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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가시마가 스야마에게 보내는 답신(答信)

이번 8일에 귀하가 보내신 서찰과 황모필 여섯 자루는 10일 낮에 도착해 감사히 받았습니다. 귀하께서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직무에 종사하고 계시다니 몹시 기쁩니다. 바쁘신 중에 붓까지 보내주시어 매우 감사합니다.주 001
각주 001)
"여기부터는 가시마가 스야마에게 보낸 서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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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귀하(스야마)께서는 조선으로의 도해는 연기되고 에도에 동행할 것을 지시받았습니다. 병든 몸으로 해륙의 긴 여정을 왕복하게 된 것이 염려스럽지만, 처음부터 이 일을 맡고 계셨기에 사퇴하지 않은 거라고 짐작됩니다. 진심어린 충절로 여겨집니다.
一. 보내주신 서한 13통은 이상 없이 잘 받아서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이신님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저의 미천한 생각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보내 달라고 말씀하시니, 오랜 친분이 있다고는 하나 송구스러운 바를 지면에 다하기 어렵습니다. 원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앞선 서찰에서 말씀하셨듯이 귀하께서 이번 사건에 관하여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들은 이래, 늘 일의 성패가 어찌 될지 근심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조선에 오가시면서 만날수도 없게 되어, 기도 로쿠에몬(幾度六右衛門)님이 귀국하시는 길에 만나 제 생각을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로쿠에몬님이 아직 조선에 계실 때 서찰을 통해 ‘스야마씨의 조선행에 관하여 말하고 싶은 게 있으니 귀국길에 들러 달라’고 말씀드렸지만 찾아오지 않으셔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주 002
각주 002)
"기도 로쿠에몬(幾度六右衛門) : 쓰시마번의 무사. 1703년 해난 사고로 익사한 문위행 일행의 시신을 송환하고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사신으로 조선에 도해했을 때에는 다이라노 미치노리(平方命)라는 이름을 썼다. 1693년 11월 1일부터 1695년 6월 23일까지는 왜관 관수(館守)를 역임하였다. 스야마가 다다의 2차 교섭을 지원하기 위해 조선에 도해했을 때 왜관에 있었기 때문에, 가시마는 기도가 관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자신의 유배지에 들러주기를 청해 교섭의 경과에 관해 묻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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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뜻이 이러하니 조금의 거리낌 없이 그대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 각주 001)
    "여기부터는 가시마가 스야마에게 보낸 서한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2)
    "기도 로쿠에몬(幾度六右衛門) : 쓰시마번의 무사. 1703년 해난 사고로 익사한 문위행 일행의 시신을 송환하고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사신으로 조선에 도해했을 때에는 다이라노 미치노리(平方命)라는 이름을 썼다. 1693년 11월 1일부터 1695년 6월 23일까지는 왜관 관수(館守)를 역임하였다. 스야마가 다다의 2차 교섭을 지원하기 위해 조선에 도해했을 때 왜관에 있었기 때문에, 가시마는 기도가 관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자신의 유배지에 들러주기를 청해 교섭의 경과에 관해 묻고자 했던 것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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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마가 스야마에게 보내는 답신(答信) 자료번호 : kn.k_0003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