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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주거지 No. 2

2) 주거지 No. 2

이 거주지의 온돌 시설에서 유래된 돌들은 본 발굴 설정 구역 북서부에서 잔디층과 개간지층을 제거 하자마자 확인되었다(그림 49). 그러나 거주지 2의 벽들과 구들의 정확한 윤곽은 제2분층을 제거한 후속 발굴 과정에서 확인되었으며 이들 윤곽은 검은 갈색 사질토층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그림 50). 이 주거지의 잔해들은 언덕의 경사면에 위치해 있는데 이러한 여건이 아마도 유구의 사질토양과 연계되어 주거지 2의 온돌 시설은 식물 생장이 가능한 부식토층이 형성되도록 水蝕을 조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들의 설치 시 땅속에 파묻혀진 돌들의 상당 부분이 두 열의 온돌 고래 잔해들을 돋보이게 하면서 잘 보존되어 있다(그림 52). 거주지 1과 같은 방식으로 거주지 2가 건축되었으리라는 추정에 근거할 경우 발굴 구역의 서부 측면을 넘어가는 아궁이(소구역 A/3-4)를 포함하여 무엇보다 먼저 온돌의 첫 번째 구간이 발굴될 것으로 사료되었다(그림 53-54).
거주지 2의 온돌은 역시 2단으로 되어 있었고 러시아어 자음 П형이었다. 보존된 구간의 구들 토대 폭은 160cm였다(그림 51-52). 온돌의 돌들이 정리된 후 짙은 갈색의 알이 작은 사질토층 속에 그을린 흔적이 역력한 고래의 잔해가 명확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작은 석탄들이 뒤섞인 채 탄질의 짙은 갈색 사질토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소구역 A-B/1-3, 그림 53-54). 보존된 구간의 고래의 폭은 28 ~ 40cm이다(그림 54). 바로 이 수준에서 소구역 А-Б/3-4에서 농밀한 탄질의 사질토 형태로 아궁이 흔적(크기 110×140cm)이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그림 54).
거주지의 내부 구성 토에서는 2기의 토기로 제작된 놀이용 말들이 수집되었는데 직경은 2.2cm이고 두께는 각각 0.9cm와 1cm이다. 이들은 소구역 З/7에서 수집되었다. 조약돌로 제작된 둥근 연마기가 소구역 A/2에서 수집되었다. 크기는 1.9×2.4cm이다. 3기의 철제 유물편들이 몹시 안 좋은 상태로 수집되었는데 소구역 Б/1 에서 수집된 칼의 편인 듯하다. 솥의 벽이 아닌가 의심되는 선철 유물편이 소구역 B/1에서 수집되었다.
이후 거주지 잔해들에 대한 정리와 제5분층 제거 작업이 진행되었다. 제5분층에서는 철제 유물들이 수집되었다. 낚시 바늘이 소구역 E/1에서 수집되었다(그림 155). 길이는 10.5cm이고 단면은 둥근 형태였다. 삽목부가 잘린 화살촉이 소구역 З/2 에서 수집되었는데 길이는 7cm, 화살촉 선단부 폭은 1.8cm, 촉의 선단촉의 길이는 6cm, 선단면은 0.6×0.7cm이다. 화살촉 선단부의 단면은 마름모꼴이다(그림 154, 2). 소구역 И/3에서도 삽목부가 잘린 화살촉이 수집되었는데 길이는 3.9cm, 선단부 폭은 1.5cm이다(그림 154, 1). 화살촉 선단은 마름모꼴이었고 단면도 마름모꼴이었다. 선철제 수레바퀴 축통편이 소구역 Г/13에서 수집되었다. 폭은 4сm, 두께는 1cm이다. 조약돌 연마기가 소구역 Ж/10에서 수집되었다. 직경은 3.6cm, 두께는 1.5cm이다. 기와로 제작된 놀이용 말이 소구역 Ж/4에서 수집되었다. 직경은 4cm, 두께는 0.8cm이다. 토기로 제작된 놀이용 말은 소구역 И/6에서 수집되었다. 직경은 2.5cm, 두께는 1cm이다.
주거지 1 바로 아래 소구역 Г/10에서 편암 연마기가 출토되었다(그림 99, 156, 2). 길이는 14.4cm, 폭은 4.5cm이다. 소구역 З/5 선철 수레바퀴 축통편이 수집되었다. 폭이 5.5cm, 두께가 1.3cm이다. 기와로 제작된 놀이용 말이 소구역 Ж/6에서 수집되었다. 직경이 2.5cm, 두께가 1.3cm이다.
제6분층 발굴 작업 중에 소구역 А/7, А/8, Б/9, Г/4, З/3에서 심하게 부식되어 버린 6기의 철제 유물편들이 수집되었다. 소구역 Г/10 와Ж/13에서는 기와로 제작된 놀이용 말 두 기가 수집되었다. 한 개의 지름은 2.3cm, 다른 한 개의 지름은 2cm이다. 두께는 각기 1cm와 0.9cm이다. 토제 어망추가 소구역 В-Г/5 의 경계부 구덩이에서 수집되었다. 길이는 3.5cm이다(그림 157, 1). 소구역 K/11에서 토제 고리편이 수집되었다. 이 고리는 단면이 둥글고 크기는 6.5cm이다(그림 157, 2). 소구역 К/10에서는 유사한 철제솥을 모방해 제작된 토제솥 상단부편이 수집되었다. 크기 2.1×4.2сm, 두께 0.9cm인 조약돌 연마기가 소구역 Ж/6에서 수집되었다.
지표층 기준으로 볼 때 주거지 2의 잔해가 주거지 1의 잔해보다 낮은 위치에 놓여 있고 주거지 2가 경사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각기 다른 시대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두 주거지가 서로 인접해 각기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동시대 존재를 추정케 하는 동시에 성터인 이 지역에 어떤 특별한 거리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사료하게 한다.
발굴 구역 34의 연구 결과 크라스키노 성터에서 처음으로 두 개의 거주지가 발굴 확인되었다 : 하나는 완전히, 또 다른 하나는 부분적으로. 이들 두 유구는 이 지역 최고 상층 건축지 지평에 속하며 발해 시대 문화의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온돌 난방 설비 체계의 특성 또한 그러하다. 완전히 발굴된 거주지 1은 그 동안 발굴된 발해 시기 주거지들과 비교할 때 그 크기가 대단히 크다. 이외에도 거주지 입구 전방에서 발굴 수집된 대형 항아리 역시 매우 가치 있는 특성이다. 이와 유사한 항아리들은 2003 ~ 2004년 동안 진행된 30과 31의 표층에서도 수집되었으며 게다가 이들 역시 석재 건물지 잔해 옆에 위치해 있었기에 석재 건물지 잔해 역시 주거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정황들은 이 구역에 거주지를 건설했을 시기에 성터의 이 구역 사찰이 이미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추정케 하는데 아마도 이는 발해의 멸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로써 이제까지 지엽적인 유적들과 건축 양식면에 볼 수 있는 부분적인 차이점 등에 의거하여 제기 되었던 크라스키노 성터의 최상층이 발해 이후의 시기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성터 내부의 구체적인 건축물 조사를 통해 확연해졌다. 2005년도 발굴 구역 34는 한편으로 이 곳 유적들이 실제로 기능하였던 시간에 대한 개념을 확장해 주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란의 정복 후에도 이 지역 발해인들이 고유의 삶을 지속했었다는 귀중한 증거를 확인케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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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No. 2 자료번호 : kr.d_0003_0020_0030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