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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국(日羅國)은 영락·홍치 연간에 내조 입공하였으며, 사신이 모시 등을 얻기를 청하자 조서를 내려 지급해 주었음

  • 국가
    일락(日落)
일락국(日落國) 주 001
각주 001)
日落國: 일락국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근자에 廖大珂는 이에 대하여 ‘고증’을 한 바 있는데, 그는 일락국을 로마교황국으로 보았다(廖大珂, 2005: 111~113). 그는 이 논문에서 일락국의 의미를 두 가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즉 큰 의미와 작은 의미이다. 먼저 큰 의미로서 일락국은 유럽을 가리킨다고 한다. 廖大珂는 日落國이 宋元 시대에는 茶弼沙國으로 표기되었는데, 유럽을 가리키는 용어였음을 밝혔다. 明代에도 중국인들은 유럽을 茶弼沙國 혹은 日落國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음에는 작은 의미로서의 일락국이다. 바로 본문에 언급된 내용인 永樂 연간에 入貢한 ‘日落國’은 유럽 가운데서도 로마교황국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로마 교황의 표기와 연대 그리고 來朝한 시기 등의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사료를 근거로 위와 같이 추정하였는데, 다만 정설의 단계에 진입하기에는 아직은 진일보한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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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영락 연간(1403~1424)에 내조하여 공물을 바쳤다.주 002
각주 002)
日落國이 처음 來朝하여 공물을 바친 시기에 대하여 본문에서는 ‘永樂中’이라고만 하여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지 않았는데, 이 문제에 대하여 廖大珂는 永樂 21년(1423)일 것으로 추정하였다(廖大珂, 2005, pp.111~113). 즉, 廖大珂는 우선 淸初 談遷이 修撰한 『國榷』 第363冊의 “永樂二十一年二月辛酉, 魯迷入貢”이란 구절을 인용하였다. 물론 魯迷는 Rumi의 音譯으로서 터키 帝國을 가리킨다. 다만 魯迷가 처음 入貢한 것은 본 『明史』 「西域」4에서, “魯迷, 去中國絶遠. 嘉靖三年, 遣使貢獅子·西牛”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嘉靖 3년(1524)의 일이었다. 이는 다른 자료에서도 입증된다. 예를 들어, 『(萬曆)明會典』 卷107에서는, “魯迷, 嘉靖三年自甘肅入貢”이라 되어 있고, 『名山藏』에서는, “魯迷, 嘉靖三年始通貢”이라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永樂 연간에 魯迷가 來朝했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廖大珂는 魯迷의 발음에 주목하였다. 즉 위 『國榷』의 ‘魯迷’는 발음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魯密’이 잘못 기재된 것으로 보았다. 魯密은 Rum의 음역으로서 로마 즉 日落國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魯密 혹은 日落國이 永樂 연간에 처음 入貢한 것은 다른 明代의 자료 속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萬曆)明會典』 卷107에서는, “日落國·八答黑商·俺都淮·亦思弗罕, 俱永樂中遣使朝貢”이라 했고, 『皇輿考』에서는, “又永樂中來朝十六國 …… 曰魯密 ……”라 했으며, 『名山藏』에서는, “有魯密國 …… 以上海外小夷, 永樂中遣使朝貢”이라 했다. 결국 『國榷』 구절의 永樂 21년에 처음 入貢한 魯迷는 日落國과 같은 의미의 魯密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일리 있는 분석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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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 원년(1488)에 그 나라 왕 역사한답아노밀첩리아(亦思罕答兒魯密帖里牙) 주 003
각주 003)
亦思罕答兒魯密帖里牙: 廖大珂는 亦思罕答兒魯密帖里牙를 ‘亦思罕答兒’와 ‘魯密’ 및 ‘帖里牙’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廖大珂, 2005, p.112). 먼저 ‘亦思罕答兒’는 알렉산더의 音譯으로 보았다. 즉 이 이름은 마땅히 아라비아어나 페르시아어인 Iskanderih를 가리킬 터인데, 아라비아인과 페르시아인은 모두 Alexandria를 Iskanderih로 칭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亦思罕答兒는 알렉산더 6세(Alexander Ⅵ, Pope, 1492~1503)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1492년 로마 교황 알렉산더 6세로 취임한 에스파냐인 Rodrigo Borgia가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음에 ‘魯密’을 아라비아어나 페르시아어 Rum의 음역으로 보았다. 즉 宋元 시대의 蘆眉로서 지금의 로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帖里牙’는 Curia의 음역으로서 로마교황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廖大珂는 같은 논문에서 日落國王 亦思罕答兒魯密帖里牙가 貢物을 바친 연도를 弘治 원년(1488)이 아닌 6년(1493)으로 정정해야 한다는 관점을 피력했다. 알렉산더 6세의 교황 취임 연도가 1492년인 만큼 홍치 원년은 우선 시기가 맞지 않고, 따라서 使節 파견 시기는 1492년 이후여야 할 터인데, 본문의 ‘弘治元年’의 ‘元’자는 글자가 흡사한 ‘六’자의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취임 1년 후인 홍치 6년에 使節이 明朝에 방문했을 것으로 보았다. 다만 이 사료는 아래에서 밝힌 바와 같이 『孝宗實錄』 卷14 弘治 원년 5월 辛巳條에도 대동소이한 구절이 나오기도 하므로 廖大珂의 주장대로 『明史』만의 오류는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고증’도 아직은 미완의 작업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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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다시 공물을 바쳤다. 사신이 상주(上奏)를 하여 모시·생사(生絲)주 004
각주 004)
生絲: 명주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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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포(夏布)주 005
각주 005)
夏布: 모시 섬유로 만든 베를 가리키는데, 夏服에 적합하였으므로 夏布라고 부른다. 중국의 특산품으로서 江西, 湖南, 廣東, 四川 등지에서 많이 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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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등을 얻기를 청하니, 조서를 내려 모두 지급해 주었다.주 006
각주 006)
이에 관한 내용은 『孝宗實錄』 卷14 弘治 원년 5월 辛巳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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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日落國: 일락국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근자에 廖大珂는 이에 대하여 ‘고증’을 한 바 있는데, 그는 일락국을 로마교황국으로 보았다(廖大珂, 2005: 111~113). 그는 이 논문에서 일락국의 의미를 두 가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즉 큰 의미와 작은 의미이다. 먼저 큰 의미로서 일락국은 유럽을 가리킨다고 한다. 廖大珂는 日落國이 宋元 시대에는 茶弼沙國으로 표기되었는데, 유럽을 가리키는 용어였음을 밝혔다. 明代에도 중국인들은 유럽을 茶弼沙國 혹은 日落國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음에는 작은 의미로서의 일락국이다. 바로 본문에 언급된 내용인 永樂 연간에 入貢한 ‘日落國’은 유럽 가운데서도 로마교황국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로마 교황의 표기와 연대 그리고 來朝한 시기 등의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사료를 근거로 위와 같이 추정하였는데, 다만 정설의 단계에 진입하기에는 아직은 진일보한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바로가기
  • 각주 002)
    日落國이 처음 來朝하여 공물을 바친 시기에 대하여 본문에서는 ‘永樂中’이라고만 하여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지 않았는데, 이 문제에 대하여 廖大珂는 永樂 21년(1423)일 것으로 추정하였다(廖大珂, 2005, pp.111~113). 즉, 廖大珂는 우선 淸初 談遷이 修撰한 『國榷』 第363冊의 “永樂二十一年二月辛酉, 魯迷入貢”이란 구절을 인용하였다. 물론 魯迷는 Rumi의 音譯으로서 터키 帝國을 가리킨다. 다만 魯迷가 처음 入貢한 것은 본 『明史』 「西域」4에서, “魯迷, 去中國絶遠. 嘉靖三年, 遣使貢獅子·西牛”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嘉靖 3년(1524)의 일이었다. 이는 다른 자료에서도 입증된다. 예를 들어, 『(萬曆)明會典』 卷107에서는, “魯迷, 嘉靖三年自甘肅入貢”이라 되어 있고, 『名山藏』에서는, “魯迷, 嘉靖三年始通貢”이라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永樂 연간에 魯迷가 來朝했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廖大珂는 魯迷의 발음에 주목하였다. 즉 위 『國榷』의 ‘魯迷’는 발음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魯密’이 잘못 기재된 것으로 보았다. 魯密은 Rum의 음역으로서 로마 즉 日落國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魯密 혹은 日落國이 永樂 연간에 처음 入貢한 것은 다른 明代의 자료 속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萬曆)明會典』 卷107에서는, “日落國·八答黑商·俺都淮·亦思弗罕, 俱永樂中遣使朝貢”이라 했고, 『皇輿考』에서는, “又永樂中來朝十六國 …… 曰魯密 ……”라 했으며, 『名山藏』에서는, “有魯密國 …… 以上海外小夷, 永樂中遣使朝貢”이라 했다. 결국 『國榷』 구절의 永樂 21년에 처음 入貢한 魯迷는 日落國과 같은 의미의 魯密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일리 있는 분석이라 생각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3)
    亦思罕答兒魯密帖里牙: 廖大珂는 亦思罕答兒魯密帖里牙를 ‘亦思罕答兒’와 ‘魯密’ 및 ‘帖里牙’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廖大珂, 2005, p.112). 먼저 ‘亦思罕答兒’는 알렉산더의 音譯으로 보았다. 즉 이 이름은 마땅히 아라비아어나 페르시아어인 Iskanderih를 가리킬 터인데, 아라비아인과 페르시아인은 모두 Alexandria를 Iskanderih로 칭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亦思罕答兒는 알렉산더 6세(Alexander Ⅵ, Pope, 1492~1503)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1492년 로마 교황 알렉산더 6세로 취임한 에스파냐인 Rodrigo Borgia가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음에 ‘魯密’을 아라비아어나 페르시아어 Rum의 음역으로 보았다. 즉 宋元 시대의 蘆眉로서 지금의 로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帖里牙’는 Curia의 음역으로서 로마교황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廖大珂는 같은 논문에서 日落國王 亦思罕答兒魯密帖里牙가 貢物을 바친 연도를 弘治 원년(1488)이 아닌 6년(1493)으로 정정해야 한다는 관점을 피력했다. 알렉산더 6세의 교황 취임 연도가 1492년인 만큼 홍치 원년은 우선 시기가 맞지 않고, 따라서 使節 파견 시기는 1492년 이후여야 할 터인데, 본문의 ‘弘治元年’의 ‘元’자는 글자가 흡사한 ‘六’자의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취임 1년 후인 홍치 6년에 使節이 明朝에 방문했을 것으로 보았다. 다만 이 사료는 아래에서 밝힌 바와 같이 『孝宗實錄』 卷14 弘治 원년 5월 辛巳條에도 대동소이한 구절이 나오기도 하므로 廖大珂의 주장대로 『明史』만의 오류는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고증’도 아직은 미완의 작업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바로가기
  • 각주 004)
    生絲: 명주실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5)
    夏布: 모시 섬유로 만든 베를 가리키는데, 夏服에 적합하였으므로 夏布라고 부른다. 중국의 특산품으로서 江西, 湖南, 廣東, 四川 등지에서 많이 산출된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이에 관한 내용은 『孝宗實錄』 卷14 弘治 원년 5월 辛巳條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역사한답아노밀첩리아(亦思罕答兒魯密帖里牙)
지명
일락국(日落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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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국(日羅國)은 영락·홍치 연간에 내조 입공하였으며, 사신이 모시 등을 얻기를 청하자 조서를 내려 지급해 주었음 자료번호 : jo.k_0024_0332_02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