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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외교문서

김유택 원장 방일 결과에 관한 요미우리신문의 보도 내용

  • 발신자
    주일공사
  • 수신자
    외무부장관
  • 날짜
    1961년 9월 8일
  • 문서종류
    공한
  • 문서번호
    JW-0994
  • 형태사항
    한국어 
번호 : JW-0994
일시 : 081455
수신인 : 외무부 장관귀하
금 8일자, 당지 “요미우리” 신문 조간은 김유택 경제기획원장의 방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아옵기 참고로 이를 번역보고함.

1. 일한회담 재개를 위하여 지난 30일에 내일한 한국 경제기획원장 김유택 씨는 7일 고사까 외상과의 회담을 최후로 일본측 정,재계 수뇌들과의 회담을 마쳤으나 이들 회담을 통하여 당초 예상되었던 정도로 양국간의 정치적 협상의 진전이 없었고 금월 하순에 예정되고있는 제6차 전면회담 재개를 앞두고 벌써부터 일한교섭 난항의 가능성이 강하여졌다. 김씨의 내일은 자민당 일한문제 간담회의 초청에 의한 것이나 김씨가 한국의 부총리이고 군사정권에서는 문관중의 최대실력자이라는 점에서 동씨와 일본측 경제계 수뇌의 예비적 협의로서 금월 하순의 일한회담 재개전 단계에서 상당정도 구체적인 절충이 진전될것으로 일반은 예상하였었다.
김씨는 이께다 수상을 비롯하여 고사까 외상, 고오노 농림, 미즈따 대장, 사도오 통상, 후지에다 방위등 중요 각료 및 요시다 원수상, 오오노 부총재를 비롯한 당삼역, “아다찌” 일상회주, “우에무라” 경단련 부회장등 재계의 수뇌진과 회담하였을때, 일한회담은 사무적 교섭보다는 정치적 절충으로 일기에 해결해야할것이며, 모든 현안에 앞서서 한국의 대일 재산청구권을 해결할 것이 선결임을 강조하였다. 이에대하여 일본측 특히 고사까 외상은 대일청구권에 관하여서는 정치 절충에 드러가기전에 사무적교섭을 진행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한국측의 일기 해결 방침에 난색을 보였으며, 또한 자민당 3역들도 청구권의 현재보다는 경제협력에 중점을 두고싶다는 태도를 보이고 7일의 “고사까-김” 회담의 결과 정치적 절충과 사무절충을 병행시키겠다는 결론에 달하였다.
이러한 일본측의 태도는 “김”씨를 극히 실망시킨것같으며, 서울전보에 의하면 한국 정부부내에는 한일회담 재개를 반대하는 공기가 나오고 있다고 하며, 김씨 자신도 재계인과의 회담석상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 불만을 종종 표시하였다고 한다. 정부측은 이 일한 회담에 관하여 한국측보다도 오히려 국내의 반향을 중시하고 특히 금월하순 소집 예정의 국회 심의의 난항을 두려워하여 쉽사리 타협할수 없다는 경계의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또한 특히 대장성에서는 한국대일청구권의 대한 금액의 변제액에 대하여 강한 난색을 표시하고있다. 청구권의 변제액에 관하여 일부에서는 한국측은 5억불 내지 7억불의 요구안을 제시하는것이 아닌가하는 예상도 있으며, 일본측은 이것을 ▣▣ 억제할려고 하고 있으므로 (대장성에서는 1억불 정도도 무리라고 보고있음) 제5차 회담에서 논의된 한국의 8항목의 요구에 대한 법리론의를 계속하고 이론적 입장에서 그 거액의 요구를 거절하여 경제협력의 형태로 실질적 대한 원조를 실시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청구권 문제의 해결이 교섭중에 있더라도 대한 경제원조의 문제부터 합의를 보고 년내에라도 실현하겠다는 생각이나, 한국측은 청구권문제가 해결될때까지는 경제협력 기타 일체의 현안에 관한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한국측은 일한 회담의 수석대표를 교섭의 정치적 처리의 능력이 있는 각료급의 거물로 할 것을 희망하고 있으나, 일본정부측은 국회의원중에서 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고 하여 피할 방침으로 있으며 한국측이 기대하는 거물수석대표의 실현은 희박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김씨의 내일은 양국의 접근을 실현하기보다는 반대로 양국의 대립점을 명백히 하는 형태가 되었으며, 벌써부터 일한 제6차 전면회담의 진도는 낙관을 불허하게 되었다. 또한 김씨는 11일 오전 9시 30분 “노스위에스트”기로 귀국할 예정이다.
2. 방일중 한국경제기획원장 김유택씨는 7일 하오 2시30분 외무성으로 고사까 외상을 방문하고 일한회담의 재개에 관하여 최종적인 협의를 하였다. 이 회담에서 한국측은 현재 현안의 재문제에 관하여 정치적 교섭을 행한후 실무적 교섭으로 도라가야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결국 정치절충과 사무절충을 병행해서 진행하기로 되었다. 또한 회담일자 결정에 관하여서는 일본측은 9월 20일 이후에는 어느때나 좋다는 의향을 말하였으나 한국측은 김씨가 귀국후 회답을 하겠다고 아에 결론은 나오지 않었다.
수신시간 : 1961 SEP 8 PM 4 12

색인어
이름
김유택, 김유택, 김유택
지명
일본, 일본, 한국, 일본, 한국, 일본, 한국, 한국, 한국, 일본,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일본, 한국
관서
일본 정부, 일본정부
단체
자민당, 자민당
기타
일한회담, 일한회담, 재산청구권, 대일청구권, 청구권, 한일회담, 대일청구권, 청구권, 청구권 문제, 청구권문제, 일한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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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택 원장 방일 결과에 관한 요미우리신문의 보도 내용 자료번호 : kj.d_0009_0020_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