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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점성국(占城國)의 관제(官制)

  • 국가
    점성(占城)
그 나라 왕은 형으로 부왕(副王)을 삼기도 하고 동생으로 차왕(次王)을 삼기도 했다. 모두 8명의 고관(高官) 즉, 동·서·남·북 각 2명씩을 두어, [그들이] 나누어 [각자의] 일을 처리했다. 봉록(奉祿)이 없고 그들이 관할하는 지방에서 [관리들을] 자급(資給)해 주도록 했다. 별도로 문관(文官) 50여 명을 두었는데, 낭중(郞中), 원외랑(員外郞), 수재(秀才)의 칭호가 있으며,주 001
각주 001)
郞中, 員外, 秀才: 모두 중국의 공식 관직명으로 참파 관리의 직함이나 기능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다만 송대의 관직으로 보면, 낭중과 원외랑은 상서성 육부 아래 설치된 24사의 장관과 부장관으로 각각 종6품과 정7품이었다. 秀才는 관리 선발시험의 과목이며 학교 生員의 칭호로서 일반적인 독서인에 대한 범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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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한 보화를 비축하는 일 등을 나누어 관장[分掌]했다. 이들 역시 봉록이 없고 다만 거북이와 물고기[龜魚]를 주어 먹거리로 제공하고 조세와 부역[調役]을 면제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또 국고와 식량 창고[帑廩]를 관리하는 12명과 군졸을 주관하는 200여 명이 있는데 이들 모두 월봉(月奉)은 없다. 우수 정예군사[勝兵]가 1만여 명 있는데 매월 갱미(秔米) 2곡(斛)을 주고, 겨울과 여름 의복용 포(布)를 각각 3필에서 5필까지 급여한다. 밤에는 오직 국왕만이 침상 위에 올라가 누워 자고 중신들은 모두 땅바닥의 멍석[蓐]에서 잔다. [왕과] 가까운 대신은 국왕을 알현할 때 무릎을 꿇어[胡跪]주 002
각주 002)
胡跪: 고대 승려들이 무릎을 꿇어 앉아 존경을 나타내는 예절로서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은 세워서 꿇어앉고 힘들면 양쪽 무릎을 바꾸어서 互跪라고도 불렀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온 불교 승려에 의해 중국에 소개되어 胡跪라고 했다. 慧皎, 『高僧傳』 「神異」上 〈耆域〉에는 “以晋惠之末至於洛陽, 諸道人悉爲作禮, 域胡跪晏然不動容色.”라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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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행하고 조금 먼 자들은 다만 두 손을 맞잡는 인사[拱手]만 하면 된다.

  • 각주 001)
    郞中, 員外, 秀才: 모두 중국의 공식 관직명으로 참파 관리의 직함이나 기능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다만 송대의 관직으로 보면, 낭중과 원외랑은 상서성 육부 아래 설치된 24사의 장관과 부장관으로 각각 종6품과 정7품이었다. 秀才는 관리 선발시험의 과목이며 학교 生員의 칭호로서 일반적인 독서인에 대한 범칭이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胡跪: 고대 승려들이 무릎을 꿇어 앉아 존경을 나타내는 예절로서 오른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은 세워서 꿇어앉고 힘들면 양쪽 무릎을 바꾸어서 互跪라고도 불렀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온 불교 승려에 의해 중국에 소개되어 胡跪라고 했다. 慧皎, 『高僧傳』 「神異」上 〈耆域〉에는 “以晋惠之末至於洛陽, 諸道人悉爲作禮, 域胡跪晏然不動容色.”라고 되어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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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국(占城國)의 관제(官制) 자료번호 : jo.k_0020_0489_001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