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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칭한 조공사절이 통상적인 수의 배를 넘기자 예부 관원이 옛 제도를 따라 함부로 경사(京師)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주청을 가정제가 가납한 글

  • 국가
    천방(天方)
[가정] 11년(1532)에 사신을 보내어 토로번·살마아한·유밀(惟密) 등 여러 나라와 함께 내조하여 공물을 바쳤는데, 왕을 칭한 자가 37명에 이르렀다. 예부의 관원이 아뢰기를, “옛 제도에, 합밀타안(朶顔) 주 001
각주 001)
朶顔: 朶顔衛를 일컬으며, 兀良哈(Uriyangqai) 3衛 중 하나인데, 그 명칭은 元代의 朶因溫都兒兀良哈千戶所에서 유래한다. 洪武 22년(1389)에 설치되어 脫魯忽察兒(脫兒火察)를 指揮同知로 삼아 大寧都指揮使司에 예속시켰으나, 永樂 연간(1403~1424)에 奴兒干都司로 바꾸어 예속시켰다. 이들은 초기에 洮兒河 유역에서 유목했지만, 이후 남쪽으로 내려와 潢河를 넘어왔다. 喜峰口를 통해 明에 조공했고, 廣寧에서 명조와 互市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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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衛)만이 해마다 한 번 조공하고, 조공사절은 300명을 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3위는 지역이 가까우니 모두 도성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합밀은 10명 중 2명을 보내도록 하고, 나머지는 변방에서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서역과 같은 곳은 만(萬) 리나 떨어져 있고, 본디 속국(屬國)이 아니므로 3위의 조공 기한과 같이 하기는 어렵지만, 파견한 사절의 수가 통상적인 수의 배를 넘기고 있습니다. 번문(番文)은 200여 통에 이르는데, 모두 반인(叛人) 아목란(牙木蘭) 주 002
각주 002)
牙木蘭(1460~?): 牙蘭을 가리킨다. 牙蘭은 옛 回紇語 yaYlagar의 漢譯名으로, 본래는 撒里畏兀兒部落의 名稱이며, 또한 姓氏이기도 하다. 牙蘭의 전체 이름은 牙蘭·天哥(喀喇牙蘭이라고도 불림)이다. 그는 撒里畏兀兒 曲先衛의 추장인 脫啼의 동생으로, 8세 때에 土魯番의 俘虜가 되었다. 10년이 지나 그는 건장하게 성장하였는데, 土魯番의 酋長 阿力은 牙蘭이란 姓氏를 내리고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등 그를 중용하였다. 그는 투르판이 曲先衛를 공격하여 이를 점거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哈密을 함락하는 데도 선봉에 섰다. 특히 하미를 오랫동안 점거하여 명조에 큰 화근이 되었다. 그러나 嘉靖 7년(1528) 여름에 그는 그의 주군인 阿黑麻에게 죄를 얻어, 결국 배반하고 부하를 이끌고는 明에 투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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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찾는다는 것으로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삼가 핑계에 의탁하여 [사정을] 엿봄으로써 조정의 처분을 정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변경의 수신이 명문(明文)의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보내는 것은 법례(法禮)를 어기는 것입니다. 청컨대, 독무(督撫) 등 여러 신하에게 내려서 여러 번인(番人)이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게 되면, 존류(存留)주 003
각주 003)
存留: 실제 징수한 稅糧額 가운데 起運을 제외하고 지출에 대비하기 위하여 현지에 남겨둔 부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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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기송(起送)주 004
각주 004)
起送: 실제 징수한 稅糧額 가운데 응당 지정된 곳으로 보내야 하는 부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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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나누어, 일괄적으로 경사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변경의 관리에게 엄하게 신칙(申飭)하여 목전의 화를 피하여 근심을 장래에 남김으로써 납관(納款)주 005
각주 005)
納款: 歸順 내지 항복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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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허명(虛名)을 탐하고 변경을 방어하는 실책(實策)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라 하니, 가정제는 그 주청(奏請)을 가납하였다.주 006
각주 006)
이에 관한 내용은 『世宗實錄』 卷135 嘉靖 11년 2월 己丑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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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朶顔: 朶顔衛를 일컬으며, 兀良哈(Uriyangqai) 3衛 중 하나인데, 그 명칭은 元代의 朶因溫都兒兀良哈千戶所에서 유래한다. 洪武 22년(1389)에 설치되어 脫魯忽察兒(脫兒火察)를 指揮同知로 삼아 大寧都指揮使司에 예속시켰으나, 永樂 연간(1403~1424)에 奴兒干都司로 바꾸어 예속시켰다. 이들은 초기에 洮兒河 유역에서 유목했지만, 이후 남쪽으로 내려와 潢河를 넘어왔다. 喜峰口를 통해 明에 조공했고, 廣寧에서 명조와 互市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牙木蘭(1460~?): 牙蘭을 가리킨다. 牙蘭은 옛 回紇語 yaYlagar의 漢譯名으로, 본래는 撒里畏兀兒部落의 名稱이며, 또한 姓氏이기도 하다. 牙蘭의 전체 이름은 牙蘭·天哥(喀喇牙蘭이라고도 불림)이다. 그는 撒里畏兀兒 曲先衛의 추장인 脫啼의 동생으로, 8세 때에 土魯番의 俘虜가 되었다. 10년이 지나 그는 건장하게 성장하였는데, 土魯番의 酋長 阿力은 牙蘭이란 姓氏를 내리고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등 그를 중용하였다. 그는 투르판이 曲先衛를 공격하여 이를 점거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哈密을 함락하는 데도 선봉에 섰다. 특히 하미를 오랫동안 점거하여 명조에 큰 화근이 되었다. 그러나 嘉靖 7년(1528) 여름에 그는 그의 주군인 阿黑麻에게 죄를 얻어, 결국 배반하고 부하를 이끌고는 明에 투항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存留: 실제 징수한 稅糧額 가운데 起運을 제외하고 지출에 대비하기 위하여 현지에 남겨둔 부분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4)
    起送: 실제 징수한 稅糧額 가운데 응당 지정된 곳으로 보내야 하는 부분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5)
    納款: 歸順 내지 항복을 뜻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이에 관한 내용은 『世宗實錄』 卷135 嘉靖 11년 2월 己丑條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아목란(牙木蘭), 가정제
지명
토로번, 살마아한, 유밀(惟密), 합밀, 타안(朶顔), 합밀, 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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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칭한 조공사절이 통상적인 수의 배를 넘기자 예부 관원이 옛 제도를 따라 함부로 경사(京師)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주청을 가정제가 가납한 글 자료번호 : jo.k_0024_0332_031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