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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시베리아철도 지역의 이민 확대

정부는 유럽러시아 출신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시베리아로 이주시켜야 할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1821년에 이미 스페란스키주 003
각주 003)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스페란스키(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Сперанский, 1772.1~1839.2). 알렉산드르 1세와 니콜라이 1세 시대 때 활동한 저명한 정치가이자 개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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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시베리아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주가 갖는 두 가지 이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하나는 ‘인구가 희박한 이 황무지에 식민’을 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토지가 부족한 지방에 거주하는 농민들에게 다량의 필수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세기의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정부는 이주에 몹시 부정적이어서, 이주 농민들을 지원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농촌 인구의 방랑과 유동성이 해를 끼칠 것’을 우려해 몇 가지 제한조치를 취하기까지 했습니다. 대다수의 지주들은 농민들이 토지가 많은 변방으로 자유롭게 떠나면 일꾼의 가치가 높아지고 토지에 대한 수요가 줄 것에 위협을 느껴 이런 우려에 호응을 했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의 자유로운 이주에 정부 측과 지주계급이 전혀 공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주에 대한 요구는 점차 높아져 갔습니다. 본토에 있는 현(縣)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토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진 데다가, 경제 상황의 악화로 농민들은 무한한 시베리아의 공간을 찾아 무단 이주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889년 법령은 이주라는 인민의 요구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의미가 있다고 최초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령의 성공적 집행을 위해서는 이후의 개별 규정들이 상세히 마련되어야 했습니다. 대시베리아철도 부설이 착공에 들어갈 즈음, 전례없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우랄 이주는 1889년 법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무질서하게 진행되었고 그리하여 상당수의 이주민에게 기대할 법한 결과가 시베리아 식민화의 경우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저는, 추모의 정을 금할 수 없는 선황께 시베리아 철도 부설 방법과 절차에 관한 보고서 및 1893년 국가예산표에 관한 보고서를 상주할 때 철도 부설을 시베리아의 광활하고 비옥한 지역과 연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 주목하시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철길이 놓인 지역의 활성화를 촉진하고, 토지가 부족한 유럽러시아 농민들의 삶을 안정화시킨다는 무르익은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 식민화를 위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은 폐하께서 선황의 열망을 실현시키시면서 조국에 대한 사랑이 타올라 직접 시베리아철도위원회 업무를 통솔하신 때부터였습니다. 위원회가 이주 사업을 위해 한 일들이 그 누구보다도 폐하께 이롭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주민들이 조국을 떠나는 것뿐 아니라 오래 여행을 하고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모든 과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위원회가 취한 조치들을 열거하여 폐하께 수고를 끼치는 일은 감히 하지 않겠습니다. 1895년 3월 8일 위원회 회의에서 폐하께서 밝히신 생각은 이주 사업 조정 예상안을 작성하는 데 주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내용인즉, 농민 이주에 대해서는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정부도 이주가 좀 더 의식적으로, 완전히 올바른 방침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폐하의 개인적 지도를 받는 위원회 활동은 즉시 유익한 결과를 냈는데, 즉 이주 사업이 엄격하게 조직화되고 우랄을 넘는 숫자가 상당한 속도로 불어난 것이었습니다. 80년대까지는 2천(띄어쓰기) 명을 넘지 않던 이 숫자가 90년대 초에는 연간 약 5만 명 정도가 되었고, 1896년에는 남녀 2십만여 명에 달했다가 그 후에는 (1897년을 제외하고) 이 수준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최근 2년 간 두 번에 걸쳐 시베리아를 덮친 곡물 흉작으로 이주가 약간 감소했지만, 그러나 시베리아 지역에서의 수확에 관한 첫 번째 낭보로 연간 이주민 비율은 예전 수준까지 올라갈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규모의 이주로는 본토의 현에 토지를 적게 가지고 있는 농민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실질적 요구나 농업 이민을 필요로 하는 광활한 시베리아 지역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유럽러시아의 인구는 연간 150만 명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시베리아로 이주해 온 20만 명을 제외한다 해도 연간 증가 인구는 130만 명이나 됩니다. 그렇다면 10년 후에는 이주민 수의 점진적 증가를 가정하더라도 증가 인구가 1,300만 이상이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조국에서는 자기 일자리를 찾는 일이나 노동을 쓸모 있게 사용하는 일이 분명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서는 토지를 적게 소유했다는 사실이, 특히 집약적인 문화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점점 더 크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서 쿨롬진주 004
각주 004)
아나톨리 니콜라예비치 쿨롬진(Анатолий Николаевич Куломзин, 1838.1~1923.9). 상서이자 국가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역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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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필두로 한 시베리아 이주 연구자들은 우랄로 떠나는 주된 이유가 바로 토지 부족이라는 점을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본토에 소재한 현의 농민들은 정든 고향을 버리고 집에서 수천 베르스타나 떨어진 곳에 있는 농지를 찾으러 떠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현재 러시아의 흑토지대에 있는 어떤 현들에서는 마을의 인구밀도가 1평방베르스타 당 70~75명이고, 농민에게 분여된 토지는 평균 1⅓까지 낮아졌으며,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가는 현 전체 농가의 14%, 17%, 심지어는 22%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주 005
각주 005)
유럽러시아 50개 현의 경우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가는 평균 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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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발생한 하리코프와 폴타바의 폭동사태 관련 연구 역시 다음의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즉, 이 폭동들은 농지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 그 근본 원인은 농민의 농지 부족이라는 것, 그리고 황제는 토지를 분배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토지를 보장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음모세력들은 황제의 어휘(御諱)만 가지고도 군주에 충성하는 우리의 평화로운 농민을 선동할 수 있었다는 것 등입니다. 그래서 러시아 황제는 토지가 적거나 아예 없는 자국 공민들에게 비어 있는 국유지를 전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분배함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국유지는 유럽러시아가 아니라 주로 시베리아 지방에 있는 땅들입니다. 유럽러시아는 토지 공급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시베리아는 이민이 매우 필요한 데다가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의 농지 문제를 경감시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베리아는 광활하면서도 자연조건이 다양하기 때문에 유럽러시아에서 온 이주민들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땅을 찾을 것입니다. 가령, 남부와 중부 흑토지대의 주민은 초원 지역의 평야에서, 북부 삼림지역 이주자들은 예니세이의 타이가 처녀림과 토볼스크의 침엽수림에서 찾는 식입니다.
현재 시베리아는 인구가 극히 희박합니다. 비교적 인구가 있는 지대에 부설된 철도는 인적이 드문 타이가나 황량한 초원을 수백 베르스타씩 지나가다가 어딘가에 흩어져 있는 정착지를 이따금씩만 만날 뿐입니다. 철도선로가 놓인 지역이라도 인구밀도가 1평방베르스타 당 5명을 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연간 유입되는 총 이주민이 20~25평방베르스타당 1명이기 때문에 이 수치가 금세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베리아에서 식민에 적합한 토지 공급량은 이미 거의 소진되었다는 말이 들리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런 생각은 전혀 당치 않습니다. 실제로 시베리아에는 그곳 토박이들이 개발했다가 방치해 버린 소위 ‘말랑말랑한’ 땅주 006
각주 006)
처녀지가 아닌 땅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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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전 도시의 이주자들이 여기에 정착해 아무런 사전 연구도 없이 이 땅을 경작지에 알맞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경작지에 적합하게 개간을 해야 할 삼림지대나 아니면 한 번도 갈아엎은 적이 없는 초원의 미개간지가 수두룩한데, 이런 곳들을 개간하려면 주민들의 일정한 노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너무도 광활하고 아직은 너무도 연구가 안 되어 있어 식민에 적합한 토지의 양을 얼마간이라도 정확하게 산정하기란 현재 거의 불가능합니다만,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해 주는 자료들은 있습니다. 우선, 시베리아 4개 현의 끝없는 타이가와 침엽수림에는 공유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 광활한 공간은 이미 1895년에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시베리아철도위원회는 폐하의 재가를 받아 1896년 4월 27일 ‘자유의지에 따른’ 타이가 이주 특별규정을 발포했습니다. 뒤이어 상서 쿨롬진이 1896년 시베리아를 시찰함으로써 타이가와 침엽수림 지대의 식민화 필요성 문제가 연구되었고, 그가 방문했던 타이가 지역에 예전에는 경작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졌으나 이제는 농경에 필요한 것들을 완전히 충족시켜 줄 것으로 판명된 땅이 여유분으로 많이 있음도 밝혀졌습니다. 농업및국가자산부 대신도 1898년 여름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타이가 지역은 식민에 완전히 적합하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최근의 시베리아 측량단은 타이가 지역을 조사하는 데 해마다 역량의 일부를 투입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주에 전적으로 적합한 땅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그곳 대부분은 이미 이주가 끝난 상태입니다.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진행된 측량 사전 검토를 통해 그토록 유익한 결과를 얻음으로써, 타이가와 침엽수림 지역에 대한 조사를 폭넓게 진행할 경우 그곳에서 이주에 적합한 여유분의 땅을 많이 발견할 것이라고 추측할 근거는 충분해졌습니다. 당연히 미래의 이주민은 자신들의 구역을 경작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하며, 이미 경험이 보여주었듯 그들 대다수는 적절한 노동과 수단을 통해 타이가에서 성공적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현재 시베리아와 스텝지대에서 진행 중인 관개 및 배수사업은 공유지를 상당 정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가령, 1895년부터 시작된 바라빈스크 스텝지역의 배수사업으로 전에는 식민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졌던 티없이 드넓은 철도 인접 지역이 장래성 높은 정착지로 변모한 것입니다. 경험으로 볼 때, 늪지화된 많은 공간은 어떤 인공적인 배수 공사 없이도 약간의 개간만으로 아주 금세 말라붙습니다.
다음, 스텝지대에서도 식민화 지역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사를 통해 키르기스 지역민들이 이곳에 아주 상당한 여분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거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무르 주 역시 드넓은 벌판이고, 아무르와 우수리스크 부대가 있는 카자크 영토에서도 적지 않은 유휴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는 이주가 금지된 자바이칼 주도 그곳 주민의 토지 정비가 완료되는 날이면 식민화 지역에 포함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 모든 사실이 시베리아에는 이주민을 위한 땅이 적다는 견해를 반박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베리아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도 그들을 위한 유휴지도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아시아 영토에 대한 신속한 식민화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국가의 최고 중요 사업입니다. 시베리아의 면적은 유럽러시아보다 3배나 넓기 때문에, 광활한 시베리아 지역으로 이주를 해서 그곳이 어느 정도까지라도 경작 가능한 상태로 바뀌면 제국의 경제력과 정치력은 눈에 띄게 증대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변방으로 이주를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폐하께서는 시베리아철도위원회 회의에서 황인종의 물결에 맞서 러시아의 요충지를 공고히 하려면 우수리스크 지역과 황량한 아무르 강 연안을 아주 신속하게 식민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러 차례 지적하셨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이미 현재 인구 과밀로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조만간 우리 가까이에서 정착에 필요한 유휴지를 찾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황인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중국과의 국경에 러시아 주민들로 이루어진 요충지를 건설해야 합니다. 이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재산뿐 아니라 제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충분한 힘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유럽러시아에서 새로 부대를 보내와야만 하고, 그러면 궁핍해진 중앙은 다시 변방을 위한 싸움의 고통을 모두 짊어져야 하는 데다 무르익은 극동 문제의 해결도 떠맡아야만 합니다. 또, 흑토지대나 서쪽 현의 농민들은 자신들로부터 수천 베르스타나 떨어져 있는 지역을 위해 싸우러 가야 합니다. 그 이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해도 안 된 채로 말입니다.
시베리아 이주 확대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은 이중적이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러시아에서 이주해 나가는 것이 쉬워야 합니다. 인민대중 가운데 토지가 부족한 농민들 사이에서는 이주에 대한 열망이 분명 매우 강할 것입니다. 전에는 이주를 하는 것에 대해 온갖 억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자들은 현 당국의 허가나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의 퇴거증도 없이 자신의 책임 하에 무단으로 시베리아로 갔습니다. 이주는 순전히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너무도 강력하고 억제할 수 없는 것이어서 정부는 몇 번이고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고, 그래서 법적 예외를 두어 무단 이주자에게 시베리아 국유지를 분배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다. 지금은 이주가 더 이상 금지 대상이 아니며, 폐하께서는 무단 이주자들까지 고향으로 강제 귀환시키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들은 고향에서 이미 자신이 속했던 사회와 연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러시아의 많은 지역당국은 이주에 대해 아직도 악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이주를 억제하려 한다고 추측되는데 이 추측에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상서 쿨롬진이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설문한 결과, 무단 이주의 주된 원인이자 1896년의 경우 무단으로 고향을 떠난 이유의 절반 이상이 되기도 한 것은 바로 지역당국이 이주 허가 신청서를 늦게 처리하고 때로는 허가증 발급을 노골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입니다. 지방의 특히 하급 관리들이 보이는 이런 행태는 사실상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왜냐하면 그들로서는 재산을 가진 농민들의 이주가 여러 가지로 달가울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는 토지를 적게 가진 본토 주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베리아를 식민화한다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에서는 분명 허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역당국의 그런 반발을 차단하고 우리 농민이 우랄 이주의 실제 조건을 폭넓게 알게 하기 위한 조치들을 가능한 대로 모두 마련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농민들이 주거지를 쉽게 떠나도록 조성하면서 동시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시베리아 이주민들이 과도한 희망을 품고 가지 않도록 하는 것, 이주를 조성하는 것이 ‘황제가 새로운 곳으로 불러들이는’ 형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시베리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 때로 냉혹한 자연 및 경제 상황과의 투쟁이며 힘과 끈질긴 노동만이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음을 알도록 하는 것 등입니다. 지난 몇 년 간 시베리아철도위원회는 시베리아의 생활환경이 어떤지 이주민들에게 알려주는 것과 관련해 이미 많은 일을 했지만, 그 방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습니다. 지방자치회나 이주 담당 관리들의 협조를 얻어 또는 여러 사람들의 공동 활동을 통해, 떠나오는 곳의 이주 업무를 정비하고 특히 신청서 보급과 무단 이주 예방을 위해 폭넓게 노력해야 합니다.
한편, 앞으로 시베리아 내의 이주 업무를 정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취해야 할 일련의 조치들이 마련되었습니다.
1. 시베리아 침엽수림과 타이가 지대에 대해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를 확대하고, 어떤 지역이 즉각적인 이주에 적합한지 그리고 이주민 당사자 혹은 국가 차원에서 어떤 사전준비가 필요한지 정해야 합니다. 조사를 할 때는 삼림경영에 특히 주목해야 하는데, 현재의 삼림경영 상태가 후에 시베리아에 큰 참화를 부를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곳에서 숲은 현지 주민에 의해 일부는 파괴되고 일부는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시베리아철도 기술자들에 따르면, 목재 시세에서 목재의 표준가격은 이미 매겨져 있으므로, 주민들은 숲이 쓸모없게 보이게 해서 좀 더 싼 값에 목재를 얻기 위해 때로 삼림지대를 훼손하려는 계산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삼림 보호가 불충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철도 부설로 목재 가격이 상승하고 기선 항행이 증가한 탓에 시베리아 삼림자원은 더욱 고갈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베리아 삼림이 겪는 주된 재난은 언제나 화재입니다. 삼림 화재는 많은 경우 주민들이 벌판에서 마른 풀을 태우는 뿌리 깊은 관습(이른바 ‘들불 놓기’)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고, 삼나무 열매 채집 같이 삼림 부산물을 채취하는 기간에 불을 부주의하게 다뤄 발생하기도 합니다. 매년 화재로 인해 훌륭한 대규모 침엽수림 지대가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곡창지대로서 장래성이 큰 알타이 지구에서는 아주 오래된 숲이 매년 수만 데샤티나씩 불에 타 버립니다. 그 결과 모래가 훤히 드러나고 있고, 쿠르간 지구에서는 경작지가 진흙탕으로 뒤덮이기까지 했습니다. 토볼스크 현의 그 유명한 이콥카 침엽수림은 이반 4세 때 다람쥐로도 명성이 높았으나 지금은 삭막한 모래와 듬성듬성한 숲만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숲이 전반적으로 황폐해지자 시베리아 기후도 눈에 띄게 악화되었습니다. 숲의 황폐화는 알타이가 벌써 2년 연속 굶주림을 겪고 있는 가능한 원인입니다.
따라서 타이가 지대에 대한 조사작업을 시베리아 삼림경영과 긴밀히 연계시키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 각각의 삼림지대가 지니는 의미를 파악하여 그중에서 보호림을 가려내거나 혹은 국가의 필요상 특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선별한 후 보호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삼림경영의 가치는 없지만 경작에 적합한 지대는 점차 이주 구역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사실 지금도 측량단 작업 시 삼림지구는 국가 소유로 구분하고 있으나, 그 규모는 이에 걸맞은 의미를 갖지 못할 정도로 제한적입니다. 그렇긴 해도 삼림을 올바로 분배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데, 이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실수들은 나중에 돌이키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식민화에 적합한 땅을 찾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미 정착이 이루어진 지역과 철도, 주요 수로에서 그쪽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베리아에 무수히 많은 도로를 내도록 고민해야 하는데, 곳곳에 시베리아 본선으로 이어지는 분기선 형태의 약식 철도를 부설한다든가, 곳곳에 비포장도로를 만든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로들을 통해 이제 마을도로망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현지 행정당국 대표들과 이주 활동가들이 만장일치로 낸 성명서에 따르면, 시베리아에 도로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변방 지역으로의 이주를 막는 주된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경험으로 볼 때, 접근성이 좋으면 비교적 상태가 나쁜 땅도 이주민들은 기꺼이 사들이지만, 반대로 가장 좋은 구역이라도 도로가 없어 정착지와 차단되어 있는 곳은 텅텅 비게 됩니다. 많은 경우 이주민들은 교통수단에 대해 알고 난 후에는 토지를 둘러보러 가는 것조차 거부합니다. 자신이 지정 받은 구역에 갈 수 있으려면 특별 안내인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건에서 당연히 이주민은 자신이 생산한 물품을 심지어 아주 가까운 시장에 내다파는 것조차 생각하기가 좀처럼 어려울 것입니다.
시베리아철도 후원 기업이 지금까지 도로 사업에 들인 자금의 총액은 매우 미미한데, 이는 도로 설비가 일부는 이주민 자체의 힘으로, 일부는 그 지역의 지방세와 토착 주민의 부역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그들의 속셈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수단에 의존하는 것은 언제나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정착 직후 초기 몇 년 동안은 아직 경제적으로 미약한 데다 자기 구역을 개간하고 건축물을 짓느라 바쁘기 때문에, 그들을 공공사업에 동원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느라 고생하는 그들을 지극히 난처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의 미래의 행복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반을 닦은 토착 주민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그들을 도로 부역에 동원하거나 세금을 높게 부과하는 것은 아마도 부당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로는 주로 미정착지에 필요한 것이라서 토착민 자신에게는 별다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중요한 비포장도로일지라도 그것의 건설 비용은 가능한 선에서 국고로 감당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음으로 시베리아철도 노선으로 이어지는 철도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옴스크 발 타시켄트 행 노선을 최대한 빨리 부설하는 데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노선이 생기면 크고 새로운 정착지가 열리고 값싼 시베리아 곡물로 인해 중앙아시아 시장이 확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중앙아시아에서는 곡물을 파종하는 대신 면화 재배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불어, 옴스크-타시켄트 철도는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서쪽에서 이주해온 러시아인들이 중국 영토 가까이로 가서 정착을 하면 중국 국경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타이가 지대에 대한 조사와 병행해서, 국가의 목표에 부합하는 점진적인 시베리아 이주에 대해 정연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현재 이주민 구역 준비작업을 하고 있는 측량단의 활동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베리아철도위원회가 구성되기 전까지 시베리아 이주는 완전히 우발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유럽러시아 출신 사람들이 시베리아 영토 여기저기로 이주한 것이나 정착시 그들에게 도움을 제공한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시베리아로 온 사람들은 주로 토착민들이 버리고 간, 그러니까 이미 개간이 된 땅에 정주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생소한 우랄산맥 동쪽 지방으로 온 탓에 자신들에게 익숙한 농업 환경에 맞는 땅을 오랫동안 찾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무력해지고 몰락해버린 이들은 고향으로 되돌아가거나 혹은 새로운 시련을 만날 수밖에 없는 동쪽으로 계속해서 더 나아갔습니다. 1885년에 조직된, 당시 유일했던 서시베리아 측량대는 한정된 인원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땅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극히 일부에게만 준비된 구역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1891년에는 이주민이 굉장히 많이 몰려들어서 1892년쯤에는 준비해 둔 구역이 완전히 바닥 나 심지어 합법적으로 온 사람들에게 줄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베리아 이주 허가증 교부 자체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시베리아철도위원회가 처음 고민한 것 중 하나는 시베리아로 오는 이주민들을 위한 토지를 준비할 때 올바른 원칙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특별측량단이 여럿 구성되었고, 인원이 차츰 늘어나 올해에는 230명에 이르렀습니다. 측량단들의 작업은 이주 구역에 대한 당면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긴 하지만, 대신 이 구역들에 남아있는 유휴지 보유량 규모는 때로 아주 낮은 수준까지 내려가곤 합니다. 이주 담당 관리가 저에게 전해준 소식에 따르면, 현재 시베리아의 유휴지 보유량은 당대의 연간 수요량이 계속 충족되는 경우 아시아쪽 우리 영토의 바람직한 식민화 규모를 감안할 때 아주 많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러므로 측량단 활동을 확대함과 동시에, 시베리아 여러 지역을 우선적인 정착지로 만들려는 국가의 요구에 맞춰 그들이 계획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때, 일부 경우에는 측량단의 업무 능률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할당비 대비 연간 작업 결과를 보면 양자는 의당 일치해야 함에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야외조사 기간 동안 측량단들이 수행한 작업량은 해마다 변동이 심합니다. 그런 변동을 억제하고 구역 분할 업무에서 최고의 능률을 올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행된 작업량에 따라 측량단원들의 수당 규모를 정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험으로 보건대, 그와 같은 경우에는 언제나 성과급이 작업의 집중도를 높여주어서, 그런 보상 방법을 쓰면 측량단의 능률성은 확실히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단원들이 항상 일정한 급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작업 결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식민화를 올바로 조직해 그 규모를 확대할 가능성 자체가 측량단 활동에 달려 있으므로 측량단 활동을 강화해야 합니다. 더불어 그밖의 이주사업 관련 부분, 가령 의료 및 식량이나 이주자들의 이동 등등에 대해서도 그에 걸맞게 할당액을 늘려야 합니다. 국고 사정에 맞게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렇게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무한한 시베리아의 활성화와 이 지역의 천연자원 개발 사업에서 이주민들이 맡은 문화적 역할을 생각할 때, 또 한편으로는 유럽러시아의 인구 과밀을 축소시킨다는 면에서 정당성을 얻을 것입니다.
4. 지금까지 시베리아의 식민화는 거의가 농군들을 불러들이는 것에만 의존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풍요로운 지역의 장래성이 농업 하나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이곳의 전면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제조업의 보급 및 노동인구와 도시 인구의 증가도 필수적이라는 점을 의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베리아의 상인과 제조업자 들에게는 당연한 산업 발전을 위해 이곳 천연자원에 조금이나마 부합하는 필수 자금이 분명히 없기 때문입니다.
시베리아의 자본은 명성이 자자하지만 그것은 정말 상대적인 양입니다. 이 자본은 시베리아가 고립된 상황에서 그곳의 모든 상업과 산업이 막대한 이윤을 획득한 몇몇 독점가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동안에는 대단한 규모라고 간주될 수 있었습니다. 독점가들의 자본은 그들에게 착취당하는 주민들의 눈에는 엄청나 보였습니다만, 유럽 산업의 진행과 발전 규모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유럽러시아에서 충분한 자금 유입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유럽러시아 자체도 그곳 산업의 발달을 위해 자금이 필요한 상태라, 해외 금융시장에 계속 주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베리아의 산업 발전은 외국자본 유치라는 조건 하나만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저는 깊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시베리아 상인들 일부도 외국자본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듯합니다. 적어도 블라디보스토크 거래위원회(연해주 군총독도 이들과 의견이 같습니다)는 제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 때 연해주의 광산업 결핍을 주장하면서, 광산업이 부진한 주된 이유 중 하나로 러시아 자본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꼽은 후 국외자본 유치를 찬성한다고 단호하게 밝혔습니다. 이 위원회의 견해에 따르면, “비록 초기라도 국외자본이 이 지역에 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유익하며, 틀림없이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고 현지의 상업과 전 산업 부문을 발전시킬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그 못지않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노동인구의 유입입니다. 철도 당국이 확인해 준 바에 따르면, 일손 부족은 이미 현재 심각하게 체감되는 터라 그런 점에서 철도 개발은 매우 빈번하게 난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철도 노선의 특히 중요한 지점들에다 철도에 꼭 필요한 노동 요소 및 수공업자와 소상인 따위를 정착시키려면, 국유지 일부 지대를 철도[당국]에 할당하여 철도[당국]이 이 사람들에게 크지 않은 구역을 장기 임대하도록 맡기는 것이 가장 유익할 것입니다.
이런 도시민 부락과 노동자 부락은 당연히 필요하기 때문에 극심한 악조건 속에서도 철도 노선을 따라 점점 증가해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부락들 중 폐하께서는 오브 강과 철도의 교차점에 위치한 노보니콜라옙스크에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이 마을은 황실관재청 땅에 철도를 건설하면서 생겨났으며, 무역로의 교차점이라는 각별히 유리한 조건 덕분에 몇 년 사이에 인구가 2만 5천 명을 헤아리는 정착촌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군청소재지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그러나 지역의 도로와 상업에 중요한 이곳이 계속 성장하는 데 관재청의 토지 임대 조건은 근본적인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임대가 단기로 이루어지고 있어 관구 관리국에서 언제라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단기 임대라는 조건에서는 그 어떤 도시형 정착촌도 분명 오랫동안 생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임대 기간과 임대료의 불변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 어느 누구도 임차한 토지에 어떤 대형 건축물을 세우거나 사업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마을을 지나갈 때 주민들이 부탁한 것이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농장과 목축지를 하사해 주시고 마을을 도회지나 근교로 개조해 주시도록 충성스러운 신민들의 청원서를 올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청원서를 폐하의 어람에 올리나이다.

  • 각주 003)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스페란스키(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Сперанский, 1772.1~1839.2). 알렉산드르 1세와 니콜라이 1세 시대 때 활동한 저명한 정치가이자 개혁가.  바로가기
  • 각주 004)
    아나톨리 니콜라예비치 쿨롬진(Анатолий Николаевич Куломзин, 1838.1~1923.9). 상서이자 국가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역사가.  바로가기
  • 각주 005)
    유럽러시아 50개 현의 경우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농가는 평균 7%입니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처녀지가 아닌 땅을 가리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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