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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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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 저필자임상선(고구려연구재단)
 

6. 맺음말

 

이상에서 지금까지의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크라스키노성에 나타난 고구려의 문화 요소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크라스키노 성벽은 총 길이가 1.2km 정도에 이르고, 세 곳에 성문(남문, 동문, 서문)이 있다. 크라스키노성은 자연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며 적어도 2단계에 걸쳐 만들어졌다. 발해 도성에는 옹성, 치, 각루 따위의 시설이 없지만, 크라스키노성에서는 이러한 시설이 발견되었다. 이곳에는 현재까지 치(馬面이라고도 함)가 동문 남쪽에서 한 곳만이 발견되었는데, 사용된 돌의 재질은 본체 성벽과 마찬가지로 모두 赤色의 珪藻質 泥岩이다.
크라스키노성에서 치가 새롭게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남문 동쪽, 그리고 서문 남쪽에도 성문을 보호하는 치가 있었을 것이고, 남벽과 서벽이 만나는 남서벽과 동남벽 모서리에는 일종의 ‘角樓’가 존재할 것으로 생각된다. 서문과 북문을 잇는 선 북쪽은 官廳이나 기타 중요 시설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고, 그 북쪽 성벽에도 현재 성문이나 기타 시설이 없는 것으로 관측되지만, 향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시설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크라스키노성의 성벽과 그 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발해 5경 중 중경과 동경 지역은 이전의 고구려의 직접적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와 관련된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가령, 2004년도 크라스키노성 사원지 발굴에서 출토된 화살촉과 토기, 조임쇠들, 수레바퀴 비녀못, 몇 가지 기와, 못과 꺽쇠 등은 고구려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것과 매우 비슷하였다.
크라스키노 성터의 최상층의 연대는 성 내 우물에서 발견된 거란계 병을 근거로 10세기 전반 발해 말, 東丹國 시기로 편년하고 있으며, 寺院址와 우물은 그 형태나 규모로 미루어 고구려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발해 초기로 소급될 수 있다. 2004년과 2005년 고구려연구재단과 러시아 측이 공동으로 발굴한 발굴 구역 31과 발굴 구역 34의 온돌은 발해와 고구려와의 문화적 연관성을 강하게 증명하는 것이며, 축조 시기는 대략 발해 후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한 목탄에 대한 탄소연대측정도 2회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크라스키노성의 축조 시기가 8세기로부터 9세기에 걸쳐 사용되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크라스키노성은 성벽을 쌓을 때 관련 분야 전문가 집단의 주도 하에 대략 44m를 단위로 일정 집단이 담당하는 방식이 채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축조 방법은 고구려나 신라의 경우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크라스키노성 둘레가 대략 1.2km로 알려져 있으므로, 성벽 축조에 대략 27개 시공 단위가 있었고, 성 전체를 축조하는 데는 연인원 186,000명이 대략 1개월 이내의 기간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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