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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마아한의 마합목특(瑪哈穆特)이 조정의 사자를 후대하니 치하하였으며, 마합목특이 죽고 종자(從子)가 뒤를 잇자 제사를 지내주고 왕위를 책봉해 준 일

  • 국가
    별실팔리(別失八里)
[영락] 8년(1410)에 조정(朝廷)의 사자(使者) [자격으]로 살마아한(撒馬兒罕)으로 간 자를 마합마(馬哈麻)가 잘 대해주었다는 이유로 사신을 파견하여 채폐를 가지고 가서 하사토록 하였다.주 001
각주 001)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01 永樂 8년 2월 丁未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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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1411)에 명마(名馬)·문표(文豹)를 공물로 바치니, 급사중 부안에게 명하여 그 사신을 호송해서 돌아가도록 하였는데, 금직문기를 상으로 내려주었다. 당시 와랄의 사신이 마합마가 장차 그 부락을 습격하려 한다고 말하자, 이에 천의(天意)에 순응하여 국경(國境)을 보위하는 도리로써 [그를] 효유하였다.주 002
각주 002)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23 永樂 9년 윤12월 己卯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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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 11년(1413)에 조공사신이 장차 감숙에 이르려 하니, 담당 관원에게 명하여 연회를 베풀어 위로해주도록 하고, 또 총병관 이빈(李彬) 주 003
각주 003)
李彬: 생졸년 미상이다. 字는 質文으로, 남경 鳳陽府 사람이다. 부친은 李信으로 太祖가 군웅을 평정하는 데 공적을 세워 濟川衛指揮僉事가 되었다. 부친이 죽자 부친의 무직을 이어받았고, 燕王에 귀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軍功을 세워 右軍都督僉事가 되었다. 永樂 원년(1403)에 豊城侯에 봉해졌고, 1,000石의 봉록을 부여받았다. 이후 안남정벌과 北征에도 참가하였으며, 永樂 15년(1417)에는 征夷將軍의 印을 패용하고 交阯에 진수하였다. 후에 병이 들어 관직에서 물러나 죽자 茂國公에 追贈되었고, 시호는 剛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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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칙서를 내려 잘 접대하도록 하였다. 이듬해(1414) 겨울에 서역으로부터 돌아온 자가 마합마의 모친과 아우가 서로 연이어서 사망했음을 보고하였다. 영락제는 불쌍히 여겨 부안에게 명하여 칙서를 가지고 가서 위문(慰問)토록 하고 채폐를 상으로 내려주었다.주 004
각주 004)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57 永樂 12년 10월 壬辰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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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에 마합마 또한 사망했는데, 자식이 없어 종자(從子) 납흑실지한(納黑失只罕) 주 005
각주 005)
納黑失只罕: 나크시 자한(Nagsh-i Jahan)의 音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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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 뒤를 이었다. [영락] 14년(1416) 봄에, 사신이 와서 국상(國喪)을 고하였다. 부안 및 중관 이달에게 명하여 [가서] 제사를 드리도록 하고, 곧 그 뒤를 이은 아들을 왕으로 책봉(冊封)하고, 문기(文綺)·궁도(弓刀)·갑주(甲冑)를 상으로 내리고, 그 모친에게도 또한 하사품을 주었다.주 006
각주 006)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74 永樂 14년 3월 壬寅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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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1417)에 사신을 보내어 내조하여 공물을 바치고, 장차 딸을 살마아한에게 출가시키려 한다고 말하면서 말(馬)로 혼수품을 바꾸기를 청하였다. 중관 이신(李信) 등에게 명하여 문기와 폐백 각 500필을 원조해주도록 하였다. [영락] 16년(1418)에 조공사신 속가(速哥) 주 007
각주 007)
速哥: 수케(Süke)의 音譯이다. 『明史』 卷329 「土魯番傳」에는 鎖恪이라고도 기재되어 있다. 수케는 明으로부터 투르판의 都督僉事에 임명되어 尹吉兒察과 함께 明에 조공했던 인물이며, 永樂 22년(1424)에도 명에 사신으로 와서 말을 바쳤다(『太宗實錄』 卷269 永樂 22년 3월 戊戌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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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그의 왕이 종제(從弟) 왜사(歪思, 재위 1418~1428)주 008
각주 008)
歪思: 우와이스(Uwais Khan, Vais Khan)의 音譯으로서 東차가타이系의 可汗이다. 일찍이 부족을 이끌고 突厥斯坦으로 와서 세력을 확장하였고, 失兒馬黑麻汗이 죽은 뒤 蒙兀兒斯坦(Moghulistan 혹은 Mughalistan)의 汗位를 계승하였다. 그는 土魯番의 농업발전에 힘을 썼으며, 그의 재위 시에 亦力把里(別失八里)로 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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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시해를 당하여서, 자립(自立)하여 그 부락을 서쪽으로 이주시켜 국호(國號)를 바꾸어 역력파리(亦力把里) 주 009
각주 009)
亦力把里: Ili Balig의 音譯으로서 현재의 Ili(伊利) 즉 新疆 伊寧 지역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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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했음을 알렸다.주 010
각주 010)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97 永樂 16년 2월 庚戌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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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는 번인의 습속으로써 족히 징치(懲治)할 만하지 않다고 여겨 속가를 도독첨사(都督僉事)주 011
각주 011)
都督僉事: 明代 전국의 군대를 통괄하는 五軍都督府에 속해있는 관직으로, 正一品인 左·右都督, 從一品인 都督同知 다음에 위치한 正二品의 관직이다. 한편 당시 永樂帝는 速哥를 右軍都督僉事로 임명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太宗實錄』 卷197 永樂 16년 2월 庚戌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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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제수하고, 중관 양충(楊忠) 등을 보내어 왜사에게 궁도·갑주 및 문기·채폐를 하사하고, 그 부락의 우두머리 홀알달(忽歹達) 주 012
각주 012)
忽歹達: 후다이다드(Khudaidad)의 音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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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70여 명에게도 아울러 하사품을 주었다.주 013
각주 013)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99 永樂 16년 5월 庚戌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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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진공이 끊이지 않았다.

  • 각주 001)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01 永樂 8년 2월 丁未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2)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23 永樂 9년 윤12월 己卯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3)
    李彬: 생졸년 미상이다. 字는 質文으로, 남경 鳳陽府 사람이다. 부친은 李信으로 太祖가 군웅을 평정하는 데 공적을 세워 濟川衛指揮僉事가 되었다. 부친이 죽자 부친의 무직을 이어받았고, 燕王에 귀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軍功을 세워 右軍都督僉事가 되었다. 永樂 원년(1403)에 豊城侯에 봉해졌고, 1,000石의 봉록을 부여받았다. 이후 안남정벌과 北征에도 참가하였으며, 永樂 15년(1417)에는 征夷將軍의 印을 패용하고 交阯에 진수하였다. 후에 병이 들어 관직에서 물러나 죽자 茂國公에 追贈되었고, 시호는 剛毅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4)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57 永樂 12년 10월 壬辰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5)
    納黑失只罕: 나크시 자한(Nagsh-i Jahan)의 音譯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74 永樂 14년 3월 壬寅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7)
    速哥: 수케(Süke)의 音譯이다. 『明史』 卷329 「土魯番傳」에는 鎖恪이라고도 기재되어 있다. 수케는 明으로부터 투르판의 都督僉事에 임명되어 尹吉兒察과 함께 明에 조공했던 인물이며, 永樂 22년(1424)에도 명에 사신으로 와서 말을 바쳤다(『太宗實錄』 卷269 永樂 22년 3월 戊戌條). 바로가기
  • 각주 008)
    歪思: 우와이스(Uwais Khan, Vais Khan)의 音譯으로서 東차가타이系의 可汗이다. 일찍이 부족을 이끌고 突厥斯坦으로 와서 세력을 확장하였고, 失兒馬黑麻汗이 죽은 뒤 蒙兀兒斯坦(Moghulistan 혹은 Mughalistan)의 汗位를 계승하였다. 그는 土魯番의 농업발전에 힘을 썼으며, 그의 재위 시에 亦力把里(別失八里)로 천도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9)
    亦力把里: Ili Balig의 音譯으로서 현재의 Ili(伊利) 즉 新疆 伊寧 지역에 해당한다. 바로가기
  • 각주 010)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97 永樂 16년 2월 庚戌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11)
    都督僉事: 明代 전국의 군대를 통괄하는 五軍都督府에 속해있는 관직으로, 正一品인 左·右都督, 從一品인 都督同知 다음에 위치한 正二品의 관직이다. 한편 당시 永樂帝는 速哥를 右軍都督僉事로 임명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太宗實錄』 卷197 永樂 16년 2월 庚戌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12)
    忽歹達: 후다이다드(Khudaidad)의 音譯이다. 바로가기
  • 각주 013)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199 永樂 16년 5월 庚戌條 참조.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마합마(馬哈麻), 부안, 마합마, 이빈(李彬), 마합마, 영락제, 부안, 마합마, 납흑실지한(納黑失只罕), 부안, 이달, 이신(李信), 속가(速哥), 왜사, 歪思, 영락제, 속가, 양충(楊忠), 왜사, 홀알달(忽歹達)
지명
살마아한(撒馬兒罕), 와랄, 감숙, 서역, 살마아한, 역력파리(亦力把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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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마아한의 마합목특(瑪哈穆特)이 조정의 사자를 후대하니 치하하였으며, 마합목특이 죽고 종자(從子)가 뒤를 잇자 제사를 지내주고 왕위를 책봉해 준 일 자료번호 : jo.k_0024_0332_009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