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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별첨자료Ⅰ : 1368-1905년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 중 가장 중요한 사건 연표

Хронология важнеших событий в ходе поступательного движения в России к Тихому Океану 1368-1905 г.г.
  • 구분
    보고서
  • 저필자
    체레반스키 В.П.
  • 발송일
    1906년 (1906년 미상)
  • 문서번호
    ГАРФ,ф.543,оп.1,д.190,лл.18-22об.
  • 원소장처
    러시아연방 국립문서보관소
  • 대분류
    정치/외교(국제문제)
  • 세부분류
    국방·군사/국제관계
  • 주제어
    극동역사, 극동의 주요사건
  • 색인어
    청국, 한국, 마카오, 몽골, 포르투갈, 일본, 미카도, 쇼군, 표트르대제, 베링 해, 오호츠크 해, 사할린, 아이누, 아무르, 아이훈, 우수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여순항, 대련, 만주, 시베리아 철도, 러청은행, 의화단, 한국국왕, 민비, 압록강,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홍호자, 요동반도, 교주, 제물포, 부산, 서울, 상해, 하얼빈, 블라고베센스크, 영일동맹
  • 형태사항
    10  , 타이핑  , 러시아어 
  • 년도
  • 내용
  • 1368
  • 청국과 유럽의 교류 시작.
  • 1392
  • 조선에서 몽골압제 전복과 현 왕조의 등극.
  • 1516
  • 마카오에 포르투갈 인들의 무역거래소 설립.
  • 1592
  • 일본인들의 조선 침공과 번영 말살.
  • 1597
  • 일본인들이 다시 조선을 침공.
    일본에서 미카도와 쇼군의 이중정부 시작.
    유의: 후자는 총사령관에 해당되나 쇼군들은 자신들을 황제로 자인했다. 미카도는 단지 명목상으로만 최고의 권력을 지녔다. 이러한 통치형태는 1868년까지 지속되었다.
  • 1622
  • 청국해에 네덜란드 함대 출현.
  • 1635
  • 마카오에 영국선박의 첫 입항.
  • 1651
  • 하바로프의 지휘 하에 카자크 부대가 아무르 강을 따라 이동.
  • 1685
  • 청국인들이 러시아의 도시 알바진을 습격하고 파괴.
  • 1689
  •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알바진을 청국정부에 양도.
  • 1716
  • 표트르 대제의 명령으로 선박 건조를 위해 스웨덴 포로들을 오호츠크 해로 보냄.
  • 1725
  • 표트르 대제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의 해협을 탐사하기 위해 베링 해의 덴마크 선원들을 극동으로 보냄.
  • 1737
  • 두 번째 베링 해 탐사.
  • 1739
  • 일본 해안에 러시아 선박 출현.
  • 1741
  • 러시아 해양탐험가들이 알레우츠키, 메드니, 두만 및 여타의 섬들을 발견.
  • 1768
  • 크리피친 대위와 레바세프 중위가 알레우츠키 섬들과 알레스카를 탐험.
  • 1779
  • 아메리카 대륙에서 러시아 영토를 개척하기 위해 러시아·아메리카 회사 설립.
  • 1787
  • 라페루스의 사할린 섬 방문, 그곳에서 토착민인 아이누 족을 만남.
  • 1790
  • 러시아가 극동에서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을 지적한 첫 팜플렛이 일본에 등장.
  • 1805
  • 크루젠시테르의 사할린 섬 방문, 첫 세대 일본인 이주민을 발견.
  • 1806
  • 사할린 섬 북쪽에 첫 러시아 요새 축성.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대표 레자노프의 지시로 사할린 섬에 있는 일본 선박들과 상점들을 파괴.
  • 1807
  • 일본이 러시아와 무역협정 체결을 원하지 않아서 이에 대한 보복으로 위와 같은 파괴를 반복.
  • 1808
  • 일본인들이 골로빈과 동료들을 억류.
  • 1811
  • 일본과 무역협정을 맺기 위한 러시아의 새로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감.
  • 1815
  • 러시아의 해양탐험가 코체부(Коцебу)가 베링 해를 탐사(1818년 까지).
  • 1824
  • 영토의 경계 확정에 관해 북미합중국과 조약체결.
  • 1825
  • 영국과 동일한 내용의 조약체결.
  • 1826
  • 러시아 해양탐험가 리트코가 베링 해를 탐사(1829년 까지).
  • 1842
  • 치하쵸프와 미들렌도르프가 알타이와 오호츠크 해 연안을 탐사.
  • 1848
  • 네벨스키가 아무르 강 어귀를 점령.
  • 1851
  • 청국에서 태평천국의 난 발생.
  • 1852
  • 현재의 일황 무츠히토(睦仁)의 탄생(121번째 황제).
  • 1853
  • 사할린 섬에 무라비요프 및 일린스크 초소 건설. 원주민들은 러시아인들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난게 해 준 해방자로 인정. 사할린 섬에서 지하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한 러시아에 항의하는 일본인들의 정치 시위.
  • 1855
  • 러시아가 아무르 강 하류에서 식민화 시작.
  • 1856
  • 러시아는 아무르 강 좌안에 대한 식민화 시작.
    영국 해군이 광동의 남쪽에 있는 요새들을 포격하고 점령.
  • 1857
  • 광동강 어귀에서 영국·프랑스 분함대의 시위.
  • 1858
  • 청국과 아무르 강변에서 태평양 및 우수리까지의 영토를 러시아에 양도한다는 아이훈 조약 체결.
    청국으로 아편 반입의 합법화.
  • 1860
  • 블라디보스토크 설립.
  • 1861
  • 카자크와 징계 받은 병사들을 자바이칼에서 아무르 강으로 강제 이주.
  • 1862
  • 러시아와 일본대표들은 사할린 섬의 국경을 확정하기 위해 협상 시작.
    이 협상은 1867년에 재개.
  • 1864
  • 현재 한국 황제가 옥좌에 오름.
    황제가 미성년이므로 섭정 시작.
    조선에서 기독교도에 대한 탄압 강화.
    영국과 프랑스인들에 의해 태평천국교도들이 상해와 북경에서 추방.
  • 1866
  • 프랑스 분함대가 기독교도들을 위해 조선에 압력을 가하려고 시도.
  • 1867
  •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러시아 영토를 미국 정부에 양도.
    현재의 일본 황제가 옥좌에 오름.
    사할린 섬의 남쪽 지역에 러시아 군대를 배치.
    러시아·아메리카 회사를 폐쇄.
  • 1868
  • 일본이 유럽식 개혁의 길로 진입.
    일본 황제가 교토에서 대관식을 가짐.
    미카도의 무제한 권력 부활.
    일본의 봉건영주를 주지사로 교체.
  • 1870
  • 도쿄(에도)에 미카도의 궁전 건축.
  • 1871
  • 미국이 기독교도들을 위해 조선에 압력을 가하려고 시도.
    타란친족과 둔간주 001
    번역주 001)
    청국 서북지역의 회족에 대한 러시아식 이름
    닫기
    족의 봉기로 점령된 일린스크 변경으로 러시아군대 이동.
    러시아의 쿨자 점령.
  • 1872
  • 조선에서 섭정의 전복.
    황제파와 섭정파간의 투쟁 시작.
    통킹에서 프랑스의 첫 탐사.
  • 1873
  • 일본에 그레고리력 도입.
  • 1874
  • 대만 섬에 대한 일본의 탐사 준비.
  • 1875
  • 쿠릴열도를 일본에 양보하는 대신, 사할린 섬의 남쪽지역을 러시아에 넘긴다는 내용의 페테르부르크 조약 체결.
  • 1876
  • 무역을 위해 부산항을 개방한다는 조일협약 체결.
    일본에서 봉건제 폐지.
    사무라이가 두 개의 장검을 소지할 수 있는 권리 박탈.
    일본의 류큐섬 점령.
  • 1877
  • 도쿄에 대학 설립.
  • 1880
  • 조선은 일본에게 원산과 제물포를 무역항으로 개방.
    일본에서 첫 법령집 발간.
  • 1881
  • 쿨자 지역을 청국에 양도한다는 페테르부르크 협정 체결.
  • 1882
  • 폐위된 섭정자가 일본의 도움으로 조선의 왕위 찬탈 기도.
    청국이 섭정자를 체포하여 청국으로 이송.
  • 1884
  • 일본에 귀족 칭호(공작, 후작, 백작, 자작 및 남작)를 도입하여 인민대중의 큰 호응을 얻음.
  • 1885
  • 청국에서 궁정혁명 발발.
    일본 군사들이 조선 국왕을 억류.
    조선은 일본에 대해 격분.
    일본은 청국의 도움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실질적 영향력 회복.
    청국은 통킹과 안남에 대한 종주권을 프랑스에 양도.
  • 1886
  • 조선은 러시아까지 포함하여 유럽열강들과 협정 체결.
    버마 사태에 영국의 간섭.
    청국은 버마 위쪽 지역에 대한 청국의 종주권 포기와 이 지역을 영국의 보호통치령으로 바꿈.
  • 1889
  • 공공기관 정원규정집 발행권, 군 지휘권, 전쟁 및 평화 선포권, 조약 체결권, 봉쇄상황 선포권, 특사 파견권, 직위 및 훈장 수여권과 인민 소요발생 시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미카도에게 위임한 헌법이 일본에서 공포.
    헌법은 미카도에게 신성(神性)을 부여.
  • 1890
  • 일본에서 첫 의회 소집.
    아주 최근, 일본의 군사 부문을 개선으로 육군과 해군력이 급속한 성장을 함.
  • 1891
  • 시베리아 철도 부설 착수.
    황태자 대공인 체사레비치와 현 통치자인 니콜라이 2세의 참석 하에 우수리 선로구역 착공(5월 19일).
  • 1892
  • 청국에 예속된 강주트를 영국이 점령.
  • 1894
  •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즉위.
    과거 조선의 섭정자를 청국에서 돌려보냄.
    일본군의 조선 상륙.
    청일전쟁.
    압록강 어귀에서 일본과 청국의 해상 전투.
    일본은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의 원칙 공포.
    유의: 이 시기 청국에서 러시아로의 제품과 식료품의 수출은 모두 3천 8백 5십만 루블이었고, 러시아에서 청국으로의 수출은 4백 5십만 루블에 그쳤다. 청국의 총 대외무역거래액은 영국과는 75%, 독일과는 6.6%, 일본과는 2.5%, 러시아와는 1.55%였다.
  • 1895
  •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4월 5일주 002
    번역주 002)
    4월 17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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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국은 조선의 독립 인정.
    대만 섬과 페스카도르 군도를 일본인들에게 양도.
    유의: 조약안에는 일본이 여순항을 포함하여 요동반도 전체를 ‘영원히 점유’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조선에서 폭동 발발.
    일본인 무리가 조선국왕을 억류.
    일본 언론은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 일본에게 요동반도를 포기하도록 강요했다며 러시아에 대한 증오감을 부추김.
    교주에 러시아 선박이 처음 등장.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상업무 수행을 위해 러청은행 정관 확립.
  • 1896
  • 러시아와 일본은 조선의 독립성에 대해 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조선국왕의 탈주.
    일본 병사 도당들이 일본의 영향력에 대항하면서 전 생애를 보낸 조선의 왕후 민비를 야수적으로 살육.
    조선에서 제물포-서울 간 철도 부설(일본인들이 매도), 서울에 전차부설, 조선의 북부지역에서 사금층 개발 등과 관련된 미국 신디케이트 설립.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만주를 점령.
    80년을 만기로, 그 이후에는 소유권을 청국에 넘긴다는 조건을 달아 청국은 만주에 러시아 철도 부설을 승인.
    여순과 대련을 시베리아 선로와 연결하기 위한 철도 부설과 관련하여 러청은행과 청국정부는 특별협약 체결.
  • 1897
  • 조선국왕이 자신의 궁으로 환궁.
    조선국왕은 황제칭호를 수락.
    청국 강도들이 독일 선교사들의 교회를 약탈하고 두 명의 선교사를 살해.
    독일 분함대가 교주에 입항.
    러시아 분함대가 여순항에 입항.
    압록강 삼림이권 획득.
    극동에서 러시아의 전반적인 정책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일본은 군사력 및 육해군을 강화시키고 조직함.
    유의: 아무르와 연해주 지역의 주민은 34만 3천 5백 명이고, 이 중 러시아인은 21만 4천 5백 명임. 이 지역들에서 7천 2백 푸드주 003
    번역주 003)
    푸드(пуд)는 과거 러시아의 무게단위로 1푸드는 16.38kg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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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곡물과 감자 수확.
  • 1898
  • 청국은 독일에게 교주만과 교주 지역을 99년 동안 임대하여 사용하도록 양도.
    러시아 측은 청국이 일본에 배상금으로 지불해야만 하는 차관 제공에 협조.
    프랑스가 광주만 영토를 99년간 임대.
    러시아와 청국은 여순 및 대련 항을 러시아에 25년 간 임대하기로 합의.
    영국이 위해위항을 점령하고 카울룬을 임대.
    한국의 독립성에 대해 러시아와 일본이 처음으로 합의.
    재무부의 러시아 직원을 한국에서 소환.
  • 1899
  • 블라디보스토크에 항구를 건설하고 설비를 위해 러시아 국고에서 자금을 할당.
    한국 황제가 무제한의 권력을 소유한 체제로 복귀한다는, 한국 황제의 포고령.
    관동지역에 러시아 관리청 설립.
  • 1900
  • 청국에서 발생한 의화단의 봉기에 대항하는 유럽 군대들의 작전에 일본도 참가.
    여순항에서 러시아의 상설 요새 축성 시작.
    유의: 이 사업을 위해 1903년까지 모두 4백만 루블을 지출하기로 책정.
    홍호자(紅鬍子)에 맞서서 철도를 보호하기 위해 만주의 러시아 군대를 강화.
    이탈리아인들이 상해와 사이문스크 만 사이에 있는 님루트 만의 점령 시도.
    러시아의 만주 점령에 반대하여 일본, 영국 및 미국의 항의.
    러시아는 만주에서 철군하기로 약속.
    청국인들이 블라고베센스크를 갑자기 습격
  • 1901
  • 유의:일본의 인구는 4천 5백 5십만에 다다름.
    일본에서 철도길이가 영국 마일로 3천 6백 마일임.
    일본의 대외무역거래액은 5억 8백만 엔임.
    방추(물레)수는 114만 8천개.
    방적한 면화량은 795만 1천 푸드.
    산업자본은 34천만 엔.
    하루 품삯은 최고 58 코페이카주 004
    번역주 004)
    코페이카(копейка)는 러시아의 화폐단위. 1백 코페이카는 1루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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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하 36 코페이카.
    노동시간은 하루 12~14시간. 10세에서 14세까지의 아이들은 하루 10시간.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여성들의 순수 품삯은 1주당 14 코페이카.
    대출이자는 년 100%.
    학교는 2만 8천 404개.
    학생 수는 463만 명.
    도쿄 대학의 교수는 175명, 학생은 2천명.
    유의: 최근 75년 동안 청국은 136만 제곱 베르스타주 005
    번역주 005)
    베르스타(верста)는 과거 러시아의 길이 단위로 1 베르스타는 1,067m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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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영토와 3천 5백만 명의 인명 손실을 입음.
  • 1902
  • 영일동맹 체결, 이에 따라 ‘영국과 일본정부는 극동의 현상유지와 평화를 지지하며, 특히 청국과 한국의 독립 보전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한다는 단일한 염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상호간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유의: 이와 관련하여 정부 발표가 뒤따라 공개되었다. 즉 제국정부는 전적으로 영일동맹 체결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제국정부는 청국의 독립과 온전성을 러시아의 우호적 이웃국가로서 지지하며 마찬가지로 한국의 독립성과 온전성을 지지할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로 프랑스의 선언이 있었음.
  • 1903
  • 유의: 하얼빈의 러시아 주민은 1만 5천명, 여순항에는 1만 7천명(수비대 제외). 하얼빈의 청국인은 2만 8천명, 여순항에는 2만 3천명. 하얼빈에 여성은 14%.
  • 1904
  •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러시아에 대한 군사행동 시작.
  • 1904~1905
  •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바다와 육지 전투에서 러시아가 패배.
  • 1905
  • 결국 사할린 섬 남부와 여순항과 함께 아노톤츠크 반도, 대련시와 철도의 일부를 양도하는 내용의 러일평화협정 체결. 한국은 독립성을 상실하고 일본의 종속상태로 전락.


  • 번역주 001)
    청국 서북지역의 회족에 대한 러시아식 이름바로가기
  • 번역주 002)
    4월 17일임바로가기
  • 번역주 003)
    푸드(пуд)는 과거 러시아의 무게단위로 1푸드는 16.38kg임바로가기
  • 번역주 004)
    코페이카(копейка)는 러시아의 화폐단위. 1백 코페이카는 1루블임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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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스타(верста)는 과거 러시아의 길이 단위로 1 베르스타는 1,067m임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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