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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머리말

Ⅰ. 머리말
1983년 10월 5~25일간 소비에트과학원 극동지소 극동민족역사 고고학박물관(이하 극동 고고학연구소, 역자주) 중세 고고학분과는 연해주 핫싼주 크라스키노 성지에서 발굴을 수행했다.
조사는 1983년 4월 19일에 볼딘 V. I.에 발급된 발굴 증서 No.23에 의거했다. 발굴은 극동고고학연구소 자체 예산에서 배정된 500루블로 수행되었다.
발굴팀에는 볼딘(발굴 책임자), 호레프, 샤프꾸노프,(이상 신입 연구원), 소비에트과학원 극동지소 소속 운전기사 오세프스끼, 그리고 블라디보스톡 도서관 직원인 라프쉬나가 참여했다.
그래서 성지 가운데 51㎡의 면적이 발굴되었는데, 유물과 현장 도면은 극동 고고연구소의 고문서 보관서로 송치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발굴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은 쭈가노프까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물에 젖어 버렸다. 그 결과 발굴 보고서에는 현장의 광경을 보여 주는 사진이 없다. 이 보고서와 도면은 볼딘이 작성했으며, 사진은 연구소의 사진실에서 상급 조수 까라까가 만들었다.
성지는 크라스키노 마을에서 남서쪽 약 2km 지점으로 쭈가노프까 강변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성지 근처에서 강은 엑스뻬디찌이 만으로 흘러간다(그림 1), 성지 주변은 곳에 따라 약간씩 둔덕이 진 평편한 숲이 펼쳐져 있다. 성지는 사다리꼴 모양으로 길이 340m×390m로 대개 정방형을 이루는데, 자세하게 보면 북서 방향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성지의 둘레 토벽은 곳에 따라 2.5m 정도(내부에서의 높이는 1.5m)에 이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심하게 훼손된 부분이 많다. 성지에는 크게 서쪽, 동쪽, 남쪽 3개의 문이 있으며 성 안쪽으로 방어를 위한 치가 설치되어 있다(그림 2).
대체로 고도가 높은 북서쪽의 두 지점을 택해서 발굴을 했다. 이 발굴은 1981년도 사원지 발굴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그림 2). 발굴 피트는 동서남북 정방향으로 했으며 피트 구획, 지표와 표토의 측량 기준은 1980년도에 설치된 서문 근처의 성벽 위의 B. P.(기준점)을 계속 이용했다(그림 2). 기준점을 0으로 해서 성지 내 모든 발굴의 레벨을 측량했다. 발굴 피트의 번호는 남북쪽으로는 끼릴문자 자호로, 동-서는 숫자로 매겨 나갔다.
발굴 작업은 먼저 경작지화된 표토의 제거로부터 시작되었다. 표토 밑으로는 암회색의 사질 토양이 나왔는데, 생토 출현 이전까지 다른 여러 층이 나타났다.
각 층을 제거한 후 바닥을 정리하고 각 층에서 나타난 유구를 도면으로 남겼다. 또 각 유구는 개별적으로 따로 정리했다. 생토면까지 들어간 다음에는 여러 구덩이의 흔적을 노출시켰고, 각 구덩이 내부층 전토를 정리한 후 생토까지 정리했다.
이후에 1m 간격으로 구획을 해서 유구의 평면 형태와 단면을 도면으로 남겼다. 동시에 생토 바닥면의 레벨을 측량했다. 유물은 각 층위와 격자별로 수거했으며 깊이, 층위 및 출토 지점의 유구상황도 함께 기록했다. 문화층과 유물 및 기와 유물에 대한 설명은 별도의 장에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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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자료번호 : kr.d_0005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