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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기와벽실 유적

4. 기와벽실 유적

발굴지역 북동측 지구 수준기표 기준에서 -54 ~ -60cm 깊이 수준 지점에서 검은 사질토 층에 석재, 토기와 기와편으로 쌓여진 커다란 더미가 발견되었다(그림 8). 발굴이 진행되면서 -73 ~ -84cm 깊이 수준 지점부터 사질토는 진갈색의 색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토층의 구획이 북남 지향선 쪽으로 30도 정도 지향각을 가진 장방형태에 가까운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이 토층 흔적의 제일 긴 측면의 선상연장은 3.6m였다. 바로 이 수준기점에서 기와벽실 유적의 중앙부분에 토기와 돌들이 거의 없는, 따라서 주변에 기와들과 돌들이 와해된 형태에 준거하여 기와벽실의 본래 구분-경계선이 드러났다(그림 9). 발굴이 깊이 진행되자 진갈색 사질토층의 흔적은 줄어들고 -96 ~ -97cm 깊이 수준기표 지점에 이르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사질토층을 채우고 있던 것은 그 아래에서 나타난 기와벽실에 만들어진 커다란 구멍의 중앙부분을 뒤덮고 있었던 사질토였다. 이 기와벽실의 수준기표 -92 ~ -121cm 깊이 지점의 대부분 영역에 길이가 25-50cm에 이르는 상당한 크기의 돌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특별히 계획된 어떤 구도하에 배치되었던 것 같으며(그림 10, 14~15) 이 곳에서 기와도 발견되었다. 이 구역의 북동 측과 남동 측에 기와벽의 상단부가 드러났다(그림 14~15).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고고학적 유물의 대다수가 이 기와벽실 내부를 채우고 있던 흙더미를 제거하면서 수집되었다. 이 곳에서 불에 탄 혼적이 있는 나무조각들, 뼈조각들과 파손된 커다란 항아리 편들도 수집되었다.
이어 수행된 발굴을 통해 진갈색 사질토양 영역의 경계선으로 둘러 쌓여있는 기와벽으로 조성된 실구조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 공간을 둘러쌓고 있는 담장 영역 내에는 상당한 크기의 석판(그림 14~16)들을 포함해서 많은 양의 돌들이 놓여져 있었다. 이들 석판들이 기와벽 부근에 비스듬히 경사져 놓여져 있는 점에 주목해 볼 경우 이 석판들은 검은 사질토층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돌들과 유물과 함께 위에서 이 기와벽실 내부로 버려졌던 것으로 사료된다. 아마도 기와벽실의 기와천정이 무너져 내렸을 때 생긴 구덩이 속으로 돌들과 모든 쓰레기들을 내버린 것 같으며 반면에 이 구덩이의 중앙부분은 밝은 회색의 사질토를 끌어다 덮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바닥 위 토석층 아래에서는 기와편들이 계속 목격되었다. 상당히 많은 기와편들이 더 많이 붕괴된 북서 측과 남서 측 벽에서 목격되었다. 이들 기와편들은 원래 기와벽을 구성하고 있었던 기와들로 밝혀졌다(그림 18~19, 29~36).
바닥 위 북동쪽 벽의 경우 기준기표 -96cm 수준에서 불에 탄 흔적이 있는 탄화된 목재 깔판의 파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그림 11, 19). 그 목재 깔판은 벽 전체를 따라 바닥에 깔려 있었다. 깔판의 폭은 75-110cm를 넘지 않았다. 깔판 구조는 절반부분이 발견된 북서쪽 깔판에 잘 보존되어 있는데(그림 11, 19) 이것은 두 조각 가로로 자른 판자 형식의 참나무 조각들, 통나무를 네조각으로 쪼개낸 판자 조각들, 두터운 가지들과 세공 손질이 된 듯이 보이는 장방형의 나무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그람 190~201). 이 깔판의 나머지 절반부분은 완전히 썩어있었으며 작은 목탄들과 섞여있는 재의 간층으로 드러나 있었다. 기와벽실의 북서 측과 북동 측 벽면들간의 접합부분의 목재구조물 내에서는 2개의 파손된 토기의 단편들이 수집되었다.
기와벽실은 구조상으로 일종의 토굴 같아 보이는데 다시 말해 사질토 층에 장방형의 형식으로 파헤쳐진 토대 구덩이 같은데 그 내부가 기와벽으로 보강되었다. 사방벽면이 모두 수평으로 겹쌓여진 기와조각들로 조성되었다. 주로 평평한 암키와들이 대부분이나 부분적으로 골이 파인 수키와들도 목격된다. 기와들이 쌓여진 단에서는 토기와 석판도 목격이 된다. 기와가 쌓여진 방식에 주목하면 벽면의 내부표면의 경우 비교적 평평히 균등하나 반대 면의 경우 균등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기와 조각들은 그 길이가 제 각각이다. 이는 내부표면과 반대되는 측면은 흙으로 덮여질 부분이기에 균등하게 할 이유가 이 건축물의 건설자에게는 없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사방벽면은 여러 가지 보존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남동쪽 벽의 경우 잘 보전되었다(그림 21-3 ; 27~28 ; 30 ; 35). 벽의 길이가 2.75m 그리고 높이는 1~1.2m였다. 남동쪽 벽은 암키와들을 주로 하여 구성되었으며 쌓여진 양상에 주목해 볼 때 외부로부터 기존 표면을 따라 쌓아진 것 같다. 이 벽의 기와 층 속에는 장식용 정면기와의 조각들이 보인다. 골이 파인 수키와와 수막새 조각도 보인다. 이 벽면의 조성을 위해서는 23×58=1,334개 정도의 기와조각이 소비 되었다.
북동쪽 벽(그림 21-2 ; 28~30 ; 33~36)은 비교적 좋은 보존 상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남동쪽 벽으로부터 이 북동쪽 벽의 하층부 쪽으로 기와벽면에 여러 가지 크기의 돌들이 섞여있었다. 이 벽의 중앙부 기와벽면의 표면은 약간 움푹하게 들어가 있다. 이는 아마도 추후에 외부로부터 덮여진 흙에 의해 부과된 압력으로 생긴 훼손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벽면의 길이는 3m, 높이는 1.2 m에 이른다. 이 벽면들에 의해 형성된 인한 내부 영역의 길이는 2.6이다. 이 벽면의 건설을 위해서 25×44=1100개의 기와 조각들과 15cm 크기의 석판 1열이 소요되었다.
북서쪽 벽(그림 21-1 ; 29 ; 33~34 ; 36)은 전 범위에 걸쳐서 실제적으로 파손되었다. 단지 북동쪽 벽과 남서쪽 벽과 연결되어 있는 기와벽면의 구석 부분만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이 벽면도 대부분 편평한 하부 기와 조각들이 사용되었다. 이 벽면의 보전된 영역의 길이는 2.4m를 넘지 못하고 높이는 1.15m를 넘지 못한다. 이 벽면의 북쪽 부분은 통로가 있는데 이 기와벽실의 입구와는 다른 외형이다. 아마도 도굴 구멍인 듯 하다. 이 벽면의 기반에는 하층의 편평한 기와들의 커다란 조각들이 놓여있다.
남서쪽 벽(그림 21-4 ; 27 ; 31~32) 역시 심각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기와벽은 이 벽의 동쪽과 서쪽 구석, 그리고 중앙부분에만 남아있었다. 특히 이 벽의 동쪽부분의 절반이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이는 상부 건축물 기단의 수평수준과 관계가 있는데 이 기와벽실의 자리에 절터의 생활사를 위한 건물이 조성되고 대용량의 저장용 항아리가 땅속으로 묻히게 되면서 이 지점이 파손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그림 46). 이 벽면의 서쪽 영역 역시 심각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벽의 길이는 2.58m, 높이는 1.2m이다. 파손된 벽면 영역의 기와들 중 일부분이 바닥과 벽면 아래 편에 드러나 있었다.
이 기와벽실의 벽면들은 서로서로 직각형태의 접합부를 가지고 있다(그림 34~35). 이 기와벽실의 상부는 몇 개의 기와층을 가진 지붕으로 덮여 있었던 같은데 {것} 이는 남동쪽 벽면의 남측 절반 부분에 보존되어있는 기와지붕의 잔재(그림 20의 단면 참조)와 이 기와벽실 내부에서 발견된 기와더미(그림 15~16 ; 29~30 ; 35 ; 36)에 주목할 경우 분명해진다. 이 기와벽실의 기와 지붕은 통나무 조각에 기초하여 놓여졌는데 이는 남동쪽 벽의 상부 지점의 기와 지붕아래에 주위가 타버린 흔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잘 보전된 통나무 조각들이 이를 반증해주고 있다.
기와벽실은 바닥의 크기가 2.3×2.3m, 즉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반지하실 구조물이며 높이는 1.2m를 넘지 않는다.
발굴된 기본적인 고고유물들은 이 기와벽실 내에 쌓여있는 토층에서 수집되었다. 기와벽실의 표면(그림 8)을 둬덮고 있었던 진한 사질토의 기본 수평기준에서 -54 ~ - 68cm 깊이 수준에서 수집된 유물들은 곧바른 두부를 가진 4개의 못, 철제 꺽쇠, 여러 가지 철제품의 파편들, 2개의 기와로 된 놀이용 말과 수막새 파편(그림 121)들이 수집되었다.
진한 갈색 사질 토양(그림 9)의 -70 ~ -86층에서는 6개의 못(그림 96~99), 철제 조임쇠(그림 86-1 ; 87-2), 선단이 Z자형인 철제화실촉(그림 102-1 ; 103-1), 철제 솥의 파편들, 청동 유물의 파편들 그리고 커다란 토기뚜껑(그림 151~152)의 파편들이 수집되었다.
기와벽실의 -88 ~ -120cm 수준지평(그림 10)에서는 기와 편과 토기편으로 만들어진 놀이용 말들, 수막새의 조각들(그림 123), 여러 가지 양식의 철제 못들(그림 96~99), 철제 조임쇠(그림 84~85 ; 86-3 ; 87-1), 철제 화살촉들(그림 100~101 ; 102-2~3 ; 103-2~3), 기타 철제품 조각들, 철제 솥의 파편들, 바퀴 고리쇠 파편들, 절반쯤 남은 솥-다리미(그림 60~61)가 수집되었다. 청동 유물로는 머리핀의 상단부(그림 47 ; 49-1), 허리띠 장식판(그림 52-2 : 53-2) 그리고 기타유물의 파편들이 수집되었다.
-127 ~ -135cm(그림 16) 수준지평에서는 작은 청동 방울(그림 54~55), 둥글고 마름모꼴의 머리부분을 가진 청동 걸쇠(그림 56~57), 기타 청동 유물의 조각들, 철제 자물쇠(그림 78-1 ; 79-1), 철제 열쇠(그림 78-2 ; 79-2), 2개 철제 칼의 파편들(그림 76~77), 철제 꺽쇠, 철제 삽(그림 72~73), 철제 낫(그림 74~75), 철제 걸쇠(그림 82~83), 철제 갈고리(그림 80~81), 기타 철제 유물들의 잔해물, 철제 솥의 조각들, 기하학적 무뇌를 가진 석판(그림 108~109)과 기와로 제작된 놀이용 말들이 수집되었다.
-139 ~ -165cm 수평수준(그림 17)의 기와벽실을 채우고 있던 부분에서는 청동 허리띠의 절단된 선단 부분(그림 50~51), 청동 허리띠 장식판들(그림 52~53), 청동 머리핀의 상단부분(그림 48 : 49-2), 청동 머리핀 중간 부분 파편들, 허리띠의 청동제 기판, 철제 허리띠 조임쇠(그림 70~71), 철제 화살촉들(그림 102-2~3 ; 103-2~3), 철제 못들, 철제 축, 철판, 철제 솥의 조각들, 네모진 철판, 수레의 바퀴 고리쇠 조각들(그림 62~63), 진흙으로 제작된 원숭이 형상(그림 110~111), 삼채자기 편들(그림 145), 토기의 주둥이(그림 144), 삼채 자기의 주둥이 편들, 수막새의 조각들, 지붕의 테라코타 장식물의 조각들(그림 112~117), 반제품 상태의 석재 거울추, 석재 허리띠 조임부(그림 104~105), 토기로 제작된 연마기들, 토기로 제작된 놀이용 말과 석재 놀이용 말이 수집되었다.
기와벽실의 표고기준 -185 ~ -198cm 수준(그림 18)에서는 머리부분이 평평한 철재 못들, 철제 칼의 날 부분 파편들, 수레 바퀴 비녀못(그림 64~65), 철제 솥의 다리, 숫돌의 파편들과 상단부 정면 기와의 선단 와당의 파편들이 수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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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벽실 유적 자료번호 : kr.d_0002_0010_003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