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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지 담장의 기반

 
 

Ⅲ. 사원지 담장의 기반

 

절터 담장의 잔해는 1997년 발굴지구 14 동부 구역에서 조사되었다. 이 곳에서 절터 담장의 6m 정도되는 절단면이 확인되었다. 이 절단면은 25 ~ 35 cm의 높이에 40 cm 넓이의 큰 석조 블록으로 1~2 층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담장의 기반을 따라 외측부에서 부서진 기와층이 확인되었는데 그 밑으로 기와처마가 얹혀진 나무 울타리의 잔재인 듯 한 짙은 회색의 타버린 사질토층이 확인되었다. 금당지가 절터의 북서쪽 벽면에 평행 구조로 지향된 것 처럼 담장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을 지향하고 있다.
올해 담장 발굴이 계속되었다. 올해 담장 발굴은 발굴지구 16과 17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었으며 1981년의 발굴지구 5에서도 실시되었었다. 담장은 13.5m 정도 발굴했으며 넓이는 40cm를 넘지 못하고 높이는 35cm였다. 기반은 1~2열의 돌들로 구성되었는데 하층열은 블록형태의 커다란 돌로 구성되었으나 상층열은 좀 더 작은 돌들로 구성되어 있다.
상층열은 진흙반죽으로 덧붙여졌는데 벽의 일부 구역들에서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었다. 진흙반죽의 일부는 원래 접착되었던 부분에서 흘러내려서 벽을 따라 얼룩의 형태로 집중되어 있다. 기반의 외측을 따라 그리고 상층열을 따라 와당 파편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기와는 검은 회색의 타버린 사질토층에서도 발견되었다. 일부분의 사질토양은 나무의 재와 강력한 연소로 인해 흑색을 보이고 있다. 이 층은 2 cm를 넘지 못하는데 이는 석조 기반위에 세워진 목재담장의 소실에 따른 잔여물이 명백하며 이들 기와편들은 목재담장 위에 세워졌던 지붕에 위치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사항은 연해주 발해시대의 절터가 발굴된 코프이토 절터와 아브리코소프스키 절터의 담장 또한 이와 같은 형식으로 건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유사한 담장의 건축구조는 한국과 일본의 절터에서 나타나고 있다.
담장의 내측으로부터 2m에 걸쳐 절터의 기본축( 기본축은 북서에서 남동을 지향하고 있다 )에 직각으로 설치된 기반의 단면들이 발견되었다. 이 단면들은 절터의 내부 영역을 각각의 지구로 나누고 있다. 이미 3군데의 지구를 나눌 수 있는데 기반의 남서각으로부터 벽의 첫번째 횡단면까지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남서지구, 벽의 두 횡단면 사이의 영역을 차지하는 중앙지구, 그리고 발굴지역 17에 단지 부분적으로 표시되어 있는 북동지구이다.
첫번째 지구는 8.5m이며 두번째 지구도 그 정도이고 마지막 세번째 지구에서 어떤 건축물의 기초로 생각되는 각도가 부분적으로 드러나 보이는데 이 지구에서 토제 찻잔(그림-8 : 42, 1)이 발굴되었다. 이러한 발굴유물들은 코프이토, 아브리코소프스키, 크라스키노 등지의 연해주 발해 절터에서 대개는 발굴되곤 하였다. 절터 내부 영역에 대한 이와 같은 지구 분할은 극동지역국들의 절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이 기반의 단면들을 따라 벽의 처마에서 떨어진 기와가 발견되었으며 남서쪽 벽에는 통로, 정확히 말하자면 절터담장의 폭이 1.2m 정도에 달하는 내부대문이 발견되었다.
내부대문의 소재지는 빽빽한 검은색 사토로 윤곽이 드러나 있으며 이로 인해 주변의 깨끗하고 밝은 회색의 사질토양과 구조상으로나 색상에 분명히 구분이 되고 있다. 이 곳에서 물결모양의 손잡이와 주둥이가 달려 독창적인 형태의 토기 뚜껑이 발견되었다(그림-7 : 42, 2). 그러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쇠로 만든 뚜껑은 발해 상경 발굴지에서도 발굴되었다( 中國社會科學院 考古學硏究所 編, 1997, 『六頂山與渤海鎭』, 北京 : 圖版 108, 2 ).
1981년 발굴 당시에 바로 이 곳에서 무너진 금당 지붕의 기와 파편들이 수집분석된 바 있다. 무너진 금당 지붕의 기와 파편들 속에서 와당(그림-11), 절터 지붕에 세웠던 작은 말 형태를 테라코타식으로 장식한 치미(그림-14)의 파편과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구형의 토기 파편(그림-53)이 발견되었다(그림-7 : 42, 2). 이러한 유적들의 파편들은 아브리코소프스키와 니콜라옙스키2 성터와 같은 연해주 발해유적들에서 출토되었다. 토기의 몸통을 동일한 비중으로 나누는 원형으로 움푹 들어가게 홈을 파는 형태의 장식을 갖는 자기들은 8세기 통일신라에서 보인다(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1987, 『통일신라와 고려의 칠그릇』, 서울 ).
절터 담장의 북서측면도 바로 전술한 것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준다. 남서측면의 경우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담장의 석조기반은 단지 몇몇 구획에만 남아 있었다 : 두 측면의 교차지역에, 중간 부분, 발굴지구 15의 남동측에서 커다란 돌로 이루어진 기반에 의해 경계가 구획되었다. 이러한 벽면을 따라 기와는 소수만이 발견되었으며, 기와는 기반이 쌓여진 부분의 표면 위에서도 발견되었다.
절터로 들어가는 대문은 담장의 북서벽에 위치해 있었으며 즉 북서벽과 남서벽과의 교차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이 곳에서도 대문의 지붕 처마였던 다수의 와당이 수집되었다. 대문의 폭은 2m였다. 대문은 커다란 돌들로 구성되었다. 그 돌들은 표면이 자연스러운 적색을 띄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별히 수집되었던 것 같다. 대문 기반의 좌측 기초에서 테라코타 용머리(그림-9)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틀림없이 대문 처마 위를 장식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식으로 절터 담장 두 측면의 북서 지향과 남서 지향의 기반이 확인되었다.
절터 내부 영역의 토양은 깨끗한 밝은 회색의 사질토양이 덮여 있었는데 이는 절터의 일반 생활사 영역이 집중된 담장지구를 넘어서까지 들어나는 더러운 생활사의 산물 (석탄, 도료 및 기타 여러 물질 ) 이 다수 얽혀있는 지역과 확연히 구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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