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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 드미트렙스키가 Н.П. 시시킨에게 발송한 편지

Письмо П. Дмитревского Н.П. Шишкину

 
  • 구분보고서
  • 저필자П. 드미트렙스키
  • 수신자Н.П. 시시킨
  • 발송일1893년 5월 6일
  • 수신일1893년 6월 24일
  • 문서번호АВПРИ,ф.150,оп.493,д.4,лл.129-133об.
  • 원소장처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현소장처외교사료관
  • 대분류정치/외교(국제문제)/종교
  • 세부분류정치세력/동학/유교/기독교/외국인
  • 주제어동학, 유학, 보은집회
  • 색인어동학도, 조병식, 어윤중, 가와카미, 원세개, 르 장드르, 보은집회
  • 형태사항10 타이핑 러시아어 
 
1893년 6월 24일 수신함.
№42
№2683. bis
1893.6.25
제2아시아국 제12과 발행보에서 발췌
서울, 1893년 5월 6일

첨부 문서 1건

Н.П. 시시킨 귀하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각하

서울에서 동학에 대한 소문과 이에 대한 주민들의 흥분은 최근에도 여전히 줄지 않고 있고, 이러한 분위기가 며칠은 잠잠했던 것이 사실이나 다시 더욱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지난 4월 8일 №29로 드린 보고서에 이어지는 보고문을 각하께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4월 10일 공식회보들에 의해 발표된 바에 의하면, 전국의 유림단체 대표들이 유학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대책이 불가피하며 전조(前朝)시대에 탈락되었거나 선정되지 않았던 유학자들 - 중국인과 조선인 - 중 몇 명을 공식적으로 존경하는 대상으로 채택할 것을 국왕에게 청원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 유학자들의 반(反)선교 움직임에 대한 보도가 대부분을 이루었습니다.
이 청원서에 대해 4월 13일 국왕의 결정이 발표되었는데, 유학자 중 존경하는 현인으로 결정하는 일은 중요한 국가적 의미를 갖는 것이므로 신중성과 조심성을 갖고 논의를 해야만 한다는 것과 국왕이 유림들에게 유학자 중 존경하는 현인을 선정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학문에 매진할 것을 지시하였다는 거의 유사한 내용입니다.
전라도 지방 동학도들에 대한 소문은 잠잠해진 듯합니다. 대신에 전라도 위쪽에 위치하며 수도에서 가까운 충청도 지방에서 동학도들이 출현하였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주001]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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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집회를 말함

일본공사관은 정찰을 위해 충청도의 주요 도시로 일본인 2인을 파견하였습니다. 4월 12일 서울로 돌아온 일본인들이 보고한 바에 의하면, 충청도에는 매우 많은 동학도(수 만 명)들이 모여 있으나 매우 평화적으로 살고 있으며 비록 지방 관료들과 동학도들을 감시하라는 명령으로 서울에서 파견된 감시관들의 괴롭힘과 뇌물요구로 매우 고통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대항하여 봉기할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저에게 일본인들의 보고서 사본이 있습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파견한 일본인 외에도 많은 일본인들을 자주 충청도로 파견하였습니다. 제가 4월 18일 청국대표인 위안(Юань) [주002]
번역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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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개를 말함

씨를 만났는데, 그는 동학도들에 대한 소문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며 비록 충청도에 많은 동학도들이 있는 게 사실일지라도 그들은 어떠한 위험한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동학에 대한 소문은 더욱 강하게 횡행하고 있습니다. 저의 중국인 통역관들은 매일 저에게 동학도들이 서울로 향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몇 개의 지방도시가 그들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4월 21일 미합중국 대표가 저를 방문하였는데, 그의 조선인 통역관들은 위험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제가 요즈음 만난 조선의 고위관리들은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4월 22일 충청도 관찰사를, 그가 아주 청렴하다는 평판을 이유로 들으며, 서울 고관대작 중의 하나인 한성판윤으로 임명한다는 국왕의 명령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관찰사는 조병식으로 그는 1889년에 함경도 관찰사를 지냈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 이 당시 그는 원산항에서 곡물의 반출을 불허하였는데, 이로 인해 일본 구매상들이 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바로 그날 이곳에 있는 일본대표는 조선의 외부에 원산에서의 손실에 대해 15일 안에 금전으로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그는 이 문제로 가와카미 [주003]
번역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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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카미 소로쿠(川上璪六)를 말함

장군과 여러 일본인들을 대동하고 국왕을 알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이 일로 국왕을 알현한 사실이 요즘 알려져 이 이야기가 이곳에서 큰 흥분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나 이런 이야기들이 동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덮지는 못하였습니다. 4월 23일 청국대표와의 만남에서 저는 그에게 현재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당파에 반대하는 서울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동학을 지도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저의 추측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위안 씨는 단지 동학은 어떠한 위험도 표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확신만을 저에게 말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비록 지금은 위험성이 없을지라도, 서울에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의 지도하에 비밀리에 도움과 외부로부터 교사를 받는다면, 동학도들은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더욱 거세진 동학에 대한 소문은 제가 말한 위험성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조선정부 역시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였고, 국왕은 특별 명령으로 비상전권위원 [주004]
번역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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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선무사를 말함

어윤중을 임명하고 즉시 충청도로 파견시켜 동학무리들을 해산시킬 것과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그들을 폭도로 규정할 것이라는 요구가 담긴 칙령을 선포하라고 하였습니다. 동학도들에게 선언한 국왕의 칙령 번역을 첨부하옵니다. 이 칙령은 공식관보들에 5월 5일에나 기재되었습니다.
비상전권위원이 충청도에 도착하여 국왕의 칙령을 선포하자 동학도들은 동요하였고 해산할 의사를 밝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권위원은 이에 대해 4월 30일 밤 서울로 전보로 보냈습니다(이 전보의 사본은 5월 1일 공식적 인물에 의해 저에게 통보되었고 한(Хан) 장군이 이 전보가 진짜임을 개인적으로 확증해주었습니다). 이들의 동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5월 1일 저는 이곳에서 동학도들이 해산하고 있지 않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전권위원은 동학도들에 의해 단단히 만들어진 토성이 있고 체계적인 군사훈련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동학도들에게 무기는 없었고 군사훈련 시에는 나무 막대기로 무기를 대신하였습니다. 5월 1일 밤부터 2일 사이에 500명의 군사가 이곳에서 파견되었습니다.
5월 2일 제가 고용한 조선인들이 저에게 가져온 온 소식에 의하면 조선의 북쪽에 위치한 평안도에 동학도들이 출현하였으며 그들은 평안도의 24개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5월 3일 저녁 저는 르 장드르(Лежандр) 장군 집 오찬에서 청국대표를 만났습니다. 위안 씨는 지나치게 친절하였습니다. 생각건대, 동학도들의 움직임과 일본의 최후통첩이 그를 불안한 상태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당시 위안 장군은 상복을 아직 완전히 벗지 않은 상태였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초대를 거절해 왔는데, 이곳에서 저와 제 프랑스 동료가 지지하는 르 장드르 장군의 오찬에 응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불안한 상태에 있으며 지지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게다가 위안 씨는 오찬에 저와 프랑스 대표만이 참석한다는 것을 미리 확인하였습니다. 식사 중, 그는 우리에게 그가 국왕과 함께 오찬을 하기 위해 국왕을 알현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방금 전에 제물포로 700명의 승무원을 태운 청국군함 2척이 도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조용히 말하기를, 제가 4월 23일 대화에서 그에게 암시했듯이, 동학도들의 움직임은 실제로 서울에서 주도되고 있으며 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일본인들에게 비밀리에 내정 간섭할 구실을 주고 조선정부가 놀라 일본의 야욕에 큰 양보를 하게 하기 위하여 이곳에 혼란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외국인들이 이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참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일본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에, 조선에서 외국인을 내쫓고 권력을 준다는 전망으로 이 인물을 유혹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안 씨는 이 인물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저는 어제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5월 2일에 위안 씨는 국왕의 아버지인 대원군을 데리고 국왕에게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둘은 국왕에게 동학 지도자들을 애처롭게 여길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최근 3일 동안,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번역하여 첨부한 국왕의 칙령 외에, 동학도들에 대한 어떠한 소식도 접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전에 선포한 국왕의 명령들과 마찬가지로, 이 칙령 또한 표현이 애매모호합니다. 국왕은 무엇보다 우선하여 그와 그의 선조들은 항상 유교의 가르침을 높이려 노력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에서 왜 모든 조선인들이 유교의 가르침에 매진하고 모든 집에서 요와 순(고대 중국의 유교적 선량한 군주의 모범)의 치적에 대해 읽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국왕이 비록 자신의 모든 열성을 다하여 국가업무에 매진할지라도 그 스스로 특별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자신의 백성을 통치할 수 없는 사람으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는 백성의 불행에 대해 초연할 수도 없기에 백성을 착취하고 도적질하는 관료를 처벌합니다. 상대적으로 외국인을 몰아내라는 동학도들의 요구에 대해서, 그는 동학도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국가들과의 접촉한 적이 없고 국왕 자신이 조약을 체결한 외국인들에 대한 무지의 탓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고 단지 나라에 불행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론으로 국왕은 동학도들에게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과 주요 지도자를 넘기는 사람에게는 큰 포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주요 지도자를 넘길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순종하지 않고 폭도들과 함께하는 자들은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깊은 존경과 진정한 충성심을 표합니다.
각하의 충복 П. 드미트렙스키
 

주 001
보은집회를 말함
주 002
원세개를 말함
주 003
가와카미 소로쿠(川上璪六)를 말함
주 004
양호선무사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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