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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1895년 10월 31일, 일본 공사관에서 개최된 일부 외국 대표들의 비공식적 회의 의사록

Протокол частного митинга некоторых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в Японской Миссии, 31-го Октября 1895 года.
  • 구분
    의사록
  • 문서번호
    АВПРИ,ф.150,оп.493,д.6,лл.225-229об.
  • 원소장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대분류
    정치/외교
  • 세부분류
    왕실관계/외국인/국제관계
  • 주제어
    을미사변, 베베르, 실, 힐리어, 회의 의사록
  • 색인어
    고무라, 실, 베베르, 힐리어, 대원군, 오토리, 러시아, 조선, 박영효, 알렌, 이노우에, 일본 공사관, 총리대신, 러시아 수병, 일본 경비대, 소시,
  • 형태사항
    10  , 필사본  , 러시아어 
부록 4.
№358에 첨부.
서울, 1895년.
 
1895년 10월 31일주 001
번역주 001)
러시아 구력. 서양력으로는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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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공사관에서 개최된 일부 외국 대표들의 비공식적 회의 의사록
 
참석자: 사전 협의에 의거하여 고무라주 002
번역주 002)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郎, 1855.10.26-1911.11.26), 조선주재 일본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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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방문한 실주 003
번역주 003)
실(John M. D. Sill). 조선주재 미국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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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베베르 씨 그리고 힐리어주 004
번역주 004)
힐리어(Walter Caine Hillier, 禧在明.). 서울주재 영국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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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실 씨는 이번 방문이 사태의 현재 상황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만약 그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면, 베베르 씨께서 몇 가지 비공식적 성격의 통보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뒤, 베베르 씨에게 발언을 시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베르 씨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신이 언급할 것들 중에서 많은 것들은 개인적 의견의 표현으로 판단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베베르 씨는 첫째, 러시아는 조선에 가장 근접한 이웃 국가라는 상황의 논리에 따라, 조선의 번영에 관한 문제에 있어 다른 모든 열강들 보다 더는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그 정도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 전 베베르 씨는 서울주재 러시아 대표로 임명되셨으며, 자신에게 하달된 훈령의 전반적 의미는 평화와 화합을 유지하고 국왕과 그 영토의 행복을 위해 전력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했다. 베베르 씨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이런 훈령에 따라 행동하려고 진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베베르 씨는 러시아 정부가 근심하며 유지하려는 대상인 이런 평화와 화합이 최근 15개월 동안 네 차례 이상이나 위배되었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할 것 같다고 했다.
첫 번째 위배는 평화로운 시기였던 작년 7월에 일본 군대가 궁궐을 점령하면서 발생했다고 했다.
두 번째 위배는 은퇴하여 칩거하던 대원군을 그곳으로부터 끌어내어 그에게 권력을 하사했던 당시로써, 당시 베베르 씨는 대원군을 비호하고 개혁을 실행하면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적절한 시점에서 오토리주 005
번역주 005)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 조선주재 일본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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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에게 경고해 주셨다. 결국에는 오토리 씨 역시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세 번째로는 국왕이나 조선 정부가 결코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었던 박영효가 조선으로 귀국하면서 강력한 동요가 발생했으며, 그가 정치 무대에 다시 등장하면서 조선에서의 평온이 깨졌다고 했다. 당시 실 씨와 베베르 씨는 모든 위험이 비슷한 방식으로 제시되었다는 사실에 오토리 씨가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요청했다. 실 씨와 베베르 씨는 자신들의 예상이 다음에 발생한 사건에 의하여 옳았던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즉 박영효의 반역죄가 두 번째로 폭로되면서, 그는 자신의 출세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침내 네 번째로 조선에서의 평온이 위배되었던 것은 9월 26일의 사건주 006
번역주 006)
러시아력. 서양력으로는 10월 8일, 즉 을미(1895)년의 왕후시해사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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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다. 베베르 씨는 이 마지막 경우에는 일본의 군사교관들과 고문들, 실제로 복무 중이던 일본인 장교들과 병사들, 소시(壯士, Soshi)와 일본 신문사의 특파원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승낙 하에 사건이 실행되었다고 했다. (의미에 따른 것이 아니라 순서에 따라서) 결국 이 사건에는 일본 공사관 자체가 개입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했다. 이노우에주 007
번역주 007)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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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이곳에 체류하면서 알렌주 008
번역주 008)
알렌(Horace N. Allen,安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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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통하여 외국인 대표들에게 조선의 총리대신과 가졌던 대담에 대해 통보해 주었다. 이노우에 백작은 대담을 하는 동안 왕후의 폐서인에 관한 조령의 공표를 ‘조선의 역사에 있어 가장 암울한 오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베베르 씨는 일본 공사관 덕분에 권력을 장악한 조선의 대신들에 의하여 왕후가 폐후되셨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다. 따라서 베베르 씨는 왕후 시해(이 범죄가 실질적으로 자행되었는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이다)라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던 외국의 신민들이 궁궐을 습격한 것은 이노우에 백작이 그렇게 엄밀하고도 공정하게 비난했던 왕후의 폐비보다도 조선이라는 국가의 역사에 있어서 훨씬 더 암울한 오점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베베르 씨는 자행된 범죄를 수사하기 위하여 현 시점까지도 이루어진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베베르 씨는 자신이 위와 같이 조선에서의 평화와 평온이 위배된 다양한 경우들을 언급한 이유는, 이러 무질서들이 애석하게도 일본 공사관의 행위에 의하여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노우에 백작께서 며칠 전 러시아 공사관을 방문하셔서, 평온을 복구하기 위한 특별한 제안이 없는 한 일본 정부는 자국 군대를 이용할 의도가 없다고 말씀하셨을 당시, 이에 대해 베베르 씨는 과거의 사건들 그리고 특히 현재의 사건들을 고려할 때, 일본정부는 스스로 솔선하여 이 사태의 해결해야만 하는 직접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음을 밝혔다. 또한 베베르 씨는 조선, 그리고 특히 자신의 부인을 잃으신 조선의 국왕께 가해진 해악을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일본 정부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베르 씨는 계속해서 이 세상의 모든 정부들은 일본 스스로가 이런 불행을 정정하기 위한 첫 행보를 취하는 모습을 기대할 것이며, 그런 조치를 취하도록 일본 정부에 제의하고 그런 조치들이 승인될 것임을 보증한다면 아마도 모든 정부들은 실로 놀라워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베르 씨는 일부 외국 대표들의 회의에서 국왕의 안전, 평화와 안정은 오직 강력한 (강제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복구될 수 있으며, 그런 방법을 채택해야 하는 필요성은 공통적으로 인정된 사안이고 따라서 일본 부대가 국왕을 보호하기 위하여 몇 가지 조건 하에 궁궐로 진입하라는 제안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이미 본국 정부에 전문을 발송했다. 고무라 씨는 이 전문을 발송하면서 일본 정부는 해외 열강들과 분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위험 때문에 강력한 대책을 채택하기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성명했다. 이에 대해 베베르 씨는 자국 정부로부터 전문을 수령했으며, 본 전문에서 러시아 정부는 질서의 회복을 위해 일정한 제한이 가해진 모든 방법을 채택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점을 통보해온 바, 이제는 그런 사실을 고무라 씨에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베베르 씨는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본 정부는 군사력에 의존할 경우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런 우려와는 반대로, 베베르 씨 자신이 이미 동의를 표한 바로 그런 제한적 조건 하에서 군사력에 의존할 경우, 러시아 정부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가해지지 않을 것임을 고무라 씨에게 확신시켜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질서와 안정 그리고 국왕의 안전 역시 동일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의 경우 지난번 의사록에 개략적으로 설명되어 있으며, 나중에 실 씨가 고무라 씨와의 만남에서 보충해 드렸다고 했다. 결론 부분에서 베베르 씨는 자신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질서, 평화 그리고 안정이 복구된 모습과 국왕의 권위가 보장된 모습을 목격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베베르 씨는 일본 정부는 앞서 언급한 목적을 위해 어떤 대책을 실행에 옮길 계획인지를 고무라 씨에게 문의해야만 할 것 같으며, 동석한 동료들 역시 자신과 함께 이런 질문을 던지자고 제안했다. 베베르 씨는 상황이 비관적이라고 하면서, 안정은 아직 보장되지 않았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날을 거듭할수록 위험은 배가될 뿐이라고 하셨다.
고무라 씨는 러시아 정부의 우호적인 태도 및 질서와 평화를 회복하고 국왕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대답했다. 고무라 씨는 만약 외국의 대표들이 자국 정부의 훈령에 기초하여 제안하지 않을 경우, 일본 정부는 자신의 군부대를 궁궐로 진입시킬 의사가 없다고 자신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에 고무라 씨는 실 씨와 힐리어 씨의 경우 자국 정부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위와 같은 방법을 승인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실 씨는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질서와 안정 그리고 국왕의 안전을 위하여 만약 불가피하다고 밝혀질 경우 군사력을 사용하도록 절실히 권고하고 있다는 내용을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본국 정부에 전문을 발송했으며, 동료들의 권고라는 형식을 이용하여 만약 본국 정부가 자기 동료들이 옳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자신의 행동을 중단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본국 정부에 제공했다고 답했다. 이런 식으로 실 씨는 침묵은 동의를 의미할 수 있는바, 훈령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후 모든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리고 고무라 씨의 강력한 요청을 고려하여 실 씨는 정부의 답변을 요구하는 전문을 재차 발송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직접적인 답변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실 씨는 자국 정부가 자신의 신중함에 신뢰를 표명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실 씨는 위에서 제안된 조치가 의심할 바 없이 승인받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성명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밝혔다. 실 씨는 일본 정부가 조선과 조약을 체결한 모든 열강들로부터 행동에 임해 달라는 제안서를 요청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도가 지나친 것임을 부언했다. 고무라 씨는 자국 정부가 행동의 개시를 위하여 조선에 자국 대표를 상주시키고 있는 모든 열강들로부터 답변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 않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고무라 씨는 실제로 그런 요구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실 씨는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행동에 절대로 착수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실 씨는 일본 정부가 자국민들이 피고인인 죄를 씻으려고 모든 해외 열강의 허락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베베르 씨는 지금 이것이 문제의 제기를 완전하게 왜곡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의무는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지, 관심의 차이가 있는 열강들이 행동을 개시해 달라고 일본에게 부탁할 때까지 양팔을 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일본정부가 행동해 줄 것을 제안하지 않았으며, 만약 일본이 자신의 직접적인 의무를 실행할 경우, 그런 일본의 행동을 상대로 최소한 러시아는 아무런 분규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명했을 따름이었다는 점을 고무라 씨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실 씨 역시 일본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제안할 것을 자국 정부에 요청하지 않았다고 성명했다.
힐리어 씨는 다소간 수준 차이는 있지만 자신도 실 씨와 동일한 입장이라고 고무라 씨에게 밝혔다. 힐리어 씨는 일본군의 궁궐 진입에 관해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이 국무대신에게 전문을 발송한 바, 첫 번째는 외국 대표들이 이런 의견을 일본 대표에게 제안했으며 고무라 씨가 그것을 승인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였으며, 두 번째는 이노우에 백작과 고무라 씨가 이런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에 동의하셨으며, 고무라 씨의 경우 이 조치가 저항에 직면하지 않을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힐리어 씨는 일주일 전에 발송된 두 번째 전문에 대한 답신을 아직 수신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견해에 따르면, 답변이 없다는 것은 영국 정부가 모든 외국 대표들이 승인한 조치에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충분히 명확하게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일본 정부가 이 사안에 대한 영국 정부의 견해를 확인하고 싶다면, 도쿄주재 영국 공사를 통해서 혹은 런던주재 일본 대표를 통해서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직접적일 것이라고 했다. 힐리어 씨는 자신의 입장에서 조선에 체류하면서 일본 정부 스스로 의논할 수 있는 도쿄주재 영국 공사와 일본 정부 문제에 관하여 자신의 의견을 토론하는 것이 전적으로 편리한 것은 아닐 수 있으나, 영국의 외무부는 힐리어 씨 자신의 견해를 이미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고무라 씨는 정황이 그렇다면 그 자신은 동료 분들의 동의하에 현재의 대화 내용, 즉 실 씨, 베베르 씨 그리고 힐리어 씨가 일본 정부는 일본 군대를 동원하여 일시적으로 궁궐을 점령하는 방법으로, 질서 회복 및 국왕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는 그런 내용으로 지금 즉시 본국 정부에 타전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고무라 씨는 위 대표들이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국왕 또는 외국 대표들에 의해 일본 경비대가 궁궐 내에 더 이상 주둔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될 경우, 그 즉시 궁궐 점령을 중단한다는 의미로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타전하겠다고 부언했다.
이런 전문의 내용은 승인을 받았다.
베베르 씨는 현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에 주의를 돌렸다. 즉 베베르 씨의 설명에 따르면, 권력을 찬탈한 내각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일본의 행위를 보면서, 다른 열강들도 일본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 내각은 더 이상의 외국 대표들로부터의 간섭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사실을 밝혔다. 따라서 이 내각의 행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과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지적했다. 이에 베베르 씨는 조속한 시일 내에 국왕의 알현을 완전하게 금지하는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전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만큼, 다음의 사실, 즉 향후 베베르 자신은 러시아 수병들의 호위를 받아 입궐할 것인데, 만약 자신의 입궐이나 국왕의 알현을 금지하려는 어떤 시도나 조치가 이루어질 경우, 그로 인하여 발생할 수도 있는 충돌의 모든 책임은 고무라 씨에게 있다는 사실을 고무라 씨에게 반드시 경고해 두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고무라 씨가 자신의 힘으로 예방할 수 있는 상황에 의해 충돌이 야기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 씨 역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가고 있는 하루하루가 현재의 비합법적 내각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이미 길거리의 인민들은 해외 열강들이 국왕을 도와주는 것을 원하지 않거나 아니면 도움을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실 씨는 이틀 또는 삼일 전에 내각의 신임을 얻고 있는 인물을 통해 과거는 묻어버리고 현재의 내각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이 보다 더 분별 있는 행동일 것이라는 암시를 직접 전달받았음을 밝혔다. 실 씨는 일본에서 발행되며, 세간에서 추측하는 바와 같이 일본 정부의 견해를 대변하고 있는 한 외국 신문의 기사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부언할 수 있다고 했다.
실 씨는 모든 위험은 뒤늦게 조치를 취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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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주 002)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郎, 1855.10.26-1911.11.26), 조선주재 일본 공사바로가기
  • 번역주 003)
    실(John M. D. Sill). 조선주재 미국 공사바로가기
  • 번역주 004)
    힐리어(Walter Caine Hillier, 禧在明.). 서울주재 영국 총영사바로가기
  • 번역주 005)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 조선주재 일본 공사바로가기
  • 번역주 006)
    러시아력. 서양력으로는 10월 8일, 즉 을미(1895)년의 왕후시해사건을 말한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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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0월 31일, 일본 공사관에서 개최된 일부 외국 대표들의 비공식적 회의 의사록 자료번호 : kifr.d_0004_0170_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