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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2) 모피

 

모피에 관한 가장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일본 사서이다. 발해 사절단이 일본에 가져간 물품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은 담비 가죽을 비롯한 각종 모피였다. 그것도 당시 일본에서는 값이 매우 비싼 담비, 호랑이, 말곰[羆] 따위의 모피를 대량으로 가져와 일본 지배층의 눈을 놀라게 하였다.
발해 사절단은 모두 34차례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방문할 때마다 대량의 모피를 일본에 가지고 갔다. 이렇게 발해 사절이 아무리 많은 모피를 가져왔다고 해도 그것은 당시의 일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사절단이 배에 싣고 오는 모피의 양에는 당연히 한도가 있어 宮廷貴族社會의 수요를 다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손에 넣기 어려운 모피를 구해 입는다는 것은 일종의 신분 상징이 되어 귀족들이 갈망하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모피에 대한 패션 경쟁을 말해 주는 에피소드는 919년에 발해 사절단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를 들 수 있다. 이듬해 5월 12일에 열린 豊樂殿의 연회석에 사절단의 대표인 大使 裵璆는 가죽 옷을 입고 참석했는데, 일본 왕자가 검은 담비 가죽 옷 8벌을 겹쳐 입고 참석하여 배구를 비롯한 발해 사절단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 [주069]
번역주 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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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蕃客參入時 重明親王乘鴨毛車 着黑貂·八重 見物 此間 蕃客 繼以件裘一領持來爲重物 見八領 大慙云云(『江家次第』卷5, 春日察使途中次第).

가 있다.
이 일화가 일어난 5월 12일은 양력 6월 7일에 해당되므로 무더운 계절이었는데, 더위를 참고 민족 의상을 입은 배구를 놀라게 할만큼 일본 지배층 사이에는 우스울 정도의 모피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려 주는 이야기이다. 아울러 발해 측과 일본 측 양자가 공통적으로 ‘검은 담비 가죽 옷’이 고가품이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주070]
번역주 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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菊地眞, 2004, 「古典文學の中の渤海國交易品- ‘ふゐきの皮衣’ 續編」, 『アジア遊學』59, 123쪽.


그러므로 일본 조정에서도 과도한 모피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모피 금지령’을 내리고, 다음과 같이 모피 사용 기준도 정하여 규제하고 있었다.
 
5위 이상은 호랑이 가죽을 사용할 것을 허락한다. 단 표범 가죽은 참의(參議) 이상과 참의가 아닌 3위에 허용한다. 이밖에는 허용할 수 없다.
담비 가죽 옷은 참의 이상에게 착용을 허락한다.
말곰 가죽으로 만든 말다래(장니 : 障泥)는 5위 이상 착용을 허용한다. [주071]
번역주 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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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喜式』卷41, 彈正台.


 
요컨대 5급 혹은 3급 이상의 고위 관리가 아니면 입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령의 존재는 검은 담비 가죽 옷이 平安 귀족들에게 애용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발해 사절단이 일본의 수도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는 금지된 것이 풀리고, 자유롭게 모피를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발해의 객(客)을 대접하기 위해 제사(諸司), 관원, 잡인(雜人) 등 객인(客人)이 서울에 머문 동안 사용이 금지된 물품을 몸에 지니는 것을 허용한다.. [주072]
번역주 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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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三代實錄』卷43, 元慶 7년 4월 21일 丁巳.


 
이것은 모피를 운반한 먼 곳에서 온 손님에 대한 일본 측의 배려라고 할 만한 조치였는데, 모피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앞의 에피소드처럼 패션 경쟁을 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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