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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제45구역

제45구역은 2010년도에 크라스키노 성의 북서부분에, 그 중 1981년도, 1994년도, 2002년도, 2003년도에 금당지, 탑, 지하 와실유구, 절터 담장의 일부 등(도면 5, 6)이 조사되었고, 2007~2009년도에는 사역과 바로 인접한 동쪽 부분이 조사된, 전체적으로 사역의 동쪽에 설정되었다. 현재 사역 담장의 북동 및 남동 부분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모든 정황을 고려할 때에 그 부분 담장은 파괴되었고 성의 주민들에 의해 해체되었을 것이다. 2010년도 제45구역에서의 발굴조사(발굴조사 면적 140m2)는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데, 이곳의 위쪽 건축면에서 구들이 딸린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다음의 두 번째 건축면은 일부가 정리 조사되었는데, 이 건축면에서도 불교 사역의 기능과 관련된 건축물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2011년도에는 제45구역에서 현장 보존조치 사항 제거 후 계속해서 조사를 진행하였는데, 성의 북서부분에 대한 다양한 문화층의 분포상태를 보여 주었다.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한 발굴구역 내의 방안 번호는 지난 연도들의 발굴구역 방안 번호들을 고려하여 부여하였다. 북쪽에서 남쪽으로는 숫자로(2~11), 서쪽에서 동쪽으로는 알파벳으로(데(Д)~야(Я)) 각각 표시하였다. 제45구역은 남쪽 섹터, 서쪽 섹터, 그리고 동쪽 섹터라는 3개의 섹터로 구분하였다. 남쪽 섹터는 크기가 5×8m이고, 북벽이 제37구역의 데(Д)-제(З)-7선 남벽에 상응한다. 서쪽 섹터와 동쪽 섹터는 전체 면적이 100m2(5×20m)이고, 떼(Т)-2-6선을 따라 너비 50cm의 둑으로 구분되었다. 서쪽 섹터의 서벽은 제37구역의 이(И)-2-6선 동벽에 상응한다. 발굴구역은 길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24m이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5~10m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레벨 차이는 23~26cm(+13~2 / -30~36cm) 사이이고, 서쪽에서 동쪽으로의 레벨 차이는 64~73cm(+36~24 / -37~40cm) 사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2010년도 발굴조사 중에는 위 건축면이 정리되었고 5개의 유구가 노출되었다: 남쪽 섹터와 서쪽 섹터에서는 구들이 딸린 16호 주거지, 남쪽 섹터에서는 건축물 유구(기와 지붕을 한 건축물로 추정)와 석축구조물 흔적, 서쪽 섹터의 이(И)-2·3방안에서는 구덩이, 동쪽 섹터에서는 배수로가 각각 확인되었다.
제45구역의 층위는 2010년도 조사 결과를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도면 9~27).
1. 표토(두께 8~12cm).
2. 부식 사질토층(20~24cm).
3. 굵은 석립 모래를 함유하는 갈색 알록달록 사질토층(3~15cm).
4. 서쪽 섹터, 남쪽 섹터, 일부 동쪽 섹터에는 아래로 다음의 층이 위치한다: 유구(구덩이들, 돌무지들)를 포함하는 밀도 있는 갈색 사질토층(12~40cm)과 굵은 사립과 잔돌을 함유하는 중간 밀도의 갈색 사질토층(6~24cm).
5. 서쪽 섹터와 동쪽 섹터에는 진흙 간층이 포함된 여러 가지 색의 모래층이 도처에서 확인된다. 두께는 65~80cm이다.
6. 남쪽 섹터에는 두 번째 건축면이 거친 입자의 모래가 함유된 갈색 사질토층이다. 두께는 6~20cm이다.
7. 더 아래에는 8~24cm 크기의 석탄이 드물게 포함된 알록달록한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이 위치한다. 이 층에는 17호 주거지의 수혈이 조성되어 있다. 17호 주거지 수혈은 석탄(윗부분은 두께 8~22cm)과 매우 밀도가 높은 갈색 사질토(아랫부분은 두께 12~24cm)가 다량 함유된 밀도 높은 짙은 회갈색 사질토로서 확인된다.
8. 다음의 층은 두께가 40cm까지로 제4 건축면의 유구들을 포함하는 갈색 사질토층인데, 다양한 크기의 석립 모래 입자와 모래 얼룩이 섞인 황갈색 사질토를 함유한다.
9. 모래 얼룩이 섞인 황갈색 사질토층 아래에는 숯, 다양한 크기의 모래 입자가 섞인 황갈색 사질토 등이 함유된 갈색 사질토층이 위치한다. 더 아래에는 전체 두께가 114cm까지인 무른 짙은 회갈색 사질토층이 위치하는데, 이 층은 제5 건축면의 수혈 내부 퇴적토를 이루고 있다. 가장 깊은 깊이는 데(Д)-11방안의 구덩이로 레벨이 -274cm이다.
10. 수혈은 갈색의 입자가 작은 모래층에 조성되어 있는데, 이 입자가 작은 모래층은 크라스키노 성의 이 부분에서는 생토층에 해당된다.
따라서 제45구역의 문화층 두께는 (두 해 동안의 발굴조사 결과를 고려할 때에) 서쪽 섹터에는 134~150cm, 동쪽 섹터에는 80~100cm, 남쪽 섹터에는 180~287cm이다.
문화층들은 평균 두께 10cm의 인공층으로 나누어 정리 조사하였는데, 필요한 경우에는 더 얇게도 정리 조사하였다. 남쪽 섹터에서는 18개 인공층이, 서쪽 섹터에는 4개 인공층이, 동쪽 섹터에는 2개 인공층이 각각 구분되었다. 발굴조사 중 남쪽 섹터와 서쪽 섹터에서는 과거 성의 북서쪽 부분에서 구분된 바 있는 제2~5 건축면에 해당되는 유구들이 수기 확인되었다.
2011년도 발굴조사 중에 제45구역에서 성의 북서부분의, 자연 재해에 의해 결정된 문화층의 공간적 배치 상태가 (수직 및 수평적으로) 단일하지 못함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발해시기(8~10세기) 쭈까노브까(얀치헤) 강 하상 변화의 중요 결과들이 어떤 건축면들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바로 개별 구역들에 있어서 개별 문화층들의 거의 완전한 파괴를 초래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2010~2011년도 발굴조사 결과 제45구역의 남쪽 섹터에는 비록 인간 활동과 자연 활동의 결과 본질적인 변형을 겪었지만 5개 건축면에 속하는 문화층들이 보존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서쪽 섹터에는 위의 두 개 건축면과 관련된 유구들을 포함하는 층들이 보존되어 있었고, 동쪽 섹터에서는 오직 단 하나의 위 건축면 층들이 확인되었다.
2011년도 발굴조사는 현장 보존 조치 부분을 제거한 다음에 발굴구역의 표면을 정리 조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도면 8). 동쪽 섹터는 지하수의 유출로 인해 토양이 질퍽거렸고, 이로 인해 이 부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어려움을 겪었다. 남쪽 섹터에서는 줴(Ж), 제(З)-8방안 부분에서 작은 도굴 구덩이가 발견되었는데, 도굴 구덩이 주변에서 큰 선철 조각이 놓여 있었다. 현장 보존 조치물들을 모두 제거한 다음에는 발굴구역의 3개 섹터 모두에서 두께 약 10cm로 제6인공층 정리 조사 작업을 시작하였다(도면 28). 남쪽 섹터의 대부분 지점에서 불탄 흔적들, 작은 석탄 조각들 등이 섞인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이 노출되었다(도면 29, 30, 남쪽 섹터 평면도 8). 서쪽 섹터와 동쪽 섹터에는 철화된 것을 포함하여 얼룩들과 모래 띠들이 섞인 사질토층이 우세하였다(도면 31, 남쪽, 서쪽, 동쪽 섹터 평면도 8).

●남쪽 섹터

제2 건축면
데(Д), 예(E)-10,11방안의 석축구조물(유구 No. 1)
2010년도에 부분적으로 조사된 제2 건축면에는 데(Д), 예(E)-10,11방안에 위치하는 북-남 방향의 짧은 석열 모양의 파괴된 석축구조물이 해당된다(도면 29, 평면도 8). 그 중에서 가장 큰 것들은 황갈색층을 파고 들어갔다. 그와 같은 층은 흔히 흙 반죽과 석축 구조물(기단, 구들 등) 강화를 위해 모래를 섞은 황색 진흙을 이용한 결과 형성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층이 어떤 원인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강화되지 않으면서 진흙 입자들이 (건물의 무너진 벽체들과 지붕, 강한 비 등에 의해) 점차 떨어져 나갔다. 일부만 남은 구들의 벽과 유사한 이 석축 구조물 곁에서는 짙은 회갈색층에서 탄화 목재 조각이 발견되었고, 서쪽으로 80cm 떨어진 거리에서는 큰 와편이 1점 출토되었다. 이 유구의 북서쪽에서는 올리브 갈색 모래층에서 작은 목탄들이 섞여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유구 곁의 데-9방안에서는 철제 화살촉(No. 1, 레벨 -52cm)이 출토되었다(도면 32). 이 층들은 석축 구조물과 함께 하나의 유구, 아마도 구들 난방 시스템이 있는 주거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추정에 대해서는 향후 제45구역 서벽으로의 확장을 통한 확인 조사 작업이 필요하다.
까(K), 엘(Л)-7,8방안의 석축 구조물(유구 No. 2)
이 유구는 2010년도에 발견되었으나 시간 부족으로 조사가 완료되지 못하였다. 현장 보존 조치 시설을 제거하고 제6인공층을 제거하자 이 석축 구조물은 섹터의 많은 부분(예(E)-엠(M)-7-10방안)을 차지하는 불탄 물질이 함유된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의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도면 33, 평면도 8). 까(K)-9방안에서는 매우 밀도 높은 불탄 소토 얼룩이 2개 노출되었다.
층에는 석탄, 작은 토기편, 와편 등이 다량 포함되어 있었고, 줴(Ж)-8방안, 이(И)-10방안, 까(K)-8방안에서는 부정형의 철제 유물편들과 슬래그가 출토되었다. 바로 이 층에서 철제 못(No. 5, 엠(M)-8방안, 레벨 -48cm), 2점의 철제 칼편(No. 3, 제(З)-7방안, 레벨 -7cm), 그리고 철제 화살촉(No. 4, 제(З)-7방안, 레벨 -45cm)이 출토되었다(도면 34, 36, 37). 석탄이 집중된 곳은 섹터의 중앙 부분이었다. 층에 석탄이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폐기물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석탄은 집을 덥히기 위한 땔감으로 그리고 열을 필요로 하는 생산시설의 연료로 사용되었다.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은 북쪽으로 황갈색 모래층과 경계를 이루는데, 이곳의 까(K)-7방안에서는 개별적인 슬래그 조각들이, 줴(Ж)-제(З)-8방안에서는 도굴 구덩이에서 큰 선철 조각(No. 7, 레벨 -51cm)이 각각 수습되었다(도면 38). 그와 같은 큰 선철 조각의 존재는 근처에 금속 가공과 관련된 생산 복합체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슬래그 조각들은 짙은 회갈색 층에서도 엠(M)-10방안에서 출토되었다. 석탄을 함유하는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에서 남쪽으로 굵은 입자의 석립 모래가 포함된 밀도 높은 갈색 알록달록 사질토층에서, 개별 자갈돌들과 살대의 오늬일 가능성이 있는 철제 유물편(No. 2, 엠(M)-11방안, 레벨 -51cm)이 확인되었다(도면 35). 제6인공층에서 출토된 토기편들과 기와편들(도면 41~56)(부록 2 참조) 중에는 문양이 있는 윤제 토기 동체부편들(도면 39, 40)도 있다.
제3 건축면
17호 주거지(유구 No. 3)
제7인공층에서는 불탄 물질이 함유된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이 약 10cm 두께로 정리 조사되었다. 이 층은 남쪽 섹터의 중앙 및 남동 부분에서 그 윤곽선이 드러난 유구를 덮고 있었고 또한 그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드물게 석탄이 함유된 알록달록한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은 수혈의 서쪽에서, 진흙 간층들이 있는 알록달록한 황갈색 사질토층은 수혈의 북쪽에서 각각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도면 57). 노출 유구는 내부 퇴적토의 성격과 규모로 보아 주거지를 연상시켰다. 때문에 이 수혈 유구에는 남서-북동 방향과 남동-북서 방향으로 너비 20cm인 2개의 둑을 십자모양으로 설정하였다. 주거지의 대부분은 발굴구역 내에 포함되었고, 주거지는 평면상 준말각장방형 모양이었다. 주거지의 장축은 북서-남동 방향이었다. 발굴 결과를 놓고 볼 때에 주거지 수혈은 길이가 5m 이상이었고, 너비는 약 3.6m이었다. 수혈의 북쪽 경계는 엠(M)-10방안, 엘(Л)-9방안, 까(K)-8방안을 지나며, 한쪽 모서리는 제(З), 이(И)-7방안에, 다른 한 모서리는 예(E)-9,10방안에 각각 위치한다(도면 59, 평면도 9). 이 주거지는 순서에 따라 17호 주거지로 명명되었다.
주거지 수혈을 채우고 있는 기본 층은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다. 중앙 부분에서 석탄이 많이 섞인 밀도 높은 짙은 회갈색 사질토의 넓은 얼룩(165×330cm)이 노출되었다. 그와 같은 얼룩이 발굴구역의 남벽 너머에서도 분포한다. 수혈의 동쪽 부분(엘(Л),엠(M)-9,10방안)에서는 장방형의 적갈색 사질토 소토 얼룩(60×40cm)이 조사되었는데, 이 소토 얼룩은 노지-1로 명명되었다(도면 60, 평면도 9). 얼룩 가장자리에는 크고 납작한 돌이 있었다.
제7인공층에 대한 정리 조사 시에 주거지 수혈의 경계부분에 유물이 집적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수혈의 남동쪽 부분에서는 까(K)-11방안에서 청동 팔찌편(No. 8, 레벨 -58cm)(도면 61)이, 엠(M)-11방안에서 철제 찰갑편(No. 9, 레벨 -60cm)(도면 62)이, 까(K)-10방안에서 토제 고리편(No. 10, 레벨 -50cm)(도면 63)이 각각 출토되었다. 수혈의 서쪽 부분에서는 제(З)-9방안에서 철제 화살촉(No. 11, 레벨 -56cm)(도면 64, 65)이, 줴(Ж)-9방안에서 가공흔이 있는 자갈돌(No. 12, 레벨 -61cm)(도면 66)이, 이(И)-11방안에서는 숫돌 예비품(No. 12-a, 레벨 -59cm)(도면 67)이 각각 출토되었다. 주거지 수혈의 동쪽 부분(엠(M)-10방안)에서는 토기 동체부편으로 만든 놀이 알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고(7점), 이(И)-11방안과 이(И)-10방안에서도 놀이 알들이 1점씩 확인되었다(도면 69). 이 레벨에서 출토된 거의 모든 토기편들(부록 2 참조)은 주거지의 남쪽 부분 이(И), 까(K)-11방안에 집중되어 있었다(도면 70~83).
다음 단계의 발굴조사 작업은 17호 주거지 내부 퇴적토의 윗부분을 5~7cm 두께로 정리 조사하는 것이었다(도면 86, 평면도 10). 이와 함께 노지-1에 대해서도 절개 조사가 이루어졌다(도면 87, 평면도 10). 노지-1의 깊이는 8cm, 불탄 소토의 두께는 4cm이었다. 수혈 내부 퇴적토 중간 부분의 표면에서 그 북쪽 절반 부분에서 매우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이 노출되었고(도면 85, 평면도 10), 남서쪽 모서리 부분은 계속해서 석탄이 많이 섞인 밀도 높은 짙은 회갈색 사질토층이 확인되었다. 남동쪽 부분에서는 이(И), 엠(M)-10,11방안에서 또 하나의 노지가 노출되었다. 이 노지의 윤곽선은 잔 숯들과 잔 소토 조각들이 섞인 밀도 높은 짙은 회갈색 사질토 띠로 확인되었는데, 이 띠는 굵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을 포함한다. 노지-2의 규모는 이 깊이에서는 약 150×160cm이다. 발굴구역과 주거지 수혈의 남동쪽 모서리 부분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모래 입자와 숯이 섞인 매우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의 엠(M)-11방안에서 2열의 석열 모양을 하고 있는 석축 구조물이 확인되었다. 그 중 한 석열은 발굴구역의 동벽 너머로 이어진다. 이 돌들은 주로 납작하였고, 조밀하게 깔려있었다(도면 88, 평면도 10). 또 다른 한 무질서한 상태의 돌무지가 이(И), 까(K)-8, 9방안에서 확인되었다.
17호 주거지의 내부 퇴적토 윗부분을 정리 조사할 때에 이(И)-10방안에서 철제 판(No. 13, 레벨 -63cm)이, 까(K)-8방안에서 작은 선철 조각(No. 14, 레벨 -65cm)이 각각 출토되었다. 선철 조각은 주거지 수혈 벽의 가장자리에 앞에서 지적한 큰 선철 조각 발견 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였다. 그 외에도 수혈 곁에서 철제 대롱편(No. 14a, 엠(M)-7방안, 레벨 -60cm)이 출토되었다.
17호 주거지 내부 퇴적토의 중간 부분을 정리 조사한 후에 제(З)-까(K), 8, 9방안에서 수혈의 북쪽 모서리 부분의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에서 갈색 모래 및 굵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 얼룩이 포함된 무질서한 크고 작은 자갈돌 무지가 한 곳 더 발견되었다(도면 101, 평면도 11). 석탄이 많이 섞인 밀도 높은 짙은 회갈색 사질토층은 이(И), 까(K)-11방안에서도 정리 조사되었다. 수혈의 서쪽 모서리 부분에서는 입자가 굵은 갈색의 모래 얼룩이 노출되었다(도면 100, 평면도 11). 또한 이 단계의 조사 작업에서 노지-2의 윤곽선이 이(И), 까(K), 엘(Л)-10,11방안에서 결정적으로 확인되었다(도면 99, 평면도 11). 노지-2의 윤곽선은 평면상 둥근 모양이었고 크기는 140×138cm이었으며,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크기와 중간 크기의 자갈돌들이 놓여 있었다. 노지 얼룩은 표면이 밀도 높은 짙은 회갈색 사질토와 굵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지의 서쪽과 남쪽은 흑색의 불탄 사질토 띠로 돌려져 있었다. 노지 쪽으로 엠(M)-11방안에 위치하는 돌의 남동쪽으로는 밀도 높은 회갈색 사질토 띠가 늘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내부 퇴적토의 중간 부분을 정리 조사할 때에는 노지의 위와 주변에서 유물이 소량만 발견되었다. 엠(M)-10방안에서는 토기 동체부편으로 만든 놀이 알이, 줴(Ж)-10방안에서는 철제 칼편 2점(No. 15, 레벨 -73cm)(도면 103)이, 제(З)-9방안에서는 세로 방향으로 홈선이 있는 토제 어망추(No. 16, 레벨 -70cm)(도면 104)가 각각 출토되었다. 소량의 토제 유물 중에는 ‘말갈’ 유형을 포함하는 윤제 토기 구연부편들과 독의 일부, 그리고 일부만 남아 있는 수키와편이 있다(도면 105~111).
17호 주거지 내부 퇴적토의 아랫부분을 정리 조사하기 전에 기상조건이 크게 악화되었다. 태풍이 불어왔고, 발굴조사를 수일간 중지하였는데, 강의 수면이 불어나고 지하수가 위로 올라왔다(도면 119). 17호 주거지 내부 퇴적토의 아랫부분에 대한 정리 조사를 하자 수혈의 서쪽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매우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이 노출되었다. 수혈의 서쪽 부분에서는 굵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이 분포하고 있었다(도면 112, 평면도 12). 석탄이 다량 포함된 짙은 회갈색의 밀도 높은 사질토층은 얼룩의 형태로 발굴구역의 남벽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다(도면 113, 평면도 12). 이와 함께 이(И)-엘(Л)-10,11방안의 노지-2도 내부 정리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노지-2의 내부와 주변의 흙은 약 300l 정도 물체질을 하였다(도면 114, 평면도 12). 노지의 벽은 이 깊이에서는 크게 넓어져 그 크기가 192×150cm이었다. 노지의 둘레에는 흑색의 숯 얼룩이 포함된 갈색 사질토층이 있었는데, 노지의 남동쪽 부분은 이 토층이 불탄 물질(숯과 소토)의 증가로 인해 보다 짙은 색이었다(도면 115, 평면도 12).
17호 주거지 수혈의 바닥 정리 조사는 석립 함유물 및 다수의 갈색 혹은 회갈색 모래 얼룩이 포함된 갈색의 알록달록한 사질토층을 따라 실시되었다(도면 116, 117, 평면도 13). 오직 섹터의 남동쪽 모서리 부분에서만 매우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이 남아 있었다. 이 층은 발굴구역의 동벽을 따라 엠(M)-9-11방안에서도 확인되었다. 이 층에서는 석축 구조물을 제거하고 난 다음에도 개별적인 돌들이 엠(M)-10방안에 남아 있었다.
노지-2의 경계는 앞의 깊이와 비교할 때에 변동을 보였는데, 그 윤곽선이 동쪽 방향으로 보다 길쭉해졌다. 노지 구덩이의 크기는 194×120cm이었다. 노지-2 내부 퇴적토의 두께는 윗부분은 34cm였고, 주거지 운용 시기에 형성된 내부 퇴적토 아랫부분은 23cm였다. 가장 많이 달구어진 부분은 노지의 동쪽 부분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바삭거릴 정도로 약한 다량의 불탄 동물 뼈들이 출토되었다(도면 118).
내부 퇴적토의 아랫부분과 바닥에서는 다음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수혈의 중앙 부분에서는 이(И)-9방안에서 고리가 있는 철제 갈고리(No. 17, 레벨 -81cm)(도면 122), 이(И)-8방안에서 철제 판편(No. 18, 레벨 -84cm)(도면 120, 121), 이(И)-10방안에서 토기 동체부편으로 만든 놀이 알이 각각 발견되었다.
수혈의 남동쪽 부분에서는 엘-11방안에서 주철제 판편(No. 19, 레벨 -95cm)(도면 123), 이(И)-11방안에서는 석제 도구(No. 21, 레벨 -86cm)(도면 124), 엠(M)-11방안에서는 수레바퀴 차관 비녀못(No. 22, 레벨 -84cm)(도면 126), 이(И), 까(K)-10,11방안에서 숫돌편(도면 127)이 각각 출토되었다.
수혈의 북서쪽 부분에서는 줴(Ж)-8방안에서 세로 방향으로 홈선이 있는 토제 어망추(No. 20, 레벨 -78cm)(도면 125)가 발견되었다.
내부 퇴적토의 아랫부분에서는 토기편이 소량 발견되었고, 주로 수혈의 서쪽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다(도면 129~135).
주거지에 대한 사진 촬영과 실측 다음에는 주거지에 남긴 둑을 제거하고 수혈 바닥에 대한 마무리 정리 조사를 하였다(도면 136~138, 평면도 14). 둑은 모두 실측 및 사진 촬영하였다(도면 139~142, 평면도 14). 정리 조사 작업을 할 때에 노지 구덩이의 경계가 분명하게 되었다.
따라서 17호 주거지는 평면상 길쭉한 준말각장방형 모양이다. 발굴구역 경계 내에서 조사된 주거지 수혈의 크기는 길이가 약 6m, 너비가 약 4.6m, 깊이가 20~30cm이다. 이 주거지는 꽤 오랫동안 존속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노지-2가 증명하는데, 노지의 윤곽과 크기가 시간에 따라 변화되었다. 이 노지-2는 큰 크기로 인해 대장간 작업에 사용된 생산적 기능의 유구일 가능성도 있다는 설도 제시된 바 있다. 하지만 내부 퇴적토의 아랫부분에서 슬래그, 예비품, 금속 조각, 공구 등이 보이지 않았고, 또한 극히 소량의 철제 유물이 발견된 점은 이 유구가 작업시설이었을 것이라는 설이 옳지 못함을 보여 준다. 그 외에도 노지 주변에서 출토된 다량의 부엌물품들(지상 포유류의 뼈들, 씨앗들)도 그 설과 모순된다. 그렇지만 이 주거지와 가까운 거리에 금속을 가공한 작업소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2점의 작은 선철 편이 증명한다.
제3 건축면에는 17호 주거지 이외에도 다른 2기의 유구를 귀속시킬 수 있다. 바로 17호 주거지 정리 조사 후에 발견된 엘(Л), 엠(M)-7방안의 구덩이 No. 4와 데(Д), 예(E)-10,11방안의 구덩이 No. 5가 제3 건축면에 해당된다. 구덩이 No. 4의 윤곽선은 주거지 수혈의 바닥을 정리 조사할 때에 이미 무른 갈색 사질토 얼룩의 형태로 노출되었다. 한편 서쪽 섹터에는 이 구덩이가 계속 되는 것이 거의 파악되지 않았다. 구덩이의 내부 퇴적토에서는 다량의 숯과 작은 불탄 뼈들이 발견되었다(도면 143~145). 구덩이의 크기는 42×66cm, 깊이는 26cm이다.
17호 주거지 수혈 바닥 레벨의 제8인공층의 제거 및 정리 조사 시에 다음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엠(M)-11방안 - 철제 수레 차관(No. 23, 레벨 -98cm)(도면 147), 엠(M)-8방안 - 철제 축편(No. 24, 레벨 -87cm)(도면 148), 엠(M)-7방안 - 2점의 철제 칼편(No. 25, 레벨 -87cm)(도면 149), 이(И)-7방안 - 수점의 부정형 녹슨 철제 유물편들(도면 150). 토기편들 중에는 화병형 토기와 구상토기의 구연부편들과 문양이 있는 윤제 토기 동체부편들이 있다(도면 151~155).
제4 건축면
데(Д)-예(E)-10-11방안의 구덩이(유구 No. 4)
구덩이 No. 5는 데(Д),예(E)-10,11방안의 늦은 단계 구덩이로 제8인공층의 표면에 상부를 적갈색 얼룩이 포함된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로 채우고 있는, 그리고 발굴구역의 남서 모서리 부분을 아래 건축면의 수혈 레벨까지 절단하는 모습으로 노출되었다(도면 146, 평면도 15). 이 레벨에서 구덩이 No. 5는 부분적으로 발굴구역의 남벽과 서벽의 안으로 들어가 있다. 평면상 이 구덩이는 둥근 모양이며, 북서쪽 가장자리가 대부분 중간 크기 입자의 모래인 밝은 올리브-갈색의 띠로 둘러싸여 있다. 구덩이의 내부 퇴적토는 밀도 높은 짙은 회갈색 사질토이며, 구덩이 내부의 남쪽 부분에는 석탄 조각들이 무지를 이루고 있었다. 구덩이 동쪽의 밀도 높은 갈색 사질점토 띠는 벽을 발랐던 흙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크라스키노 성의 주민들에 의해 장기간의 경제 구덩이를 만들 때에 흔히 이용되었다. 구덩이가 무너진 흔적은 무른 암갈색 모래층의 모양으로 확인되었는데, 구덩이를 북쪽에서 둘러싸고 있었다.
제8인공층을 제거한 다음에는 데(Д)-예(E)-10-11방안의 구덩이 No. 5에 대해 절개조사를 실시하였다. 밀도 높은 토층과 짙은 회갈색 사질토층 아래에서 굵은 입자의 갈색 모래가 노출되었는데, 이 모래를 따라 사질토층이 벗겨졌다. 구덩이의 깊이는 13cm, 크기는 180×186cm였다(도면 156, 평면도 15). 구덩이 내부가 모두 정리 조사되었을 때에 가장자리가 둥그스름한 길쭉한 모양임이 확인되었다. 구덩이 No. 5 안에 위치하는 구덩이 No. 6에 대해서도 절개조사를 하였다. 구덩이 No. 6은 무른 암갈색 모래로 채워져 있었다(도면 160, 평면도 16). 이 구덩이의 직경은 24cm, 깊이는 8cm이다.
계속된 조사는 모래층이 구덩이의 바닥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모든 정황을 놓고 볼 때에 이 구덩이는 꽤 긴 시간동안 사용되었다. 다음의 제9인공층을 제거할 때에 굵은 입자의 갈색 모래층 아래에 밀도 높은 점질의 암색 회갈색 사질토층이 위치함이 확인되었다(도면 157~159, 평면도 16). 아마도 진흙으로 구덩이 벽을 발랐을 것이다. 제10인공층 제거 시에는 그 아래에 보다 이른 시기의 또 다른 구덩이가 하나 더 있음이 확인되었다(도면 162~164, 평면도 17). 이 구덩이의 위치는 구덩이 No. 5와는 약간 차이를 보이며, 이 새 구덩이는 평면상 분명한 원형이다. 이 새 구덩이는 다른 유구가 분명하기 때문에 새로운 번호를 부여하였다(구덩이 No. 9). 절개조사를 한 결과 이 구덩이의 내부 퇴적토는 밝은 황갈색 사질토로 이루어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레벨에서의 구덩이의 깊이는 13cm, 크기는 156×158cm이었다. 나중에 제11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 구덩이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무너진 색 바랜 갈색 진흙층이 발견되었는데, 구덩이 벽을 발랐던 흙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된 조사를 통해 이 구덩이는 제5 건축면의 수혈 내부 퇴적토 일부를 절단하면서 더 깊게 나 있음이 확인되었다. 제14와 제15인공층 레벨에 구덩이의 바닥이 위치하였는데 모양이 방형이었다. 구덩이 바닥에도 갈색 진흙 반죽 흔적이 남아 있었다. 구덩이 바닥에서는 탄화된 목재 잔존물들도 발견되어 구덩이에 목재를 둘렀을 가능성도 보여 주었다. 제15인공층 제거 후의 레벨에서 파악된 직각을 이루는 두 개의 명갈색 사질토 띠 모양의 구덩이 윤곽을 통해 볼 때에 구덩이를 만들 때의 구덩이 크기는 대략 1.5×1.8m이었다(평면도 22). 구덩이 바닥의 흙 반죽 아래에서 제16, 제17인공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 예(E)-11방안과 데(Д)-10,11방안에서 바다 연체동물의 껍질 무지와 토기편들이 노출되었고, 또한 구덩이의 흔적도 명갈색 및 갈색 사질토 얼룩, 불그스름한 점토 및 불탄 물질(잔 숯과 소토)을 포함하는 암갈색 사질점토 얼룩 모양으로 계속 관찰되었다(평면도 23, 24). 이 구덩이는 식품 저장을 위한 움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경제 구조물들이 다른 발해 유적들에서 발굴된 바 있다. 예를 들어, 고르바뜨까 성에서는 움 안에서 동물 뼈와 토기 호 안에 담긴 연체동물(달팽이) 잔존물이 발견된 바 있다.
따라서 데(Д), 예(E)-10,11방안의 구덩이는 깊이가 1m 이상이었다. 구덩이의 윤곽은 변화되었지만, 처음에 만들 때에는 장방형의 모양이었다. 나중에 구덩이의 가장자리가 무너지고 둥글게 되었다. 구덩이의 벽과 바닥에는 진흙을 덧발랐고, 그리고 판재를 덧대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구덩이 위에는 차양을 쳤을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제8인공층 제거 후의 레벨에서 구덩이와 나란히 발견된 보다 작은 구덩이들의 존재가 증명한다(도면 143, 평면도 15). 크라스키노 성의 주민들은 벽에 바르기 위한 흙 반죽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왜냐하면 사질토와 모래는 그와 같은 구조의 구조물에는 너무 유동성이 심한 토양이기 때문이다. 구덩이 자체에서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지 않았다. 예(E)-11방안에서 개별 토기편들과 손잡이에 목재 흔적이 남아 있는 철제 칼 1점(No. 31, 레벨 -145cm)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엘(Л), 엠(M)-10,11방안의 노지 3(유구 No. 5)
제10인공층 제거 후에 엘(Л), 엠(M)-10,11방안에서 불탄 물질(숯과 소토)이 많이 포함된 달구어진 황갈색 사질토 얼룩 모양을 한 크기가 94×80cm인 노지가 노출되었다(도면 165, 평면도 17). 그 표면에는 여러 개의 큰 돌이 놓여 있었다. 북-남 방향으로 노지 절개조사가 이루어졌다. 내부 퇴적토는 윗부분은 두께 5~7cm의 숯 잔존물들로 채워져 있었고, 아랫부분은 기본적으로 소토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부 퇴적토에서 작은 자갈돌들도 발견되었다(도면 166, 평면도 17). 내부 퇴적토를 정리 조사한 다음에 노지는 둥근 모양이 되었고, 그 크기는 102×90cm, 깊이는 약 13~14cm였다(도면 167, 평면도 17). 노지 3은 17호 주거지 노지 2의 거의 바로 아래에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위치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노지가 그 어떤 구조물들과 관련이 있는지의 여부는 밝히지 못하였는데, 왜냐하면 그 구조물들은 17호 주거지를 축조할 때에 파괴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4 건축면에는 엠(M)-7방안의 기둥구멍 No. 7도 해당된다. 이 기둥구멍의 직경은 42cm, 깊이는 18cm이며, 내부 퇴적토는 무른 황갈색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기둥구멍에서는 철제 못(No. 26, 엠(M)-7방안, 레벨 -95cm)이 출토되었다.
제5 건축면
수혈(유구 No. 4)
이 유구에 대한 첫 번째 징후는 제10인공층 제거 후에 데(Д)-제(З)-7,8방안에서 불탄 물질(잔 숯과 소토 혼입물)을 포함하는 갈색 사질토층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층은 대부분이 모래 얼룩이 섞인 황갈색 사질토층 및 밝은 황갈색 모래층에 의해 덮여 있었다(도면 162, 163). 줴(Ж), 제(З)-7,8방안의 갈색 사질토에서는 중간 크기의 자갈돌들과 토기편들이 노출되었고, 데(Д)-8방안에서는 철제 화살촉(No. 27, 레벨 -107cm)이 출토되었다(도면 169).
다음 단계의 작업에서는 갈색 사질토층을 평균 5cm 이하(제11인공층)로 정리 조사하였는데, 갈색 사질토층이 잘게 분포한 숯과 진흙 입자의 증가로 인해 더 밀도 있고 더 짙은 색이 되었다(도면 173~175, 평면도 18). 이 층은 서벽(데(Д)-8방안)에서 동벽(엠(M)-10방안)으로 띠를 이루며 분포하였으며, 모래 얼룩이 섞인 황갈색 사질토층을 지난다. 후자는 발굴구역의 북쪽 부분에서 간혹 적갈색을 띠기도 하는 밝은 황갈색 모래로 바뀐다(도면 176). 남서 모서리 부분에는 아직 제4 건축면의 구덩이 No. 9의 잔존물이 남아 있었다.
다음으로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을 정리 조사할 때에(도면 177), 이 층은 보다 짙은 색이 되고 또 남벽으로 가면서 레벨이 낮아짐이 확인되었다. 이 층의 아래에는 황갈색 사질토층이 위치한다. 이 층에서는 예(E)-제(З)-8방안(도면 178, 179, 평면도 19)과 줴(Ж)-제(З)-8,9방안(도면 183~186, 평면도 20)에서 작은 목탄들과 무질서한 깨어진 잔돌 무지들이 발견되었다. 밀도 높은 암갈색 사질토층이 형태와 용도가 분명하지 못한 수혈의 내부를 채우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황갈색 사질토는 수혈의 바닥에 이르기 전에 네 번에 걸쳐 정리 조사되었다(도면 178, 183, 평면도 19~22: 제12~제15인공층). 제12, 제13인공층(각각 두께 10~12cm) 정리 조사 시에는 수혈 내부 퇴적토의 윗부분을 제거하였다(도면 177, 183, 평면도 19~20).
동시에 추정 수혈의 가장자리도 정리 조사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수혈의 윤곽선을 완전히 노출시키기 위해 추정 수혈 북쪽의 모래층을 평균 두께 10cm 이하로 제거하였다(도면 178, 183, 192, 평면도 19~21). 이 조사 작업 중에 황갈색 사질토층에서 세로 방향으로 홈선이 있는 토제 어망추(No. 28, 레벨 -111cm)가 예(E)-8방안에서 출토되었다(도면 180, 207).
다음 조사 단계에서는 수혈 내부 퇴적토의 중간 부분을 제14, 제15인공층을 통해 두께 15~20cm 및 5~10cm로 정리 조사하였다(도면 193~196, 평면도 21). 이 작업을 통해 수혈 자체가 추정 윤곽선보다 약간 낮은 레벨에 위치하고 있고, 그리고 자연 테라스에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도면 203~205, 평면도 22). 수혈 내부 퇴적토는 이 층들에서는 주로 무른 황갈색 사질토와 여러 가지 밀도와 색깔의 갈색 사질토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4 건축면의 데(Д), 예(E)-10,11방안에 위치하는 구덩이 No. 9의 바닥 부분에서 토기편, 목탄, 동물 뼈, 연체동물 패각 등이 드물게 발견되었다(도면 207). 데(Д)-10방안(제15인공층)에서는 깨어진 수제 말갈 토기가 출토되었다(도면 206).
완만한 두 단의 테라스 경사면을 정리 조사한 다음에는 수혈 자체의 경계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처음에는 기본적으로 수혈의 벽을 따라 그리고 부분적으로 수혈의 바닥을 따라 정리 조사를 하였다(제16, 제17인공층, 각각 두께 5~10cm)(도면 211~213, 평면도 23; 도면 214~216; 도면 217~220, 평면도 24). 정리 조사 중 제(З)-10방안에서 뼈 조각들이, 데(Д)-10방안과 데(Д)-11방안에서 연체동물 패각들이 확인되었고, 그 외에도 개별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 이(И)-9방안에서는 세로 방향의 홈선이 있는 토제 어망추(No. 30, 이(И)-9방안, 레벨 -145cm)가 출토되었다.
수혈 내부 퇴적토의 아랫부분을 정리 조사할 때에 아랫부분이 한꺼번에 형성된 것이 아님이,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사립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임이 확인되었다. 이 층에서는 숯, 재, 소토가 섞여 있었고, 드물게는 지상 포유류 동물의 뼈와 물고기의 뼈도 섞여 있었다. 내부 퇴적토는 2단계에 걸쳐 개별 부분의 경우 두께 15cm 이하로 정리 조사하였는데, 평면 배치 상태가 약간 변하였기 때문에 공통적인 하나의 평면도만 작성하였다(도면 221~224, 평면도 25). 이 인공층을 제거할 때에 수제와 윤제의 토기편들이 발견되었고(부록 2 참조), 데(Д),예(E)-10,11방안에서는 눌리어진 완형상태의 윤제 구상 토기의 편들이 출토되었다(도면 225, 227, 228). 수혈의 많은 부분에서 숯과 중간 크기의 자갈돌이 포함된 갈색 사질토 얼룩이 섞인 갈색 잡은 입자의 모래층이 관찰되었다. 수혈의 동쪽과 서쪽 부분에서는 탄화된 목재, 작은 숯, 소토 등이 많이 섞여 있는 갈색 사질토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 단계의 작업은 갈색의 작은 입자 모래층을 따라 실시한 수혈의 바닥 정리 조사였다(도면 238~241, 평면도 26). 전체적인 정리 조사 시에 수혈의 이(И)-9방안 벽에서 유경식의 끌 모양 철제 화살촉(No. 32, 이(И)-9방안, 레벨 -163cm)이 출토되었다(도면 242). 수혈의 남서 모서리 부분에서는 숯이 섞인 갈색 사질토를 정리 조사 할 때에 데(Д), (E)-10,11방안에서 구덩이가 발견되었고, 그 속에서 개별적 숯들과 2점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구덩이 안에서는 또 하나의 직경 16cm인 작은 구덩이(레벨 -287cm)가 위치하였다. 하지만 후자 구덩이의 내부는 모두 정리 조사하지 못하였는데 발굴구역에 지하수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Д), 예(E)-10,11방안의 보다 늦은 시기의 구덩이에 의해 파괴된 수혈은 제5 건축면에 축조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수혈의 깊이는 55cm에 달한다. 이 수혈은 발굴구역에 일부만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 크기는 파악되지 못하였다. 수혈은 자연 테라스에 만들어졌고, 그 내부 퇴적토에서는 탄화 목재 편들과 숯 집적지의 모양을 한 목재 구조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내부 퇴적토에서는 작은 흙 반죽 편들과 불에 달구어진 사질토들도 섞여 있었다. 건축물(주거지?) 수혈이 기능하였던 시기, 다시 말해서 수혈 내부 퇴적토의 아랫부분이 형성되던 시기와는 숯과 작은 흙 반죽 편들, 눌린 토기를 비롯하는 토기편들 등이 섞인 두께 약 25cm의 갈색 사질토층이 관련된다. 건축물이 폐기되고 난 다음에 그 수혈은 짧은 기단 동안 사질토양의 짙은 회갈색 얇은 사질토층 및 작은 입자의 모래가 섞인 갈색 사질토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층들이 형성되고 난 다음에 바로 이 건축물의 나머지 불탄 구조물들이 허물어졌을 것인데, 왜냐하면 얇은 (거의 모래) 갈색 사질토층은 보다 얇았고 그리고 숯 및 진흙 간층들이 있는 황갈색의 입자가 작은 모래층이 보다 적게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범람의 결과에 의한 이와 비슷한 그림이 크라스키노 성에서는 이미 다른 지점들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제5 건축면에 해당되는 층의 두께는 약 80~85cm이며, 이 건축면 층의 형성에는 모래의 퇴적과 사질토양 사질토의 재퇴적도 일정 역할을 하였다.

●서쪽 섹터

제2 건축면
서쪽 섹터에서는 현장 보존조치 물질을 제거하고 제6인공층에 대한 정리 작업을 하는 중에 제2 건축면의 나머지 부분이 조사되었다(도면 31, 243, 244, 평면도 8). 제2 건축면은 이(И)-4-6방안과 뻬(П), 에르(Р)-3-5방안에서는 갈색 사질토 얼룩 형태로, 까(K)-엠(M)-4-6방안에서는 개별적으로 자갈이 섞인 밀도 높은 암갈색 사질토 형태로 각각 노출되었는데, 이것들은 남쪽 섹터의 동일 층의 연장이다. 까(K)-5방안에서는 부정형의 녹슨 철제 유물편들이 출토되었다. 갈색 사질토 얼룩과 밀도 높은 암갈색 사질토 얼룩, 그리고 현대의 사질토 흔적들은 기본 층위인 진흙 간층들이 섞인 알록달록한 황갈색 모래층으로 섞여 들어갔다.
현대 구덩이 No. 3의 잔존물
엔(Н)-에르(Р)-2-5방안에서 흑색 얼룩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이 선명하게 노출되었는데, 이 층은 2010년도에 이미 표토와 부식토를 제거하고 위 건축면에 대해 정리 조사를 할 때에 바로 확인되었었다. 이 층은 1930년대의 군사훈련 시기에 판 것이 분명한 현대 구덩이를 대표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문화층들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층들에 대한 정리 조사를 하면서 함께 이 구덩이를 조금씩 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새로운 발굴조사 시즌에는 현대 구덩이를 파내기 전에 제6과 제7인공층을 제거하였다(도면 243, 244, 249, 250). 이 구덩이 곁에서 미니어처 토기가 출토되었다(No. 6, 레벨 -47cm, 뻬(П)-4방안)(도면 245, 281). 제7인공층 정리 조사 다음에 엔(Н)-에르(Р)-2-5방안의 현대 구덩이 No. 3의 윤곽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고, 또한 이 인공층에서 고대의 구조물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구덩이를 이 레벨에서 정리하기로 결정하였다(평면도 10, 도면 251, 252). 구덩이의 범위 내에 그 내부 퇴적토의 윗부분에서 수류탄의 파편을 포함하는 부정형의 철편들과 병 유리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구덩이를 절개하여 그 내부 퇴적토를 조사하였다. 구덩이 내부 조사 시에 동물 뼈들(두 마리의 말과 소)이 발견되었다(도면 253, 평면도 10). 구덩이에는 2단의 수직 벽이 있었다. 구덩이의 남쪽과 서쪽 가까이에는 직경이 22~40cm인 다른 작은 구덩이가 3개 더 있었다. 이 작은 구덩이들의 내부 퇴적토는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였다. 이 작은 구덩이들의 용도는 분명하지 않다. 기둥 구멍이라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다른 유물도 없었다.
다음 단계의 조사에서는 제8인공층을 전체 서쪽 섹터가 동일 레벨이 되게 하기 위해 두께 7~15cm로 정리 조사하였다(도면 254, 255, 평면도 11). 그 외에도 뻬(П),에르(Р)-4,5방안의 제2 건축면 구덩이 No. 1도 조사하였다. 제6인공층 제거 후에 152×100cm 크기의 길쭉한 둥근 갈색 사질토 얼룩 모양으로 노출된 구덩이 No. 1의 윤곽선은 다음 인공층을 제거하고 나니 124×46cm 크기로 약간 작아졌다. 절개조사를 하여 구덩이의 내부 퇴적토를 파내었다. 내부 퇴적토(갈색 사질토)에 대한 조사 시에 여러 개의 작은 자갈돌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부정형의 녹슨 철제 유물편이 발견되었다.
제5 건축면
제45구역의 서쪽으로, 2010년도에 조사가 마무리된, 이웃하는 제37구역의 생토 모래층에서 발굴구역의 남동쪽 모서리에서 구덩이의 흔적이 이미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 구덩이의 흔적을 서쪽 섹터와 남쪽 섹터의 제-이-5-7방안에서도 발견할 것이라 기대하였다. 때문에 엔(Н)-에르(Р)-2-5방안의 현대 구덩이 No. 3을 정리 조사한 다음에 서쪽 섹터에 약 10cm로 두 개의 인공층(제9인공층과 제10인공층)을 제거하였고, 그 다음에는 노출된 표면에 대해 사진 촬영과 실측을 하였다. 그 어떤 유구나 문화층도 없음을 확인한 다음에는 두 단계에 걸쳐 제10인공층과 제11인공층 2개를 각각 약 20cm의 두께로 제거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남쪽 섹터에서와 마찬가지로 제5 건축면 레벨에 도달하였다(도면 256, 평면도 12). 생토층의 제, 이-6방안에서 경제 구덩이가 노출되었다(도면 258~260, 평면도 12). 그 내부 퇴적토에는 다량의 홍합 껍데기가 섞여 있었고, 수혈의 벽에는 부분적으로 토기 독 편들이 박혀 있었으며, 그 외에도 철제 쐐기모양 유물편(No. 29, 이-6방안, 레벨 -116cm)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이 부분이 범람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흔적들은 서쪽 섹터 경계 부분의 좁은 띠 모양으로 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있는, 그리고 문화 잔존물을 포함하지 않는 숯과 개별적 자갈이 섞인 밀도 높은 갈색 사질토층에 반영되었다. 이 층은 제37구역(2010년도)에서 이미 발견된 바 있는데, 씻겨나간 흔적과 숯 층의 재퇴적 흔적이 생토 모래층에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생토층의 문화 잔존물이 없는 숯 층은 제34구역(2007년도)과 제40구역(2009년도)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적인 화재의 결과물을 강물이 씻어 낸 것으로 해석한 바 있다.

●동쪽 섹터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제45구역 경계 내의 토층은 곳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문화층의 자연적인 형성보다는 자연적 현상의 부정적 영향에 의한 문화층의 변화 결과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성 내부의 여러 시기 문화층들에 대한 부분적인 혹은 전면적인 파괴를 초래한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범람이었다. 동쪽 섹터와 서쪽 섹터에서는 바로 그와 같은 부분들이 조사되었다.
2010년도에 동쪽 섹터에서는 위 건축면들과 관련된 문화층들의 유구들(배수구, 경제 구덩이)이 조사되었다. 2011년도에는 2개의 인공층을 정리 조사하였는데, 각 인공층의 두께는 평균 약 40cm이었다(도면 262~265). 모두 다양한 색감과 다양한 암석 성분의 모래층들이었다. 이곳에서는 그 어떤 유구도 발견되지 않았고, 알록달록한 황색계통 모래에는 진흙 간층들이 섞여 있었다. 이 층들을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볼 수 없는데, 매우 드물게 숯이 섞여 있었다. 레벨 -105cm 깊이에서 지하수가 스며나오기 시작하였다. 더 아래에 문화층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우-4방안 지점에서 야-4방안 지점까지의 가운데 선을 따라 굴삭 조사를 하였다. 확보된 자료들은 모두 유구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 결과를 보여 주었다. 때문에 그 다음에는 이 섹터에서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 부분의 발굴구역은 현장 보존조치 하였다.
따라서 2011년도 조사 결과는 제45구역의 동쪽 섹터와 서쪽 섹터가 구획된 성의 이 부분이 고대에 자연적 요인들에 의해 누차에 걸쳐 변화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발해 존속 시기에는 쭈까노브까(얀치헤) 강이 성의 북쪽 부분 가까이로 하상을 바꾸었다. 성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물은 범람 시에 누차 성 내부로 들어왔고, 부분적으로 남아 있던 건축물들을 씻어 내면서 계속 새로운 퇴적층을 만들어 내었다. 아마도 이로 인해 성의 북벽에 문이 없었을 것이다. 발굴조사가 끝난 다음에는 발굴구역에 대해 현장 보존조치를 취하였다(도면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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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구역 자료번호 : kr.d_0009_003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