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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외교문서

8월 12일자 박 의장 성명에 관한 신문기사 송부의 건

  • 발신자
    주일공사
  • 수신자
    외무부장관
  • 날짜
    1961년 8월 12일
  • 문서종류
    공한
  • 문서번호
    JW-08151
  • 형태사항
    한국어 
번호 : JW-08151
일시 : 121810
수신인 : 외무부 장관귀하
건명 : 8월 12일자 박의장성명에 관한 신문기사 송부의 건.
금 12일자 당지 각신문 석간은 민정이관에 관한 박의장의 성명전문등을 보도하는 서울특파원기사, 외무성정보문화국장 담화문, 그리고 이에관한 외무성측 비공식 견해를 전하는 기사 등을 일면상단에 게재하고 있아온 바 아래에 “마이니찌” 및 “닛께이” 신문에 게재된 기사(외무성측 비공식 견해에 관한) 전문을 송부함.
“기”
1. 마이니찌 신문 :
외무성한국의 민정이관에 관한 박성명을 표면적으로 환영하고 별항과같은 정보문화국장 담화를 발표하였으나, 그 내용에는 반드시 전면적으로 만족하고 있지 않은 표정이 엿보인다. 그러나 (1) 일한회담은 상대방측으로부터 제의가 있으면, 이에 응한다는 종래의 방침을 변경하는 재로로는 되지 않는다. (2) 이성명으로 한국 혁명정부의 안정성의 정도는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는 생각을 동성당국은 명백히 하고 있다.
외무성은 이성명발표에 관한 예고가 어느정도 화려하였으므로, 금후의 한일교섭을 진행시키는 데에 관한 중요한 판단재료가 될 것으로 보고 이를 주목하여왔다.
처음에는 성명내용에 따라서는 외상담화를 발표하고, 지난달 27일의 리스크 국문장관의 한국정권 적극지지의 언명과같은 의미를 가지게하여도 좋다는 생각이었으나, 이것이 정보문화국장 담화로 “격하”된것은 기대하였든 것보다는 만족할수 없는 점이 많다고 보고있다는 사실이 나타난것이라고 말할수있을 것이다.
동성이 특히 지적하고 있는 점은, 민정이관 달성에 2년간의 예고기간을 두고 있는 점으로서, 만일 이것이 1년 단축되어 “내년여름 실시”을 약속하였드라면 “백점만점”의 성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 2년간에는 아직도 몇가지의 불확정요소가 예견되므로, 사태추이에 따라서는 예고대로 실시될것인지를 위구시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다른 군사혁명과 비교하면, 토이기, 파키스탄등은 민정이관까지 2-3년의 기간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가장 짧었던 버-마의 경우에 있어서도 1년반의 군정이 시행되고 있다.
한국이 민정복귀를 달성한 때에 다시 전과같은 “비능율정치”, “부폐정치”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하여서도, 지금 정권이 충분히 조치를 취하여 둘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2년간의 준비기간을 두었다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다고 동성측에서는 보고있다.
민정실시까지의 기간은, 한국정부가 가장 많이 검토하였고, 그 부내에서 논의를 거듭한 것으로 관칙되는 바, 이 난관을 성명발표로 극복한 이상, 한국정권의 안정성은 중대할것이라는 견해가 강하다.
또 전부터 조기 민정이관을 기대하고있었던 한국민은 물론, 미국을 위시하여 국련한국부흥통일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각국의 지지가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나아가서 이 성명은 한일관계의 금후에 대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한일회담 재개에대한 의욕을 상실케하는 재료로는 되지 않는다고 동성은 보고 있으며, 16일 한국시찰로부터 귀국하는 “마에다” 북동아과장의 보고를 기다려 회담재개의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될 것이다.
2. 닛께이 신문 :
외무성은 12일 발표된 민정이관에 관한 한국의 “박의장 성명”에 대하여 동일, 정보문화국장 담화로 정식으로 환영의 뜻을 명백히 하는 동시에, 이로 인하여 한일회담재개의 제의가 있으면 일본측으로서는 회담재개에 응할 수 있는 조건이 어느정도 구비되었다는 판단을 굳게 하고있다.
그러나 외무성의 일부에는 미국정부의 민정이관에관한 강한 희망표명이 있었다던가, 또는 9월 국련총회를 앞에두고 한국정부가 국제적으로 고립화하는 것을 피하기위하여, 경우에따라서는 “내년중에는 민정이관”이라는 과감한 선을 표명할것이라고 이대하고 있었던 사정도있어, 2년후의 민정이관은 혁명사업 달성이라는 불가피한 사정이있었기는 하지만, 다소 기대에 어긋났다고 보는 면도 있다.
다만 군사정권 최대의과제라고 보여지고있었던 민정복귀의 계획을 당초의 계획대로 8월 15일 이전에 발표한데에 대하여는, 한국의 군사정권이 그만큼 통제력과 안정도를 높인 증거라고 보고있으며, 외무성에서는 이로서 군사정권이 최대의 난관을 돌파하였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금회의 박의장성명이 한일회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도 “기정방침대로 한국측으로부터 회담재개의 제의가있으면 이에 응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변동이 없다”라는 방침을 명백히 하고 있으며, 군사정권과 국교정상화의 교섭을 재개하는 방침은 변동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일교섭재개를 위한 예비교섭은 지난 2일부터 이세끼 아세아국장과 이동환주일공사 사이에서 시작되고 있는데, 이로서 회담재개를 위한 기초적인 조건은 구비된셈이므로 외무성측에서는 예정대로 9월 본회담재개의 예측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주일공사
수신시간 : 1961 AUG 12 PM 8 17

색인어
이름
이동환
지명
한국, 한국, 토이기, 파키스탄, 버-마, 한국, 한국, 미국, 한국, 일본, 한국, 한국
관서
외무성, 외무성, 외무성, 외무성, 한국 혁명정부, 외무성, 한국정부, 외무성, 외무성, 미국정부, 한국정부, 외무성, 외무성
단체
국련한국부흥통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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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자 박 의장 성명에 관한 신문기사 송부의 건 자료번호 : kj.d_0009_0010_0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