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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극동정책 보고서 Ⅰ 보고서

  • 리스트여닫기 러시아 극동정책 보고서 Ⅱ 보고서 러시아와 일본은 병력 수와 질 및 재정 자원이 매우 불균등해서 극동에서 발발한 전쟁의 결과를 결코 의심할 수 없다.당연히 러시아는 이미 시작된 일본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할 것이며, 승리의 규모는 오로지 이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해 우리가 쏟아 부을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그런데 이 노력의 정도와 그에 따른 전쟁의 결과는 어떤 우연한 동기나 개별적인 견해들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상황에서 가능한 한 명료하게, 태평양 연안에서 추구하고 있는 국가적 과제에 완전히 부합하도록 전쟁의 결과에 대해 미리 윤곽을 그려 놓아야 한다.

  • 리스트여닫기 극동에서 우리의 전략적 위상을 강화할 필요성 볼콘스키 1897년 12월 3일 보고서 사본 № 6비밀.총참모부 군사학술위원회 앞.황후 폐하 마리야 페오도로브나의 근위연대 소속 육군 중위 볼콘스키(Волконский А. М.) 공작의 보고서 지난 1897년 여름 나는 Э. Э. 우흐톰스키(Ухтомский) 공작의 사절단원이 되어 북경으로 출장을 갔었다. 서울에서 얼마간을 보내고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시베리아를 거쳐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것들은 하나같이 러시아와 일본의 무장 충돌이 불가피하며 이미 임박해 있는데도 우리는 그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의 생각은 문제를 면밀하게 연구한 결과는 아니다(그렇게 하기에는 내게 시간도 기회도 없었다). 이런 생각은 여행하면서 받은 인상의 결과로 얻은 것이다. 이 보고서의 맺음말을 보면, 내가 왜 나 자신이 옳다고 여길 뿐만 아니라 그토록 불확실한 근거에 기대어 견해를 피력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 리스트여닫기 머리말 국제관계의 시각에서 볼 때 미래의 세기는 태평양 연안에서 우위를 다투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 다툼이 어떻게 전개될지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테지만, 이미 현재 분명하고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은 대양의 연안에서 강력한 전략적 위치를 점할 때에야 비로소 여러 국가들은 이익이 약속된 이 싸움에 적극 참여할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유럽 정부들이 이미 이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거점들을 정하고 있고 미래에 자국의 통치권을 보장해 줄 해상기지도 벌써 선택하고 있는 그런 시대라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이 글이 작성된 때부터 독일은 자국이 거점들을 ‘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거점 하나를 ‘정해’ 그곳을 점유했다고 시사한 바 있다. . 지금 자신에게 유리한 기지를 점령할 순간을 간과해 응당 필요한 전략적 위치를 마련할 시간을 놓친 정부라면 그 자체로 자국민에게서 미래의 헤아릴 수 없는 이익을 전부 빼앗는 꼴이 된다. 그 미래의 이익이라는 것이 토지가 많은 수백만 인구의 나라들에 대한 지배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서유럽 국가들에게 전략적 위치란 그런 의미이다. 그들은 여기에 식민지만 갖고 있을 뿐이어서 극동에서 전쟁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여기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본국에는 아무 위험부담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 지역들에서 처해 있는 조건은 완전히 다르다. 러시아는 거점이 되는 곳들과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는 처지여서, 응당 필요한 전략적 준비가 향후 이곳에서의 국가적 성장에만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그것 말고도 전략적 준비는 기존의 정치적 위상을 성공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서 중요하다. 전략적 위치의 개선은 우리에게 자위의 조건이자 국가 방위의 수단으로서 필요 불가결하다. 사전에 합당한 전략적 위상을 확보해 놓아야만 러시아는 세계적인 국가라는 의의를 유지한 채 극동 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태평양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서쪽의 지원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강고한 해군력이 필요하다. 또한 크론슈타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해군 기지이자 항구 도시.에 근거지를 둔 분함대가 아니라 태평양 연안지역에 강력한 기지를 확보해 놓은 함대가 필요하다. 함대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그런 해양기지를 점유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 함대 안에는 새로운 항구가 러시아에 쓸데없는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문제는 새로운 항구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상 설비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하는 무리가 있다. 이런 관점에 설 경우 우리의 공세적인 계획을 위한 한국의 역할에 관해 우리가 차후 이야기하는 내용은 전부 완전히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국의 방위적 의미는 전적으로 유효하다. 육상에서 취할 수 있는 그 밖의 모든 조치는 이 기지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 이상은 아니다. 따라서 본질적인 요구 사항은 다음과 같은 조건의 항구를 점유하는 것이다. 1) 얼지 않는 곳, 2) 철도를 통해 제국과 연결되는 곳, 3) 인접국들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곳. 안전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새로운 항구 및 그 너머까지의 연안 전체를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은 황해(Желтое море)의 어느 곳에 있는 항구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 발걸음부터 한국 지배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일본의 요구와 충돌하고 만다. 일본이 한반도 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단지 자신들이 황해와 동해(Японское море) 원문 표현대로 하면 ‘일본해’임. 전체에서 완전한 주인이 되어 자국의 육상 병력이 남우수리스크 지역에 위협적인 상태가 되도록 만든다는 전략적 측면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 점유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국의 경제 발전에 굉장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세운 계획은 [자국 내] 쇼비니즘 성향의 아무 정당이고잠시 현혹할 것이다. 이 계획이 섬 안에 갇혀 있는 근면한 4천만 인구의 자연스러운 역사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까닭이다. 300년에 걸친 일본과 한국의 싸움은 이 점을 증명한다. 일본의 군사력이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한 것도 바로 이에 대한 증거이다. 전 유럽 열강의 연합 상륙부대가 인원수에서 50만 일본군의 1/5을 넘지 못했을 텐데도 정작 일본이 50만 군 창설을 열망하는 것을 그들의 어떤 방위 계획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일본 육상 병력과 함대의 놀라운 성장은 일본인들에게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세적 계획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음을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마음 속에 품어온 목표는 자국의 통치권을 대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그들의 이런 열망에 주된 훼방꾼이 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닌 러시아에 대해 일본의 육·해군은 발광적인 적대행위를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대러 전쟁의 가장 단기적인 실질적 목표는 무엇일까. 우리를 우수리스크 지역에서 축출하고 대양과 차단시키는 것일까? 하지만 일본인들이 그런 계획을 고려할 수 없다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왜냐하면 군사 행동 초반에 그들이 전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1년 후 우리의 유럽쪽 병력이 도착하면 필연적으로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은 우리의 태평양 분함대 박멸을 전쟁의 목표로 삼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승리 역시 일시적인 성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노력하면 우리는 이전의 분함대보다 조직이 더 큰 함대를 이 해역에 파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줄기차게 체계적으로 준비하면서 완전히 확정적으로 염두하고 있는 목표는 바로 국제적 의의를 갖는 법령을 통해 한국을 점유해서 자기 것으로 확고히 해 두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법령이란 것은 우리가 일본뿐 아니라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열강들과의 협정을 깨지 않는 이상 미래에 우리가 한국 지배를 위해 노력할 가능성을 박탈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이 전쟁은 언제 시작될까? 답은 명확하다. 일본이 자국 병력이 우리보다 충분히 우위라고 확신하는 순간이다. 그 시기가 아주 가까이 와 있다. (1897년) 여름 현재 이미 청국의 군무관은, 우리가 크레타 섬의 복잡한 문제로 서방에서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될 경우 일본은 전쟁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몇 년 후 일본에서 위협적인 해상 계획이 실현되면 확실히 우리의 적군 쪽 병력이 우세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현 정세에서 어떤 전혀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나야만 우리는 이 힘겨운 싸움을 시작할 필연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요컨대 태평양에서의 국제 분쟁은 불가피하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이 분쟁은 러일 전쟁으로 표출될 위험이 있다. 일본 측의 전쟁 목표는 바로 한국 점령이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일본의 국력은 놀랄 만큼 신장하는 반면, 현재 우리의 정치적 위상은 곧바로 약화될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약화되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이 일본 정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적어지도록 전략적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이 순간 극동에서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전장을 검토함으로써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해 보이는 조치들을 끌어내 보자.

    • 맺음말

  • 한국과 한국정부의 상황, 그리고 바람직한 한국 목재산업시설에 관하여 볼콘스키 1898년 보고서

  • 재무대신이 외무대신에게 보낸 1900년 2월 10일자 서신의 사본 비테 1900년 2월 10일 보고서

  • 리스트여닫기 재무대신 비테의 극동 방문 상주보고서 비테 1902년 보고서 저는 폐하의 윤허를 받고 대(大)시베리아철도의 마지막 구간인 동청철도 시찰 여행을 마쳤습니다.이 여정을 완전히 마치고 난 후 저는 알렉산드르 3세 황제의 치세 때 시작되어 폐하의 직접적인 지휘 아래 건설된 이 시설물의 엄청난 규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단한 과업이 완수된 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시베리아철도의 세계적 의미는 이제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며, 우리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한목소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철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속 선로로 연결함으로써 동서양 사이 상품 교류가 이루어질 세계적인 통행로가 될 것입니다. 중국, 일본, 한국은 인구가 5억에 달하는 데다가, 좀 더 신속하고 저렴하게 수송과 물품 교역을 할 수 있도록 온갖 수단을 제공하는 광대한 증기기관차 선로의 도움으로 현재 6억 루블을 상회하는 국제무역액을 기록하고 있어, 산업문화가 발달한 시장으로서 동양의 원자재를 필요로 하는 유럽과 좀 더 긴밀하게 교류하게 될 것입니다. 시베리아철도 덕분에 이 나라들에서는 유럽산 공산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유럽의 지식과 자본은 동양 국가들의 천연자원을 탐사, 개발하는 데 새롭고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유럽 제민족이 볼 때 동방의 아시아는 최근까지 서구 문명을 멀리한 채 자신의 고유한 민족문화를 형성하면서 수천 년 간 고립된 삶을 살아온 거의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시베리아철도의 부설로 지금까지 닫혀 있던 이 세계의 문이 유럽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유럽은 수많은 몽골족들과 대면할 것이고, 동방 민족들은 앞으로는 현실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곧 다가올 황인종과 백인종의 교류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전부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이 교류 사업에서 러시아가 중대한 과제를 맡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러시아는 교류가 이루어질 통로를 장악함으로써 중개자가 되어 그 상황의 모든 이점을 누려야 할 것이고, 그렇게 유럽에서 아시아로 열린 문호의 파수꾼이 되면 동서양 교류를 자국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조절하고 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시베리아철도는 세계적 의미 외에도 지역 철도로서 러시아에 여러 가지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가령, 러시아 산업을 위한 폭넓은 국내 시장이 새로 생겨난다든가, 유럽러시아의 과잉 인구가 이민에 적합한 시베리아의 새롭고 광활한 공간으로 나갈 출구가 마련된다든가, 또, 시베리아의 천연자원 개발과 시베리아의 인구 증가 및 산업 발달은 우리나라의 생산력을 증대시켜 시베리아 자체가 문화적 삶의 적극적 참여자가 된다든가 하는 것입니다.시베리아철도 부설은 가장 위대한 세계적 사건의 하나이자 폐하의 영광스러운 사업 중 하나로 역사의 페이지에 영원히 등재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심판이 곧 역사의 심판은 아닙니다. 시베리아철도 건설 사업으로 러시아가 치른 막대한 희생은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느껴져 당시 사람들이 철도 부설의 미래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하고 그것에 대한 올바른 평가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희생들은 실제로 러시아 재정에 엄청난 짐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동청철도, 페름-코틀라스 노선, 예카테린부르크-첼랴빈스크 노선 및 시베리아 본선의 운송로를 건설하는 데 758,955,907루블이 국고와 모든 후원 기업들에서 나가야만 했고, 바이칼 순환 철도에 지출된 것까지 합하면 총 건설비용은 10억 루블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국고 지출이 모두 끝난 것은 당연히 절대 아닙니다. 철도 부설로 인해 동쪽 변방지역의 행정기관 및 병력을 강화하고 태평양함대를 증강하고 항구를 건설하는 등의 일에 많은 부대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베리아철도 건설이 재정상의 이유로 아주 오랫동안 연기된 것, 그리고 전 재무대신인 분게 니콜라이 흐리스티아노비치 분게(Николай Христианович Бунге, 1823.11.11~1895). 1881~1886년 러시아 재무대신 역임. 와 비시네그랏스키 이반 알렉세예비치 비시네그랏스키(Иван Алексеевич Вышнеградский, 1832.1.1~ 1895.4.6). 1888~1892년 러시아 재무대신 역임. 같은 걸출한 행정가들이 국고에 그 부담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현재 시베리아철도는 폐하의 끊기 있는 보살핌과 후원에 힘입어 거의 다 완성이 되었습니다. 러시아 인민의 생명력이 고양되어, 큰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위험하고 실현되기 어려워 보이는 이 사업을 무사히 감당해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1893년 1월 14일 폐하 명의로 내리신 칙서에서 영면하신 선황께 ‘러시아의 동방 평화 사업이자 계몽 과업’으로 명명하셨던 그 대대적인 과제가 철도 건설로 모두 수행되고 있는 것은 아직 아닙니다. 철도는 다만 이 사업의 일부이자 사업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 사업이 전체적으로 완성되어 기대할 수 있는 결과들이 풍부하게 나오려면 더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고, 적잖은 온갖 장애를 극복해야 하며, 한 세대 이상이 바뀔 만큼의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당면 과제들이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윤곽을 잡아 명시하는 일이 곤란하고 거의 불가능하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시급한 초미의 과제들은 꽤 확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원래대로 시베리아철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폐하께 이 보고서에서 철도 관련 문제들을 상세히 검토해 주십사 수고를 끼쳐드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철도와 철도가 지나는 지역은 제국 영토 안에 있고, 여러 관청이 공동으로 관할하고 있습니다. 각 관청들은 자신의 권한 범위 안에서 철도와 관련된 과제들을 해명하기 위해 고심도 하고 그것을 어람에도 올립니다. 따라서 저는 시베리아철도의 이 구간[동청철도]과 관련해 제가 여행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중요하게 부각된 몇 가지 문제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청철도는 대부분이 중국 제국의 영토 안에 있고, 나머지 부분은 태평양에 둘러싸인 우리의 새로운 변방지대에 있어 상황이 다릅니다. 이 노선 전체를 폐하께서 신뢰해 주시고 후원해 주셔서 그것이 재무부의 일이 되었습니다. 해서, 저는 이 노선과 관련된 문제들을 좀 더 상세히 기술해 보고자 합니다.시베리아철도와 그 지역 자체에 관련된 문제들 중에서 상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시베리아철도 지역의 이민 강화, 2) 중부시베리아철도의 단면도 수정, 3) 바이칼 순환노선 부설 가속화.

  •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상주 서신 베조브라조프 1903년 5월 11일 보고서

  •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상주 서신 베조브라조프 1903년 5월 23일 보고서

  •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상주 서신 베조브라조프 1903년 6월 1일 보고서

  •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상주 서신 베조브라조프 1903년 6월 2일 보고서

  •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상주 서신 베조브라조프 1903년 6월 15일 보고서

  •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상주 서신 베조브라조프 1903년 9월 27일 보고서

  •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상주 서신 베조브라조프 1903년 10월 14일 보고서

  • 상서 베조브라조프의 보고서 안 베조브라조프 1903년 12월 28일 보고서

  • 1903년 7월 28일자 А. И. 베조브라조프의 간략 보고서 А. И. 베조브라조프 1903년 7월 28일 보고서

  • 리스트여닫기 도면이 첨부된 1903년 8월 8일자 А. И. 베조브라조프의 간략 ... А. И. 베조브라조프 1903년 8월 8일 보고서 극동에서 우리의 상황과 활동 양태를 분석할 때 우리의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극동에서 우리의 목표는 현재의 지출은 최소화하고 향후 이익은 최대화 시키면서 국경을 확정하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침략이 아니라 건설입니다.제국의 역량인 해당 기관(외교, 군사, 행정기관)은 우리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복무해야 합니다. 이 지역의 경제 문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와 직접 관계 됩니다. 외교, 군사, 행정 문제는 이 궁극적인 목표에 종속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배타적 영향력의 범위와 경계를 규정짓게 될 상황의 조성은 외교 문제의 정확하고 능숙한 설정에 달려있습니다. 이 경계 너머에는 우리가 특권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외의 새로운 경계는 사건의 경과(우리 성공의 진전과정)에 의해서만 우리 앞에 제시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제국 국경선의 법적 변경에 대해 초조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명확함(모호함)이 근저에 깔리게 될 그런 변경으로 인해 우리의 경쟁자들보다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주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군사적 과제는 노골적인 대립을 피하면서, 정치·경제적 주도권 장악을 위해 충분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당 지역에서 우리의 위치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정적 과제는 우리의 관할 하에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극동에서 이 과제는 그곳에 지배적인 과거의 횡포로부터 주민들의 삶과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충분히 완수할 수 있습니다. 단 자신의 정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만,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민족성에 대해서는 강한 애착을 느끼고 있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조건을 침범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상의 내용으로 판단할 때 행정적 과제는 조직적인 면에서 그리 쉽지 않으리란 것은 분명합니다. 이곳의 행정적 과제는 우리의 행정, 민사, 군사 관행에서 선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는 자치의 방안이 요구됩니다. 청국의 관료제처럼 하층 직급은 선발하고 상층 직급은 우리가 임명하는 것입니다. 청국의 중앙 정부(북경)는 본질상 그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겠지만 형식상으로는(‘체면을 위해’) 지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러시아의 권력과 영향력은 총 군사위원 한 사람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군사위원과 그들의 전권위원들은 그의 휘하에 직속될 것입니다. 또 총 군사위원은 총독에게 직속될 것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이런 관직 이외에 다른 관직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권력의 단일화 원칙을 엄중하게 실행하게 될 초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상호 교류를 꺼려하는 우리 관리들 사이의 불화를 청국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능숙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행정 조직을 구성할 때 필요한 창의적 사고는 경제 조직을 구성할 때는 더 더욱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청국과 외국의 노동력과 자본을 끌어들여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흔쾌히 봉사하도록 해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는 지금 두 개의 정부 조직, 즉 러청은행과 동청철도가 있습니다. 척추 부근에 모든 것이 집중되듯이 내부에서 조율한 정부의 초기 모든 경제 활동 계획을 이 조직들 근처로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의 모든 대기업들도 이 조직들 근처로 집중시켜야 합니다(이권 획득의 독점권). 이것은 그 기업들 중에서 가장 적절한 기업에 대해 우선적으로 가동 설비를 갖추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지역의 모든 기업들이 이익을 남기는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당연히, 개인의 기업정신 고취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외국 자본과 노동이 우리를 찾아올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요구 조건에 따라 그들을 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수중에 보물이 들어오게 될 이런 상황에서 동요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위상을 탄탄하게 지키면서 강해져야 합니다.외국 자본과 노동의 [1단어 판독불가]로부터 제2차 경제 활동이 시작됩니다. 사업들에 대한 올바른 재정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국가는 투자한 비용을 회수함과 동시에 유동자본을 형성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지출을 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지분 혹은 주식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국유 자본의 증가). 이렇게 하여 국가는 지배적인 지위와 계속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상술한 기본적인 분석으로 극동 사업에서 일관성 있는 집행안의 중요성이 명백해졌습니다. 또 이 계획의 방법론적 실현을 위한 기구의 중요성도 명백해졌습니다. 이웃 국가들에 파견될 공사들과 총독의 직속 부하들, 즉 총 군사위원과 상공업과 재정사업을 전담할 총 전권위원 등 요직에 임명될 인물의 선택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극동 관구에 대한 법령을 확정할 때 가능하다면 상술한 생각들에 주의를 기울이시길 바랍니다.상서(尙書) 베조브라조프1903년 8월 8일.상트 페테르부르크.

  • 리스트여닫기 1903년 11월 23일자 시종무관장 쿠로파트킨의 보고서 쿠로파트킨 1903년 11월 23일 보고서 황제 폐하,만주 문제에 관해 제출 드리는 이 간략 보고서에서 관동주와 동청철도 남부 지선을 교환하는 대가로 북만주를 러시아 영토로 합병하는 것이 만주 문제 해결에서 러시아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다는 의견을 감히 피력했습니다. 황제 폐하, 1896년 초 테헤란에 저를 파견하신 이래 제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많은 문제에 관해 솔직한 의견을 표현하라고 윤허하셨습니다. 러시아의 대의를 위해 여러 차례 피를 흘렸으며 지금도 폐하와 조국의 수호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전투에 나설 각오가 되어 있는 노병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러시아군의 존경하옵는 최고 지도자께 응분의 진실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출하는 간략 보고서는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일방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폐하의 통치 의지로 극동 문제에 관한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시게 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글을 단지 제 능력에 맞게 작성한 하나의 자료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 자료가 다른 자료들과 함께 극동에 관한 향후의 해결책을 검토하실 때 황제 폐하의 자비로운 관심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폐하의 충복 알렉세이 쿠로파트킨1903년 11월 23일.상트 페테르부르크.

  • 만주 문제에 관하여(총괄) 쿠로파트킨 1903년 11월 24일 보고서

  • 극동에 관한 상주 보고서 보고서

  • 극동상황에 대한 보병대장 그로데코프의 상주보고서 니콜라이 그로데코프 1906년 4월 11일 보고서

  • 별첨자료Ⅰ : 1368-1905년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 중 가장 중요 ... 체레반스키 В.П. 1906년 보고서

  • 프리아무르주 총독이 폐하께 올리는 보고서 운테르베르게르 1908년 3월 21일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