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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일본에서 여순항이 갖는 군사적 의미

1894~1895년 전쟁에서 중국에 쉽게 승리를 거둔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다음 사항을 요구하였다. 1) 페스카도레스 군도주 011
각주 011)
중국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에 위치. 팽호군도(澎湖群島)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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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함께 포르모자주 012
각주 012)
대만의 옛 이름. 16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발견해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붙인 이름으로, 이 명칭은 1895년까지 유지되다가 일본에 의해 대만으로 개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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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양도할 것, 2) 여순항 요새를 포함한 요동반도를 양도할 것, 3) 중국으로부터의 한국의 독립을 인정할 것, 4) 전쟁배상금을 지불할 것.
이 요구들의 깊은 의미를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아주 자세하게 연구해야 한다. 만일 일본에게 자국의 과잉 인구를 한국으로 이주시켜야 하는 저항할 수 없는 요구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면, 그리고 이 때문에 현지에서 어떤 장애를 만난다면,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마도 한국을 계속 중국에 종속시켜 둔 채 일본인들을 한국으로 이주시키는 데 따르는 어떤 적절한 특혜와 그런 특혜를 실현하는 데 따르는 어떤 적절한 보장책을 중국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의 ‘독립성’을 인정할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인구밀도가 높은 요동반도를 여순항 요새와 함께 요구하였다. 일본은 특히 여순항처럼 정박장이 작고 정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결함이 있는(썰물 시에 물이 얕음) 그런 군항은 필요로 하지 않았으므로, 여순항의 의미를 어떻게든 다른 식으로 평가한 게 틀림없다.
위에서 언급했듯 사실상 평화롭게 한국을 장악하는 것이 일본에게는 쉬운 일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자. 그럴 경우 국제적 결의를 통해 한국의 독립을 공식화하려는 일본의 희망이 이해가 된다. 이 결의로 인해, 일본이 압도적인 이익을 취하게 될 한국 문제는 영국 및 그밖의 열강들이 주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중국 문제에서 분리되었다. 한국을 방어하려면 일본인들에게 여순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단언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지상 방어를 위해서는 당연히 한국 북부가 가장 의미가 있고 그 다음이 차후의 전진기지들이기 때문이다. 해상 방어를 위한 기지들은 일본 안에도 있다.
반대로, 한국 쪽으로부터 대륙으로 진격하려면 일본은 반드시 여순항을 점유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여순항은 상당수의 일본군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어서 일본이 장악할 경우 견고하고 든든한 지상 거점이 될 것이다. 이렇듯 한국은 여순항과 결부될 때만이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한 훌륭한 공격 기지가 된다.
이 기지를 근거로 할 경우 일본은 불가피하게 중국과 만주를 분리시켜 만주와 몽골을 자국의 배타적인 영향력 아래 두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태평양 연안에서의 우리 입지는 지극히 위험해지고 그래서 우리 방어선은 바이칼 쪽으로 후퇴하게 된다. 극동은 우리에게 취약 지역이다. 거리가 멀고 지역 인구가 적은 데다 러시아 현지인의 세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국경선의 군사지리학적 약점도 한몫 한다. 이 원인들을 그것도 빠른 시일 안에 제거하는 것은 완전히 우리 능력 밖이다. 우리는 이런 점들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측의 대응조치

따라서 극동에서 우리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취했던 모든 조치들은 대단히 지혜롭고 혜안이 있는 것들이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조치들이란, 프랑스 및 독일과 협의하여 시모노세키 조약 중 요동반도와 여순항 관련 조항을 폐기한 것, 여순항 요새를 점령한 것, 만주에 철도를 부설한 것, 러시아 삼림조합을 설립하여 일본이 한국 북부에 군용도로를 건설하는 것을 저지한 것 등이다. 이 모든 조치들은 1895년의 초보적인 외교 문서를 완전히 논리적으로 불가피하게 발전시킨 것이며 시모노세키 조약의 조건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 문서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목소리가 고인이 된 우리의 외무대신 로바노프-로스톱스키 공작의 목소리보다 더 비중이 크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로바노프-로스톱스키는 외무대신 직을 맡기 전에 콘스탄티노플, 런던, 비엔나 및 베를린에서 공사를 역임하며 실무직에서 40년 간 직무를 수행한 바 있다.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 우리는 다른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으나 결국 힘을 잃고 말았는데, 그것은 오로지 철군 시한을 촉박하게 정한 1902년 3월 26일 조약을 체결한 데다 1차 이행 기한에 남만주에서 철군을 했기 때문이다.

  • 각주 011)
    중국과 대만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에 위치. 팽호군도(澎湖群島)라고도 함. 바로가기
  • 각주 012)
    대만의 옛 이름. 16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발견해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붙인 이름으로, 이 명칭은 1895년까지 유지되다가 일본에 의해 대만으로 개칭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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