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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유적의 연구사

  • 저필자
    В.И. 볼딘(러시아 극동 역사 고고 민속학 연구소)

Ⅱ. 유적의 연구사

이 유적에 대한 첫 기록을 한 사람은 빨라디 까파로프이다. 그는 러시아 황실지질학협회에 1870년 8월 23일에 보낸 편지에, “史料에 의거할 때 鹽州河(얀치헤)와 끼친(까진)강 사이, 즉 뽀시에뜨에는 고대의 군항이 있을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이후 1871년 4월 그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답사하면서 크라스키노 성지를 답사했지만 이를 제염창고라고 비정했다. Г.И. 안드레예프는 1958년 연해주 남부의 고고학적 유적을 조사하면서 엑스뻬디찌야 만 근처에서 이 성지를 발견했다. 1960년과 1963년에는 Э.В. 샤프꾸노프가 이 유적을 조사했다. 그는 이 유적을 측량하고 수집한 유물에 근거해서 8~10세기로 편년했다. 샤프꾸노프는 이 성터를 발해에서 일본으로 가는 기본적인 통로가 되었던 鹽州에 비정했다.
이 유적에 대한 발굴은 1980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1980, 1981, 1983, 1990, 1994~2005년에 В.И. 볼딘에 의해 이 유적은 조사되었다. 발굴은 주로 북서쪽에 집중되었으며, 1998년에는 동편부에도 조사를 했다. 유적의 북서부에 있는 불교사원터를 조사해서 금당지, 정자, 10여개의 와요지, 우물, 사원지를 다른 생활구역과 분리하는 돌담의 기초, 그리고 사원 내의 여러 건축물의 하부 구조와 기반의 잔해를 발견하였다.
한편 성벽의 조사도 이루어졌다. 성지의 동편에서는 동문지와 성벽을 발굴했다. 연구결과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발해 중기와 말기로 편년되지만, 대부분의 발굴유물들은 발해 말기에 속하는 것이다. 1997~1999년에는 토대위에 세워진 절터 건물과 그 주위를 둘러싼 돌담 그리고 성벽의 아래층 등 발해 중기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러시아와 해외에서는 이 성지와 관련된 60여편 이상의 연구 결과물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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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의 연구사 자료번호 : kr.d_0004_002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