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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점성국(占城國)의 향약(香藥) 공납

  • 국가
    점성(占城)
[북송 태조] 건덕(乾德, 963~967) 4년(966)주 001
각주 001)
『宋會要』에 의하면 건덕 4년 3월에 왔다. 특히 돌아간 시기도 기록되어 있는데 6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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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그 [나라] 왕 실리인타반(悉利因阤盤) 주 002
각주 002)
悉利因阤盤: 釋利因阤盤 즉 Jaya Indravarman 1세의 異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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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타분리제파라(因阤玢李帝婆羅)를 사자로 보내 훈련받은 코끼리[馴象], 암코뿔소[牯犀], 상아, 백첩포, 가만(哥縵),주 003
각주 003)
哥縵: 방직용품의 일종(趙汝適, 『諸蕃志』). Wade는 哥가 직물의 타입이라기 보다는 그 출처 지명의 음역일 것이며, 아마도 중국에서는 哥羅라고 했던 현재 크라(Kra)지협 지역의 나라를 말한 것 같다고 추측한다(Wade, 200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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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락(越諾)주 004
각주 004)
越諾: 당시 바그다드, Ghazni, 소아시아 지역에서 직조된 고급 직물이다(Paul Wheatley, 1961: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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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진공했고, 왕의 처 파량복모(波良僕瑁)와 아들 점모률수경(占謀律秀瓊) 주 005
각주 005)
『宋會要』에는 아들의 이름이 茶羅繼占謀律秀瓊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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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각각 향약을 공납했다.주 006
각주 006)
여기 『송사』에는 건덕 4년 참파의 조공이 간략하게 기록되었지만, 『宋會要』에 의하면 이 해에는 3월에 왕, 왕의 처, 왕의 아들의 조공이 있은 후, 7월에는 南唐의 李煜을 통해 또 조공이 있었으며, 또 9월에 이반이 와서 조공했다. 이 때 南唐 李煜은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참파의 사신이 조공을 하고 떠나가면서 자신에게 서각, 상아, 용뇌와 많은 종류의 향, 직물 등을 남겼다고 알렸다. 이에 대해 황제는 조서를 내려, “南夷가 중국의 문화를 존경하여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관습이 이들 나라에까지 확산되었고, 그들이 바치는 공물이 점차 정상적인 절차가 되었다. 그러한 의식은 번거롭지만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멀리서 선물을 조공하는 것이고, 그들의 충성과 근면함을 나타내는 것이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예물이 있더라도 조정에 보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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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덕] 5년(967)에는 또 이반(李𠰢),주 007
각주 007)
『宋會要』에 의하면, 李(『宋會要』에는 李半)은 건덕 4년(966) 9월에도 푸른 빛깔의 거대한 코끼리를 바치면서 그것을 부리는 이방인들을 함께 데려 왔다. 이 코끼리는 끓어 앉아서 코를 흔들 수 있었다. 황제가 금안장으로 장식하여 都亭驛으로 보내도록 했다. 사람들이 거기로 가서 보느라 길이 혼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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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차(李被瑳) 주 008
각주 008)
『宋會要』에는 李被琷으로 기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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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잇달아 보내 공물을 바쳤다.

  • 각주 001)
    『宋會要』에 의하면 건덕 4년 3월에 왔다. 특히 돌아간 시기도 기록되어 있는데 6월이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悉利因阤盤: 釋利因阤盤 즉 Jaya Indravarman 1세의 異譯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3)
    哥縵: 방직용품의 일종(趙汝適, 『諸蕃志』). Wade는 哥가 직물의 타입이라기 보다는 그 출처 지명의 음역일 것이며, 아마도 중국에서는 哥羅라고 했던 현재 크라(Kra)지협 지역의 나라를 말한 것 같다고 추측한다(Wade, 2005: 7). 바로가기
  • 각주 004)
    越諾: 당시 바그다드, Ghazni, 소아시아 지역에서 직조된 고급 직물이다(Paul Wheatley, 1961: 61). 바로가기
  • 각주 005)
    『宋會要』에는 아들의 이름이 茶羅繼占謀律秀瓊으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6)
    여기 『송사』에는 건덕 4년 참파의 조공이 간략하게 기록되었지만, 『宋會要』에 의하면 이 해에는 3월에 왕, 왕의 처, 왕의 아들의 조공이 있은 후, 7월에는 南唐의 李煜을 통해 또 조공이 있었으며, 또 9월에 이반이 와서 조공했다. 이 때 南唐 李煜은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참파의 사신이 조공을 하고 떠나가면서 자신에게 서각, 상아, 용뇌와 많은 종류의 향, 직물 등을 남겼다고 알렸다. 이에 대해 황제는 조서를 내려, “南夷가 중국의 문화를 존경하여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관습이 이들 나라에까지 확산되었고, 그들이 바치는 공물이 점차 정상적인 절차가 되었다. 그러한 의식은 번거롭지만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멀리서 선물을 조공하는 것이고, 그들의 충성과 근면함을 나타내는 것이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예물이 있더라도 조정에 보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7)
    『宋會要』에 의하면, 李(『宋會要』에는 李半)은 건덕 4년(966) 9월에도 푸른 빛깔의 거대한 코끼리를 바치면서 그것을 부리는 이방인들을 함께 데려 왔다. 이 코끼리는 끓어 앉아서 코를 흔들 수 있었다. 황제가 금안장으로 장식하여 都亭驛으로 보내도록 했다. 사람들이 거기로 가서 보느라 길이 혼잡했다고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8)
    『宋會要』에는 李被琷으로 기재되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북송 태조], 실리인타반(悉利因阤盤), 인타분리제파라(因阤玢李帝婆羅), 파량복모(波良僕瑁), 점모률수경(占謀律秀瓊), 이반(李𠰢), 이피차(李被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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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국(占城國)의 향약(香藥) 공납 자료번호 : jo.k_0020_0489_001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