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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국왕(占城國王) 양보구비다실리(楊普俱毘茶室離)의 표문(表文)

  • 국가
    점성(占城)
점성의 국왕 양보구비다실리(楊普俱毗茶室離)는 머리를 조아려 아룁니다.주 001
각주 001)
『宋會要』의 기록에는 경덕 3년(1006) 5월 17일로 본 표서의 작성일로 보이는 일자가 씌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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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이 들은 바로는 이제(二帝)주 002
각주 002)
二帝: 아마도 전설적 帝인 神農과 伏羲를 가리키거나 또는 炎·黃 二帝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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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영토는 남쪽으로 호남[湘]호북[楚]까지 이르렀을 뿐이고, 삼왕(三王)주 003
각주 003)
三王: 夏의 禹王, 殷의 湯王, 周의 文武王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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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경계는 북쪽으로 유주(幽州)연주(燕州)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창성한 시대를 우러러 보면 실로 지난날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삼가 생각하니 황제 폐하께서는 하늘과 땅으로부터 기운을 받으셨고 해와 달로부터 영기를 모았으며, 위엄을 보이며 존귀한 자리에 거하고 어좌에 등극하셨습니다. 천하에 자비를 베푸셨으며 군주의 교화(敎化)로 온 강역이 덮였습니다. 업적이 전왕(前王)들보다 무성하며 공로는 후대까지 흐르며 마음을 백성에게만 두시고 자신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무 곳도 백성이 아닌 곳이 없고 땅이 있는 곳은 모두가 신첩(臣妾)입니다. 참된 기풍이 널리 퍼지고 우수(雨水)의 은택이 두루 흐르니 비추고 닿는 모든 것마다 함께 기쁨을 더할 것입니다.
신(臣)은 변방 비루한 곳에서 태어났으나 다행히 중화(中華) 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개미굴과 벌집같은 [초라한 곳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본성[性]을 따르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용루(龍樓)와 봉각(鳳閣)이 도처에 보입니다. 더욱이 생각해보면, 천조(天朝)의 위세를 빌어서 [덕분에] 봉토(封土)를 보전하고 이웃나라가 침탈하지 않아 민간의 풍속도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매 해 신하를 파견하여 상국(上國)의 안녕을 여쭐 때마다 폐하의 은혜가 [하찮은] 갈대에까지 이르고, 복이 돼지나 물고기에까지 미쳤는데, 특히 돌아오는 사신을 통해 무기까지 하사해 주셨습니다. 신은 그저 본토에서 궁궐의 분향(焚香)을 향하여 환호하며 [하사품을] 받으면서 마음에 큰 행복을 알았는데, 어떻게 해야 크나큰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성군(聖君)께서는 이미 [여기] 신하국왕[賓王]을 생각해주시니, 신하의 정성으로 어찌 보고하는 일[述職]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믿음직스러운 신하, 전사(專使) 포록다지가(布祿爹知加)와 부사(副使) 제포마하가야(除逋麻瑕珈耶), 판관(判官) 피패저(皮覇抵) 일행의 인력을 파견하며 토산 물품을 준비하여 멀리서나마 세공(歲貢)에 충당합니다. 비록 초(楚)나라 풀[茅] 같이 거친 공납의 예(禮)를 표하니 진실로 노(魯)나라 술[酒]과 같이 하찮을까 염려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만,주 004
각주 004)
楚나라의 茅는 楚나라의 공물, 더 나아가 보통 공물에 대한 범칭이 되었고, 魯나라의 酒는 성의 없는 공물로 다른 화를 불러일으키게 됨을 의미하는데 각각 『史記』 「齊桓公傳」 혹은 『左傳』 僖公 4年, 그리고 『莊子』 「胠篋」 혹은 『淮南子』에 수록된 고사에서 유래했다. 茅는 菁茅인데 그것을 묶은 包茅로 거른 술로 周왕실의 제사를 지냈다. 이것이 楚나라의 특산물이어서 周왕실에 바치는 楚의 공물이었다. 그런데 춘추시대 楚나라가 周왕실에 包茅를 바치지 않자 齊 桓公이 그것을 질책하여 제후의 군사를 거느려 정벌했다. 전국시대 말 楚宣王이 회맹을 구실로 제후들을 불러 모으자 魯의 共公이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겨 가장 늦게 도착하면서 형편없이 싱거운 맹물 같은 술(魯酒)를 바쳤다. 이에 초선왕이 노하여 노나라를 치자 이를 틈타 위나라 梁惠王이 조나라 邯鄲을 포위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즉 노나라의 술이 묽어 엉뚱한 곳에서 사단이 났음을 말한다. 즉 여기서 楚나라의 풀은 천자에게 바치는 조공국의 마땅한 예이고, 노나라의 술은 형편없는 예물을 뜻하는 것으로, 참파의 공물이 정성스럽지 못한 것이라는 겸손함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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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철하심과 크나큰 관용으로 죽을죄를 용서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저의 신실한 사신과 그 일행이 돌아오는 때에, 엎드려 바라오니 군사 의장용 기물과 휘황한 무기들을 더 많이 하사해주십시오. 황송하게도 신하가 된 자로서 군주께 아뢰는 것이 합당한 바, [임금의] 복식(服飾)과 수레, 위의(威儀)를 위한 부월(斧鉞)은 감히 사사로이 만들 수가 없고 오직 은혜로이 반여해주실 것을 바랄 뿐입니다. [이렇게] 천자[冕旒]의 권위를 침범하니 죽을 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 각주 001)
    『宋會要』의 기록에는 경덕 3년(1006) 5월 17일로 본 표서의 작성일로 보이는 일자가 씌어져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二帝: 아마도 전설적 帝인 神農과 伏羲를 가리키거나 또는 炎·黃 二帝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003)
    三王: 夏의 禹王, 殷의 湯王, 周의 文武王을 의미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4)
    楚나라의 茅는 楚나라의 공물, 더 나아가 보통 공물에 대한 범칭이 되었고, 魯나라의 酒는 성의 없는 공물로 다른 화를 불러일으키게 됨을 의미하는데 각각 『史記』 「齊桓公傳」 혹은 『左傳』 僖公 4年, 그리고 『莊子』 「胠篋」 혹은 『淮南子』에 수록된 고사에서 유래했다. 茅는 菁茅인데 그것을 묶은 包茅로 거른 술로 周왕실의 제사를 지냈다. 이것이 楚나라의 특산물이어서 周왕실에 바치는 楚의 공물이었다. 그런데 춘추시대 楚나라가 周왕실에 包茅를 바치지 않자 齊 桓公이 그것을 질책하여 제후의 군사를 거느려 정벌했다. 전국시대 말 楚宣王이 회맹을 구실로 제후들을 불러 모으자 魯의 共公이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겨 가장 늦게 도착하면서 형편없이 싱거운 맹물 같은 술(魯酒)를 바쳤다. 이에 초선왕이 노하여 노나라를 치자 이를 틈타 위나라 梁惠王이 조나라 邯鄲을 포위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즉 노나라의 술이 묽어 엉뚱한 곳에서 사단이 났음을 말한다. 즉 여기서 楚나라의 풀은 천자에게 바치는 조공국의 마땅한 예이고, 노나라의 술은 형편없는 예물을 뜻하는 것으로, 참파의 공물이 정성스럽지 못한 것이라는 겸손함의 표현이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양보구비다실리(楊普俱毗茶室離), 포록다지가(布祿爹知加), 제포마하가야(除逋麻瑕珈耶), 피패저(皮覇抵)
지명
점성, 호남[湘], 호북[楚], 유주(幽州), 연주(燕州), 초(楚), 노(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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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국왕(占城國王) 양보구비다실리(楊普俱毘茶室離)의 표문(表文) 자료번호 : jo.k_0020_0489_0010_0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