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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상주 서신

  • 구분
    보고서
  • 저필자
    베조브라조프
  • 수신자
    니콜라이 2세
  • 발송일
    1903년 5월 11일(1903년 5월 11일)
  • 문서번호
    ГАРФ.ф.543,оп.1,д.183,лл.1-2об.
  • 원소장처
    러시아연방 국립문서보관소
  • 대분류
    정치/외교(국제문제)
  • 세부분류
    인사/외교정책
  • 주제어
    러시아 극동 정책
  • 색인어
    아바자, 베조브라조프, 람즈도르프, 협의회
  • 형태사항
    4  , 필사본  , 러시아어 
황제 폐하,
 
황명을 받들어, 아바자와 저는 람즈도르프주 001
번역주 001)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람즈도르프. 러시아 외무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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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을 두 차례 찾아가 7시간 동안 담판을 벌였습니다. 문제의 사실적, 서사적 측면은 완전히 설명 되었으나, 정신적, 이상적 측면은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습니다.
람즈도르프 백작은 사실 어떤 실무적인 것에서도 우리와 대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특히 다음의 대목에서 자신의 논증을 폈습니다. 가) 황명의 정확한 수행, 나) 군사 및 경제 문제에 대한 자신의 무지, 다) 국제 조약이 완전하고 정확하게 이행되지 않고 있는데 대한 자신의 복잡한 [3-4단어 판독불가].
그는 ‘양보 정책’이라는 말에 반대하고 있지만, 모두는 이것을 패배가 아닌 성공이라 부르면서 위장술을 쓴 양보에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본질보다는 형식이 전적으로 우선시되는데, 이것은 형식이 지식과 신념이 비어 있음을 은폐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화 중 저 자신은 본질적으로 매우 엄격하고 명확하게 문제를 설정하고 판단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완벽한 논증 속에서도, 일에 대한 몰이해와 태만 때문에 람즈도르프 백작을 책망해야만 할 밖에 없었던 지점에서 멈춰 섰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와 어떤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제에게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람즈도르프 백작은 몇 번에 걸쳐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려 들면서 자신의 관할 부처가 문제에 개입하는데 화를 내려 했고, 게다가 폐하가 계신 데서 원칙적인 입장을 검토하고 결정하는 특별 협의회의 의제까지 제한하곤 했습니다. 이런 방법은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이 때 저는 중요한 국가적 문제들을 모든 측면에서 해명하는 데 있어, 즉 특히 정확성과 완전성이 요구되는 경우에 있어 이 절차가 갖는 의미와 의의를 백작에게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람즈도르프 백작은 우리의 대화 중, “자기는 ‘신뢰’ 문제를 제기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하튼 내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1단어 판독불가] 독실한 가톨릭 교도들 에게는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신(神)밖에 없기 때문이다”라는 점을 여러 번에 걸쳐 납득시키려 했고 심지어 단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제가 이해할 수 있었던 한에서 보면 람즈도르프 백작은 우리의 만남이 매우 불만스러웠던 것 같은데, 왜냐하면 다음의 사항을 증명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 자신은 단지 명령 정확한 수행자로서, 전체적으로 외교적 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점, 나) 자신의 의무는 문제의 본질을 추측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감수의 목적만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점, 다) 만일 자신이 현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부하들로 하여금 일을 하게 했다면 저지당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자신은 극동에서 [3단어 판독불가], 라) 자신은 문제를 흐리기 위해 명확한 [문제]제기를 두려워하고 단어를 악용하는 것을 [2단어 판독불가]할 권리가 없다는 점 등입니다.
저는 우리의 관청 전체가 일상생활을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가 제시하는 그런 어려움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하고 명확하게 인지하면서 아주 무거운 대화들의 분위기를 개인적으로 참아 냈습니다.
협의회의 나머지 모든 [2단어 판독불가]와 더불어, 협의회에서 심의된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실무적으로 제기하는 데 아직은 어떤 장애물도 없습니다. 회의록 제작에 착수한 저의 바람은 빠른 시일 내에 그 회의록을 어람에 올리는 것입니다.
 
상서 알렉산드르 베조브라조프.
 
1903년 5월 11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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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상주 서신 자료번호 : kifr.d_0002_0030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