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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표류민 비용에 관한 내용

주서(朱書)
 통신사의 도해는 11회주 001
각주 001)
이 보고서가 작성된 1772년에서 8년 전에 방일한 통신사(1764년)는 1607년의 통신사행부터 세어서 11회째 통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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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게이초(慶長)주 002
각주 002)
일본의 연호. 1596~16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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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이래 은 86,543관(貫) 400몬메.
  표류민 비용이라는 것은 나가사키에서 [조선인 표류민을] 인계해 조선에 송환하는 비용과 그 사신을 통해 보낼 선물 등의 비용 전반으로, 5관(貫)을 책정했습니다. 쓰시마는 소목 50근과 은 264몬메 정도의 물품과 찬합·거울·주전자·담뱃대 등을 [조선으로] 보내며, 조선은 답례품으로 인삼 1근·호피와 표피·명주·무명·필묵·돗자리 등을 보내온다고 합니다.
  그 대금이 8관(貫) 700몬메 정도에 해당한다고 하므로, 차액 3관(貫) 700몬메 정도가 이윤입니다. 위의 표류민을 태운 배가 파손되어 쓰시마의 배로 송환했을 때에는 뱃 삯으로 백미 42가마니씩 받아왔다고 합니다. 나가사키에서 표류민이 체재할 때 소요되는 경비도 쓰시마에서 마련하여 대금을 집회소에서 수령해 왔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나가사키키키야쿠(長崎聞役)주 003
각주 003)
에도시대에 서국(西國)의 14개 번(藩)이 나가사키에 설치한 직책. 그들은 서국 제번(西國諸藩)이 나가사키에 설치한 구라야시키(蔵屋敷: 다이묘가 영내(領內)의 쌀·생산물 등을 저장하기 위해 에도, 오사카에 설치한 저택)에 근무하면서 정보수집이나 막부 관리와의 절충 등을 수행했다.(日本國語大辞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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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급여뿐이며 임무 수행을 위한 할당은 없다는 게 나가사키에서 얻은 풍문(風聞)입니다. 더욱이 옛 서적에 김원상(金元祥)이라고 하는 조선인 일행이 하인까지 도합 40명이 표류했을 때 비용이 11관(貫)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 수에 따라 많고 적음은 있었다고 합니다.

  • 각주 001)
    이 보고서가 작성된 1772년에서 8년 전에 방일한 통신사(1764년)는 1607년의 통신사행부터 세어서 11회째 통신사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일본의 연호. 1596~1614년. 바로가기
  • 각주 003)
    에도시대에 서국(西國)의 14개 번(藩)이 나가사키에 설치한 직책. 그들은 서국 제번(西國諸藩)이 나가사키에 설치한 구라야시키(蔵屋敷: 다이묘가 영내(領內)의 쌀·생산물 등을 저장하기 위해 에도, 오사카에 설치한 저택)에 근무하면서 정보수집이나 막부 관리와의 절충 등을 수행했다.(日本國語大辞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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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민 비용에 관한 내용 자료번호 : kn.k_0002_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