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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태평양 분함대장이 해군대신에게 발송한 1896년 11월 14일자 №2143 서한의 사본

Копия с письма Начальника эскадры в Тихом Океане, от 14 Ноября 1896 г. №2143, Управляющему Морским Министерстовм
  • 구분
    서한
  • 저필자
    태평양 분함대장
  • 수신자
    해양대신
  • 발송일
    1896년 11월 14일(1896년 11월 14일)
  • 문서번호
    АВПРИ,ф.138,оп.467,д.153,лл.67-70об.
  • 원소장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대분류
    정치/외교/교통
  • 세부분류
    정치세력/국방·군사/이민/철도
  • 주제어
    군사교관단, 철도 부설, 탐사
  • 색인어
    태평양, 분함대장, 해양대신, 파벨 페트로비치, 블라디보스토크, 원산, 부산, 제물포, 서울, 철도, 평양, 베베르, 고문, 푸탸타, 그레먀시, 코르닐롶, 흐멜레프, 아파나시예프, 드미트리 돈스코이, 이모탤리티, 래틀러, 보스턴, 나히모프, 코레예츠, 만주르, 목포, 카르네예프, 야마가타, 스트렐비츠키, 한반도, 일본, 해군, 군사 원정
  • 형태사항
    8  , 타이핑  , 러시아어 
기밀 엄수.
 
파벨 페트로비치주 001
번역주 001)
파벨 페트로비치 티르토프(Павел Петрович Тырто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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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블라디보스토크를 출항한 저는 10월 16일 조선의 가장 중요한 항구들에 기항한 뒤, 우리나라 공사를 접견하기 위하여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제가 원산, 부산 그리고 제물포에서 직접 목격한 것에 기초하여 각하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보고 드립니다.
조선의 전반적인 상황은 외견상 평온합니다.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 역시 확연하게 개선되었습니다. 과거의 오만함과 야비함은 일견하기에도 평화적 행태로 바뀌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위의 항구들, 특히 무역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제물포에 거주 중인 일본 주민의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제물포로의 이런 이주는 주로 경인선 철도 부설 문제의 해결에 따른 것입니다. 철도 노선의 방향 조사는 이미 종결됐으며, 내년부터 미국회사가 부설작업에 착수할 것입니다. 총 연장 40km에 특별한 난공사 구간도 없어서 18개월 이내에 완공될 것입니다. 제물포와 관련하여 말씀드리면, 프랑스인 기사에게 부설권이 제공된 서울-평양주 002
각주 002)
본문의 Темъянг, 즉 템양은 Пеньянг, 즉 평양의 오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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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 역시 제물포의 발전 및 장래 제물포가 상업적으로 중요해지는데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생활했던 최근 6개월 동안 개선된 모습들만 눈에 들어왔으며, 서울은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국내의 평온 복구, 국왕 권력의 강화, 재정 정상화 등은 조선 국왕이 우리 공관으로 이어한 이후부터 조선 사태의 진행과정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작용한 결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침착하면서도 초지일관한 베베르 씨의 행동,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그의 지식, 그리고 마침내 그에 대한 조선 국왕의 특별하고도 폭넓은 신뢰에 의해 달성된 것입니다. 저는 세 차례에 걸친 서울 방문과 국왕을 알현하는 석상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왕께서는 직접 우리 외교대표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표명하셨으며, 조선이 곤란에 빠졌던 모든 상황 속에서 그가 취한 대응 방식의 진가를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국왕께서 저에게 이렇게 언명하신 이유는 황제 폐하에게까지 보고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알현하는 석상에서 국왕께서는 베베르 씨를 서울로부터 소환한다는 소문으로 인해 몹시 비탄에 젖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소환이 불가피하다면, 베베르 씨를 국왕의 고문으로 초빙할 수 있도록 요청하실 것이니, 이를 황제 폐하에게 전해 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지금의 러시아 공사가 서울에 체류하는 것이 전 분야에 걸쳐 러시아에게 유익하며, 러시아 정부를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분규를 야기하지 않고서도 우리 러시아의 영향력이 점증될 것이라는 인식하고 있는 만큼, 위의 모든 사실들을 각하께 자세하게 보고드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가 서울주재 러시아 대표의 후계자로 새로이 임명된다 할지라도, 그는 우리가 이미 달성한 성과들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는데 적지 않은 난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일부 정파들의 소요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그 한 복판에서 우리가 점하고 있는 조선에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대표는 위와 같은 과제를 수행하기 곤란할 것입니다. 그는 조선의 정치적 상황 중 일부를 파악하지 못할 것인바, 그로 인해 조선 같은 나라에서는 실로 의외의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문을 발송한 바와 같이, 프리아무르 총독의 요청에 따라 총참모부 소속의 푸탸타(Путята) 대령, 동부 상비대대 소속의 위관 2명, 군의관 1명 그리고 총 12명의 하급 군사(이 중 10명은 하사관)들이 조선의 사절단과 함께 “그레먀시(Гремящий)” 호 편으로 제물포를 향해 출항했습니다. 푸탸타 씨는 앞으로 조직될 조선 군대의 수석 교관이며, 나머지 군사들 역시 교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 군사 교관단의 첫 번째 과업은 국왕 경비대를 조직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모든 가용 병력 중에서 800명이 선발되었습니다. 본인은 우리 교관들의 지휘 하에 열병식장에서 그들이 훈련받는 모습을 이미 볼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식 구령에 수비대용 교범 역시 러시아식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상기해야 할 것은 훈련의 기초가 육군이 아닌, 해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조선 최초의 러시아 군사교관은 “코르닐로프(Корнилов)” 호에 소속된 흐멜레프(Хмелев) 중위인데, 그가 올해 2월부터 조선 군대의 훈련과 구령 그리고 수비대용 교범의 번역 등을 위해 지치지 않고 작업에 임했음은 물론, 궁궐 수비의 임무를 부여받은 대대에서 발생한 사관의 결원을 보충하고자 선별된 청년들의 군사교육에도 착수했기 때문입니다. 위 대대의 훈련 수준에 따라 국왕께서는 우리 공사관으로부터 지금 건설 중인 궁궐로 환궁하실 것입니다. 푸탸타는 상기 대대가 신뢰할 수 있는 근무능력을 갖춘 상태에 이르려면 3월은 지나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군사교관단 장교 중 한 명인 아파나시예프(Афанасьев) 육군 중위는 국왕 경비를 책임지고 있으며, 군사교관단에 소속된 하사관들은 조선인 장교들에게 도움을 주어 중대를 지휘할 것입니다. 러시아 공사는 본인의 요청에 따라 7월부터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Дмитрий Донской)” 호의 상륙부대를 전함 두 척의 병력으로 구성된 혼성경비대로 교체하는 것에 동의하셨습니다. 그러나 11월부터는 다시 1등급 전함을 정박지로 파함해 달라고 요청하셨으며, 이에 본인은 각하께 전문으로 이미 보고 드린 바와 같이, 러시아 공사의 요청을 이행했습니다.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제물포 항에 대규모 전함이 주둔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겨울철에는 초소의 수를 늘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경비대가 96명까지 증원되어야 합니다. 둘째, 러시아의 서울 내 상황을 고려하면 정박지에 주둔 중인 우리의 해군력이 다른 국가의 그것보다 약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서울을 방문할 당시 제물포의 정박장에서는 영국의 순양함 “이모탤러티(Immortalite)” 호와 소형단정 “래틀러(Rattler)” 호 그리고 미국의 1등급 순양함 “보스턴(Boston)” 호 등이 정박 중이었습니다.
본인은 제물포 항에 “나히모프(Нахимов)” 호를 잔류시킨 후, 포함 “코레예츠(Кореец)” 호에게 공사관으로부터 경비대가 도착하는 즉시,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지도조차 없는 목포로 출항하여 그곳을 측량함으로써 외해로부터의 수로와 만(灣) 등을 조사 중인 “만주르(Манждур)” 호의 작업을 이어서 수행하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목포에 관한 필요한 정보를 보고받는 시점까지는 그 항구에 대해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들리는 바에 따르면 군사적 측면에서 목포가 지닌 장점이 과장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현재까지 해군 장교 중에서는 그곳을 방문한 이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카르네예프주 003
번역주 003)
카르네예프(В.П. Карнее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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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만이 금년 4월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행하면서 목포를 기항했을 뿐입니다. 그는 연안에서 순전히 피상적으로 관찰했지만, 군사적 측면에서도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선 연안에서 군용 주둔지를 위해 가장 적절한 지점을 선택하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위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입니다. 저는 위와 같은 입장에 기초하여 분함대의 항행이나 전함의 개별적 파함 등과 같은 적절한 기회를 통해, 위와 같은 목적에 적당한 조건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일부 지점을 가능한 한 면밀하게 조사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울에서 지니고 있는 영향력을 상기해보면, 자신의 권력과 가치를 상실한 일본이 현재의 상황과 타협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 독단에 불과합니다. 제 판단에 따르면, 일본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기 위해 적절한 상황을 이용하려는 관망정책을 채택했으며, 야마가타 원수가 참석하여 체결된 우리 러시아와 일본 간의 협약에 의거하여 언제든지 간섭할 수 있는 구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 조선에서의 상대적 평온과 우리의 우월한 지위가 조선 내의 정치적 돌발사건과 정부 전복으로부터도 보장 받을 정도로 영구하게 확립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자신의 권리 주장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해군력 증강을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에는 푸탸타 대령 이외에도 총참모부 소속의 스트렐비츠키주 004
번역주 004)
스트렐비츠키(И.И. Стрельбицкий)
닫기
대령이 서울주재 무관에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임무는 지지학적 작업 외에도 원산, 부산 그리고 서울 등지에 배치된 400명이 넘는 일본군을 감시하는 것입니다. 육군부에서 파견한 상기 두 대표들과의 대담을 통해 조선에서 우리의 적극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다른 사안들이 그들의 직접적인 의무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위와 같이 적극적 행위가 먼 장래의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저의 견해를 밝혀 언급하는 것이 의무라 생각합니다. 즉 제가 판단하기에는, 조선에서 일본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노골적인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머지않은 시점에 반드시 조선이 작지 않은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만약 조선에서 역동적인 행동 계획이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경우 해군과 육군의 공동 논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에 더하여 조선에서 군사 원정에 나서야 한다면, 해군은 모든 군사 원정의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만 합니다.
 
원본과 다름없음. 선임 서기관

  • 각주 002)
    본문의 Темъянг, 즉 템양은 Пеньянг, 즉 평양의 오기로 보인다. 바로가기
  • 번역주 001)
    파벨 페트로비치 티르토프(Павел Петрович Тыртов)바로가기
  • 번역주 003)
    카르네예프(В.П. Карнеев)바로가기
  • 번역주 004)
    스트렐비츠키(И.И. Стрельбицкий)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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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분함대장이 해군대신에게 발송한 1896년 11월 14일자 №2143 서한의 사본 자료번호 : kifr.d_0004_010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