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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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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4) 도자기

 

三彩란 자기의 표면에 鉛釉를 시유하여 청색·녹색·황색의 3가지 색깔을 띠는 자기이다. 鉛釉란 잿물이나 硅酸에 鉛釉을 섞고 發色劑로는 구리 또는 철분을 섞는 것을 말하며, 酸化焰에서 구우면 청색·녹색이 되고, 산소가 부족하거나 철분이 많으면 갈색이 되며, 還元焰이라도 底火度에서 구우면 갈색이 된다.
중국에서는 前漢 말기부터는 유약을 바른 도용이 출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隋唐時代가 되면 정교한 白衣加採와 三彩 기법에 의한 도용이 출현하게 된다. 수대의 도용은 白土로 成形燒成하여 가채하거나 무색의 투명유를 쓴 것으로 長盛墓(594년)의 출토 유물로 대표된다. 또, 당대의 삼채도용은 側天武后때 永泰公主墓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왔다. 철, 아연, 동, 코발트, 망간 등을 배합한 유약을 사용하여 소성하면 黃·錄·藍·百색을 내게 되는데 이들은 長安, 洛陽을 중심으로 성행하다가 당대 이후에는 그 모습을 감추고 있어 연대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물로 인정되며, 산시성의 장회태자묘, 의덕태자묘, 이정묘 등에서 출토 예가 알려져 있다. [주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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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삼채」, 『韓國考古學辭典』(학연문화사), 603쪽.


이러한 唐三彩는 발해뿐만 아니라 신라(新羅三彩), 일본(奈良三彩)에도 제작 기술이 전해져 동아시아 각 국에서 제작되던 도자기였다고 한다. [주076]
번역주 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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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진, 1993, 「1988년도에 발굴한 북대발해무덤 및 3채그릇」, 『발해사연구』2, 9쪽.

唐代 동아시아에 있어서 도자기 교역의 일반적인 상황에서 발해가 처한 위치를 확인해 놓고 싶다. 중국 도자기가 국외로 교역되는 것은, 일찍이 8세기 후반부터이다. 그러나 일정량이 계속적으로 교역되는 것은 9세기 후반부터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중국 도자기는 국외로 반출되었는데, 이들은 양적으로 적고, 계속적으로 교역이 행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당량의 도자기가 교역되기 시작한 것은, 9세기 전반부터라는 것은 아시아 각지의 유적 출토 예에서 실증할 수 있다.
도자기 교역이 지속적이라는 것은, 주문과 실물이 동반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적재량·수입항과 함께 수출항에서도 또한 이런 단위의 도자기 출토가 추정된다. 예컨대 절강성 寧波(明州)의 唐·宋期 市舶使 업무 소재지 부근으로 추정되는 東門口埠頭 유적에서는 대량의 越州窯靑瓷가 검출되었다. 또한 和義路 유지에서도 800점 정도의 월주요청자가 검출되었다.
발해국의 존속 기간 동안 무역 도자기로서는 월주요청자가 가장 많은데, 청자로는 湖南省 長沙銅官窯·廣東省窯, 백자로는 河北省 定窯와 邢窯 등이 있다. 월주요청자는 절강성 북부의 慈溪市 上林湖窯가 주산지이고, 항주만에 연하여 寧波부근의 鄞縣 등에 가마터가 확인되는데, 그 수출항은 明州이다. 도자기처럼 중량이 있고 게다가 대량이 요구되는 唐物에서는, 生産窯와 수출 항구와의 사이가 가까운 것이 요구되었다. [주077]
번역주 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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龜井明德, 1999, 「渤海三彩陶試探」 『アジア遊學』, 83~84쪽.


발해의 경우는 寧波나 博多와 같은 단위의 도자기가 나오는 유적은 아직 보고된 적이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발해 삼채의 출토 상황으로 보아 필자는 러시아 연해주의 크라스키노성을 주목하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크라스키노는 발해의 대일본 교통의 중심지였다. 발해의 기간도로인 5道 가운데 하나인 일본도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였다. 크라스키노성은 인접한 포시에트만과 함께 寧波나 博多와 같은 天惠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발해 삼채가 발견된 러시아 연해주 내의 7개 발해 유적 가운데 거의 절반에 가까운 양이 크라스키노성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크라스키노성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발해는 삼채를 어떻게 생산했을까? 『册府元龜』卷976, 褒異3, 武宗 會昌 6년(846) 정월조에,
 
“南詔·契丹·室韋·渤海 등의 사절단이 나란히 宣政殿에서 조공하였다. (중략) 錦·綵·器皿을 차등 있게 주었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발해는 당에 조공 혹은 교역으로 입수한 唐三彩 제품을 견본으로, 황색이나 녹색 유약 등 다양한 도기를 생산하지는 않았을까 한다. 오늘날까지 三彩를 만든 가마터가 발견된 보고가 없지만, 三彩窯를 중심으로 한 가마터는 상경·중경 등 왕도 주변의 몇 군데 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渤海三彩는 왕도를 시작으로 지방 행정 기관이나 각지 사원에 공급되고, 나아가 발해 각지에 있던 靺鞨諸部의 족장이나 일본으로의 교역품으로 출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078]
번역주 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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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寄雅志, 2003, 「渤海の交易-朝貢, 互市, そして三彩」, 『曰本と渤海の古代史』(山川出版社), 17~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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