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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Ⅳ.

현재의 전쟁과 관련해 목전에 와 있는 두 번째 개별 과제는 중국의 중립 위반을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이제 그 과제의 해결 방안 검토로 주의를 돌려 보자. 이때, 무엇보다 먼저 말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만주의 중국 최고 당국이 보인 이중적 행태, 그리고 일본인들이 훈련시킨 상당수의 중국 정규군이 우리 통신선로 근처에 집결함으로써 북중국에서의 전투 준비가 강화된 상황으로 보아, 우리는 북경 정부가 러일 전쟁 중 엄격한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전혀 미덥지 못하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병력의 집결이 완료되지 않았고, 그래서 중국을 상대로 한 군사행동을 위해 군 일부를 분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위에 언급된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고, 가장 첨예한 경우라도 중국 정부에게 자신이 떠맡은 의무를 외교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우리의 이런 행동방식이 근거가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지만, 우리에 대한 중국의 이중적 태도를 너무 오래 도외시하면 우리에게 매우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우리 병력이 만주에 차차 집결함에 따라, 특히 우리가 일본에 첫 승리를 거두고 나면 당연히 북경 정부는 자국의 중립 의무에 좀 더 엄격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국이 중립을 위반할 가능성은 더 적어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는 중국이 중립을 지킨 데 대한 감사로 만주에서의 권리 주장을 어느 정도까지는 축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중국의 중립 위반을 인지할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와 중국의 관계를 평가하는 데 남다른 세심함을 발휘한다.
2) 중국이 중립을 위반함으로써 극동에 조성될 상황을 신속하게 이용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해야만 한다.
1) 북경 정부와 만주 당국이 중립을 위반했거나 중립을 허용했다는 증거가 될 만한 그들의 모든 행위를 바로 지금 상세히 정확하게 기록한다.
2) 우리에게 중국의 중립 위반을 앞당겨야만 할 필요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우리와 북경 정부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단으로 적절하다고 인정될 수 있는 조치들을 즉시 입안한다.
전반적으로 만주에서의 우리 입지는 그런 조치들을 마련하는 데 매우 좋은 기반이 되고 있다. 이 조치들에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중국에 아래의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것이다.
1) 지역 주민 사이에서 적절한 질서를 유지시킬 능력이 없다고 판명된 장군 (цзянь‐цзюнь)주 007
각주 007)
將軍. 중국 중앙 정부와는 반(半) 독립적인 군벌적 성격을 지닌 지역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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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 그밖의 중국 고위 관료 들을 만주에서 소환할 것.
2) 현재 우리 통신선로 가까이에 바짝 배치되어 있는 위험스러운 중국 정규군을 전부 만리장성 밖으로 쫓아낼 것.
3) 일찍이 북경 정부가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약속했던 것과 달리 북중국의 군대 및 군 시설에 받아들인 일본 교관들을 해임할 것.
 
중국에는 유도된 최후통첩이 될 수 있는 이 요구들은 틀림없이 아래의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1) 예상하는 바와 같이 만일 북경 정부가 이 요구들의 이행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중국이 중립을 위반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명백한 근거를 갖게 된다. 이때,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스스로 받아들인 중립 준수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 없거나 또는 원하지 않는 보그디한 정부가 지게 될 것이다.
2) 모든 예상과 반대로 만일 중국 정부가 자신에게 제시된 요구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일시적으로는 중국이 중립을 준수했다고 인정하고 중국 정부의 중립 위반을 선언할 새로운 구실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이때, 이런 사태로 인한 손실은 중국이 우리의 요구들을 수용하여 만주에서의 우리의 입지를 상당히 공고하게 해 줌으로써 어느 정도 상쇄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중립이 깨질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가정한다면 이제는 우리의 향후 군사행동 계획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군사행동은 우리에게 유익한 이 정치적 요소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 목표이다.
만주 문제의 최종 결정을 위해서는 우리의 마지막 선언만 남았을 정도로 이 문제가 이미 무르익은 현재 상황에서, 중국의 중립 위반을 알게 된 데 따른 우리의 불가피한 첫 행보는 당연히 만주의 러시아 합병을 선포하는 일일 것이다. 현재 겪고 있는 전쟁 시기는 우리에게 막대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으며, 만주 벌판을 러시아의 피로 엄청나게 물들이고 있다. 바로 이런 시기에 우리는 이미 예전에 치른 희생 덕분에 만주 점유에 대한 절대권을 최종적으로 확립하게 되었다. 그 결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만주의 러시아 합병 선언을 아주 불필요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진정한 러시아 사람 모두가 그것을 한마음으로 환영할 것이다. 우리가 만주에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점유권에 근거해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이때 만주 합병을 단념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의 러시아의 위업에 대단한 타격을 주는 것으로, 역사도 미래 세대도 당연히 우리의 이 치명적인 실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전황(戰況)을 통해 정당성이 인정된 그토록 거대한 역사적 행보를 아주 침착하게 의식적으로 내딛고 있지만 우리는 국제관계에서 그 행보가 가져올 법한 결과들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 엄밀히 말해서 만주 합병은 러시아와 중국에만 관련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열강들이 이 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동에서 러시아의 모든 면이 강해지는 것을 늘 지독하게 시기하는 열강들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만주에 대한 우리의 권리는 의심할 바 없기 때문에 만주가 러시아에 합병되더라도 우리에게 적대적인 외국 언론에서는 우리에 대해 단지 일반적이고 무해한 이야기만 떠들어댈 것이다. 물론 이 소란은 우리가 새로 합병한 지역에서 외국의 이해관계에 공정하게 주의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음이 드러나면 곧 잠잠해질 것이다. 하지만, 몇몇 열강은 러시아의 행보에 항의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여길 것이라는 것도 최소 그 만큼은 가능한 얘기다.
이 항의가 전혀 공식적이지 않고 신문지상의 소란 정도의 의미로 판명된다면, 그것이 이루려는 목적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1) 중국의 영토적 불가침성을 지지하는 것. 또는
2) 열강들이 러시아가 만주 합병으로 얻은 이익에 버금가는 보상을 중국에서 찾을 수 있도록 권리를 확보해 두는 것.
 
중국 영토의 불가침성에 대한 지지는 극동의 국제 현실에서는 전혀 새로운 생각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미 오래전부터 열강들의 중국 정책에서 지침이 되는 중요한 원리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이 정책의 진정한 방향을 비교적 표면상으로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모든 열강 또는 어쨌든 그들 중 다수는 보그디한 제국의 불가침성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한 확언과 달리 정반대로 중국 영토의 획득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산동의 경우 독일, 위해위 및 홍콩 부근의 경우 영국, 광주만의 경우 프랑스가 입증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이 지점들은 열강이 이미 장악해 버렸고, 그밖에 다른 일부 지점들에서는 열강이 아직까지 다만 기반을 잡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모든 지점은 열강이 소위 ‘세력권’이라는 형태로 이미 윤곽을 그려 놓은 중국 제국 지역들에서 이후 영토를 확장하는 데 당연히 출발점이 될 것이다. 열강들이 아직까지도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자신들이 이를 처리하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은 ‘중국 영토의 불가침성’ 원칙이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보여줌으로써 이 원칙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은 외교적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든다. 즉, 이 외교적 미사여구 뒤에는 열강들이 시간을 벌면서 자신들이 중국 영토를 점령할 준비를 할 때까지는 그 일을 어렵게 만들려는 바람이 숨어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늦추고, 그것을 통해 중국 문제의 진행을 지연시키려는 열강들의 이런 노력은 당연히 주로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다. 러시아는 지리적 위치로 보나 극동의 병력으로 보나 다른 열강들에 비해 이미 현재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중국 문제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문제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기를 원하지 않았던 러시아는 지금까지는 통상 중국의 불가침성에 대한 열강들의 성명에 동참해 왔다. 이 때문에 진정한 국익에서 비롯된 우리의 군사행동은 ‘열강들의 협조체제’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했던 말들과 종종 명백한 모순을 일으켰던 것이다.
따라서 만일 열강들 또는 그 일부가 러시아의 만주 합병 결정을 알고 나서도 다시 중국 영토의 불가침성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런 태도의 진의를 분명히 파악하여 예전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중국 영토의 불가침성 문제와 관련해 반드시 “독자적인 의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자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열강들의 정치 분위기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문제는, 중국 영토의 불가침성 지지라는 원칙에서 러시아의 만주 합병을 반대하는 것이 우리에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열강들이 우리의 ‘독자적인 의견’에 대해 아주 강력한 국제적 연합으로 대항할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 영토를 획득하려는 열강들(미국은 제외)의 야욕은 이미 너무 분명해져서 그런 연합 형성은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한편 온전한 중국 영토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아직까지 드러내지 않은 미국의 반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또, 적어도 반(反)러시아적 발언을 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는 영국 측이 미국의 반대를 ‘원칙적으로’ 지지할 가능성도 가정해 볼 수 있다. 일본도 같은 목적으로 전쟁 때문에 약해진 자국의 발언권을 높이려 노력할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열강들이 중국에서의 영토 확장과 밀접하게 관련된 자국 고유의 이익에 역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국 영토의 불가침성을 지지하려는 강력한 연합을 경계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고 열강들은 틀림없이 이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의 만주 합병에 그들이 항의를 한다면 이는 오로지 위에서 지적한 두 번째 목적, 즉 우리가 만주 합병으로 얻은 이익에 버금가는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획득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결론에 맞게 외국 열강의 이런저런 군사행동과 부딪힐 준비를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만주 합병 자체로 다른 열강들의 중국 영토 획득 요구를 방해할 권리가 사라지게 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때 당연히 따르는 조건은, [다른 열강들의 중국 영토] 획득이 러시아의 배타적 세력권에 남아 있어야 하는 보그디한 제국의 영토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상에 관한 이와 같은 문제제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정의감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줄 이점에 대한 자각 때문이다. 그 이점이란 다음과 같다.
1) 중국에서 보상을 얻고자 진력하는 열강들이 이해관계의 일치를 보는 것은 웬만해선 어려운 일이므로, 불가피하게도 그들은 분명히 중국과는 물론이고 자기들끼리도 치열한 다툼을 벌이게 될 것이다. 때문에 이 열강들은 비교적 막대한 병력을 극동으로 차출할 터인데, 이 병력은 특히 지금은 러시아에 위협이 되지 못하지만 어쨌든 유럽에서는 그들의 입지를 현저히 약화시킬 것이다.
2) ‘황화론(黃禍論)’주 008
각주 008)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어난 ‘황인종 경계론’(yellow peril)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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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기세가 좋을 때는 유럽 전반과 특히 중국에 이웃한 러시아 지역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에 침투하려는 다른 열강들까지 겨냥하게 되면 [그 효과가] 분산될 것이다.
3) 중국 스스로가 유럽에서 밀려오는 위협을 깨닫고 러시아와 친교를 맺으려 노력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있다. 이는 중국이 외국의 점령에 대항하는 데 러시아의 도움을 기대하기 때문으로, 이로써 우리와 중국의 국경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당연히 수월해질 것이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국제 분쟁이 우리에게 주는 이 이로운 측면들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이 분쟁의 시작으로 보그디한 제국 내에서 소요가 발생함으로써 중국 문제가 심히 첨예해질 수 있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 내 소요는 특히 연로한 섭정 황후가 사망할 경우 아주 격하게 확대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중국 문제는 급속도로 위기 국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 소요들로 인해 극동의 국제 현실의 평화적인 흐름이 파괴되고 전세계 무역에 현저한 손해가 생길 수 있으므로, 당연히 외국 열강들은 중국의 내정에 다시 간섭할 것이 틀림없다.
1900년에 참혹한 경험을 했던 이 열강들은 북경 정부를 또 다시 지원하거나 중국 내 질서 회복에 공동으로 착수하는 결정을 십중팔구 자제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폭동이 일어나면 의화단의 난 때처럼 비교적 적은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 전체로 확대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열강들은 중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이 방법은 러시아의 만주 합병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감안할 때 중국 문제를 완전히 종결짓겠다는 결심에서 찾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는 열강들의 그와 같은 급격한 정책 변화를 항상 지극히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이런 변화는 극동에 위기를 가져오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위기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위기를 제거하는 것이 우리 정책의 주요 원리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해 둘 점이 있다. 최종 결말이 전혀 의심스럽지 않은 현재의 러일 전쟁을 통해 우리는 극동의 가장 강력한 주적인 일본을 완전히 약화시키는 것 외에도, 태평양의 우리 군사력을 전례 없이 강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태평양의 우리 군사력은 전쟁에 무리하게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굉장할 것이며, 특히나 중국의 보잘것없는 군사력 및 주로 육상에서는 순전히 허울뿐인 나머지 열강들의 병력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바꿔 말하면, 일본과의 전쟁을 끝내면서 러시아는 극동에 어떤 위기가 오든 그 위기가 우리에게 가져올 위험을 타파할 엄청남 힘의 우위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대단히 유익한 이런 상황을 논하면서도, 그토록 유리한 정세가 단지 얼마 동안만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1) 중국은 이미 현재 열정적으로 군사 개혁에 임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조건이 좋아지면 보잘것없는 군사력에서 벗어나 자신과의 싸움에 큰 노력을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2) 중국 문제에 손대기로 결정한 이상 외국 열강은 반드시 극동의 자국 병력을 증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해가 되도록 극동의 기존 세력관계를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역사적 시기는 한국과 만주 문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세 가지 문제 중 마지막인 중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히 적당한 시점이다. 이때를 놓친다면 극동에서의 우리의 주요 국가 과제를 완전히 해결할 시기는 무한정 늦춰지게 되고, 그 결과 무엇보다도 극동에서의 혼란 시기가 연장될 것이다. 이로 인해,
1) 우리는 그곳에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킬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우리가 차지한 입지를 안정적이고도 생산적으로 경제성 있게 이용할 가능성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판단은 너무도 중차대해서, 심지어 러시아의 만주 합병이 그 자체로 또는 열강들의 이런저런 군사행동 결과로 중국 문제를 첨예화시키지 않더라도 우리는 중국의 중립 위반을 알게 된 직후 중국 문제 해결에 착수해야만 할 것이다. 게다가, 문제 해결에 매우 적절한 그 특수한 역사적 순간에 우리가 마지막 극동 문제를 마무리한다는 결정을 포기하는 것은 공격성을 띠는 문제들에서 주도적인 역할은 피한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성향을 동원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러시아가 자신의 관례를 버리면 안 된다는 바람이 있을 수 있다. 즉 우리가 전혀 관여하지 않고도 중국 문제가 첨예화되고 나면, 러시아는 이것이 누구 때문인지에 따라 중국 아니면 다른 열강에게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운 후 자신은 이 상황을 이용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 중립을 위반해 현재의 우리 적의 동맹국 노릇을 하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워져 군사행동도 자유롭게 하게 되리라는 점은 전혀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제멋대로라는 일반적인 비난을 피하려면 어쨌든 우리의 군사행동에 국제적으로 아주 정확한 성격을 부여해야만 하는데,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중국이 중립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일단 알게 되면 우리는 논쟁의 여지없이 중국에 대한 선전 포고권을 갖게 된다.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가 반드시 즉각적인 군사행동 개시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받아들인 중립을 스스로 위반한 국가와 아주 분명한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1900년에 저질렀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우리는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자제함으로써 입장이 굉장히 복잡해졌고, 지금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만주 문제의 난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우리 측의 그와 같은 행동방식은 또 다른 엄청난 이점을 갖고 있다. 즉, 중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우리는 중국 문제에서 다른 열강들과 전혀 상관없이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판단은 우리에게 각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갖가지 ‘열강들의 협조체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나쁜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를 과거의 수많은 사례들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열강들의 협조체제’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이익과, 논의 및 결정을 해야 하는 문제들의 세부사항을 잘 모르는 것처럼 비쳤었다. 지금의 경우 우리는 더 좋은 상황이 올 거라고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 문제가 새롭고 복잡해져서 최악의 상황을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에, ‘열강들의 협조체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이렇게 판단한다고 해서 여러 외국 열강과 맺은 별도의 협정에 근거해 또는 단순히 공동의 이익을 위해 우리가 그들의 협조를 이용할 가능성이 배제되는 것은 당연히 절대 아니다. 우리에게는 열강 중 일부, 우선은 프랑스와 독일이 기꺼이 우리에게 호응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실 프랑스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할 게 없다. 우리가 중국에 선전포고를 할 경우 프랑스가 맡을 역할은 러시아와 맺은 동맹조약을 통해 아주 분명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에 대해서는 지적이 필요하다. 독일의 산동 정책이 중국에서의 영토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일단 설정한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독일 정부가 지닌 그 유명한 체계성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우리와 동시에 대대적인 행보를 시작할 좋은 기회를 버리겠다고 결정한다는 것은 가정하기 어렵다. 이 행보는 중국 문제가 첨예해지면 완전히 가능할 것이며, 만일 우리가 약간이나마 소아시아에서의 요구사항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독일 정부가 알게 된다면 그들은 아주 기꺼이 이 행보에 나설 것이다. 소아시아에서의 요구사항들은 본질상 포기가 완전히 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열강들의 협조체제’에서 이탈하더라도 러시아는 어쨌든 중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협력자를 찾을 수 있다. 러시아는 이들과 이미 1895년에 공동 행동을 취한 바 있는데, 당시 이 열강들은 서로간의 상호 협정에 따라 아시아 대륙으로 나가는 일본의 승리의 길을 차단했던 것이다. 극동 문제와 관련된 이 열강들의 협정은 지금까지 특별히 부각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주로 그들 정부가 이 협정에 거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고, 특히 현지 외교 대표들의 개인적인 견해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협정의 불꽃은 처음으로 적절한 기회가 오면 완전한 화염으로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을 만큼의 밝기로 아직 희미하게 타고 있다. 이 적절한 기회는 틀림없이 중국 문제가 첨예화되면 올 것이다. 중국 문제를 결정할 때 러시아, 프랑스, 독일은 자신들의 공동의 적인 영국과 미국 그리고 최근에 여기에 포함된 일본의 권리 주장에 맞서서 자신들이 쉽게 합의하는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수해야 한다.
 
대략적인 국제 정세는 이와 같다. 이런 국제 정세 하에서 러시아는 자연스러운 사건 흐름상 중국 문제 해결에 착수해야 할 아주 확실한 필연성이 있을 경우에 움직여야 한다. 본 보고서 제1부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중국 문제는 아래와 같은 과제로 이루어져 있다.
1) 우리와 중국의 국경을 최종 확정할 것.
2) 중국 내륙지역(몽골, 중국령 투르케스탄, 티베트)에 러시아의 영향력을 변함없이 확실하게 확립해 놓을 것.
3) 우위를 점하고 있는 외세가 중국 본토의 북쪽 성(직례성, 산서성, 섬서성, 강소성)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을 것.
 
이 중 첫 번째 과제는 일련의 국경 문제 해결을 포함하고 있는데, 국경 문제들 중 가장 주의를 요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쿨자(Кульджа)주 009
각주 009)
중국 명칭은 이닝[伊寧].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서부에 위치한 도시.
닫기
문제-중국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한 결과 1881년에 우리에게 불리하게 결정됨.
2) 파미르(Памир) 문제-[우리에게 복속시킬] 당시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고, 비록 지금은 일시적으로나마 잠잠해졌지만 조만간 해결을 요함.
3) 바를리크주 010
각주 010)
중국 북서쪽의 산악에 위치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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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Барлык)와 알카베크(Алкабек)
주 011
각주 011)
중국 서쪽에서 가까운 카자흐스탄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
닫기
문제-국경지역인 키르기스 유목지와 관련된 이 두 곳은 수년 간에 걸친 중국 정부와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음.
 
이 모든 문제, 그리고 당연히 더불어 우리 국경 당국이 잘 알고 있는 몇 가지 다른 문제도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중국에 전쟁을 선포하기만 하면 완전히 가능해질 것이다.
 
중국 내륙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립하는 두 번째 개별 과제는 엄청난 거리에 걸쳐 있는 국경지대의 특성 자체에서 비롯된 것으로, 국경지대에는 다양한 종족의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러시아 영토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수히 많은 대표를 갖고 있다.
중국의 내륙지역 전체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일 만한 곳은 당연히 몽골이다. 몽골은 역사적 과거, 민족적 공감, 전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러시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몽골에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립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1) 몽골은 이미 북경 정부가 마련한

  • 각주 007)
    將軍. 중국 중앙 정부와는 반(半) 독립적인 군벌적 성격을 지닌 지역의 지배자.  바로가기
  • 각주 008)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어난 ‘황인종 경계론’(yellow peril)을 말함.  바로가기
  • 각주 009)
    중국 명칭은 이닝[伊寧].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서부에 위치한 도시.  바로가기
  • 각주 010)
    중국 북서쪽의 산악에 위치한 지역.  바로가기
  • 각주 011)
    중국 서쪽에서 가까운 카자흐스탄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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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자료번호 : kifr.d_0002_0030_002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