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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천방의 기후와 토양 및 습속·사원(寺院)에 대한 설명

  • 국가
    천방(天方)
천방서역에서 대국인데, 사시(四時)가 모두 여름 같고, 비·우박·서리·눈이 없지만 오직 이슬만은 매우 많아 초목이 모두 이에 힘입어 잘 자랐다. 토양은 비옥하여 조·밀·검은 기장이 풍성했다. 사람들은 모두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다. 남자는 삭발한 뒤 포(布)로 머리를 둘렀다. 여자는 머리카락을 묶고 머리를 가려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회회(回回)의 교리(敎理)를 만든 시조(始祖)가 마합마(馬哈麻) 주 001
각주 001)
馬哈麻(570~632):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Muhammad)의 音譯이다. 무함마드는 570년 메카의 지배부족인 쿠라이시족의 하심 가문에서 유복자로 출생했다. 어린 시절 양치기를 하며 평범하게 성장한 그는 청년이 된 뒤 시리아를 왕래하는 무역상이 되어 미망인 카디자의 대상에 고용되었다. 595년 25세의 나이로 40세의 카디자와 결혼했다. 40세가 된 610년 세속 생활에서 이탈하여 명상 활동에 들어갔는데, 그해에 처음으로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 유일신 신앙을 갖게 된 그는 이로부터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신의 사도’가 되었다. 추종자가 점차 증가하자 613년경 처음으로 박해를 받게 되었다. 622년 아부 바크르 등 70여 명과 함께 메카를 탈출하여 야스리브로 갔다. 이를 히즈라(헤지라, 聖遷)라고 한다. 이후 정치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무함마드는 內政과 포교에 힘썼다. 630년에는 메카로 진격하여 入城에 성공했다. 메카 정복 이후 아라비아 반도 전역이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다만 그 후 그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어 632년 6월 8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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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자인데, 처음 이곳에서 포교하였고, 사후(死後)에 이곳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묘의 꼭대기에는 항상 불을 밝혀 놓아서 밤낮으로 꺼지지 않았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준수하여 오랫동안 쇠락하지 않았고,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모두 선행에 힘썼다. 나라에 착취가 없었고, 또한 형벌이 없어 상하가 편안하고 화목했으며, 도적이 일어나지 않아 서방에서는 낙국(樂國)주 002
각주 002)
樂國: 樂土와 같은 뜻으로서 낙원과 같은 나라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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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일컬어졌다. 습속은 금주(禁酒)하였다. 예배하는 사원(寺院)이 있어서 달이 처음 떠오를 때 그 국왕 및 신민(臣民)들은 모두 하늘에 배례하는데, 큰 소리로 칭양(稱揚)하는 것을 예(禮)로 삼았다. 사원은 사방으로 나뉘어져 있고, 한 쪽 방면이 90간(間)이어서 합하여 360간이었는데, 모두 백옥(白玉)으로 기둥을 세우고, 황감옥(黃甘玉)으로 지판(地板)주 003
각주 003)
地板: 건물의 밑바닥 층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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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었다. 전당(殿堂)은 오색의 섬돌로 만들었는데, 사방이 정수리가 평평하였다. 안으로는 침향(沈香)주 004
각주 004)
沈香: 南方諸國에서 산출되는 것으로 동아시아에서 焚香의 대표적인 것이다. 『本草綱目』釋名 沈水香·密香條에 “木之心節置水則沈, 故名沈水, 亦曰水沈半沈者爲棧香, 不沈者爲黃熟香. 南越志言, 交州人稱爲密香, 謂其氣如密脾也. 梵書名阿迦嚧香”이라 하고 있는데, 瑞香科에 속하는 常綠喬木인 沈香木, 즉 물보다 무거운 香木의 樹脂를 凝結시켜 만든 것으로 黑色 또는 褐色이 난다. 『諸蕃志』 「志物」의 沈香條에 “堅黑者爲上, 黃者次之”라 하였고, 馮承鈞의 校注에는 “沈香 一名沈水香, 卽學名 Aquilaria agallocha者是也”라고 기재되어 있다. 『(萬曆)明會典』 卷105 「朝貢」1에 보면, 安南國·淡巴國의 貢物이었고, 『(萬曆)明會典』 卷113 「給賜」4에, 沈香은 每斤 3貫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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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큰 나무로 들보를 만든 것이 다섯이었고, 또 황금으로 누각(樓閣)을 만들었다. 당(堂) 안의 담은 모두 장미로(薔薇露)주 005
각주 005)
薔薇露: 薔薇水라고도 하며, 장미꽃을 水蒸氣로 증류하거나 또는 장미수를 물에 녹이거나 하여 얻는 투명한 액체이다. 이는 芳香이 나고 엷은 황색을 띠는데, 宋代 蔡絛의 『鐵圍山叢談』 卷5에 “采薔薇花蒸氣成水, 則屢采屢蒸, 積而爲香, 此所以不敗, 但異域薔薇花氣馨烈非常, 故大食國 薔薇水雖貯琉璃缶中, 蠟密封其外, 然香猶透徹聞數十步”라는 내용에서와 같이 향기가 강렬하여 유리병에 밀봉하여 보관하며, 약품의 냄새나 맛을 조절하는 데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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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향(龍涎香)주 006
각주 006)
龍涎香: 향유고래 창자속의 담즙이 굳어져 생긴 지방덩어리를 말한다. 영어로는 Ambergris라고 하며, 향기가 없는 하얀색의 물질이지만 保香性이 강하여 보향제로 사용된다. 즉, 용연향 자체는 거의 향기가 없지만 다른 물질의 나쁜 냄새를 희석해주거나 제거하며, 오랫동안 향기를 품어주는 성질이 있어서 향료를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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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흙과 섞어 만들었다. 문을 지키는 것은 두 마리 검은 사자였다. 당(堂)의 왼쪽으로는 사마의(司馬儀)의 묘(墓)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성인(聖人)의 무덤이라고 칭하였다. 흙이 모두 보석이어서 담을 두르면 곧 황감옥(黃甘玉)이었다. 양 옆으로는 여러 조사(祖師)가 전법(傳法)하는 전당(殿堂)이 있는데, 또한 돌로 축성(築成)하였고, 모두 극히 장엄하고 화려하였다. 그들이 회회교(回回敎)주 007
각주 007)
回回敎: 이슬람교를 가리킨다. 610년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이다. 이슬람이란 ‘절대 순종한다’는 뜻이며, 이슬람신도를 가리키는 모슬렘(Moslem)이라는 용어는 ‘절대 순종하는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슬람교는 유일신인 알라(Allah)의 가르침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기독교 등의 셈족계 諸종교를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도 수는 세계 인구의 20%를 점하는 9억 정도이고, 국가 총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여 ‘이슬람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만도 43개국에 달한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아라비아반도 중부 메카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 25세에 부호의 미망인 하디자와 혼인하여 한때 시리아 등지에서 隊商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당시 아라비아반도 주민들은 종교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자연신과 신령을 믿는 복합적인 신앙양상을 보이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급속한 상업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과 갈등적 요소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존의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고 사색과 명상을 계속하던 그는 40세 되던 610년경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알라의 계시를 받은 뒤 마지막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띠고 포교에 나섰다. 이때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록한 것이 『코란』이다. 그러나 보수적 전통이 강한 메카 지도층 코레시아족의 탄압으로 포교에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622년 9월 메카 북방 400km 지점의 메디나로 옮겨갔다. 이 메디나행을 이슬람에서는 ‘헤지라(즉 聖遷)’라고 부르고 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이주한 무하자룬(교도)과 그 지역 협력자들을 모아 최초의 움마(즉 교단)를 조직하게 되는데, 이를 강화하여 나중에 이슬람국가로 발전시켰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방대한 아라비아 지역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일한 그는 632년 6월 메디나에서 죽었다. 한편 이슬람교는 여러 인종과 다양한 문화로 이루어져 있던 거대한 지역에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내적 차이를 하나의 종교공동체로 포괄함으로써 일체감을 부여해주었다. 특히, 세계사에서 東西대륙에 걸쳐 세계문화의 교량 역할을 담당하였고, 중세유럽 암흑기에는 그리스·로마의 고전문명을 훌륭하게 보존하여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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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숭상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 각주 001)
    馬哈麻(570~632):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Muhammad)의 音譯이다. 무함마드는 570년 메카의 지배부족인 쿠라이시족의 하심 가문에서 유복자로 출생했다. 어린 시절 양치기를 하며 평범하게 성장한 그는 청년이 된 뒤 시리아를 왕래하는 무역상이 되어 미망인 카디자의 대상에 고용되었다. 595년 25세의 나이로 40세의 카디자와 결혼했다. 40세가 된 610년 세속 생활에서 이탈하여 명상 활동에 들어갔는데, 그해에 처음으로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 유일신 신앙을 갖게 된 그는 이로부터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신의 사도’가 되었다. 추종자가 점차 증가하자 613년경 처음으로 박해를 받게 되었다. 622년 아부 바크르 등 70여 명과 함께 메카를 탈출하여 야스리브로 갔다. 이를 히즈라(헤지라, 聖遷)라고 한다. 이후 정치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무함마드는 內政과 포교에 힘썼다. 630년에는 메카로 진격하여 入城에 성공했다. 메카 정복 이후 아라비아 반도 전역이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다만 그 후 그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어 632년 6월 8일 사망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2)
    樂國: 樂土와 같은 뜻으로서 낙원과 같은 나라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3)
    地板: 건물의 밑바닥 층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4)
    沈香: 南方諸國에서 산출되는 것으로 동아시아에서 焚香의 대표적인 것이다. 『本草綱目』釋名 沈水香·密香條에 “木之心節置水則沈, 故名沈水, 亦曰水沈半沈者爲棧香, 不沈者爲黃熟香. 南越志言, 交州人稱爲密香, 謂其氣如密脾也. 梵書名阿迦嚧香”이라 하고 있는데, 瑞香科에 속하는 常綠喬木인 沈香木, 즉 물보다 무거운 香木의 樹脂를 凝結시켜 만든 것으로 黑色 또는 褐色이 난다. 『諸蕃志』 「志物」의 沈香條에 “堅黑者爲上, 黃者次之”라 하였고, 馮承鈞의 校注에는 “沈香 一名沈水香, 卽學名 Aquilaria agallocha者是也”라고 기재되어 있다. 『(萬曆)明會典』 卷105 「朝貢」1에 보면, 安南國·淡巴國의 貢物이었고, 『(萬曆)明會典』 卷113 「給賜」4에, 沈香은 每斤 3貫이었다고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5)
    薔薇露: 薔薇水라고도 하며, 장미꽃을 水蒸氣로 증류하거나 또는 장미수를 물에 녹이거나 하여 얻는 투명한 액체이다. 이는 芳香이 나고 엷은 황색을 띠는데, 宋代 蔡絛의 『鐵圍山叢談』 卷5에 “采薔薇花蒸氣成水, 則屢采屢蒸, 積而爲香, 此所以不敗, 但異域薔薇花氣馨烈非常, 故大食國 薔薇水雖貯琉璃缶中, 蠟密封其外, 然香猶透徹聞數十步”라는 내용에서와 같이 향기가 강렬하여 유리병에 밀봉하여 보관하며, 약품의 냄새나 맛을 조절하는 데 쓰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6)
    龍涎香: 향유고래 창자속의 담즙이 굳어져 생긴 지방덩어리를 말한다. 영어로는 Ambergris라고 하며, 향기가 없는 하얀색의 물질이지만 保香性이 강하여 보향제로 사용된다. 즉, 용연향 자체는 거의 향기가 없지만 다른 물질의 나쁜 냄새를 희석해주거나 제거하며, 오랫동안 향기를 품어주는 성질이 있어서 향료를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7)
    回回敎: 이슬람교를 가리킨다. 610년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이다. 이슬람이란 ‘절대 순종한다’는 뜻이며, 이슬람신도를 가리키는 모슬렘(Moslem)이라는 용어는 ‘절대 순종하는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슬람교는 유일신인 알라(Allah)의 가르침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기독교 등의 셈족계 諸종교를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도 수는 세계 인구의 20%를 점하는 9억 정도이고, 국가 총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여 ‘이슬람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만도 43개국에 달한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아라비아반도 중부 메카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 25세에 부호의 미망인 하디자와 혼인하여 한때 시리아 등지에서 隊商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당시 아라비아반도 주민들은 종교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자연신과 신령을 믿는 복합적인 신앙양상을 보이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급속한 상업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과 갈등적 요소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존의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고 사색과 명상을 계속하던 그는 40세 되던 610년경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알라의 계시를 받은 뒤 마지막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띠고 포교에 나섰다. 이때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록한 것이 『코란』이다. 그러나 보수적 전통이 강한 메카 지도층 코레시아족의 탄압으로 포교에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622년 9월 메카 북방 400km 지점의 메디나로 옮겨갔다. 이 메디나행을 이슬람에서는 ‘헤지라(즉 聖遷)’라고 부르고 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이주한 무하자룬(교도)과 그 지역 협력자들을 모아 최초의 움마(즉 교단)를 조직하게 되는데, 이를 강화하여 나중에 이슬람국가로 발전시켰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방대한 아라비아 지역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일한 그는 632년 6월 메디나에서 죽었다. 한편 이슬람교는 여러 인종과 다양한 문화로 이루어져 있던 거대한 지역에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내적 차이를 하나의 종교공동체로 포괄함으로써 일체감을 부여해주었다. 특히, 세계사에서 東西대륙에 걸쳐 세계문화의 교량 역할을 담당하였고, 중세유럽 암흑기에는 그리스·로마의 고전문명을 훌륭하게 보존하여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마합마(馬哈麻), 사마의(司馬儀)
지명
천방, 서역, 회회(回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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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의 기후와 토양 및 습속·사원(寺院)에 대한 설명 자료번호 : jo.k_0024_0332_0310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