(Г)-36방안, 레벨 -90cm)(도면 378), 구멍들이 뚫려있는 ‘발해’ 입방체 편들(도면 379, 380).
전체적으로 제2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 모든 섹터들에서 다량의 토기편들과 기와편들이 수습되었다(도면 381~412).
제3인공층 제거 다음에는(도면 413~417) 건물 기단의 표면에서 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가 노출되었다(도면 418, 419). 중앙 섹터의 아(A)-게(Г)-31-34방안에 위치하는 단단한 갈색 사질토의 장방형 유구는 아직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사질토는 황색의 색감을 가지게 되었고 밀도도 더 높게 되었다(밀도 높은 황갈색 사질토)(도면 420). 남겨진 둑을 통해 발굴구역의 이 부분의 토층 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다(도면 421). 특히 발해인들은 처음에 기단의 북동 부분을 작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의 두께는 4cm)로 깔았음이 확인되었다. 그 다음에는 아마도 수혈을 파내고 그 속을 밀도 높은 황갈색 사질토(아마도 모래와 진흙을 혼합하였을 것이다)로 다졌을 것이다. 이 지점에 축조되었던 건축물은 그 어떤 시점에 기능을 하였을 것인데, 이곳에 석축 기초가 있었고 그 주변이 다양한 크기와 작은 크기의 모래 입자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두께 8~10cm)으로 덮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 다음에 이 유구는 아마도 파괴되었을 것이고, 기초에서 살아남은 장방형의 구덩이는 점차 갈색 사질토로 덮였을 것이다. 기단의 북동쪽 벽에서 ‘장방형 구역’까지의 거리는 약 220cm, 남동쪽까지는 약 300cm이다.
중앙 섹터의 북쪽 부분인 예'(E')-데'(Д')-28-29방안과 베'(Б')-게'(Г')-30방안에서는 2개 인공층을 정리 조사하고 난 다음에(각 인공층의 두께는 약 10cm) 중간 크기(20×30cm, 레벨 -93/ -95cm) 및 다음과 같은 큰 크기의 돌들로 이루어진 돌무지가 노출되었다: 베'(Б')-30방안 - 60×64cm, 레벨 -74/ -83cm, 붸'(B')-30방안 - 40×20cm, 레벨 -93cm, 34×24cm, 레벨 -86cm(도면 416, 418, 419). 이 돌무지에서 그 어떤 정형성도 찾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돌무지의 레벨(-83/ -97cm)을 통해 판단해 볼 때에, 또한 2010년도 제44구역의 서쪽 섹터 남서쪽 부분 동일 레벨에서 2호 건물터의 파괴된 기단과 관련되는 돌들이 발견된 사실을 놓고 볼 때에, 아마도 섹터 북쪽 부분 돌무지는 마찬가지로 2호 건물 기초의 일부였을 것이다.
제3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 게(Г)-30방안의 돌들 사이에서 갈황색 진흙 잔존물이 노출되었다. 그와 같은 건축 방법은 발해인들에 의해 다른 건축물들에도 적용되었는데, 예를 들어, 2009~2010년도에 발견된 석축기단 건물의 담장 석축 부분과 2010년도의 2호 건물터 기단의 북동쪽 벽이 그러하다. 후자 기단은 제48구역에서 노출시킨 석열과 연결된다. 갈황색의 자연 모래가 섞인 진흙은 크라스키노 성의 주민들에 의해 석축 건축물의 강화에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제3인공층을 정리 조사하는 중에 2호 건물의 기단 범위 내에서 온전한 금속 유물 및 편들이 출토되었다:
철제 유물 - 화살촉(No. 26, 데'(Д')-29방안, 레벨 -97cm)(도면 422), 용도 불명의 유물편(No. 27, 데'(Д')-29방안, 레벨 -97cm)(도면 423), 덮개 판이 있는 과대장식(No. 28, 예'(E')-28방안, 레벨 -96cm).
주철제 솥 동체부편 2점(No. 29, 게'(Г')-31방안, 레벨 -95cm)(도면 426).

●발굴구역 남서쪽 부분의 돌무지

표토와 부식토 제거 후에 중앙 섹터의 남서쪽 부분(갈색 사질토층)과 서쪽 섹터의 남쪽 부분(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에서 대형 돌무지가 노출되었다(도면 316, 427~429). 이 돌무지의 기초 부분에는 대형의 초석들이 놓여 있었다(예'(E')-32-33방안, 100×50cm, 레벨 -47/-52cm; 예'(E')-33방안, 80×54cm, 레벨 -32/-61cm; 예'(E')-34방안, 70×74cm, 레벨 -37/-52cm; 까'(K')-35-36방안, 136×40cm, -62/-72cm). 제2인공층 표면에서 원통형의 토기 동체부편이 발견되었다(도면 337, 430).
제2인공층과 제3인공층을 제거한 다음에(도면 358, 417) 대형 돌무지 부분의 토층 양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지만, 중앙 섹터의 게'(Г')-31-32방안의 거친 입자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에서 둥그스름한 갈색 사질점토 얼룩(104×82cm)이, 서쪽 섹터의 중앙 부분인 엘'(Л')-제'(З')-32-34방안에서 너비가 약 120cm인 띠 모양의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이 각각 노출되었다(도면 431). 대형 돌무지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난 길쭉한 모습을 한다(도면 432). 대형 돌무지 곁에서 데'(Д')-34-35방안에서 납작한 돌이 놓여 있는 독이 출토되었다(도면 433). 까'(K')-36방안에서는 활과 화살 모양의 부조 기호가 있는 토기 저부편(No. 30, 레벨 -108cm)이 출토되었다(도면 435).
아직 발굴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대형 돌무지에 대해 다음의 3가지 설이 제기되었다:
1. 이 돌들은 2호 건물 기단의 기초에 사용되었던 것들인데, 나중에 발해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재건을 위해 혹은 다른 경제적 필요에 의해 한 곳에 모아 두었을 것이다.
2. 돌무지는 건축물 축조를 위한 준비된 건축 재료다. 건축 과정이 어떤 이유로 인해 종료되지 못하였다. 이는 돌들이 무질서하지 않고 한 장소에 건물 기단과 평행하게 광장 건축에 방해되지 않게 쌓여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3. 돌무지는 다른 독립적인 구조물(건축물)의 잔존물이다. 그 용도는 향후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위 건축면의 다른 유구들

엠-30방안의 돌무지. 제2인공층 제거 후에 엠-30방안에서 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암갈색 사질토층에서 중간 크기의 돌들이 노출되었다(15×30cm, 레벨 -79cm, 26×22cm, 레벨 -86cm, 24×16cm, 레벨 -76cm)(평면도 3, 4). 이 돌들은 2010년도에 제44발굴구역의 엠(M)-29방안에서 노출된 돌무지와 관련됨이 분명하다. 그 돌무지에서는 다량의 토기편들과 금속 유물편들이 출토되었다. 제48구역의 엠(M)-30방안에서도 토기 동체부편들과 철제 못(No. 23, 레벨 -86cm)(도면 436), 철제 화살촉 슴베(No. 24, 레벨 -86cm)(도면 434) 등이 발견되었다. 아마도 이곳에는 경제 활동의 장소 혹은 나중에 파괴된 주거 건축물이 위치하였을 것이다. 두께 약 10cm의 제3인공층 제거 후에는 더 이상 이 유구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제2인공층에 대한 정리 조사 시에 게(Г)-38방안에서 남서-북동 방향으로 난 2열의 석열(돌의 평균 크기는 20×10/20cm, 레벨 -84/-91cm)이 노출되었다(도면 437). 한 석열의 너비는 약 30cm이고, 두 석열 간의 간격은 15~20cm인데, 이 두 석열은 하나의 벽을 이루었을 수도 있다. 제3인공층에 대한 정리 조사 후에도 이 유구에 대한 상황은 분명해지지 않았다. 이 석열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얻기 위해서는 석열의 방향대로 계속 조사가 필요하다. 이 석열은 2호 건물의 기단 돌들과 방향도 비슷하고 레벨도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호 건물 기단의 남동쪽 부분의 연장으로 보기에는 의심이 간다.
노출된 벽의 범위 내에서 토기편들이 발견되었고, 동쪽 섹터에서는 이 벽 범위에서 2점의 “발해 입방체” 편(No. 22, 예(E)-38방안, 레벨 -94cm)(도면 379, 380)이 출토되었다.

●유구들 밖의 평면배치 상태

제2인공층 제거 후에 추정 기단 구역의 범위 밖에 위치하는 동쪽 섹터의 표면에서 다양한 암석 성분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가 확인되었다.
토기편들이 개별적으로 무지를 이루기도 하면서 모든 섹터들에서 거의 균등하게 분포하고 있었다(부록 2). 그 외에도 토기 동체부편과 와편으로 만든 68점의 놀이 알(도면 444, 445)이 출토되었다(중앙 섹터에서 15점, 서쪽 섹터에서 3점, 동쪽 섹터에서 50점이 각각 출토). 또한 8점의 부정형 철제 유물편이 출토되었는데, 그중에는 선철(이(И)-37방안, 레벨 -86cm)과 슬래그 조각(이(И)-35방안, 레벨 -85cm)도 있다(도면 438~443).
제2인공층 제거 후에 유구들 밖에서 다량으로 발견되는 유물들 외에 다음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숫돌과 가공 흔적이 있는 자갈돌(도면 446~448), 주철제 용기 동체부편(No. 21, 엘(Л)-37방안, 레벨 -93cm)(도면 450), 철제 유물편(No. 20, 엔(Н)-33방안, 레벨 -94cm)(도면 449), 철제 칼편(No. 14, 이'(И')-28방안, 레벨 -14cm)(도면 373).
제3인공층 제거 후에 동쪽 섹터와 서쪽 섹터에는 토층의 색과 구조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발굴구역의 많은 부분에서 거친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가 노출되었다. 중앙 섹터의 아(A)-37방안에서는 매우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에서 토기편들과 연체동물 패각들이 출토되었다(도면 451). 조사 작업 중에 토기 동체부편과 와편으로 만든 놀이 알이 18점 발견되었는데, 그중 1점은 동쪽 섹터에서, 16점은 중앙 섹터에서, 1점은 서쪽 섹터에서 각각 확인되었다(도면 452). 그 외에도 2점의 금속 유물편이 붸(B)-33방안(레벨 -91cm, No. 없음)과 데-36방안(레벨 -96cm, No. 없음)에서 출토되었다. 토기편들과 기와편들은 주로 2호 건물터 주변에서 출토되었다(도면 454~477).
따라서 2011년도 야외 조사 시에 제48구역에서는 4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첫 번째 유구는 2010년도에 제44구역에서 이미 발견된 2호 건물 기단 돌 기초의 연장된 부분이다. 새로운 야외 조사 시즌 동안에 과거 제44구역에서 발견된 북동쪽 벽의 돌 기초의 연장 부분을 중앙 섹터와 동쪽 섹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동쪽 섹터에서는 기단 돌 기초의 남동 부분이 정리 조사되었다. 북서쪽 벽은, 2010년도에 발견된 기단의 북쪽 모서리 부분에 의거하여, 온전하지 못한 채로 확인하였는데, 돌들이 심하게 이동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아마도 기초의 일부였을, 흩어진 돌들의 무지가 조사되었다. 기단의 남서쪽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일정한 의견을 말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돌을 깐 것도 깐 돌이 파괴된 흔적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2호 건물 기단의 남서쪽 벽은 더 남쪽으로 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노출시킨 기단의 범위 내에서 그 북동쪽 부분에서 색깔과 구조가 기본 토층과 차이를 보이는 장방형의 얼룩 모양 유구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 장방형 얼룩은 그 어떤 건축물 혹은 그 건축물의 기초가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기단 자체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발견된 장방형의 얼룩 유구도 그 방향이 이전에 크라스키노 성에서 발견된 위 건축면의 돌담이 있는 초석 건물 및 1호 주거지의 방향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두 번째 유구는 발굴구역의 남서쪽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 초석들을 포함하는 대형 돌무지다. 이 돌무지는 앞선 단계 건축면에 위치한 구조물이 파괴된 결과라는 추정이 있는데, 2호 건물 기단의 건축 자재 잔존물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유구는 2010년도에 노출된 주거지 혹은 경제 활동 장소의 연장 부분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발굴구역 범위 밖에 위치한다.
제48구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마무리한 다음에 현장 보존조치를 취하였다(도면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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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구역 자료번호 : kr.d_0009_0030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