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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부록 6. 조선에서 근무하며 9월 26일 밤 당직 중이던 러시아 신민 세레딘 사바틴의 증언

№211에 첨부
1895년, 서울.
 
조선에서 근무하며 9월 26일 밤 당직 중이던 러시아 신민 세레딘 사바틴의 증언
 
9월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밤 12시 무렵 저는 궁궐 내부를 순찰하던 중, 남문의 성벽 너머에서 작은 소리를 들었으며, 성문 전면에 집합한 신식 조선 군사들과 그 뒤쪽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일본군 분견대를 목격했습니다. 조선 군대는 성문 앞에서 2시까지 계속해서 고함을 지르고 소란스럽게 한 뒤, 점차 해산했습니다. 궁궐수비대의 당직사령 ‘진’은 며칠 전 궁궐의 경찰과 싸웠던 조선 군사들이 자신들의 2개 연대가 해산될 것이라는 소문에 걱정이 되어 용서를 구하고 자신들의 요청 몇 가지를 밝히기 위하여 궁궐 앞에 모인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진의 말에 따르면 군사들의 시위는 해산하도록 설득한 일본인들 덕택에 아무 성과 없이 종결되었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 온 저는 제가 아는 중국인 한 명이 다음날 밤 궁궐에서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해 주기 위하여 저를 찾아 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저는 저녁 7시 재차 궁궐로 향하는 길에, 앞서 말씀드린 예의 중국인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궁궐에 출근하지 말라고 집요하게 설득했으며, 특히 밤에는 궁궐에 남아 있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그 중국인은 저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할 수 없었으나, 그의 너무나 사리가 맞지 않고 문법도 맞지 않는 얘기 속에서, 어떤 음모가 꾸며졌고, 그 음모가 이날 저녁에 실행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주모자는 모든 조선 군사라는 사실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궁궐에는 폭동 또는 무엇인가 준비 중이라는 최소한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밤이 되자 성벽과 도로에는 오직 초병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 밤 궁궐에 남아 있던 유일한 유럽인들로는 다이(Дай) 장군과 저뿐이었습니다. 새벽 4시 궁궐수비대장주 026
번역주 026)
세레딘 사바틴의 증언에서는 이학균이 궁궐수비대장(Полковник дворцовой полковник)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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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균이 우리에게 달려와서, 궁궐 전체가 폭동을 일으킨 군사들에 의하여 포위되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거의 옷을 입은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던 저는 순식간에 준비를 마치고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궁궐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소음이 들리지 않았으며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밖으로 나온 다이 장군이 자신과 함께 가장 가까운 문으로 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성벽을 따라 북서문으로 향했습니다. 우리들은 밝은 달빛 아래 넓은 틈을 통해서 성벽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일본군 분견대가 정렬해 있는 모습을 명확하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간에 작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면서 거의 부동자세로 정렬해 있었습니다. 우리의 발자국 소리와 목소리를 들은 그들은 누군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나뉘어져 성문 옆에서 대형을 갖추어, 우리의 감시로부터 거의 완전하게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들은 반대편에 위치한 북동문으로 서둘러 향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본인에 의해 훈련 받은 약 300명 정도의 신식 조선 군사들로 이루어진 군중이 북동문 앞에 모여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군사들의 수로 볼 때, 그들이 궁궐을 포위하고 있는 조선 병사들의 주력이어야만 했습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확신한 저희들은 서둘러 궁궐로 되돌아 왔으나, 궁궐에서는 이미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즉시 다이 장군은 궁궐 수비를 위한 대책 수립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무 것도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당직실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진’ 대위 역시 없었습니다. 나머지 장교들과 궁궐수비대의 일부 역시 어디론가 도주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수비대를 가지고는 무엇인가 결정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두 정신을 잃은 상태였으며, 지휘부의 명령에 최소한의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침 5시 궁궐의 서쪽 지역에서 갑자기 총성이 울렸습니다. 성벽에 통나무와 사다리를 기대어 성벽을 월담한 일부 조선 군인들이 궁궐 안에 있었습니다. 초병들은 첫 번째 총격을 받고 도주했으며, 거의 모든 궁궐수비대원도 그들처럼 도망쳤습니다. 조선 군인들이 성벽을 넘어 성문의 빗장을 열어주는 동안 다이 장군은 많지 않은 잔류 병력을 집결시켜, 궁궐 보호를 위해 그들을 간신히 배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문과 북문을 열고 침입해 들어온 음모자들이 몇 차례에 걸쳐 총격을 가했으며, 그 뒤를 이어 수차례의 일제사격을 가하자/그들은 위쪽을 향해 총을 발사했는데,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겁만 주려는 의도였음이 명백합니다/, 궁궐수비대는 도망치면서, 도중에 만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뒤를 따라 도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다이장군이 있는 문으로 밀쳐 들어갔으며, 다른 일부는 제가 서 있었던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총격을 받은 것처럼, 저를 끌고서 왕후의 거처 안쪽으로 쇄도해 들어갔으며, 이미 국왕의 유럽식 궁전을 돌아갔습니다. 전체 군중은 뒤로 물러나, 국왕과 왕후의 처소를 연결해 주는 문으로 향했습니다. 그 즉시 저는 위 처소에서 누군가를 찾으며, 앞뒤로 뛰어다니고 있는 민간인 복장의 일본인 몇 명을 목격했습니다. 마당 한 가운데 40명의 조선 군인으로 구성된 분견대와 일본 장교가 서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정원으로 통하는 문과 궁궐의 내원으로 통하는 문 등, 총 2개의 문에 각각 2명의 일본 군사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나무로 된 작은 별채의 벽으로 저를 밀쳤습니다. 이에 저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자동적으로 판자를 움켜쥐었습니다. 도망치던 다수의 사람들은 제 옆을 지나 정원에 숨었습니다. 저는 왕후의 거처에서 벌어진 드라마의 유일한 외국인 목격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왕후의 곁채가 있는 안뜰은 일본인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총 20-25명 정도였으며, 민간인 복장에 일본도를 차고 있었으나, 일부는 칼을 빼어든 상태였습니다. 긴 일본도를 무장한 한 일본인이 그들을 지휘했는데, 아마도 지도자인 것 같았습니다. 일부의 일본인들은 궁궐의 좁은 통로와 다양한 건물들을 샅샅이 뒤지며 찾고 있었습니다. 다른 일본인들은 왕후의 방 한가운데로 침입한 뒤, 그 안에 있는 여자들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물어보면서 여자의 머리를 움켜잡고는 창문으로부터 땅바닥으로 억지로 질질 끌어냈습니다.
그들의 폭행에 대한 목격자인 저를 상대로 일본인들이 어떤 적대적 행위가 있을까 걱정이 되어, 저는 제 근처에 서 있던 일본인 장교에게 다가가서, 저를 보호해 달라고 영어로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장교는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행동했기 때문에, 저는 일본어로 제가 원하는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부탁을 거절하고는 저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청산해야 한다고 이해시키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본 초병들에게 요청하려는 저의 시도 역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즉 그들은 그저 신경을 쓰지 않으며 내 말도 안 들린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저는 일본인들의 지도자에게 부탁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에게 재가 처한 입장의 모든 위험을 설명한 뒤, 제가 퇴궐하는 것을 도와 줄 일본인을 배정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 말을 경청한 일본인은 “당신의 이름은?”이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제 이름을 말했습니다. “당신의 직업은?” 건축가입니다. “좋소. 당신에게는 손대지 않겠소.” 여기서 그는 두 명의 조선 군인들을 호출했는데, 외견상 조선 군사 역시 일본인의 지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본인 지휘관은 그들이 제 옆에 서 있도록 하명했습니다. “당신은 어디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이 장소에 조용히 서 계시오”라는 말을 첨언한 일본인은 어떤 명령을 내리기 위하여 어디론가 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면서, 일본인들이 왕후의 거처에서 모든 물건의 밑바닥이 위로 올라가도록 뒤집어 놓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두 명의 일본인이 궁녀들 중의 한 명을 움켜쥐고는 건물로부터 밖으로 끌고나왔으며, 그 상태에서 작은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몇 발자국 정도 뛰었는데, 제가 서 있던 장소는 그 건물로부터 30피트도 안 되는 거리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저를 지나쳤습니다. 제가 서 있던 장소에서야 제가 있는 것을 알게 된 일본인 두 명은 그 즉시 저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모른다고 대답하고는, 제 주위에 배치된 두 명의 군사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 군사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저를 조용히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알고 지내던 조선인 한 명이 제가 있는 궁궐의 내부로 들어왔습니다. 궁궐에서 필경사 또는 비서로 일하는 그는 실로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그것도 소요의 가장 중심지에서 저를 본 후, 확실히 놀라움에 멍해졌습니다. 그러나 곧 바로 의식을 되찾은 듯 스쳐지나간 예의 일본인들을 따라잡은 뒤, 무엇인가를 얘기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즉 제가 건축가일 뿐만 아니라, 궁궐에서 근무도 하는 만큼, 그런 이유에서 아마도 궁궐의 배치나 거주자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듯합니다. 상기 두 일본인들과 때마침 위 조선인이 있는 곳에 도착한 세 번째 일본인들은 재차 저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제 옷자락을 움켜잡은 그들은 왕후의 처소로 저를 끌고 가서, 어디에 왕후가 숨어 있는지 가리키도록 요구했습니다. 그에 더하여 한 일본인은 영어로 중단 없이 다음의 말을 반복했습니다. “왕후는 어디 있는가? 우리를 위해 왕후가 누군지 가리켜라!” 저는 왕후께서 어디계신지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다는 점을 설명해 주어 그들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 말을 믿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왕후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를 위해 왕후가 누군지 가리켜라!”라는 말만을 되풀이 했습니다.
다행이도 멀지 않은 곳에서 일본인 지휘자가 재차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상황을 목격하고는 그 즉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를 붙잡고 있던 일본인들과 조선인은 일본어로 그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저를 돌아다보며 “우리는 왕후를 찾아낼 수가 없다. 당신은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그녀가 어디에 숨었는지 우리에게 가리켜주기 바라오”라고 날카롭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제 얘기를 잘 들어 달라고 그에게 부탁한 뒤, 왕후께서 어디계신지 모를 뿐만 아니라, 고위 계층 조선 여성들의 격리된 생활로 인하여 난 단 한 번도 왕후를 본 적이 없으며, 나 스스로도 처음으로 왕후의 처소 지역을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본인 지도자는 아마도 제 결론과 저를 놓아 달라는 부탁에 동의한 듯 보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두 명의 군사를 제공해 주었으며, 그들은 중앙 도로를 따라 배치된 일본 군인들을 피하기 위하여 우회로를 이용하여 저를 궁중으로부터 데리고 나왔습니다. 옥좌가 있는 대형 홀의 옆을 지나면서 저는 일본군 병사, 장교 그리고 조선의 대관들로 이루어진 빽빽한 사람 벽에 둘러싸여 있는 왕후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 번역주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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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6. 조선에서 근무하며 9월 26일 밤 당직 중이던 러시아 신민 세레딘 사바틴의 증언 자료번호 : kifr.d_0004_0170_020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