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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앞 기단 (발굴 구역 5)

 
 

Ⅳ. 동문 앞 기단 (발굴 구역 5)

 

발굴 구역 5는 동문 앞 기단에서 실시되었다. 발굴과 동시에 기단 자체에 대한 상세한 기계적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조사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 기단은 당시 성터 건축물들과 동문의 건축시점과 같은 시기에 건설되었는가.
· 이 기단 위에서 드러난 커다란 석재 기반에 주랑 형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의 흔적은 실제로 무엇인가.
· 기단에 구축된 건축물의 고고학적 문화시기는 어떤 시대이며 이 건축물의 건축 시대는 언제인가.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먼저 해야 할 작업은 동문을 포함하여 전 기단에 대한 기계적 조사였다. 매 1미터 거리마다 구분된 지점들이 조사되었다(그림 3). 대문의 북쪽 일부분은 각각의 울타리로 칸막이가 서있고 건초더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올해 완전한 조사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동문의 남쪽 부분에 대한 기계적 조사는 동문에 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의 망루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성터를 남쪽과 서쪽으로부터 돌아 흘렀던 하상(河床)이 기단주변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적중되었다. 그러나 기단이 동문의 북쪽부분과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로 남아 있었다.
북측으로부터 성터에 이르는 통로를 완전히 제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기에 새로운 발굴 구역 5는 전체 기단의 선단부를 포착하면서 발굴지역과 성벽 사이의 통로를 남겨두는 식으로 설정되었다(그림 3, 134, 135). 성벽으로부터 기단의 선단부분까지의 구역은 8m 정도의 길이였다. 이 구역은 충분히 편평해서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기단의 북쪽으로부터 기단을 둘러 지날 수 있는 통행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향후 어떤 형식으로 기단이 동문과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고자 했기에 기단 위에 발굴 소지구에 연번호를 부여하면서 이 8m 구역이 포함되었었다. 그러나 2004년도 발굴 구역 5는 당분간이지만 9m 지점부터 발굴지점이 설정되었다. 발굴지 구역 구분은 동서남북 네방위 기준에 근거하였다(그림 3, 134, 135). 이 외에도 기단상의 향후 발굴 지구가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발굴 지구들에 통상적으로 부과되던 연번호 배열-한편으로는 문자배열을 사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숫자배열을 시용하던 것-을 쓰지 않기로 하였다. 이 대신에 발굴지 방향지향 네방위 지점의 러시아어 이니셜을 먼저 부과하고 그 뒤에 연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예를 들면 기호 C3-B4는 북쪽으로부터 3번째 소구역과 동쪽으로 부터 4번째 소구역을 의미한다(이 과정에 특히 주의 할 것은 아라비아 숫자 3과 러시아어 알파벳 З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서쪽부터 동쪽까지 발굴지역의 총연장 길이는 22.5m(왜냐하면 석재기반의 순번에 따른 연장선을 포괄하기 위해), 그러나 북쪽에서 남쪽의 경우 6m(역시 석재 기반 선에 준거해서)이다. 발굴 구역 5의 전면적은 87㎡ 이다.
사진촬영과 발굴 구역 5(도면 1, 그림 134, 135)의 지표수준 측정 후에 제 1분층의 제거를 시작하였는데-이 층은 잔디와 두께가 5-10cm(도면 2, 그림. 136~139) 정도되는 부식토 층이었다. 잔디와 부식토 제거 후에 시행된 추가 제거 작업은 동문 앞의 전체 기단과 건물 아래 기단들이 석재 기반들 사이에 쌓여진 각각의 支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전체 기단의 석재기반들은 건물의 석재 기반들과 동-서측 선을 따라 동일한 양식으로 구축되어 있었으며 전체 기단과 건물 이래 기단의 설계가 같은 시기에 그리고 같은 계획하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사료된다.
기단의 선단을 따라 소구역 С16, 17-В2와 C21, 22-B1, 2에 위치한 건물의 석재기반들 간의 거리는 서-동쪽으로 4m 정도(420cm)였다. 소구역 C16, 17-B5, 6에 위치한 석재 기반은 깨어져서 깨어진 조각들 중 가장 큰 덩어리와 소구역 С22-В5, 6에 있는 석재기반 간의 거리는 4.5m였다. 이 외에도 소구역 С22-В5, 6에 있는 석재기반과 나란히 지름 28cm 정도의 둥글게 깊이 파여진 석재 절구가 발견되었다. 북-남선을 따라 놓여진 건물의 석재 기반들 간의 거리는 3m 정도(290cm)였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북-남선을 따라 건물 기단 선단의 支壁은 발굴 구역 내에 관한 한 석재 기반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체 기단의 선단 부분과 건물 기단의 선단 부분간의 거리는 역시 4m였으며 전체 기단 支壁의 석재 기반간의 거리는 234cm였다.
이 수표기준 층에서 전체 기단의 支壁은 빽빽한 밝은 갈색 사질토 층(소구역 C9-11-B1-6)의 한계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층의 소구역 C10-B3에서 구한국인 시기(19세기 말-20세기 초)의 철제 유물들이 수집되었는데 철제 낫과 주철제 솥의 벽면 파편(그림 140, 141)이 수집되었다. 빽빽한 밝은 갈색 사질토는 소구역 С13, 14-В1-6에서 건물 기단의 선단부에 인접해 있는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와 동쪽 부분에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발굴지의 남쪽구역에서는 이 층에서 불에 탄 회반죽 얼룩들이 확인되었다.
건물 기단의 선단을 따라 북쪽으로부터 갈색 사질토가 소구역 C13-17-B1, 2에서 확인되고 С17-22-В1, 2에서 조약돌이 섞여있는 갈색 사질토층이 확인되었다. 발굴 지역의 중앙부의 건물 기단의 한계 부분 소구역 С13-19-В2-6에는 부식토 아래 노란 갈색 사질토층이 확인되고 게다가 소구역 С14, 15-В5, 6에서는 이 토질층이 모래와 섞여있다. 소구역 С17-С6에서는 용도가 불분명한 주철제 유물의 파편이 수집되었다. 발굴지 동쪽 지역 소구역 С18-В1-6에서는 밝은 갈색 사질토층이 확인되었다.
잔디 제거 중에 그리고 그 후 발굴 중에 65개의 토기편 들이 수집되었는데 그 중에 60%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구한국인들과 관련된 토기였으며 나머지는 발해 토기였다. 구 한국인들의 토기 더미는 소구역 С9-В3에서 발견되었다. 몇 개의 구한국인 유래의 토기편들이 소구역 С16, 17-В5, 6의 깨어진 석재 기반 옆에서 수집되었다. 발해 토기편으로는 소구역 С23-В4에서 수집된 작은 구멍들이 나있는 탕기의 바닥 편, 소구역 С12-В1 와 С11-В6에서 수집된 납 유약이 칠해진 자기의 주둥이 파편(몸통과 주둥이 선단에 무늬가 있는)과 다른 토기의 주둥이 부분 파편들이 있다(그림 142, 143).
구한국인 유래의 유적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고르바트카 마을에 구 한국인들이 거주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성터에서 나온 쓰레기들은 기단을 포함하는 성벽의 밖으로 버려졌던 것 같다(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잔디와 부식토 층이 기단(기단의 영역은 작거나 커다란 가축들을 위한 목초지로 사용되었었다.)위에 천천히 형성되었기 때문에 홍수 시에 여러 가지 대상물들이 이 얇은 층에 깊이 침투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구 한국인들에 의해 기단이 직접적으로 파괴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어지는 제 2 분층(도면 3, 그림 144~146)은 평균적 깊이로 5-10cm 제거되었고 길이 나있는 소구역 С9-12-В1-6은 더 낮은 깊이로 제거되었는데 이유는 이 부분구역에서 여러 지층의 혼합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소구역 С9-В1-6에서 전체기단의 支壁에 있는 돌들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수준의 지표 기준에서 그 돌들 주위에서 빽빽한 밝은 사질토 층이 전과 같이 목격되었는데 이 토층의 경계는 소구역 С9, 10 - В1-6에서 좁아지고 있다. 이 곳의 소구역 С9-В5에서는 철제 고리, 축(그림 166, 167), 철판 파편과 머리핀으로 사료되는 석재 편이 수집되었다.
소구역 С10-13-В1-6에서 확인되고 건물기단까지 이르도록 넓게 퍼져나간 조약돌과 섞여있는 갈색 사질토 층은 전과 마찬가지로 빽빽한 밝은 갈색 사질토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소구역 C11, 12-B5, 6의 조약돌과 섞여있는 이 갈색 사질토 층의 새 수준지평에는 민물 조개 껍질들의 흔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림 148). 이 조개껍질들 가운데서 철제 못과 조임쇠가 수집되었다. 이 외에도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 층에서 뼈조각들 외에도 구한국인 들의 토기편들 뿐 아니라 발해와 크라우놉스키 토기편들도 수집되었다. 소구역 C12-B6에서는 용도가 불분명한 철제 유물의 단편이 수집되고 소구역 C13-B4 에서는 철선의 편이, 소구역 C12-B4에서는 구 한국인들의 엽전 상평통보(18세기-19세기)(그림 156), 단면이 둥그런 석재 막대 편, 철제 반원형 조임쇠, 철제 물림쇠와 축이 수집되었으며, 소구역 C12-B2 에서는 발해시기 철제의 둥근 끌형의 화살촉 편(그림 151, 152)과 융희(隆熙) 1년(1907년)의 구한국 동전(그림 150)이 수집되었으며 소구역 C13-B1 에서는 용도가 불분명한 2개의 금속유물과 작은 세공 망치(그림 164, 165)가 수집되고, 소구역 C12-B1 에서는 刻印의 파편이, 소구역 C10-B1 에서는 주철 솥의 벽면 파편이 수집되었다.
소구역 С13-17-В1, 2 에는 이전 지표 수준지평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약돌이 섞이지 않은 갈색 사질토 층이 목격되었는데 이 층에는 세공된 板岩조각이 수집된 소구역 С14-16-В1 에서 석탄의 흔적들이 보이는 재층이 확인되었으며 소구역 С16, 17-В1 에는 회반죽의 흔적이 목격되었다. 소구역 С18-23에는 건물의 잔해가 있는 기단의 支壁을 따라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이 넓게 퍼져 있었다. 이 층에서 소구역 C13-19-B2, 3B의 석재기반들을 포함하여 支壁의 모든 돌들이 확인되었다. 소구역 С17-18-В2에는 돌더미들 주위에 조약돌 층만이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건물기단의 모퉁이는 소구역 С13, 14-В2, 3에서 작은 돌들로 기반이 이루어져 있었다. 소구역 С13-16-В2의 支壁은 평행히는 2개열로 된 조약돌들로 구축되어 있으며 이들 사이에 채워진 구성물은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였다.
이 수준 층 발굴의 나머지 구역들은 소구역 С14-23-В2-6에 걸쳐 밝은 갈색 사질토가 우세하였다. 소구역 С19, 20-В2에는 支壁쪽에 석탄이 섞여 불에 타버린 회반죽의 흔적이 고착되어 있었다. 모래더미들은 소구역 С15, 16-В2, 3 과 С15, 16-В4 에서 목격이 되었다. 두 지역들 모두에서 모래더미들은 조개껍질과 토기편 더미들과 인접하고 있었다. 소구역 С16, 17-В5, 6에 석재기반들 잔해의 인근에서 원형을 이루고 있었던 다른 돌들이 제거되었다. 소구역 С18-В5에서 철제 조임쇠와 철제 刻印(그림 153~155), 용도불명의 철제 유물편, 쐐기 모양의 철제 유물(그림 162, 163)과 철제 고리(그림 186)가 수집되었다. 그 외에도 소구역 С21-В2-5의 밝은 갈색 사질토 층에서 구 한국인들에게서 유래된 토기-잔의 파편(그림 19), 용도불명의 철제 유물과 발해시대의 큰 송곳(그림 157, 158)이 수집되었다.
소구역 С14-16-В5, 6의 밝은 갈색 사질토는 매우 약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 사질토에 조개껍질더미가 확인되었으며 소구역 С16-18-В5, 6에는 노란 갈색 사질토 층이 보존되어 있었는데 이 사질토는 소구역 С18, 19-В6에서 약한 회반죽 흔적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반드시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사항을 명시하면 북남선 기준으로 건물 기단의 석재 기반들 사이에는 조약돌로 이어진 일련의 사슬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전 기단의 추가적인 견고함을 기하기 위한 것으로 사료된다.
제 2분층 제거 과정에서 수집된 토기(183 편들)는 이 전 층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양의 구 한국인에서 유래된 것들(65%)이나 부언하자면 소구역 С12, 13-В3과 С9-В3-5(이 구역에서는 120개중에 87개 편)에서 수집된 단 한 개의 쌀단지(그림 147)에서 나온 파편들의 양이 워낙 많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도자기들은 발해 토기편들(26%), 말갈족 토기의 벽면 파편 하나와 크로우놉스키 토기편(8%)이 10개가 조금 넘어 수집되었다(그림 171, 172). 크로우놉스키 토기는 파괴된 초기 철기 시대지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발해 토기 가운데는 몇 개의 주둥이 부분 파편들, 작은 구멍들을 가진 탕기의 편, 주둥이 부분의 원통형 벽면 파편들이 수집되었다.
이어진 제 3분층의 발굴은 건물 기단 영역내의 갈색 사질토 층(평균적으로 10cm 이하)의 제거와 압축된 구역(현재 도로 지역)에서 갈색 사질토층에 대한 섬세한 제거, 소구역 C13-17-B1, 2의 조약돌이 섞이지 않은 갈색 사질토층과 소구역 С14-17-С1(도면 4, 그림 173, 174)의 재받이와 회반죽 더미의 제거가 필수적이었다. 그 결과 건물 기단 영역내의 상당한 구역들에서 노란 갈색 사질토층이 발굴 지역 동쪽 부분 소구역 С23-20-В4-6 과중앙지역 소구역 С13-17-В2-6에서 드러났다. 밝은 갈색 사질토층의 제거 작업 중에 С22-В3와 С19-В4에서 철제 유물의 조각들이 수집되고 소구역 С19-В4에서 구한국인들에게서 유래된 도자기편이 수집되었다(그림 180).
소구역 С16-С3, 4 에서 드러난 노란 갈색 사질토층과 새로운 층에 보전된 밝은 갈색 사칠토층의 경계에서 탄질의 흔적이 드러났는데 이 탄질 옆에서 거의 모두 파괴되어 버린 민물조개 껍질더미가 소구역 С17-В3에서 발견되었다. 이전 분층에서 드러났었던 타버린 회반죽층은 이 새로운 층에서 소구역 С18-19 - В4-6 내에서 많이 확장되어 있었다. 조개껍질 더미와 타버린 회반죽 사이 구역에서는 소구역 С17, 18-В4, 5에서 몇 군데의 탄질 흔적이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발굴지역 중앙부분에 새로운 수준층에서 어떤 후기의 건축물 잔해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이 건축물은 밝은 갈색 사질토층과 연결이 되어 있었으며 노란 갈색 사질토 층에 조금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갈색 사질토(조약돌이 섞이지 않은)층, 그리고 재받이와 회반죽 밑에서는 소구역 С13-18-В1, 2에서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이 모든 곳에서 확인되었다.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의 부분적인 제거 작업 중에 건물 기단의 가장자리를 보강해주고 있는 조약돌 列의 사이에서도 역시 노란 갈색 사질토층이 확인되었다. 발굴지의 중앙부 나머지 지역들에서는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이 보존되어 있었다. 이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 제거 중에 철제 고리와 철제 솥의 벽면 파편들이 소구역 С10-В4(그림 181)에서 수집되었으며 소구역 С10-В3В에서는 연결되었던 창으로 떨어져 나온 선단의 날로 추정되는 파편이 수집되었다.
발굴지 서쪽벽과 전체 기단 支壁간의 구역에서는 빽빽한 밝은 갈색 사질토층이 확인되었다. 이 층의 제거작업 중에 헤베이 진초우 가마에서 생산되는 진야오 류의 도자기 파편이 수집되었다(그림 178). 이런 종류의 도자기는 당나라 시대부터 금나라 멸망 시까지 생산되었었다. 이런 유물들은 연해주 내 많은 발해 유적지와 여진 유적지(둔쌰 시대)에서 출토되고 있다.
일반 자기들로는 구한국인 들의 토기편(2.7%), 말갈 토기의 벽면 조각 1편, 초기 철기 시대 크로우놉스키 토기의 벽면과 주둥이 부분 파편 40여개(27%)와 발해 토기편(70%)들이 수집되었다(그림 186~191). 크라우놉스키 토기 주둥이 부분 편들은 수평으로 납작한 가장자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 발해 토기 중에는 주둥이 부분, 리본 같은 외관에 작은 수평 손잡이, 작은 구멍들이 나있는 탕기의 바닥편 들이 수집되었다.
다음 단계(제 4분층)작업은 밝은 갈색 사질토층을 조사하고 노란 갈색 사질토층을 제거하기 위해 건물 기단에서 주로 행해졌다(도면 5, 그림 192~194). 그 결과 기단의 대부분 영역에서 노란 갈색 사질토층이 드러났다. 밝은 갈색 사질토 층은 소구역 C22, 23-B2-4에서 그대로 방치하였는데 왜냐하면 소구역 С22, 23-В4, 5에서 모습을 드러낸 옅은 갈색토층과 경계를 이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엶은 갈색 사질토가 소구역 С19-20-В5, 6에서도 확인되었다.
그 외에도 밝은 길색 사질토의 커다란 영역이 소구역 С19, 20-В3-5에서 회반죽층 주변에 보존되어 있었다. 불에 탄 회반죽은 둥그스런 윤곽의 석재 건물 구조와 관계된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회반죽층을 완전히 제거해내고 다음단계 작업에서 석재 건물 구조물의 용도를 해명하기로 결정하였다. 밝은 갈색 사질토의 제거 과정 중에 소구역 С17-В4에서 철제 못이 한 개 수집되었다.
건물이 위치한 기단의 선단에 인접한 구역에서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층을 따라서도 제거작업이 완료되었다.
제 4 분층 조사과정에서 소구역 С12-В2(이전에 탕기 편들이 수집되었던 그 곳)에서 단 한 개의 구한국인들의 토기편이 수집되었다. 이 수준 층에서는 크로우놉스키 토기들의 양이 상당히 증가하여 39%까지 달한다(그림 195 : 4-7). 발해 토기의 양도 60%까지 증가하는데 기본적으로 토기의 벽면 파편들이다. 주둥이 파편들 중에 하나는 지름이 17cm의 주둥이 부분에 원통환이 둘러쳐진-여러 가지 형태의 발해 토기에 많이 이용되는 커다란 토기편이다(그림 195 : 4, 197).
이 후 작업 과정(제 5분층)에서 조약돌이 섞인 갈색 사질토 층과 밝은 갈색 사질토 층 구획이 최종적으로 제거되고 건물 기단 위에 노란 갈색의 사질토가 조사되었다(도면 6, 그림 199, 200). 이 층들 밑에 전체 발굴 영역에서 노란 갈색 사질점토 층이 확인되었는데 사질점토 층에는 군데군데 묻혀 썩어버린 잔디구역이 확인되었다. 소구역 С16-В3에서 크지 않은 재받이가 발견되었고, 소구역 С16-В4, 5에선 동물뼈 조각들과 토기편들이 수집되었다. 토기편 더미와 조개껍질 편들이 소구역 С21-В4, 5에서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타버린 회반죽이 있는 석재 구조물에 대한 발굴 작업이 소구역 С19, 20-В4, 5에서 계속되었다. 이 발굴대상은 약간 길게 늘여진 화로(94×160cm)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석재구조물(땅의 기둥들 위에만 남아있다)의 가능한 파괴의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지층의 제거에도 불구하고 발굴지역내의 대부분 조약돌들은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화로가 기단 위의 다른 돌더미와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을-굴뚝도, 온돌 형식의 난방 구조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확인 할 수 있었다. 즉 이 것이 개방된 형태의 화로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사실이다(그림 201).
이후의 발굴작업은 기반 층으로 보이는 노란 갈색 사질 점토층을 따라 각 구역마다 최종적인 발굴-제거 작업을 실시하였다(도면 7, 그림 202). 최종적으로 화로에 대한 발굴을 통해 화로의 단면도가 완성되었다(그림 203, 204). 약한 회반죽 층에서 화로을 채우고 있던 내부구성물속에는 크라우놉스키 토기편들, 주둥이를 따라 두 줄의 형태로 코발트로 그려진 도자기 잔의 조각(19세기-20세기)과 철제 유물의 조각들이 수집되었다(그림 204, 206). 이런 식으로 해서 밝은 갈색 사질토 층은 구 한국인들에 의해 기단에 건축된 훨씬 후대의 건축구조물과 관계가 있으리라는 추정이 적중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발굴 측면 단면도에서도 목격된다(그림 207~211).
대부분의 조약돌들은 支壁에서 뿐 아니라 발굴 전체 영역에서도 제거되지 않고 원래 자리에 남겨졌었다. 支壁과도 관련이 없고 소구역 C16, 17-B5, 6의 파괴된 기반석의 부분도 아니고 조약돌들은 전체 기단의 그리고 건물 밑 기단의 초석이었던 부분으로 사료된다는 잠정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약돌들은 내년도 발굴예정으로 있는 기단의 다른 부분 구역과 비교하기 위해 그대로 보전처리를 하여 남겨두기로 하였다. 우선적으로 기단의 북쪽 선단을 확인하기 위해 동쪽으로 발굴을 지속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동문 앞의 발굴은 기단이 최초에는 강물의 흐름과 관련이 있는 자연지층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의견에 따르면 성터의 건설 과정 중에 자연에 원래 있던 기단이 전체 성터 건설 계획에, 조약돌이 섞인 사질토를 이용해 더욱 정확한 형태를 부여하고 支壁의 도움을 통해 기단의 선단을 보강하고 노란 갈색 사질토가 섞인 돌들로 표면을 보완했던, 발해인들에 의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란 갈색 사질토는 노란 갈색 사질점토와 모래, 조약돌의 혼합인 인공적인 건설자재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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