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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Ⅳ. 우물

 

우물은 절터 건물지의 생활사 공간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크라스키노 성벽에 소재하고 있는 기와용 가마들이 위치해 있다. 하부, 즉 우물 수갱 아래 부분은 두 줄의 통나무로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1 제곱 평방m ( 1×1m ) 가량의 골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머지 부분은 상부에 기와 조각들을 그 아래로 조약돌들을 쌓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림-15, 17~18). 수갱의 상부 반층은 직경 1m 정도의 원형이다. 하부 반층은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졌으며, 우물의 깊이는 3m 정도 이다.
우물의 상부엔 기와성분으로 만들어진 처마지붕이 있는데 이 처마지붕은 (점토와 잘게 썬 짚이 뒤섞인) 도료로 뒤덮여 있다. 이 우물 처마 붕은 크기가 1.3×2m이다. 우물 지붕은 20 cm 직경의 기둥 4 개에 의해 보강이 되고 있다. 이 사실은 우물 주위의 4방에 위치해 있는 구멍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물 수갱의 상부 3분의 1 부분은 돌들과, 잘게 부서진 기와조각과 흙으로 채워져 있었다. 1m 깊이 정도에 우물의 뚜껑이 발견되었는데 2부분으로 접고 펼 수 있는 식으로 만들어진 둥근 석재 판석이었다. 우물 뚜껑 밑으로 우물 수갱의 밑바닥까지 부분에서는 다수의 부서진 와당 - 주로 지붕 상부의 와당(그림-21~23), 20 여개의 토기들, 목재 토기(그림-36 : 42, 3), 나무부스러기, 목재 수공품, 돼지의 턱뼈, 개암나무 껍질, 만주 호도 껍질과 그 밖의 기타 유기물 등이 발견되었다.
우물은 2.9m×3m 크기의 둥근 원형으로 만들어져 수맥 층까지 이르도록 발굴되었다. 우물 속에 채워진 것들을 분석·선별하는 중에 진흙으로 만들어진 작은 용머리가 발견되었다(그림-37~39). 아마도 토기 뚜껑의 손잡이거나 꼭지로 판단된다. 우물의 바닥 쪽으로 두 층의 통나무로 이루어진 목재틀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우물 밑바닥엔 돌들이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목재틀 위로 커다란 돌들이 얹혀지고 이러한 돌들은 우물의 상단까지 원환의 형태로 쌓아 올려져있다. 이들 원환으로 돌들이 쌓여 올려진 부분의 상층의 반은 기와조각들로 보강이 된 이들 돌들로 쌓여진 원환형 구조부분은 폭이 50~70 cm에 이른다. 아울러 주목할 사항은 이와 유사한 양식이 바로 고구려식의 우물구조라는 사실이다. 평양에 태성산 성벽으로부터 3 km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서 우물이 하나 발굴되었는데 북한 학자들에 의해 3세기 중반 ~ 6세기경의 것으로 판정되었다. 바로 평양의 그 우물의 경우 크라스키노의 우물(그림-16, 1)과 완전히 동일한 양식이었으며 심지어 우물의 깊이가 9m에 이르고 지름이 1m 내외인 것까지도 동일하다. 당시 이 평양의 우물에서도 와당과 벽돌 조각들과 30개 이상의 토기(그림-52)들과 조개껍질, 사슴뼈, 복숭아 씨앗, 철제 마구의 부속품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었다 (코리아. No2, 1986, p.38~39 [러시아어]). 이와 유사한 우물구조가 발해 상경유적지 (그림-16,II)에서도 보인다(朱榮憲, 1979, 『渤海文化』, 在日朝鮮人科學者協會歷史部會 譯(日譯) 東京, 雄山閣, p.67 ). 유사한 양식의 우물 건축 전통이 한국인들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 연해주 구한인 거주지에 유사한 우물구조들이 보인다.
전술한 바와 같이 크라스키노 우물 안에서 20 종류 정도의 도자기 파편이 발견되어 성공적으로 복원되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형태를 보이고 있다 ; 항아리(그림-30~31, 33, 43, 44, 3, 45, 46), 꽃병(그림-25, 32, 40, 47~50), 단지(그림-51), 병(그림-26~27, 41), 받침-뚜껑(그림-28~29, 42, 4)와 구형의 토기(그림-35, 44, 1~2).
몇몇 토기는 크라스키노 성터의 최상층의 건축시기 추정과 관련하여 특히 큰 관심을 끈다. 입구부분에 축이 달린 꽃병 (그림-25, 40)은 아래 부분의 꽃병 몸통은 부조형의 띠장식을 가지고 있다. 이 꽃병은 형태와 양식 그리고 장식무늬의 배열 면에서 주목해 보면 분명히 거란 양식이다. 발해 상경 동경성 성터의 토기조각들에서 거란식의 장식무늬가 보인다.
크라스키노 우물지에서 발굴된 또 다른 흥미로운 토기는 병(그림-26~27, 42)인데 손잡이(아랫부분에 2개와 윗부분에 2개)가 있는 측면 한편만이 납작하게 제작된 병이다. 한 쪽 또는 두 쪽 부분이 납작한 형태를 지닌 토기는 통일신라와 고려 도자기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이므로 크라스키노 지역에서 발견되는 그와 같은 유형의 도자기나 토기는 8 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이화여대박물관, 앞의 책 p 62, 그림-63, p74, 그림-81~84). 그러한 토기들이 상경성에서도 발견되었다.( 中國社會科學院 考古學硏究所 編, 1997, 앞의 책, 표~71, 4) 그러나 이러한 토기들은 손잡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머지 토기류들은 실제적으로 연해주와 만주지역 발해유적 전체에서 발견되는 것들이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받침 접시위에 놓인 목기(그림-36, 42, 3)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어느 지역에서의 발해유적발굴을 불구하고 처음 발견된 목기이다.
우물지 대부분이 불에 타버렸다는 사실이 여러 가지 유물들에 의해 증언되고 있다. 우물지의 상부에 타버린 토질 층이 확인되는가 하면 기와 처마의 벽토가 잔뜩 타버린 흔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크라스키노 성터의 성벽에 돌, 나무 및 금속 등이 진흙토로 뭉쳐져 있는 지역 위에 위치한 우물지 구역에 화재의 흔적이 남아 있어 우물지 수갱에서 발견된 모든 토기, 자기와 와당들이 실제로 화재를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석탄이 발견되고 진흙으로 뒤덮인 밑바닥 지층에서 발견된 목재유물들조차 상층부분들은 타버린 흔적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기와 가마터의 가마로부터 화재가 야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절터 전체 지역에서 이 지역 부분에서만 화재에 휩쌓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항은 금년 크라스키노 성터발굴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유적들은 발해국의 최종시기, 즉 10세기의 첫번째 3분기에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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