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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방_북벽_묘주실내생활도_상세_등받이

 
  • 저필자김진순(부산국제여객터미널 문화재감정관)
수산리 벽화고분 널방 묘주부부생활도에 등장하는 역삼각형의 등받이 일부이다. 벽화의 훼손상태가 심각해 등받이의 극히 일부만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형태의 등받이는 다른 고분벽화의 묘주초상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안악3호분이나 덕흥리 벽화고분 등 초기의 고분벽화에서는 등받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ㄱ’자 혹은 ‘ㄷ’자 형의 낮은 병풍이 둘러져 있었다. 그러나 감신총의 묘주초상을 시작으로 이후의 고분벽화에는 병풍대신에 묘주의 뒤에 역삼각형의 등받이가 묘사되었다. 역삼각형의 등받이는 중국 감숙지역 석굴벽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기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미륵보살의 등 뒤에 설치되었다. 이 기물의 기원은 불교미술와 함께 인도에서 전래된 것으로 귀족들이 즐겨 사용하였던 가구이다.
이러한 서역의 기물이 고분벽화의 묘주초상에 등장한 이유는, 당시 고구려 사회에 미륵신앙이 유행하였고 이를 신봉하였던 묘주는 사후(死後)에 미륵불이 거주하는 도솔천에 왕생하기를 염원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즉 묘주는 석굴벽화의 미륵불처럼 천궁으로 묘사된 기와집 아래에 역삼각형의 등받이를 받친 모습으로 묘사됨으로써 이미 도솔천에 왕생한 자신의 모습을 암시한 것이다. 이러한 등받이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서역과 고구려의 밀접한 교류관계를 잠작케 하는 매우 귀중한 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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