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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묵특(嚕默特)이 가정 3년 사자 등을 공물로 바쳤는데, 예부 관원 등이 그들이 교활하니 관문(關門) 밖으로 내보내고 논죄하기를 청하자 조사·치죄한 내용

  • 국가
    노미(魯迷)
노미(魯迷) 주 001
각주 001)
魯迷: 루미(Rumi)의 音譯이다. 소아시아 즉 오스만 帝國을 가리킨다. 嘉靖 3년(1524)부터 33년(1554)까지 5차례에 걸쳐 중국에 使節을 파견한 바 있다. 13세기 말 이후 셀주크 투르크에 대신하여 소아시아(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투르크족의 이슬람 국가(1299~1922)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1299~1922)은 다민족·다종교 국가로서,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3개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으며, 16~17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수도는 오늘날 이스탄불로 알려진 콘스탄티노플이었으며, 투르크계의 오스만 왕조가 제국을 통치하였다. 전성기 제국의 영토는 동서로는 카스피해와 페르시아만 연안에서부터 대서양 연안의 지브롤터 해협까지, 남북으로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 유럽의 오스트리아 경계에 이르렀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동서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문화적으로도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다원적인 성격을 띠었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한구석에서 나온 小君侯國으로부터 발전한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는 이윽고 동로마 제국 등 남동유럽의 기독교 제국, 맘루크 왕조 등의 서아시아·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 제국을 정복하여 지중해 세계의 과반을 차지한 세계 제국인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쇠퇴하여 그 영토는 다른 나라에 점령되거나 독립하여 20세기 초반에 마침내 마지막에 남은 영토 아나톨리아로부터 새롭게 건국되어 나온 국민 국가인 터키 공화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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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거리가 매우 멀다. 가정 3년(1524)에 사신을 보내 사자·서우(西牛)를 공물로 바쳤다. 급사중 정일붕(鄭一鵬) 주 002
각주 002)
鄭一鵬: 字는 九萬으로, 甫田人이다. 正德 16년(1521)에 進士가 되어 庶吉士로 翰林院에 들어갔다. 嘉靖 초에 戶科左給事中으로 승진하였다. 성품이 강직했는데, 과감한 간언은 諫官 가운데 으뜸으로 널리 알려졌다. 嘉靖帝가 道敎에 빠져 方士를 좋아하고 儀式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이를 간하는 上奏를 하기도 하였다. 한편 大禮의 議 과정에서 伏闕하여 諫하다가 廷杖을 당한 바도 있다. 후에 李福達의 獄으로 武定侯 郭勛을 탄핵했지만, 桂萼과 張璁이 妄奏로 연좌시켜 관직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死後인 隆慶 초에 復官되고 光祿少卿으로 追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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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뢰기를, “노미는 일찍이 공물을 바친 나라가 아니고, 사자는 [길들여] 기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니, 청컨대, 이를 물리쳐 성덕(聖德)을 빛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주 003
각주 003)
이에 관한 내용은 『世宗實錄』 卷38 嘉靖 3년 4월 己未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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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의 관원 석서(席書) 등이 아뢰기를, “노미「왕회(王會)」 주 004
각주 004)
王會: 『逸周書』 제59篇의 「王會」를 가리키는데, 周나라 때 天子에게 조공하는 諸侯, 四夷 혹은 藩屬國의 王들의 聚會와 貢獻에 대하여 기재하고 있다. 「王會」에는 특히 이들 나라에 대한 명칭이 나열되어 있다. 明代에도 明朝로부터 王에 책봉되어 조공하는 번속국을 기록하였는데, 본문에서의 「王會」는 명에 조공하는 나라의 명칭을 나열한 책으로 보인다. 한편 『逸周書』 는 『周書』가 原名인데, 『尙書』와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 舊說에는 孔子가 『尙書』를 刪定한 뒤에 남은 것이었다는 점에서 周書를 逸篇이라는 뜻으로 『逸周書』라 불렸다고 하지만, 지금은 주요 篇章이 대개 戰國時代에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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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나열되어 있지 않으며, 그 진위를 알 수 없습니다. 근자에 토로번에서 여러 차례 감숙을 침범하였는데, 변경의 관리가 노미의 인명책자 내에서 토로번 사람을 조사해 내었습니다. 그 교활함이 매우 명백하니, 청컨대 그들을 관문(關門) 밖으로 내보내고, 체포한 간첩은 치죄하시기 바랍니다”라 하였다. 가정제는 결국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변경의 수신(守臣)으로 하여금 조사해서 치죄하도록 하였다.

  • 각주 001)
    魯迷: 루미(Rumi)의 音譯이다. 소아시아 즉 오스만 帝國을 가리킨다. 嘉靖 3년(1524)부터 33년(1554)까지 5차례에 걸쳐 중국에 使節을 파견한 바 있다. 13세기 말 이후 셀주크 투르크에 대신하여 소아시아(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투르크족의 이슬람 국가(1299~1922)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1299~1922)은 다민족·다종교 국가로서,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3개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으며, 16~17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수도는 오늘날 이스탄불로 알려진 콘스탄티노플이었으며, 투르크계의 오스만 왕조가 제국을 통치하였다. 전성기 제국의 영토는 동서로는 카스피해와 페르시아만 연안에서부터 대서양 연안의 지브롤터 해협까지, 남북으로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 유럽의 오스트리아 경계에 이르렀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동서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문화적으로도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다원적인 성격을 띠었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한구석에서 나온 小君侯國으로부터 발전한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는 이윽고 동로마 제국 등 남동유럽의 기독교 제국, 맘루크 왕조 등의 서아시아·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 제국을 정복하여 지중해 세계의 과반을 차지한 세계 제국인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쇠퇴하여 그 영토는 다른 나라에 점령되거나 독립하여 20세기 초반에 마침내 마지막에 남은 영토 아나톨리아로부터 새롭게 건국되어 나온 국민 국가인 터키 공화국이 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鄭一鵬: 字는 九萬으로, 甫田人이다. 正德 16년(1521)에 進士가 되어 庶吉士로 翰林院에 들어갔다. 嘉靖 초에 戶科左給事中으로 승진하였다. 성품이 강직했는데, 과감한 간언은 諫官 가운데 으뜸으로 널리 알려졌다. 嘉靖帝가 道敎에 빠져 方士를 좋아하고 儀式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이를 간하는 上奏를 하기도 하였다. 한편 大禮의 議 과정에서 伏闕하여 諫하다가 廷杖을 당한 바도 있다. 후에 李福達의 獄으로 武定侯 郭勛을 탄핵했지만, 桂萼과 張璁이 妄奏로 연좌시켜 관직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死後인 隆慶 초에 復官되고 光祿少卿으로 追贈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이에 관한 내용은 『世宗實錄』 卷38 嘉靖 3년 4월 己未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4)
    王會: 『逸周書』 제59篇의 「王會」를 가리키는데, 周나라 때 天子에게 조공하는 諸侯, 四夷 혹은 藩屬國의 王들의 聚會와 貢獻에 대하여 기재하고 있다. 「王會」에는 특히 이들 나라에 대한 명칭이 나열되어 있다. 明代에도 明朝로부터 王에 책봉되어 조공하는 번속국을 기록하였는데, 본문에서의 「王會」는 명에 조공하는 나라의 명칭을 나열한 책으로 보인다. 한편 『逸周書』 는 『周書』가 原名인데, 『尙書』와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 舊說에는 孔子가 『尙書』를 刪定한 뒤에 남은 것이었다는 점에서 周書를 逸篇이라는 뜻으로 『逸周書』라 불렸다고 하지만, 지금은 주요 篇章이 대개 戰國時代에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정일붕(鄭一鵬), 석서(席書), 가정제
지명
노미(魯迷), 중국, 노미, 토로번, 감숙, 노미
서명
「왕회(王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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