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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사원의 연혁

3. 사원의 연혁

크라스키노성은 발해의 염주성(鹽州城)으로 알려져 있다.
염주성은 발해의 동경 (東京)으로 판단되고 있는 훈춘에서 40여 km 떨어져 있는 항구이다. 염주는 일본과 신라로 왕래하는 사행선이 출입하는 발해의 주 항구로서 역사상 너무나 유명한 곳이다.
이 항구를 통해서 727년부터 922년까지 200여 년간 35회나 발해사절(渤海使節)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건너온(往來)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上田正昭, 1992, 「古代日本과 渤海」 『謎の王國·渤海』 角川書店,pp. 214~233)
물론 함흥 쪽에서도 왕래했겠지만 이 크라스키노에서 왕래한 횟수가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염주인 크라스키노 성은 늦어도 727년 경 (1차 외교사절 高仁 등) 전후부터는 발해의 국가적인 항구로 중요시되었을 것이며, 항구의 건설은 바로 그 이전이었을 것이다.
이 점은 첫째, 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발굴에 의하여 출토된 목재로 측정한 결과 한 예는 8세기, 한 예는 9세기로 편년되었다. 바로 8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 이 성이 존재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둘째, 출토된 불상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8세기로 생각되는 불상으로 금동불상의 손(金銅佛手)과 금은 보살입상 등이 있는데 이 예들은 8세기부터 이 사원이 존재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작은 석불상은 9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되므로 9세기에도 여전히 이 사원은 이어졌다고 하겠다.
셋째, 기와들도 8세기와 9세기의 기와들이 공존하는데 9세기의 기와가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9세기 이후인 10세기 전반기까지도 이 사원이 존재했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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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연혁 자료번호 : kr.d_0001_0010_00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