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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정덕(正德) 연간에 좋은 말이 천방에서 나온다고 하여 국왕을 효유하자 말·낙타 등을 바치니 정덕제가 기물(器物)을 하사하였다는 내용

  • 국가
    천방(天方)
정덕 초에, 정덕제가 어마태감(御馬太監) 곡대용(谷大用) 주 001
각주 001)
谷大用: 正德 연간의 환관으로서 ‘八虎’ 가운데 한 사람이다. 西廠을 提督하며 전횡을 일삼았다. 정덕 6년(1511) 河北에서 劉六과 劉七이 이끄는 반란이 일어나자 正德帝는 그를 總督軍務로 삼아 伏羌伯 毛銳, 兵部侍郞 陸完과 함께 京營을 거느리고 가서 진압토록 하였다. 다만 진압이 여의치 못하게 되자 그는 遼東, 宣府, 大同, 延綏 등 네 鎭의 邊軍을 京師로 끌어들여 이를 ‘外四家’라 칭했는데, 이것이 변군을 동원하는 시초가 된다. 한편 정덕 12년(1517) 正德帝가 북으로 長城을 넘어 사냥하려 하였지만, 朝臣들이 반대하고 居庸關의 巡關御史 張欽이 閉關拒命하였다. 이에 정덕제는 谷大用으로 하여금 居庸關 수비를 대신토록 함으로써 그 결과 長城을 넘어 宣化, 大同, 偏關, 延綏, 楡林 등 다섯 鎭을 순시할 수 있었다. 正德帝가 죽고 嘉靖帝가 즉위하면서 八虎는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되었는데, 谷大用 등은 御史 蕭淮로부터 先帝를 미혹시켰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았지만, 新帝 등극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奉御로 강등되어 南京으로 옮겨 거하게 되었으며, 얼마 후에는 康陵을 지키는 책임을 맡았다. 嘉靖 10년(1531)에 家産이 籍沒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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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진언에 따라 감숙 수신으로 하여금 여러 번국(番國)의 과마(騍馬)주 002
각주 002)
騍馬: 암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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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마(騸馬)주 003
각주 003)
騸馬: 去勢한 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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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찾아 구하도록 하였는데, 번사(番使)가 좋은 말은 천방에서 나온다고 말하였다. 수신은 이에 여러 번국의 조공사신에게 효유하여 그 국왕에게 전달토록 해, 그들로 하여금 입조하여 공물로 바치도록 하자고 청하였다. 병부상서(兵部尙書) 유우(劉宇) 주 004
각주 004)
劉宇: 字는 至大로서 河南 鈞州 출신이다. 成化 8년(1472)에 進士로 급제하여 知縣으로 除授된 후 監察御史가 되었지만, 사건에 연좌되어 좌천되었다. 후에 승진을 거듭하여 山東按察使가 되었다. 弘治 연간에는 大學士 劉健의 추천으로 右僉都御史로 승진하여 大同 등지를 巡撫한 뒤 左副都御史로 임명되었다. 正德 원년(1506) 吏部尙書 馬文升의 추천으로 右都御史로 승진하여 宣大總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임기간에 馬市를 몰래 열고 權貴에게 뇌물을 공여하였다. 兵部尙書 劉大夏가 기회를 틈타 弘治帝에게 이 일을 아뢰니, 홍치제는 錦衣衛 百戶 邵琪에게 조사토록 했으나, 劉宇는 邵琪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무마시켰다. 正德 연간에 劉瑾이 실권을 장악하여 전횡을 일삼았는데, 劉宇와 焦芳이 이에 依附하였다. 正德 2년(1507)에는 左都御史로 승진하였다. 劉瑾이 諫言을 하는 신하들을 탄압하자 劉宇는 그 뜻에 영합하여 번번이 御史들을 매질하여 환심을 샀다. 劉瑾이 처음에는 뇌물을 받는 데 수만 량의 황금에 불과했는데, 劉宇가 처음으로 1만 량의 황금을 뇌물로 바쳤고, 이후 결국에는 兵部尙書로까지 승진하였다. 그 아들 劉仁이 殿試에 응시했지만, 一甲에 오르지 못하자, 劉瑾에게 뇌물을 바쳐 庶吉士로 기용했다가 1년 뒤에는 翰林院編修가 되었다. 당시 許進이 吏部尙書였는데, 유근 면전에서 그에 대한 讒言을 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였으나 좌절되자 歸省을 청하였다. 1년 후에 劉瑾이 誅殺되자 科道官이 劉宇를 탄핵하였다. 결국 劉宇는 관직이 삭탈되고, 그 아들 劉仁은 民으로 축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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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중관의 뜻에 영합하고자 하여, 수신으로 하여금 사신과 통사(通事)를 잘 가려 뽑아 직접 여러 번국에 이르게 하여 효유토록 하자고 건의하니, [정덕제가] 이를 승낙하였다.주 005
각주 005)
이에 관한 내용은 『武宗實錄』 卷39 正德 3년 6월 癸巳條 참조. 한편 본문의 守臣은 甘肅鎭巡官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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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3년(1518)에 국왕 사역파랄극(寫亦把剌克) 주 006
각주 006)
寫亦把剌克: 사이드 바락(Sayyid Baraq)의 音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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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신을 보내어 말·낙타·사폭(梭幅)주 007
각주 007)
梭幅: 梭服을 가리킨다. 새의 깃털로 加工해서 만든 織物인데, 매우 진귀한 공물로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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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珊瑚)·보석·어아도(魚牙刀)주 008
각주 008)
魚牙刀: 魚牙는 魚行, 즉 생선을 파는 店鋪를 가리키므로, 魚牙刀는 그 점포에서 사용하는 칼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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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여러 방물을 바치니, [정덕제는] 조서를 내려 망룡금직의(蟒龍金織衣)주 009
각주 009)
蟒龍金織衣: 이무기와 용의 무늬를 넣어 금박을 해서 싼 의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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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 사향(麝香)주 010
각주 010)
麝香: 사향노루의 사향샘을 건조하여 얻는 향료이다. 어두운 갈색 가루로서 향기가 매우 강하다. 강심제, 각성제 따위의 약재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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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으로 된 기물(器物)을 하사하였다.주 011
각주 011)
이에 관한 내용은 『武宗實錄』 卷158 正德 13년 정월 辛丑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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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谷大用: 正德 연간의 환관으로서 ‘八虎’ 가운데 한 사람이다. 西廠을 提督하며 전횡을 일삼았다. 정덕 6년(1511) 河北에서 劉六과 劉七이 이끄는 반란이 일어나자 正德帝는 그를 總督軍務로 삼아 伏羌伯 毛銳, 兵部侍郞 陸完과 함께 京營을 거느리고 가서 진압토록 하였다. 다만 진압이 여의치 못하게 되자 그는 遼東, 宣府, 大同, 延綏 등 네 鎭의 邊軍을 京師로 끌어들여 이를 ‘外四家’라 칭했는데, 이것이 변군을 동원하는 시초가 된다. 한편 정덕 12년(1517) 正德帝가 북으로 長城을 넘어 사냥하려 하였지만, 朝臣들이 반대하고 居庸關의 巡關御史 張欽이 閉關拒命하였다. 이에 정덕제는 谷大用으로 하여금 居庸關 수비를 대신토록 함으로써 그 결과 長城을 넘어 宣化, 大同, 偏關, 延綏, 楡林 등 다섯 鎭을 순시할 수 있었다. 正德帝가 죽고 嘉靖帝가 즉위하면서 八虎는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되었는데, 谷大用 등은 御史 蕭淮로부터 先帝를 미혹시켰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았지만, 新帝 등극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奉御로 강등되어 南京으로 옮겨 거하게 되었으며, 얼마 후에는 康陵을 지키는 책임을 맡았다. 嘉靖 10년(1531)에 家産이 籍沒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騍馬: 암말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3)
    騸馬: 去勢한 말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4)
    劉宇: 字는 至大로서 河南 鈞州 출신이다. 成化 8년(1472)에 進士로 급제하여 知縣으로 除授된 후 監察御史가 되었지만, 사건에 연좌되어 좌천되었다. 후에 승진을 거듭하여 山東按察使가 되었다. 弘治 연간에는 大學士 劉健의 추천으로 右僉都御史로 승진하여 大同 등지를 巡撫한 뒤 左副都御史로 임명되었다. 正德 원년(1506) 吏部尙書 馬文升의 추천으로 右都御史로 승진하여 宣大總督으로 임명되었는데, 재임기간에 馬市를 몰래 열고 權貴에게 뇌물을 공여하였다. 兵部尙書 劉大夏가 기회를 틈타 弘治帝에게 이 일을 아뢰니, 홍치제는 錦衣衛 百戶 邵琪에게 조사토록 했으나, 劉宇는 邵琪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무마시켰다. 正德 연간에 劉瑾이 실권을 장악하여 전횡을 일삼았는데, 劉宇와 焦芳이 이에 依附하였다. 正德 2년(1507)에는 左都御史로 승진하였다. 劉瑾이 諫言을 하는 신하들을 탄압하자 劉宇는 그 뜻에 영합하여 번번이 御史들을 매질하여 환심을 샀다. 劉瑾이 처음에는 뇌물을 받는 데 수만 량의 황금에 불과했는데, 劉宇가 처음으로 1만 량의 황금을 뇌물로 바쳤고, 이후 결국에는 兵部尙書로까지 승진하였다. 그 아들 劉仁이 殿試에 응시했지만, 一甲에 오르지 못하자, 劉瑾에게 뇌물을 바쳐 庶吉士로 기용했다가 1년 뒤에는 翰林院編修가 되었다. 당시 許進이 吏部尙書였는데, 유근 면전에서 그에 대한 讒言을 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였으나 좌절되자 歸省을 청하였다. 1년 후에 劉瑾이 誅殺되자 科道官이 劉宇를 탄핵하였다. 결국 劉宇는 관직이 삭탈되고, 그 아들 劉仁은 民으로 축출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이에 관한 내용은 『武宗實錄』 卷39 正德 3년 6월 癸巳條 참조. 한편 본문의 守臣은 甘肅鎭巡官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6)
    寫亦把剌克: 사이드 바락(Sayyid Baraq)의 音譯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7)
    梭幅: 梭服을 가리킨다. 새의 깃털로 加工해서 만든 織物인데, 매우 진귀한 공물로 일컬어졌다. 바로가기
  • 각주 008)
    魚牙刀: 魚牙는 魚行, 즉 생선을 파는 店鋪를 가리키므로, 魚牙刀는 그 점포에서 사용하는 칼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9)
    蟒龍金織衣: 이무기와 용의 무늬를 넣어 금박을 해서 싼 의류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10)
    麝香: 사향노루의 사향샘을 건조하여 얻는 향료이다. 어두운 갈색 가루로서 향기가 매우 강하다. 강심제, 각성제 따위의 약재로 쓴다. 바로가기
  • 각주 011)
    이에 관한 내용은 『武宗實錄』 卷158 正德 13년 정월 辛丑條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정덕제, 곡대용(谷大用), 유우(劉宇), 정덕제, 사역파랄극(寫亦把剌克), 정덕제
지명
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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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正德) 연간에 좋은 말이 천방에서 나온다고 하여 국왕을 효유하자 말·낙타 등을 바치니 정덕제가 기물(器物)을 하사하였다는 내용 자료번호 : jo.k_0024_0332_031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