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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한국주재 러시아공사관에서 이즈볼스키에게 보낸 보고서

  • 구분
    보고서
  • 수신자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이즈볼스키
  • 발송일
    1908년 7월 22일(1908년 7월 22일)
  • 수신일
    1908년 8월 14일(1908년 08월 14일)
  • 문서번호
    АВПРИ,ф.150,оп.493,д.30,лл.313-317об.
  • 원소장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대분류
    외교(국제문제)
  • 세부분류
    외교정책/국제관계
  • 주제어
    간도 영토문제
  • 색인어
    이토, 이쥬인, 만주왕조, 중국정부, 사이토, 일본헌병, 아사히 신문, 장백산, 간도, 회령, 경성, 청진
  • 형태사항
    10  , 타이핑  , 러시아어 
1908년 8월 14일 수신
 
№27
서울, 1908년 7월 22일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이즈볼스키 각하께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각하주 001
번역주 001)
1908.7.22. 서울에서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이즈볼스키(А.П. Извольский)에게 보낸 보고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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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피건대 간도 문제는 현재 이미 서울 당국의 관할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합니다. 그것에 대한 회담은 도쿄에는 조금인데 반해 결정적으로 북경에 우월하게 이끌어졌습니다. 중국신문들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당국은 6월 말과 7월 초에, 아마도 일본인들이 간도를 한국영토의 일부로 보기 시작하고 민간인들과 관련된 재판업무에 간섭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북경에서의 간도에 대한 회담은 새로운 일본공사 이쥬인주 002
번역주 002)
이쥬인 히코키치(伊集院彦吉). 청국주재 일본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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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дзюин)씨의 도착을 기다리느라 임시 멈추어진 상태입니다.
분쟁의 영토에 비교적 적은 수의 일본헌병이 주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살피건대 중국인들은 간도에 자신들의 군사력 수를 2000명까지 증가시킨 것 같고 심지어 병영건설에 착수하였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보도하면서 신문 “니뽄”주 003
번역주 00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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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덧붙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 하에서 간도문제를 열린 상태로 남겨두는 것은 위험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다음과 같은 타협으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견해가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즉 한편으로 중국 상부권력을 인정하고, 다른 편으로는 한국인들에게 모든 이 지역에서 거주와 여행 및 상업의 권리를 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청진항에서 회령을 통과하여 길림에 이르는 철도부설 이권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만주와의 교류도 촉진시킬 것이고 장백산을 만주왕조 탄생장소로 여기며 매우 귀중히 생각하는 중국의 공명심도 만족시킬 것이다.
현재 간도문제에 대한 아마도 상당히 큰 분량의 기록이 중국정부에 의해 이미 도쿄로 보내졌을 것입니다. 이 기록은 사이토 대령이 북경 체류 시에 제출한 보고서에 대한 답변입니다. 일본정부는 답변을 위해 단지 이토(Ито)주 004
번역주 004)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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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으로부터 곧 있을 협상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간도] 귀속에 관한 답변 전달은 이쥬인(Идзюин)씨에게 위임되어 그가 도쿄에서 북경으로 도착할 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 길림 주지사에 의해 중국정부의 이름으로 간도에서 쌀의 반출을 금한다고 공고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농산물을 일정 정도 바로 이곳에 의존하던 한국의 함경도에는 민감한 타격이 될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길림 주지사와 적절한 교류를 하여 만족할 만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는 특별한 어려움은 없을 것처럼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신문들은 한국이 비록 간도를 중국영토로 인정하지는 않을지라도 한국은 적어도 한국공민들과 관련하여 중국 측이 그러한 조치를 실행하는 것은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마치 일본이 한국의 국제관계와 관련된 모든 일에서 한국의 대변자인 것처럼 말하면서 자국의 헌병들에게 간도에서 함경도로 곡물을 반출하기 원하는 한국인들을 백방으로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도 합니다.
간도에서 길림으로 이주한 수천의 한국인들이 일본군대와 충돌하였고 일본군인 40에서 50명을 살해했다고 상해에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후 일본신문들에 의해 반박되었는데 일본신문들은 마치 간도에서 그곳의 일본권력과 한국주민들 사이에 훌륭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칭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덧붙여 사이토 대령의 헌병에게 유일한 근심거리는 때때로 한국에서 간도로 몰래 들어와 약탈하는 자들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 빨치산 또는 폭도들이 간도에 모이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오래전에 나타났으며 여전히 이런 저런 방법으로 계속하여 생겨나고 있습니다. 최근 신문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한국의 도시인 온성 맞은편인 양수천자주 005
번역주 005)
현 길림성 도문시 양수진(凉水鎭)으로 함경북도 온성과 접경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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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凉水泉子, Нэн-су-чон-чжа) 마을에 다분히 많은 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답니다. 게다가 이런 결과로 이번 달 4일(17일)주 006
번역주 006)
4일(17일)에서 4일은 혁명전 러시아 구력이고 괄호안의 (17일)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신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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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 사는 일본인들은 불가결한 경우를 대비하여 그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자위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최근 한국의 북쪽에 있는 폭도들은 온성, 청송, 회령, 경흥, 경원 지역들에 모이기 시작한 듯하며, 그들은 1,0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소문들 중 최근의 것에 의하면 그들은 간도에 있는 수비대를 공격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간도에 대해 말하면서, 이미 위에서 신문 “니뽄”의 짧은 기사를 통해 언급한, 청진에서 회령을 통과하여 길림에 이르는 예상되는 철도에 관하여 몇 마디 말씀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길에 대해 그들의 신문들이 매우 특별히 상기시키는 것을 고려하며 판단해 보면, 일본인들은 어쨌든 이미 존재하는 경성과 청진에서 회령까지의 철도를 이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또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철도는 현재까지 여전히 협궤이며 생각건대 이 길을 따라 아직까지도 소형무개화차를 사람이 끌어서 운반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길의 길이는 영국 마일로 총 52마일이며 현재 아메노미야(Аменомийя)씨라는 사람의 주식회사 소유이고 현재까지는 만족할만하게 잘 작동되어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점진적인 발전에 따라 철도를 어느 정도 향상시켜야 함이 명백히 요구되고 있기 때문에 이 노선의 현재 소유주들은 일본 군부성에 상응하는 허가를 의뢰했습니다. 현재까지 이 철도는 명백히 일본군부성 관할 하에 있습니다. 일본군부성은 비록 철도 재건설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철도를 개인의 관할 하에 두는 것은 전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더군다나 바로 얼마 전 생긴 ‘동양척식회사’가 곧 활동할 것을 염두에 둘 때 더욱 그렇다고 얘기되고 있습니다.
일본신문인 “아사히 신문”에 가사이(Касаи)씨라는 사람이 이 철도에 대해 논하였는데, 그는 철도의 수익성을 고려할 때, 이곳에 말하자면 정말로 ‘진짜’철도를 건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소위 임시 철도를 건설하는 것이 250만 엔이 드는데 반해 진짜 철도를 건설하는 데는 단지 두 배인 500만 엔이 들것이라며 자신의 글에서 당연히 후자를 주장했습니다. 이 길이 궁극적으로는 즉 반드시 간도를 통과하면서 회령에서 길림까지 이어지는 것을 당연히 전제로 하면서, 그는 만일 이것이 외교적 통로를 통하여 실현된다면 바로 이것이 “분쟁영토” 문제의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음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보다 명료함을 위하여 본 보고서에 나오는 명칭을 표시한 한국의 북동지역 지도약도를 여기에 첨부하옵니다.
 
각하께 깊은 존경과 진정한 충성심으로 영광을 표합니다.
 
함경도 북동지역
함경도 북동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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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재 러시아공사관에서 이즈볼스키에게 보낸 보고서 자료번호 : kifr.d_0004_001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