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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조사개요

1) 발굴단 구성

발굴팀은 동북아역사재단, 부경대학교 사학과(이상 한국 측)와 러시아과학원 극동분소 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러시아 측, 이하 극동고고연구소)로 약칭으로 구성되었으며 지난 공동발굴에 이어서 러시아 연해주 핫산군 크라스키노 마을에 위치한 크라스키노 성지의 내부에서 발굴조사를 수행했다. 2009년도 한·러 공동발굴은 6월 25일부터 9월 3일까지 수행되었다. 한국팀은 6월 30일부터 7월 28일까지 발굴에 종사했으며, 이후의 기간은 러시아측이 남아서 복토 및 발굴 마무리 작업을 수행했다(그림 1~3). 발굴작업은 40구역, 41구역, 42구역 등으로 나뉘어서 진행되었다. 41구역은 2008년도에 이어서 한국 측이 담당하여 41구역의 생토면까지 발굴을 해서 최하층에서 유구의 흔적을 확인하는 데에 주목적을 두었다. 40구역은 지난해에 이어서 34구역에 연접한 크라스키노의 주거구역으로, 겔만의 책임하에 최하층 문화까지 확인하며 조사했다. 한편 42구역은 한국과 러시아 양측이 합의한 기존의 발굴조사가 북서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바, 2009년도에는 새로운 구역을 발굴조사하기로 합의한 바에 따라 성지 남문지 근처로 조사구역을 결정했다.(그림 4, 5).
2009년도의 조사는 기존 발굴조사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발굴구역의 선정 및 발굴방법 등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올해 조사의 목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➊ 처음 크라스키노에서 본격적으로 주거지 조사가 이루어진 40구역에 대한 조사의 마무리와 최하층의 생토면까지 발굴함으로써 전반적인 크라스키노 성지의 건축층은 몇 개로 되어 있는지 시기별로 유구의 변화상을 조사한다. 또한 주거유적의 상대편년 및 절대편년, 크라스키노 주민이 주변의 생계자원을 활용한 예의 확보, 주거구역의 분포와 유구 간의 상관관계, 그리고 발해 주민의 다양한 물질문화자료 획득 등에 있다.
➋ 2008년도에 시작된 41구역의 조사를 마무리한다. 2008년도의 조사 결과 상층에서 7호, 중층에서 8호 주거지가 확인되었던바, 8호 주거지의 조사를 마무리하고 그 이하에 또 다른 문화층이 있는지 확인한다. 지난 조사에서 37구역의 예처럼 크라스키노 유적의 북서쪽에서 최하층의 문화가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절대연대 및 고구려토기와의 상사성에 근거해서 고구려 시기의 문화층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올해 발굴에서는 최하층 문화층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그 유구 및 유물들을 조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시기별로 크라스키노 북서지역의 사원구역에 인접한 지역의 유구 분포와 시기별 변천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➌ 크라스키노에서는 최초로 성지의 남문지 근처를 발굴해서 유구의 흔적을 확인하고자 한다. 바다에 인접한 크라스키노 성지의 특성상 대부분의 조사는 북서쪽에만 집중되어 왔다. 이는 조사의 편의성으로 본다면 합리적이지만, 성지 전반적인 포국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올해에는 남문지 근처를 발굴해서 기존의 지표측량과 지구물리학적 탐사를 통하여 대로로 추정되는 곳에 길게 트렌치를 설치하여 유구의 흔적을 찾아보고자 한다.
➍ 40과 42구역에 대한 토양속 마그네트 감도 측정과 지구물리탐사를 진행하여 유적에 대한 비파괴조사로 문화층의 퇴적 및 문화층의 분류를 미리 알아내는 방법을 고안한다. 아울러 지질화학적 연구를 통하여 문화층 내에서 철기가 어떤 상태로 남아 있는지도 같이 분석한다. 문화층을 파괴하지 않고 유적의 전체 정황을 파악한다.
이 발굴은 러시아과학원 고고학연구소 발굴조사과가 교부한 발굴허가증(No.268, Form No.1)에 의거하여 이루어졌으며, 재정은 대한민국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담당했다. 전체적으로 발굴은 모두 3구역에서 이루어졌는데, 40구역은 77.75㎡, 41구역은 38㎡,41구역은 64㎡ 등 모두 179.75㎡를 발굴했다.
이번에 발굴된 유물과 기타 도면들은 극동고고연구소의 박물관과 정치인류학분과에 보관되어 있다.
러시아 측 참여자는 다음과 같다. 극동고고연구소의 В. И.볼딘, Е. И. 겔만, 연구소의 부원장인 А. Л. 이블리예프, Е. В. 아스탄세코바, Н.В.레센코, Я.Е.피스카료바, А. В. 가르코빅과 동 연구소 도서실에 근무하는 Е. В. 토로포바, Е. Ю. 샤포발로프 등이 참여했다. 또한 극동기술대학 인류학과의 1~3학년 학생 22명과 극동대 학생 2명 등이 참여했다. 또한 운전사 В.Н.스트렐비쯔키, Г. И. 실란티예프, Б. А. 마다예프가 참여했다.
이외에 지구물리탐사는 극동과학원 태평양해양학연구소의 Е. А. 베스소노바, С. А. 즈베레프, Т. В. 폴리슈크, И. О. 우스, Л. Е. 바실리예바가 수행했다.
한국 측의 현장조사단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발굴 중에는 박선영 국회의원과 연합통신 블라디보스토크 지부의 강창구 기자 등이 방문하였으며 한국조사팀은 크라스키노 남측의 고분군과 엑스페디치야 만 일대의 성격미상 고분군을 3일에 걸쳐 답사하고 현황을 파악했다.
성명소속(당시)분담
조사원김은국동북아역사재단제2연구실 부연구위원총괄
강인욱부경대 사학과 교수책임조사원
김재윤러시아과학원 극동분소조사원
홍종하부경대 사학과 3학년보조원
오현주부경대 사학과 2학년 보조원
야쿠포바 아나스타샤 러시아 극동대 고고학과 3년보조원
야쿠포프 막심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조사원
자문위원송기호서울대 교수자문
한규철경성대 교수 자문
정석배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자문
현장 작업 후에는 보고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2010년 4월 24일부터 30일까지 김은국, 강인욱과 함께 서울대박물관의 양시은 학예사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과학원 역사고고학연구소를 방문하고 유물을 실견, 고찰자료를 모았다. 러시아 측 원고를 수합하고 한국 측의 보고서를 정리하는 작업은 강인욱이 총괄하였으며, 김재윤과 조소은(이상 부경대)이 참여했다.

2) 발굴일정

2009년 크라스키노 성지 발굴조사 일정
6월 22일 : 러시아 발굴단 선발대 크라스키노 도착, 캠프 및 발굴준비
6월 25일 : 러시아 발굴단 본진 도착
    저녁에 러시아 측 발굴책임자(겔만, 레센코, 이블리예프, 볼딘) 등과 발굴일정 협의
6월 26~30일 : 2008년 발굴구역(40구역, 41구역) 복토제거 및 발굴준비
6월 29일 : 한국 측 조사단 선발대(강인욱, 홍종하, 오현주) 러시아 도착
6월 30일 : 한국 측 크라스키노 도착 및 장비정비
7월 1일 : 남측 추정도로유구(42구역)지의 발굴지 선정 및 측량
7월 2일 : 42구역 표토제거 및 40구역 정비
7월 4~5일 : 41구역 한국 측이 조사한 8호 주거지 밑으로 최하문화층 탐색 시작
7월 5일 : 강인욱 크라스키노 주변의 고분군 조사, 막심 야쿠포프 및 아나스타샤 야쿠포바 대원 합류
7월 6일 : 41구역 8호 주거지 밑에서 유구 확인
7월 7일 : 우천으로 실내작업
7월 11~12일 : 강인욱 주변지역 유적 조사(얀콥스키 반도)
7월 13일 : 강인욱·이블리예프 엑스페디치야 만 일대의 고분군 조사
7월 14일 : 우천으로 실내에서 도면 및 약보고 준비
    저녁에 한·러 책임자의 회의(발굴지도위원회 및 발굴경과 결산)
7월 15일 : 최하층 유구의 확인, 러시아 측과 시기구분에 대한 토의, NHK 방송팀 사전방문
7월 16일 : NHK 방송팀 현장촬영, 발굴지도위원단 블라디보스토크 도착
7월 17일 : 현장지도위원회, 박선영 국회의원, 수원대 박강 교수를 비롯 30여 명 현장방문
7월 18일 : 발굴지도위원단 바라바쉬-3 유적 답사
7월 19일 : 강인욱·홍종하·오현주 크라스키노에서 철수
    발굴의 마무리는 막심 야쿠포프와 아나스타샤 야쿠포바에게 인계
    발굴지도위원단 샤프쿠노프 박사의 무덤 참배
7월 20일 : 발굴지도위원단 및 한국팀 선발대 귀국
7월 21~25일 : 한국팀의 짐 정리 및 도면, 복토 등의 작업(막심과 아나스타샤 담당)
8월 29~9월 3일 : 러시아 측 8호 주거지 바닥 정리 및 복토

3) 보고서 집필

I 장은 강인욱, 겔만, 볼딘이 공동으로 정리했다. II 장은 러시아 측의 행정보고서를 바탕으로 하되 한국 측 구역(41구역)은 강인욱이 한국 측의 의견을 반영하여 대폭 수정했다. 현장에서 유구의 도면 및 사진정리 작업은 겔만과 아스타센코바가 진행하였으며, 현장에서 유물의 세척, 수습, 정리 등은 피스카료바, 토로포바, 가르코빅 등이 맡았다. 토기와 도면의 정리는 겔만, 출토된 명문 자료에 대한 해석과 분석은 이블리예프, 청동유물의 정리는 아스타센코바, 이블리예프 등이 담당했다. 출토된 철기의 분석은 이블리예프가 담당했고 토기와 기와로 만든 장기알에 대한 분석은 레센코가, 석기의 분석은 가르코빅, 겔만, 레센코 등이 각각 맡았다. 또한 패각자료의 분석은 러시아과학원 극동분소의 라코프가, 식물자료에 대해서는 러시아과학원 극동분소 역사고고민속학연구소의 세르구세바가 진행했다.
러시아 측 유물의 촬영은 Л. А. 카라카가 주로 맡았으며 패각의 사진은 이블리예프가 담당했다. 한국 측 유구 및 유물 촬영은 강인욱과 김은국이 진행했다. 러시아 측 유물도면의 컴퓨터 작업은 피스카료바가 개별 유물에 대한 실측도는 리파토바가 유물 실측도에 대한 컴퓨터 작업은 토밀로프가 담당했다.
유물의 분석은 러시아 측에서 1차적인 유물 분석과 자연과학적인 고찰을 하고, 한국 측에서는 그에 대한 좀 더 포괄적인 분석을 했다. 개별 유물에 대한 러시아 측의 분석으로는 토기의 분석(겔만), 토기 명문의 분석(이블리예프), 철기유물분석(이블리예프), 청동기분석(아스타센코바와 이블리예프), 석기(가르코빅, 겔만, 레센코), 그리고 장기알에 대한 분석(레센코) 등이 있다. 자연과학적 분석으로는 동물뼈의 분석(라코프와 샤로바)과 식물유존체의 분석(세르구세바) 등이 수록되었다. 한국 측에서는 2009년도 발굴성과에 따른 서울대박물관의 양시은 학예사의 고구려 토기와 크라스키노 성지 토기의 비교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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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개요 자료번호 : kr.d_0007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