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국(占城國)이 진랍(眞臘)에 귀속됨
[영종(寧宗)] 경원(慶元, 1195~1200) 연간주 001 이래로 진랍이 점성을 대거 정벌해 보복하고 거의 전부를 살육하고 군주를 사로잡아 가자 나라가 멸망하고 그 땅은 모두 진랍에 귀속되었다.주 002
각주 002)
그러나 점성과 진랍의 전쟁이 이로써 종결된 것도 아니고, 또 점성이 완전히 정복된 것도 아니었다. 1190년 점성 국왕 Jaya Indravarman 4세(鄒亞娜)가 앙코르로 잡혀간 뒤, 진랍은 점성 남부의 도시 賓童龍(Panduranga)에 괴뢰국을 세웠다. 그러나 점성의 많은 귀족 세력들이 진랍의 통치에 반발하여 Suryajayavarman이 비자야에서 즉위하여 佛逝國을 건립했고, 빈동룡국과 내전을 치러 승리를 얻어 1191년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다시 진랍의 침공을 받아 1203년 재차 정복을 당하여 진랍에 병합되었고, 1220년 점성의 Jaya Paramesvaravarman 2세가 진랍을 격파하고 점성국을 회복시켰다. 송조 이후 참파는 쿠빌라이 치세 때 몽골의 침입을 받고 荊湖占城行中書省이 점성에 설치된 바 있지만 점성의 저항도 완강했고 베트남이 몽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점성에서의 몽골 지배력도 후퇴했다. 이후 점성은 오히려 남쪽으로 확대되어가는 베트남의 공략 대상이 되었으며 결국 17세기 말에 베트남의 阮 세력에 의해 멸망되었다.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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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그러나 점성과 진랍의 전쟁이 이로써 종결된 것도 아니고, 또 점성이 완전히 정복된 것도 아니었다. 1190년 점성 국왕 Jaya Indravarman 4세(鄒亞娜)가 앙코르로 잡혀간 뒤, 진랍은 점성 남부의 도시 賓童龍(Panduranga)에 괴뢰국을 세웠다. 그러나 점성의 많은 귀족 세력들이 진랍의 통치에 반발하여 Suryajayavarman이 비자야에서 즉위하여 佛逝國을 건립했고, 빈동룡국과 내전을 치러 승리를 얻어 1191년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다시 진랍의 침공을 받아 1203년 재차 정복을 당하여 진랍에 병합되었고, 1220년 점성의 Jaya Paramesvaravarman 2세가 진랍을 격파하고 점성국을 회복시켰다. 송조 이후 참파는 쿠빌라이 치세 때 몽골의 침입을 받고 荊湖占城行中書省이 점성에 설치된 바 있지만 점성의 저항도 완강했고 베트남이 몽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점성에서의 몽골 지배력도 후퇴했다. 이후 점성은 오히려 남쪽으로 확대되어가는 베트남의 공략 대상이 되었으며 결국 17세기 말에 베트남의 阮 세력에 의해 멸망되었다.
색인어
- 이름
- [영종(寧宗)]
- 지명
- 진랍, 점성, 진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