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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스트여닫기 사신도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의 널방 네 벽면은 각 방위를 상징하는 사신(四神)의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사신은 중국에서 전래된 개념으로 처음에는 별자리의 형상에서 기원하였다. 고대 중국인들은 생활상의 특히 농업상의 필요로 인해 정확한 역법(曆法)을 구축할 필요를 느꼈고, 그래서 해와 달의 주기적인 운행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그들은 하늘에서 육안(肉眼)으로 관측되는 28개의 별자리 즉 28수(宿)를 기준으로 해와 달의 운행을 측정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별자리를 구별하는 데 사용된 방법은 각 별자리에서 연상되는 사물의 형상을 통해 이들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즉 사신은 바로 고대 중국인들이 사방의 별자리에 부여한 형상에서 기원한 것으로 고대인의 천문관(天文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탄생한 것이다. 기원전 3~1세기에 편찬된 문헌들에는 28수가 동서남북에 각각 7개씩 균등히 할당되어 이른바 사궁(四宮)으로 불리며 이 사궁에 각각 용(龍), 호(虎), 주작(朱雀), 현무(玄武) 등의 신수(神獸)가 배속되어 있어, 이 시기에 사신사상(四神思想)이 확립되었음을 알려준다. 전한시대에 이르러 사신은 상서로운 동물[瑞獸]로서 사악한 것을 피하는 벽사(辟邪:사악한 것을 쫓아냄)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며, 후한시대에는 묘지선택에 풍수지리(風水地理)가 유행하면서 자연스럽게 풍수지리상의 방위신(方位神)으로도 등장하게 된다. 사신이 도교의 수호신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4세기경 도교(道敎)가 주변의 여러 민간 신앙적 요소들을 정합(整合)하여 종교적 체계를 완비하면서 부터이다. 7세기경에 제작된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바로 이러한 도교 사상의 산물로서, 각 방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그곳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강서대묘의 경우는 사신 이외에도 중앙의 천정에 황룡(黃龍)이 묘사되어 있어 도교의 오행사상(五行思想)이 완벽히 구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신의 표현에는 고구려 최고의 회화 수준이 구사되었다. 잠시의 주저함 없이 일필로 휘두른 유려한 선과 화려한 색채,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치는 사신의 모습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고구려인의 찬란한 예술적 혼과 웅혼한 민족적 기상을 전달해 준다.

    • 청룡 이미지

    • 백호 이미지

    • 리스트여닫기 주작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의 남쪽 입구 양 벽에 그려진 주작(朱雀) 그림이다. 주작은 청룡과 같은 상상의 동물이며 주조(朱鳥) 또는 적조(赤鳥)라고도 불려진다. 『설문의증(說文義證)』에는 주작이란 명칭이 불을 보면 곧바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이 새의 특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후한(後漢) 시대의 동경(銅鏡)에 보이는 「좌청룡과 우백호는 사악한 것을 물리치며, 주작과 현무는 음양을 따른다(左龍右虎辟不羊, 朱鳥玄武順陰陽)」는 명문에서처럼 주작과 현무는 음양을 상징한다. 그 모습은 봉황(鳳凰)과 흡사하며 문헌 기록들을 보면 주작이 신조(神鳥)인 봉황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주작은 도상이나 그 상징적 의미에서 봉황과 동일하게 취급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고대 문헌에 나타나는 기록 즉 「봉황은 암수로 봉(鳳)은 수컷이며 황(皇)은 암컷을 지칭한다」는 내용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봉황은 자웅동체(雌雄同體 : 암컷과 수컷이 한 몸이라는 의미)의 한 마리 새인가 아니면 자웅이 독립된 두 마리 새인가 하는 점에 관심이 모아져 왔다. 흥미롭게도 중국이나 고구려의 벽화내용을 살펴보면 봉황이나 주작이 한 마리만 나타나는 경우와 두 마리가 짝을 이루어 나타나는 경우를 모두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주작은 두 마리가 등장한다. 이는 남방(南方)을 상징하는 주작을 무덤입구가 있는 남쪽에 그리다 보니 중앙의 입구 양편으로 두 마리를 그려야만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문헌 속의 기록에서처럼 주작이 음양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기 위해 자웅 두 마리를 함께 그린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화면속의 그림은 강서대묘(江西大墓)의 남쪽 입구 양편에 그려진 주작도이다. 서로 입구를 향해 마주보는 자세로 묘사되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금방이라도 하늘로 오를 듯한 기세를 보여준다. 두 마리의 주작은 얼핏 보면 동일한 모습으로 보이나 세부묘사와 배경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특히 부리와 얼굴, 전반적인 몸의 선조(線條)에서 보이는 차이는 바로 암수를 구별하여 묘사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로, 입구 왼쪽 벽에 그려진 것이 암컷이며 오른쪽 벽에 그려진 것은 수컷이다.

    • 현무 이미지

    • 황룡 이미지

  • 리스트여닫기 천정도 01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의 천정에 그려진 벽화이다. 강서대묘의 천정 축조(築造) 방식은 삼각형의 화강암(花崗巖) 판석(板石)을 묘실의 네모서리 위로 여러 차례 엇갈리게 쌓아 올리면서 모서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천정 축조 방식은 삼각형모줄임방식 혹은 말각조정식(抹角藻井) 천정구조라고 부른다. 화면에 보이는 천정은 묘실 중앙에서 위로 똑바로 올려다 본 정면형의 모습이다. 가장 바깥쪽 둘레에 있는 직사각형의 긴 화강암 판석은 첫 번째 고임돌로 삼각형의 형태가 아닌 평행으로 길게 고여졌기 때문에 평행고임돌이라고 한다. 1층의 평행고임돌 바로 안쪽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네 개의 삼각형 판석은 평행고임돌의 네 모서리 위로 올려진 모줄임 돌로 두 번째로 고여 올렸기 때문에 2층 삼각고임돌이라고도 부른다. 그 안쪽으로 마름모꼴을 형성하고 있는 네 개의 삼각형모양의 판석은 2층 삼각고임돌의 네모서리를 다시 덮어 올린 것으로 3층 삼각고임돌이라고 부른다. 1번에 걸친 평행고임과 두 번에 걸친 모줄임 공정으로 인해 천정은 높아지고 또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중앙의 사각형 돌은 천정을 덮은 덮개석으로, 잘 다듬은 사각형의 판석으로 묘실의 상부를 봉하였다. 이러한 축조방식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생겨나 그리스에서 유행하였으며,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고구려로 전파된 건축양식이다. 중국 서역(西域) 지역에 있는 불교석굴(佛敎石窟)에서도 이와 같은 삼각모줄임 방식의 천정구조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와 서역지역의 문화교류를 엿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삼각모줄임방식으로 축조된 천정은 묘실 벽 위에 바로 석재를 올려 천정을 덮어버리는 방식보다 훨씬 입체적이면서 높아진 상부(上部) 공간을 형성하여, 마치 둥근 하늘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공간은 고구려인들이 사후(死後)의 하늘세계를 벽화로 표현하는 데에 매우 적합하였다. 따라서 고구려인들은 궁륭형(穹窿形)이나 모줄임방식을 사용하여 고분의 천정을 높게 축조하였으며, 바로 이 공간에 그들이 염원(念願)하는 사후의 하늘세계를 마음껏 그리고 효과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강서대묘는 고구려 후기의 대표적인 사신도(四神圖) 벽화이다. 따라서 천정에 그려진 벽화들은 대부분 도교의 천인(天人), 선인(仙人), 상서로운 동물[瑞獸, 서수], 화려한 꽃문양으로, 이들은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신선세계(神仙世界)를 보여주는 소재(素材)들이다. 또 천상을 상징하는 별자리들도 표현되어 있다. 화면에 보이는 벽화들은 천정을 정면으로 올려다 본 모습이기 때문에 고임돌의 아랫면에 그려진 벽화내용들이다. 서수와 아름다운 꽃 문양들로 장식되어 환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하늘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벽화는 마치 아름다운 천상(天上)의 음악이 금방이라도 울려 퍼질 듯 매우 선율적인 모습으로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천정의 중앙에 역동적인 자세로 묘사된 동물은 황룡(黃龍)으로, 묘실의 네 벽에 그려진 사신과 함께 도교의 오행신앙(五行信仰)을 완벽하게 구현해주고 있다.

  • 리스트여닫기 천정도 02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천정의 2층과 3층 삼각고임돌 옆면에 그려진 벽화들이다. 상단의 다소 크기가 작은 네 개의 직사각형 판석(板石)은 3층 삼각고임돌의 옆면이며, 아래의 보다 길이가 긴 직사각형 판석은 2층의 삼각고임돌 옆면 모습이다. 3층 삼각고임돌 옆면의 벽화들은 4마리의 봉황과 1마리의 비어(飛魚) 그리고 팔메트{종려잎 나무. ‘인동(忍冬)’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국제적 통용어는 팔메트임} 연화문(蓮花紋)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모두 시계반대 방향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강렬한 운동감과 리듬감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역동적이다. 2층 삼각고임돌 옆면에 그려진 벽화는 6마리의 봉황(鳳凰)과 2마리의 기린{麒麟 : 실제 존재하는 목이 긴 짐승이아니라, 머리에 뿔이 하나 다린 상상 속의 동물로, 상서로움을 상징함}이다. 이 서수들은 모두 중앙의 팔메트 연화문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는 좌우 대칭의 구도를 보여주는 점이 특이하다. 3층 삼각고임돌에서 회전하듯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서수들의 모습을 표현했던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2층 삼각고임돌에서는 중앙의 꽃을 향해 일제히 모여드는, 즉 동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한 곳으로 집중되는 매우 안정적인 공간처리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동적인 화면 구성은 마치 변화무쌍한 하늘의 기운과 우주의 조화를 보는 듯하다. 강서대묘의 천정화에 보이는 화려한 채색과 아름다운 선율을 연상시키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들은 당시 고구려인들의 회화수준이 얼마나 높은 경지에 올랐었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 리스트여닫기 동남벽의 제3굄돌(옆면)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제3굄돌 동남벽 옆면에 그려진 벽화이다. 제3굄돌은 삼각형의 판석(板石)으로 천정의 모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면에 보이는 벽화는 다른 벽화에 비해 탈락이 좀 심하게 진행된 상태로, 정확한 세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같은 층의 남서벽 굄돌에 그려진 벽화와 동일한 내용과 벽화기법을 보여준다. 화면에는 두 마리의 봉황이 중앙의 팔메트{종려잎나무. ‘인동(忍冬)’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국제적 통용어는 팔메트임} 연화문(蓮花紋)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형식으로 묘사되었다. 먼저 팔메트 연화문을 살펴보면, 중앙의 활짝 핀 연꽃 좌우로 두 줄기의 팔메트 이파리가 바깥쪽을 향해 자란 모습이다. 박락이 다소 심해 정확한 색채와 선묘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남아있는 상태로 볼 때 유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색채의 조화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 양편에 묘사된 봉황(鳳凰)은 천정 굄돌에 묘사된 다른 봉황과 같은 모습으로, 같은 층 남서벽의 굄돌에 등장하는 봉황이 꼬리 부분에 화염형(火焰形)의 ‘척목{尺木 : 용이 하늘을 오르는 데 꼭 필요한 도구로, 용의 목 뒤와 엉치에 붙어 있는 박산(博山) 혹은 보주(寶珠)형태를 가리키는 용어임}’과 같은 장식을 부착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아무런 장식도 보이지 않는다. 왼편의 박락이 보다 진행된 상태이지만, 남아있는 도상으로부터 판단해 볼 때 남서벽 굄돌에 그려진 주작과 동일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중앙의 팔메트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서수들이 대칭으로 묘사된 벽화구성은 중국 남조(南朝)시대 고분미술에서 매우 유행하였던 것으로, 고구려와 중국과의 긴밀한 문화교류관계를 읽을 수 있다.

    • 리스트여닫기 서북벽의 제3굄돌(옆면)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제3굄돌 남서벽 옆면에 그려진 벽화이다. 제3굄돌은 삼각형의 판석(板石)으로 천정의 모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면에는 두 마리의 기린(麒麟 : 실제 존재하는 목이 긴 짐승이아니라, 머리에 뿔이 하나 다린 상상 속의 동물로, 상서로움을 상징함)이 중앙의 팔메트{종려잎나무. ‘인동(忍冬)’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국제적 통용어는 팔메트임} 연화문(蓮花紋)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형식으로 묘사되었다. 먼저 팔메트 연화문을 살펴보면, 중앙의 보주형 연꽃 오른 쪽으로 만개한 연꽃이 측면으로 묘사되었다. 갈색, 붉은색, 흰색, 검은 색으로 묘사된 이 꽃 문양은 유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색채의 조화를 보여준다. 양편에 묘사된 기린은 다리를 앞뒤로 벌려 달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기린은 고대 중국의 전설 등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덕(德)과 도(道)를 쌓아 백수(百獸)의 영장으로 불리며, 길상(吉祥)과 장수(長壽)를 상징하기도 하고, 또한 사후세계(死後世界)의 수호자로도 불린다. 특히 만물의 재판관으로서 생명을 존중해서 살아있는 풀을 밟지 않고 작은 벌레도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수(仁獸)라고도 한다. 주의에는 흩어져 있는 꽃 문양은 상서로운 분위기를 형성해 준다. 이처럼 중앙의 팔메트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서수들이 대칭으로 묘사된 벽화구성은 중국 남조(南朝)시대 고분미술에서 매우 유행하였던 것으로, 고구려와 중국과의 긴밀한 문화교류관계를 읽을 수 있다.

    • 리스트여닫기 남서벽의 제3굄돌(옆면의 상세도)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제3굄돌 남서벽 옆면에 그려진 벽화이다. 제3굄돌은 삼각형의 판석(板石)으로 천정의 모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면에는 두 마리의 봉황이 중앙의 팔메트{종려잎나무. ‘인동(忍冬)’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국제적 통용어는 팔메트임} 연화문(蓮花紋)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형식으로 묘사되었다. 먼저 팔메트 연화문을 살펴보면, 중앙의 활짝 핀 연꽃 좌우로 두 줄기의 팔메트 이파리가 바깥쪽을 향해 자란 모습이다. 갈색, 붉은색, 흰색, 검은 색으로 묘사된 이 꽃 문양은 유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색채의 조화를 보여준다. 양편에 묘사된 봉황은 천정 굄돌에 묘사된 다른 봉황과 같은 모습으로, 꼬리 부분에 화염형(火焰形)의 ‘척목(尺木 : 용이 하늘을 오르는 데 꼭 필요한 도구로, 용의 목 뒤와 엉치에 붙어 있는 박산(博山) 혹은 보주(寶珠)형태를 가리키는 용어임)’과 같은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척목은 용이 승천하는데 꼭 필요한 부속물(附屬物)로 아마도 봉황의 하늘을 나는 기능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의에는 꽃 문양이 흩어져 있어 상서로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이처럼 중앙의 팔메트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서수(瑞獸 : 상서로운 짐승)들이 대칭으로 묘사된 벽화구성은 중국 남조(南朝)시대 고분미술에서 매우 유행하였던 것으로, 고구려와 중국과의 긴밀한 문화교류관계를 읽을 수 있다.

    • 리스트여닫기 북동벽의 제3굄돌(옆면)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제3굄돌 북동벽 옆면에 그려진 벽화이다. 제3굄돌은 삼각형의 판석(板石)으로 천정의 모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면에는 화려한 장식된 봉황 두 마리가 중앙의 팔메트{종려잎나무. ‘인동(忍冬)’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국제적 통용어는 팔메트임} 연화문(蓮花紋)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형식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중앙의 팔메트 연화문은 박락상태가 심해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 세부를 확인하기 힘들다. 아마도 같은 층의 굄돌에 그려진 다른 팔메트연화문과 유사한 모습일 것으로 판단된다. 북동벽 굄돌에 그려진 벽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바로 봉황의 모습이다. 같은 층에 그려진 봉황가운데 가장 화려하면서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선명하게 남아있는 색채와 선조(線條)는 봉황이 처음 제작되었을 당시의 화려함과 기풍을 그대로 보는 듯 하다. 북동벽 굄돌의 봉황 그림도 동남벽 굄돌에 등장하는 봉황과 같이 봉황의 꼬리 부분에 화염(火焰)형의 ‘척목(尺木 : 용이 하늘을 오르는 데 꼭 필요한 도구로, 용의 목 뒤와 엉치에 붙어 있는 박산(博山) 혹은 보주(寶珠)형태를 가리키는 용어임)’과 같은 장식이 부착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중앙의 팔메트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서수들이 대칭으로 묘사된 벽화구성은 중국 남조(南朝)시대 고분미술에서 매우 유행하였던 것으로, 고구려와 중국과의 긴밀한 문화교류관계를 읽을 수 있다.

    • 리스트여닫기 서벽의 제4굄돌(봉황(鳳凰))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천정 제4굄돌 서벽 옆면에 그려진 봉황(鳳凰)이다. 봉황에 대해서는 용(龍)과 마찬가지로 그 형태에 대한 기록이 매우 다양하다. 『산해경(山海經 : 동이족(東夷族)의 신화전설을 집대성한 일종의 무속서)』에는 「한 새가 있는데 닭과 같이 생겼으며 오색의 무늬가 있다. 이름하여 봉황이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봉황은 신조(神鳥)로 오색을 띄며, 앞모습은 기린(麒麟 : 자연계에 실재로 존재하는 목이 긴 짐승이아니라, 머리에 뿔이 하나 다린 상상 속의 동물로, 상서로움을 상징함)이며 뒷모습은 사슴이다. 또한 뱀의 목에 물고기의 꼬리, 용의 비늘에 거북이의 등, 그리고 제비의 턱에 닭의 부리를 지니고 있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따라서 봉황은 닭을 닮은 모습이거나 여러 동물의 각 부분들을 합성한 형태로 서수(瑞獸, 상서로운 동물)로서의 성격이 강조되었다. 화면에 보이는 봉황은 모두 2마리로, 강서대묘의 묘실 남벽에 그려진 주작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왼편에 있는 봉황의 입에는 팔메트{종려잎나무. ‘인동(忍冬)’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국제적 통용어는 팔메트임}가 아닌 붉은 색의 리본이 물려있다. 이는 강서대묘에 그려진 다른 봉황의 도상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날개의 깃털에 표현된 세밀한 선묘의 처리나 꼬리의 유려한 곡선 등에서 고구려 화공의 높은 예술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 리스트여닫기 남벽의 제4굄돌(봉황(鳳凰))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천정 제4굄돌 남벽 옆면에 그려진 봉황(鳳凰)이다. 봉황에 대해서는 용(龍)과 마찬가지로 그 형태에 대한 기록이 매우 다양하다. 『산해경(山海經 : 동이족(東夷族)의 신화전설을 집대성한 일종의 무속서)』에는 「한 새가 있는데 닭과 같이 생겼으며 오색의 무늬가 있다. 이름하여 봉황이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봉황은 신조(神鳥)로 오색을 띄며, 앞모습은 기린(麒麟 : 자연계에 실재로 존재하는 목이 긴 짐승이 아니라, 머리에 뿔이 하나 다린 상상 속의 동물로, 상서로움을 상징함)이며 뒷모습은 사슴이다. 또한 뱀의 목에 물고기의 꼬리, 용의 비늘에 거북이의 등, 그리고 제비의 턱에 닭의 부리를 지니고 있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따라서 봉황은 닭을 닮은 모습이거나 여러 동물의 각 부분들을 합성한 형태로 서수(瑞獸, 상서로운 동물)로서의 성격이 강조되었다. 화면에는 단 한 마리 봉황만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붉은 색이 강한 것이 주작과 유사한 모습이다. 상부에 시멘트로 보수한 부분이 봉황의 머리 위에까지 걸쳐 있어, 봉황이 입에 무엇을 물고 있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봉황 주위에는 갈색조의 구름이 묘사되어 화면에 동세(動勢)를 부여하며 이로 인해 앞의 허전한 공간까지 꽉 채워지는 풍성한 느낌을 제공한다.

    • 리스트여닫기 북벽의 제4굄돌(옆면의 비어(飛魚))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천정 제4굄돌 북벽 옆면에 그려진 비어(飛魚)이다. 비어는 『산해경(山海經 : 동이족(東夷族)의 신화전설을 집대성한 일종의 무속서)』에 등장하는 물고기로 날개와 다리를 지녔다. 비어를 먹으면 병을 치료하고 두려움을 없애며, 비어가 나타나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하여 길상적인 의미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화면에는 비어 한 마리만 등장한다. 비어 앞뒤에는 채운(彩雲 : 오색구름)과 팔메트 연화문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 리스트여닫기 천정도 03 이미지 이 직사각형의 긴 벽화들은 1층 평행고임돌의 옆면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동, 서, 남, 북벽에 위치해 있으며, 선인(仙人)과 천인(天人), 서수{瑞獸 : 상서로운 동물}와 꽃문양 등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먼저 동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선인과 천인이 한 사람씩 등장하며 화면의 맨 뒤에는 봉황(鳳凰) 한 마리가 이들을 따르고 있다. 중앙에는 첩첩 산중을 이루는 거대한 산악(山岳)이 그려져 있다. 동쪽에 있다는 전설 속의 도교 명산인 삼신산(三神山)을 표현한 것이다. 동벽과 마주보는 서벽의 그림은 등장인물의 수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구도가 동벽과 동일하다. 즉 중앙에 산악문(山岳紋)을 배치하고 그 좌우로 날개옷에 의지해 날아가는 선인과 봉황을 타고 날아가는 선인들을 묘사하고 있다. 역시 좌우 대칭을 중시하는 치밀하게 계산된 구도를 보여준다. 산악문은 바로 서쪽이 있다는 도교 명산인 곤륜산(崑崙山)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곤륜산에는 푸른 소나무 숲이 그려져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남쪽 평행고임돌 옆면에 묘사된 벽화는 4명의 선인들로, 이들은 모두 탈것에 의지하지 않고 날개옷에 의지한 채 하늘을 나는 모습이다. 주변에 상서로운 구름들이 이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벽에 그려진 그림은 역시 4명의 천인들로 하의(下衣)만 입은 채 천의(天衣) 즉 날개옷에 의해 하늘을 날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도 있어, 마치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황홀한 느낌을 제공한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구도상의 치밀한 배치를 볼 수 있는데, 바로 남북에 위치한 벽화의 내용들이 각각 선인 4명과 천인 4명으로 서로 대칭적인 구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강서대묘(江西大墓)의 1층 평행고임돌 옆면 벽화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운동감이다. 벽화의 소재들은 모두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이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구성은 이미 3층 삼각고임돌의 옆면 벽화에서 본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강서대묘의 천정벽화는 동(動), 정(靜), 동(動)이 서로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안정적이면서도 화려한 율동감을 지닌 매우 뛰어난 구도의 벽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이 이끄는 대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두루마기 그림을 펼쳐 보듯 매우 흥분되기까지 하다.

    • 리스트여닫기 동벽의 제2굄돌(옆면의 도교 인물들)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제2굄돌 동벽 옆면에 그려진 도교 인물들이다. 강서대묘 제2굄돌 사면(四面)에는 다양한 선인(仙人)들과 천인(天人), 서수(瑞獸, 상서로운 동물)들이 등장한다. 선인이라는 개념은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형성되었다. 선인과 동의어인 신선(神仙)이라는 명칭은 반고(班固, 32­92)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의하면 「참된 생명을 유지하고 세상 밖에서 노니는 사람으로 애오라지 뜻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삶과 죽음의 영역을 한가지로 하여 가슴속에 슬픔이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신선 혹은 선인이란 죽음을 초월하고 천계에서 노니는 존재(存在)로 고대로부터 모든 사람들에 의해 추구되어 오던 이상적인 존재였다. 선인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이 매우 유행하게 되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이르러 문학과 미술 양 분야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특히 이 때는 신선사상이 도교에 흡수되고 도교가 점차 중국의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일반대중에게까지 그 세력이 확장되어 간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선인에 대한 표현이 증가하는 한편 도상에 있어서도 전대와 다른 모습 즉 한대의 짐승형에서 인간화된 선인으로 바뀌어 매우 우아하고 세장(細長)한 모습이 특징적이다. 강서대묘의 신선들은 남북조시기 선인상의 영향을 보여주며, 외형적 특징에 따라 전통 선인도상과 불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천의(天衣)를 걸친 선인도상 두 가지로 나뉜다. 전통 선인도상의 일반적 특징은 ① 龍이나 학과 같은 탈 것에 의지함, ② 구름을 타고 있음, ③ 날개가 돋아남, ④ 우의(羽衣, 날개 옷)를 착용함, ⑤ 긴 귀, ⑥ 뾰족 신발의 착용 등으로 요약된다. 이밖에도 선초(仙草), 향로(香爐), 지팡이, 부채 등을 손에 쥐고 관(冠)을 쓰고 있는 것도 선인의 특징이다. 화면에는 선인과 천인, 신산(神山), 봉황이 등장한다. 맨 앞의 선인은 부분 박락이 심해 머리와 사지(四肢)의 모습이 모호하게 남아있으나, 우의{선인들의 의복으로, 옷자락의 끝단이 새의 날개처럼 갈라진 날개 옷}를 입고 창공을 날 듯 주행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마치 축지법을 사용하는 도인을 보는 듯 재미있는 장면이다. 선인의 주위에 묘사된 바람에 날리는 구름무늬와 팔메트무늬는 선인의 주행 속도를 배가(倍加)시켜준다. 뒤따르고 있는 천인은 앞의 선인과는 대조적으로 붉은 색 천의를 입고 무릎을 굽혀 우아한 자세로 하늘을 날고 있다. 그 뒤를 봉황이 바짝 쫓고 있는데, 봉황은 현실세계에서는 볼 수 없고 도교의 신선들이 사는 천상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환상의 새이다. 천인과 봉황의 색채와 선묘가 너무나 아름답고 조화롭다. 중앙에는 첩첩 산중의 산악이 묘사되었는데 이는 동쪽에 있다는 전설속의 도교 명산인 삼신산(三神山)으로 추정된다. 삼신산은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 세 산을 일컫는 명칭으로, 그래서 인지 곤륜산만 그려진 서벽보다 산악의 규모가 훨씬 더 크게 그려졌다. 환상적인 도교의 천상세계를 우려한 선과 화려한 색감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 리스트여닫기 서벽의 제2굄돌(옆면의 선인(仙人)과 서수(瑞獸))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제2굄돌 서벽 옆면에 그려진 선인(仙人)과 서수(瑞獸, 상서로운 동물)이다. 선인이라는 개념은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형성되었다. 선인과 동의어인 신선(神仙)이라는 명칭은 반고(班固, 32­92)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의하면 「참된 생명을 유지하고 세상 밖에서 노니는 사람으로 애오라지 뜻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삶과 죽음의 영역을 한가지로 하여 가슴속에 슬픔이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신선 혹은 선인이란 죽음을 초월하고 천계에서 노니는 존재(存在)로 고대로부터 모든 사람들에 의해 추구되어 오던 이상적인 존재였다. 선인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이 매우 유행하게 되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이르러 문학과 미술 양 분야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특히 이 때는 신선사상이 도교에 흡수되고 도교가 점차 중국의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일반대중에게까지 그 세력이 확장되어 간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선인에 대한 표현이 증가하는 한편 도상에 있어서도 전대와 다른 모습 즉 한대의 짐승형에서 인간화된 선인으로 바뀌어 매우 우아하고 세장(細長)한 모습이 특징적이다. 강서대묘의 신선들은 남북조시기 선인상의 영향을 보여주며, 외형적 특징에 따라 전통 선인도상과 불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천의(天衣)를 걸친 선인도상 두 가지로 나뉜다. 전통 선인도상의 일반적 특징은 ① 龍이나 학과 같은 탈 것에 의지함, ② 구름을 타고 있음, ③ 날개가 돋아남, ④ 우의(羽衣, 날개 옷)를 착용함, ⑤ 긴 귀, ⑥ 뾰족 신발의 착용 등으로 요약된다. 이밖에도 선초(仙草), 향로(香爐), 지팡이, 부채 등을 손에 쥐고 관(冠)을 쓰고 있는 것도 선인의 특징이다. 화면에는 선인과 신산(神山), 서수가 등장한다. 좌측 즉 앞쪽에서 행렬을 인도하는 2명의 선인은 날고 있는 자세와 의복의 모습이 매우 유사하나, 맨 앞의 선인 어깨위로 날개가 달려있어 양자 간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중앙의 산악문은 서쪽에 있다는 전설속의 도교 명산인 곤륜산(崑崙山)일 것이다. 곤륜산은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신산(神山)으로, 주변에 선인들과 서수들이 자유롭게 이리 저리 노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곤륜산이다. 산 중턱에는 푸른 잎의 소나무가 몇 그루 서있다. 도교에서는 풀과 나무열매 등으로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식품을 만들었는데 그 주재료가 솔잎과 솔씨이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소나무는 십장생(十長生)에 포함되기도 한다. 어두운 무덤 속에서 1500여년의 세월을 지내온 이 한 폭의 그림은 조선시대(朝鮮時代) 전기(前期)의 문신인 조위(曺偉)가 〈만분가(萬憤歌)〉에서 노래한 “곤륜산 제일봉에 만장송(萬丈松)이 되어 있어”라는 싯구를 연상시켜 너무나 흥미롭다. 곤륜산의 오른편에는 우의{선인들의 의복으로, 옷자락의 끝단이 새의 날개처럼 갈라진 날개 옷}가 아닌 붉은 색의 옷을 입은 선인이 봉황과 같이 생긴 새를 타고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그 뒤에는 머리는 짐승이고 몸은 새의 모습을 한 서수[獸面鳥身]가 이들을 따르고 있다. 이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유유자적하는 선인들 사이로 오채(五彩) 구름과 팔메트{종려잎 나무. ‘인동(忍冬)’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국제적 통용어는 팔메트임} 연화문(蓮花紋)들이 떠다니고 있어 이곳이 신선들이 거주하는 상서로운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날아다니는 선인들의 비행 속도를 배가(倍加)시켜 화면에 활발한 운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환상적인 도교의 천상세계를 우려한 선과 화려한 색감으로 잘 표현하였다.

    • 리스트여닫기 남벽의 제2굄돌(옆면의 선인(仙人))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제2굄돌 남벽 옆면에 그려진 선인(仙人) 그림이다. 선인이라는 개념은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형성되었다. 선인과 동의어인 신선(神仙)이라는 명칭은 반고(班固, 32­92)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의하면 「참된 생명을 유지하고 세상 밖에서 노니는 사람으로 애오라지 뜻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삶과 죽음의 영역을 한가지로 하여 가슴속에 슬픔이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신선 혹은 선인이란 죽음을 초월하고 천계에서 노니는 존재(存在)로 고대로부터 모든 사람들에 의해 추구되어 오던 이상적인 존재였다. 선인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이 매우 유행하게 되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이르러 문학과 미술 양 분야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특히 이 때는 신선사상이 도교에 흡수되고 도교가 점차 중국의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일반대중에게까지 그 세력이 확장되어 간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선인에 대한 표현이 증가하는 한편 도상에 있어서도 전대와 다른 모습 즉 한대의 짐승형에서 인간화된 선인으로 바뀌어 매우 우아하고 세장(細長)한 모습이 특징적이다. 강서대묘의 신선들은 남북조시기 선인상의 영향을 보여주며, 외형적 특징에 따라 전통 선인도상과 불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천의(天衣)를 걸친 선인도상 두 가지로 나뉜다. 전통 선인도상의 일반적 특징은 ① 龍이나 학과 같은 탈 것에 의지함, ② 구름을 타고 있음, ③ 날개가 돋아남, ④ 우의(羽衣, 날개 옷)를 착용함, ⑤ 긴 귀, ⑥ 뾰족 신발의 착용 등으로 요약된다. 이밖에도 선초(仙草), 향로(香爐), 지팡이, 부채 등을 손에 쥐고 관을 쓰고 있는 것도 선인의 특징이다. 화면에는 네 명의 우의{선인들의 의복으로, 옷자락의 끝단이 새의 날개처럼 갈라진 날개 옷}를 착용한 선인이 등장한다. 모두 동일한 자세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제히 화면의 왼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유유자적하는 선인들 사이로 오채(五彩) 구름과 팔메트{종려잎 나무. ‘인동(忍冬)’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국제적 통용어는 팔메트임} 연화문(蓮花紋)들이 떠다니고 있어 이곳이 신선들이 거주하는 상서로운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날아다니는 선인들의 비행 속도를 배가(倍加)시켜 화면에 활발한 운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환상적이며 신비스러운 도교의 천상세계가 우아하고 아름답게 잘 표현되었다.

    • 리스트여닫기 북벽의 제2굄돌(옆면의 천인(天人) 도상) 이미지 강서대묘(江西大墓) 제2굄돌 북벽 옆면에 그려진 천인 도상이다. 천인은 도교 세계에서 선인과 같은 불멸(不滅)의 존재이다. 천의(天衣)를 걸치고 비행하는 천인(天人, 천상의 인물)은 일반적으로 우의{선인들의 의복으로, 옷자락의 끝단이 새의 날개처럼 갈라진 날개 옷}를 입고 등장하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선인(仙人) 도상과는 다르다. 천인은 불교 비천상(飛天像)의 영향으로 중국 남조(南朝)에서 기원한 선인의 한 종류이다. 이들은 천의에 의존하여 비행하는 천인과 천의를 걸치고 봉황과 같은 조류(鳥類)를 타고 있는 혼합형 천인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제2굄돌의 북벽 옆면에 보이는 천인들은 모두 네 명으로, 펄럭이는 천의에 의지해 한 방향으로 비행하고 있다. 이들은 맞은편인 남벽에 그려진 네 명의 전통형 선인과 서로 대칭구도를 이루고 있다. 화면 왼쪽에서 앞서가고 있는 두 천인은 한 손에는 꽃잎이 담긴 그릇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꽃잎을 흩뿌리며 신선세계를 찬양하듯 아름답게 장엄하고 있다. 이는 불교의 산화공양(散花供養, 꽃잎을 뿌려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의 일종) 모티브를 도교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 뒤를 따르는 두 명의 천인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앞의 천인은 대금을, 뒤의 천인은 피리를 불고 있다. 이와 같은 주악천인도 역시 불교미술에서 유행하였던 모티프로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신선들의 귀를 즐겁게 할 아름다운 풍악이 천상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신체의 자세와 흩날리는 천의의 모습은 불교미술 속의 우아한 비천상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세장(細長)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도교인물은 한대(漢代)의 짐승형에 가까운 선인에서 매우 발전한 모습으로, 중국 남조(南朝) 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검은 색의 깔끔한 윤곽선이나 붉고 하얀 색으로 화사한 듯 간결하게 처리된 색감이 나풀거리는 듯한 천인의 모습을 매우 경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흩날리는 천인의 옷자락 아래로는 구름무늬를 표현하여 동감(動感)을 강조하였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의 천인들을 통해 신비롭고 환상적인 도교의 천상세계를 엿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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