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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

 

우리나라 고대 국가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말을 수출한 나라는 발해였다. 말은 발해에서 사육된 가축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전국적으로 사육되었고, 그 중에서도 솔빈부의 말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었다. [주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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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唐書』卷219, 列傳144, 北狄 渤海.


唐나라는 8세기 중엽 安史의 亂을 겪으면서 지방의 통제가 해이해졌고, 그 결과 각지에서 藩鎭 세력이 크게 대두되었다. 그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고구려계 유민 출신인 李正己·李汭·李師古·李師道로 이어지는 이 씨 일가의 세력이다. 그들은 신라와 해상 교통이 편리한 산동반도 전역을 장악하여, 3대에 걸쳐 55년간(765~819)이나 치외법권적인 번진 세력으로 당나라 안의 小王國으로 군림하였다. [주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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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文經, 1975, 「唐代 藩鎭의 한 研究-高句麗遺民 李正己一家를 中心으로-」, 『省谷論叢』6; 鄭炳俊, 2002a,「安史의 亂과 李正己」, 『東國史學』37; 鄭炳俊, 2002b, 「平盧節度使 李正己에 대해-代宗時期를 중심으로-」, 『震檀學報』94; 池培善, 2003, 「고구려인 이정기의 아들 이납의 발자취」, 『東方學志』119.


『舊唐書』에 발해의 명마가 계속하여 이정기의 평로치청번진에 들어왔다고 하는 것 [주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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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唐書』卷124, 列傳 74, 李正己.

을 통해 볼 때, 발해와의 관계가 밀접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말이 당나라 조정과 대립 관계에 있던 이정기 번진에 수입 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렇다면 치청번진과 발해는 어느 정도의 말을 해마다 거래했을까?
 
雍熙 ·端拱 연간에 沿邊에서 말을 구입하였는데 …… 京의 동쪽에서는 登州가 중심지였다. [주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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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資治通鑑長編』卷104, 天聖 4년 9월조.


예전에 여진이 말을 매매하는 양이 해마다 萬匹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는데, 오늘날은 거란에 의해 (그 유입이) 끊겼다. [주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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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資治通鑑長編』卷51, 咸平 5년 3월 癸亥.

 
먼저 앞의 사료는 송(宋)나라 초기인 옹희 ~ 단공 연간(948 ~ 989년)에 여진 말을 구입하는 중심지가 등주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뒤의 사료에서는 예전, 즉 거란이 여진의 入宋을 차단하기 이전에, 여진에서 들어오는 말의 숫자가 해마다 만 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발해 때의 기록은 아니지만 발해 멸망 후 발해 유민이 세운 東丹國이나 압록강 하구에 있던 定安國을 중심으로 중국과 활발한 해상 무역을 했던 여진인이나 발해 유민의 활약을 고려할 때, 충분히 비교해 볼 여지가 많다고 하겠다. 아울러 여진이 있던 지역은 바로 부여, 고구려, 발해의 옛 영역으로 명마의 산지였다. 즉 고구려의 果下馬나 발해의 率賓馬가 명성이 있었다.
아울러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고, 고구려 유민들이 다수 존재하던 발해의 입장에서도 고구려 유민 출신인 이정기와 평로치청번진에 대하여 호의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기 일가의 치청번진이 산동반도에 있던 765~819년의 시기에, 발해는 28차례나 되는 많은 사절을 당나라에 파견했다. 따라서 발해는 이정기의 평로치청번진과 교류하면서 동시에 이정기번진과 대립 관계에 있던 당나라 조정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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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운, 2004, 「발해의 왕권과 대중국무역」 『白山學報』68, 248~249쪽.


이러한 말의 수출은 발해 멸망 후에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발해 유민의 항해술·조선술을 활용하여, 五代를 협공하기 위해 동맹을 맺고 있던 南唐에 바다를 통하여 대량의 말을 수출하고, 차와 비단 등을 수입하고 있었다. [주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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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野開三郎, 1990, 「五代時代における契丹と支那との海上貿易-東丹國內における渤海遺民の海上活動(上·中·下)」, 『日野開三郎 東洋史學論集』16-東北アジア民族史(下)(三一書房); 蓑島榮紀, 1998, 「渤海滅亡の東北アジア諸民族と交流·交易の諸相」, 『東アジアの古代文化』96; 蓑島榮紀, 1999, 「渤海滅亡後の北東アジアの交流·交易」, 『アジア遊學』6.


‘솔빈부의 말’로 대표되는 발해산 말은 바다 건너 일본에도 수출된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 홋카이도 오쿠시리시마(奧尻島)의 아오나에(靑苗) 유적이 주목된다. [주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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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島芳孝, 2002, 「古代日本海世界北部の交流」, 『北の環日本海世界』(山川出版社).

아오나에 유적에서 출토된 말과 사람을 선각한 土器碗이 바로 그것이다. 즉 『新唐書』에는 러시아 연해주 지방 남부 블라디보스토크市에서 우스리스크市 주변으로 추정되는 발해 率濱府의 산물로 말이 언급되어 있다. 발해로부터 당에 말이 조공 되었다면, 이 말은 솔빈부에서 운송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와 같이 홋카이도의 대안인 북동아시아에 유수의 良馬산지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 북동북 지방에서 관동산과 대륙산의 말이 함께 사육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된다. 靑苗遺跡에서 출토된 말과 인물이 새겨진 토기는, 10세기 대의 오쿠시리시마가 연해 지방에서 도래한 말의 경유지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발해산 말이 홋카이도를 거쳐 일본의 혼슈 지역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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