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여닫기 2005년도 크라스키노 성터 발굴 국문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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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구역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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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발굴 구역 34
본 발굴 구역은 크라스키노 성터의 제일 고지대에, 발굴 구역 32의 남쪽 측면과 연결시켜 절터 정문에서 남쪽 15m 지점에 설정하였다(그림 3). 새로운 발굴 구역 34의 일일지표 표면은 평평하였으며 북서쪽에 약간의 경사가 있었다. 표고편차는 69cm였다(그림 48).
최초 설정된 발굴 구역의 면적은 55㎡였다(소구역 A-E/1-11). 발굴 현장 구역의 사진 촬영과 일일지표의 수준 측정, 잔디층과 개간지층 제거 후 건물 구조의 일부가 확인되었는데 큰 돌들과 중간치 돌들에 의해 외곽 윤곽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렇게 우선 확인된 건물 구조의 일부분이 이미 어떤 건물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하였다. 해당 건물 유적을 완전히 발굴하기 위해서는 발굴 구역의 동측과 서측으로 발굴 설정 영역을 확장해야만 했다. 그 결과 총 발굴 면적이 140㎡에 이르게 되었다(소구역 Б-Л/1-13)(그림 48). 소구역 Д 와 E 사이에는 50cm 폭으로 이동과 작업용 도랑을 남겨두었다. 확장된 발굴 구역에 대한 측량 작업과 잔디층 및 개간지층이 제거되었다(그림 49). 전체적으로 발굴 구역의 각 소구역 전반에 걸친 잔디층과 개간지층의 두께는 20 ~ 40cm였다. 발굴 구역 서쪽 부분에는 개간의 흔적이 훨씬 깊게 남아 있었다(그림 49, 55-56).
잔디층과 개간지층에서는 많은 수의 토기편이 수집되었다. 그 외의 개별 수집된 유물들을 보면 소구역 Г/6에서 토기로 제작된 놀이용 말 2기가 수집되었다. 그 중 하나의 지름이 4.4cm이고 다른 하나의 지름은 5.3cm였다. 두께는 각기 0.5cm, 0.8cm이었다. 소구역 E/6 에서는 점토 장식편과 길이 2.8cm의 철제못이 수집되었다. 소구역 Б/12 에서는 편암으로 제작된 연마기가 수집되었다(그림 136).
제2분층 발굴 작업 중에 주거지 영역 밖에서 상당한 수의 유물들이 수집되었다. 가장 많이 수집된 유물들은 토기, 기와, 사암으로 제작된 놀이용 말(12개)이었다. 이들은 소구역 A/13, В/13, Г/10, Д/9, Д/13, Е/4, Ж/2, И/6, K/12에서 수집되었다. 토기를 이용해 제작된 놀이용 말들의 지름은 2.2 ~ 3.1cm로 다양했으며 두께는 0.6 ~ 1.4cm 사이였다. 기와로 제작된 놀이용 말들의 직경은 2 ~ 3.2cm 사이, 두께는 1.2 ~ 1.7cm 사이였다. 석제 놀이용 말들의 지름은 2.2cm, 두께는 0.9 ~ 1.7cm였다. 소구역 В/12에서 토기 찻잔이 수집되었는데 복원이 완벽하게 되었다(그림 73, 137). 소구역 Г/13에서는 토제 고리가 수집되었다. 철제 유물들로는 화살촉, 갑옷 금속판, 칼 조각과 못편들이 수집되었다. 화살촉은 소구역 К/2에서 출토되었다. 길이는 4.4cm, 화살촉부의 단면은 마름모꼴이었다(그림 138). 갑옷 금속판은 보존 상태가 엉망인 채로 소구역 И/6에서 수집되었다. 금속판의 길이는 4cm, 폭은 1.9сш, 두께는 0.15cm였다. 칼은 끝부분이 잘려져 나간 채로 소구역 Г/9에서 수집되었다. 칼의 길이는 8.3cm, 폭은 1.7cm, 두께는 0.5cm, 자루 접목부의 길이는 3cm였다(그림 139). 철제 못의 편들은 소구역 Б/13에서 수집되었다. 길이는 3.7cm이다. 보존 상태가 워낙 안 좋아 나머지 단면의 크기는 알 수 없었다. 장방형 청동제 허리띠 장식판이 소구역 K/12에서 수집되었다. 외부 표면에 꽃이 각인되어 있다(그림 135). 장식판의 크기는 1.8×2cm였다. 특히 역암으로 제작된 연마기가 눈길을 끈다. 그 중 한 개가 소구역 Г/8에서 수집되었다. 크기는 6.2×8.5cm, 두께는 2.2cm이다(그림 140). 또 다른 한 개는 소구역 Ж/10에서 수집되었다. 이것은 다공질의 조약돌(또는 현무암일 수도 있다)로 제작되었다. 크기는 8.5×11.2cm이고 두께는 2.5cm이다(그림 141).
제3분층 발굴 작업 중에 토기와 기와로 제작된 놀이용 말 12기가 수집되었다. 이들은 소구역 А/7, Б/7, В/7, Г/5, Г/10, Г/13 и Д/10에서 수집되었다. 토기로 제작된 놀이용 말들의 경우 직경이 2.3 ~ 2.7cm, 두께는 0.8 ~ 1.5cm였다. 기와로 제작된 놀이용 말들의 경우 직경이 2 ~ 2.5cm, 두께가 1 ~ 1.7cm였다. 소구역 Г/10 에서 수집된 기와로 제작된 놀이용 말의 경우 크기가 컸다. 직경이 5.4cm, 두께가 1.5cm였다. 소구역 K/9에서는 아치형 장식이 새겨 넣어진 토기편들이 수집되었다(그림 142). 인장이 찍혀진 토기의 바닥편들이 소구역 К/8에서 수집되었다(그림 143). 소구역 Г/5에서 직경 5cm, 두께가 1.9cm인 조약돌 연마기가 수집되었다(그림 145). 수집된 철제 유물들의 경우 심하게 부식이 되어 보존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다. 이들은 소구역 Б/4, З/12, И/13, К/13에서 수집되었다. 소구역 И12에서 출토된 칼은 보존 상태가 엉망임에도 불구하고 길이는 7.9cm, 폭이 1.9cm이다(그림 144). 소구역 И/1ЁЗ 철제축이 수집되었다(그림 144).
제4분층 발굴 작업 중에는 3기의 놀이용 말이 수집되었다. 그 중 한 개는 직경이 5cm, 두께가 1.4cm이다. 다른 두 개는 평균적인 크기를 가지고 있다. 직경이 2.2cm와 2.5cm, 두께가 1.1cm와 1.4cm이다. 이들은 소구역 B/6과 И/13에서 수집되었다. 소구역 Б/2에서는 엉성하게 제작된 방추차 하나와 벽이 아주 두껍게 제작된 토기의 벽면편들이 수집되었다. 방추체의 직경은 5.8cm, 두께는 1cm, 구멍의 직경은 0.7cm이다. 철제 유물로는 화살촉들과 미확인 유물편들이 수집되었다. 소구역 Г/5 에서 출토된 화살촉은 길이 4.5cm, 화살 선단 침의 폭이 1.4cm, 줄간 단면은 0.5×0.7cm이다. 화살 선단 침의 단면도는 마름모꼴이었다(그림 146). 이 소구역에서 수집된 다른 화살촉은 길이가 5cm, 화살 선단 침의 폭이 1cm이었다. 화살촉의 침단과 줄간 부분은 파손되었다. 화살 선단 침의 단면은 마름모꼴이었다. 의외의 수집 유물이 바로 흑요석 철침이다(그림 147). 이는 당시 이 성터의 주민이 어디선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리스트여닫기 발해 크라스키노성에 나타난 고구려 문화 요소 국문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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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과 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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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벽과 성문
크라스키노 성벽은 표면이 잔디와 잡풀로 덮여 있으며 폭은 상단이 1m 정도, 하단이 10~ 12m 정도이다. 성벽의 높이는 성 내부에서 측정할 경우 1 ~ 1.5m, 성 외부에서 측정할 경우 2.5m까지 이르고 있다. 성벽의 총 길이는 1.2km 정도에 이른다. 성벽에는 3곳의 성문들(남문, 동문, 서문)이 있고, 남문에서 북쪽을 향하여 폭이 30m에 달하는 대로가 있는데, 이 대로를 경계로 크라스키노 성터는 동부와 서부의 두 지역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V.I. Boldin, 2005, 「크라스키노 성터 발굴 보고서」, 앞의 책,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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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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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출토 유물
발해 5경 중 중경과 동경 지역은 이전의 고구려의 직접적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와 관련된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가령, 2004년도 크라스키노성 사원지 발굴에서 출토된 유물은 고구려 유적지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비슷하였다. 화살촉과 토기(바닥에 큰 구멍들이 있는 토기들, 리본형 손잡이가 달린 토기들, 손잡이가 달린 뚜껑 등), 조임쇠들, 수레 바퀴 비녀못, 몇 가지 기와, 못과 꺽쇠 등이 그러한 예이다.
V.I. Boldin, 2005, 「크라스키노 성터 발굴 보고서」, 앞의 책, 46~47쪽.
출토 유물에서 고구려적 요소를 엿볼 수 있는 것과 성의 축조 시기와 관련된 것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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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조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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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축조 시기
크라스키노성의 축조와 사용 시기에 대해서는 1960년대 E.V. 샤프쿠노프가 8~9세기로 추정한 것이 처음이다. 2001년 동문과 성벽을 발굴한 보고서에서는 크라스키노성의 시기별 변천에 대하여 흥미 있는 추론을 제기하였다. 즉, 크라스키노성의 축조 시기는 성벽 본체 → 옹성 → 지반 침하, 홍수 → 치 → 홍수 → 폐기(12~13세기)의 순으로 여러 번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田村晃一 外, 2002, 「2001年度ロシア·クラスキノ土城發掘調査槪要報告」, 앞의 책, 20~21쪽.
지금까지의 발굴에 의해 이 성의 문화층은 적어도 150년에 걸쳐 형성되고, 2~3면의 문화층이 1.8 ~ 2.3m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대량의 지하수와 보존해야 할 건물 유적이 위에 있기 때문에 최하층까지 문화층을 조사하지 못하고, 제1면과 제2면을 부분적으로 조사한 것에 불과하였다.
V.I. Voldin·Gelman·Ivliev·Nikitin, 淸水信行 譯, 2003, 「クラスキノ土城 4年間の調査集成」, 앞의 책, 49~51쪽.
결국 가장 밑바닥에 있는 제3면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크라스키노성의 최초 축조 시기, 그리고 그 담당 주체를 해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크라스키노성의 축조 시기를 알려 주는 지표로는 유물, 성벽 구조, 탄소연대 측정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