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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新唐書 卷222上·中·下 열전 第147上·中·下 남만

중국정사외국전

拘蔞蜜

  • 국가
    구루밀(拘蔞蜜)
동남쪽에는 구루밀(拘蔞蜜) 주 001
각주 001)
拘蔞密: 拘蔞密의 위치는 현재 泰國의 Gulf of Siam(暹羅灣) 안에 있었다고 한다(黎道綱, 2005-2: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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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는데, 바닷길로 한 달이면 이른다. 남쪽은 파리(婆利)와 [사이가] 조금 떨어져 있는데, 열흘 동안 가면 이른다. 동쪽은 불술(不述)주 002
각주 002)
不述: 黎道綱은 불술은 오늘날 태국의 春武裏(Chonburi)를 지칭한다고 하였다(黎道綱, 2005-2: 66). Chonburi는 泰國의 中部 방콕 만의 동안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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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조금 떨어져 있는데, 닷새쯤 가면 이른다. 서북쪽은 문단국(文單國)주 003
각주 003)
文單國: 文單國의 위치에 관하여 黎道綱은 역사적으로 ① 三波說(Paul Pelliot, 1904), ② 태국 納空帕儂府(Nakhon Phanom) 他烏庭縣(Tha Uthen)의 메콩강 대안인 Pak Hin Bun설(H. Maspero, 1918), ③ 라오스 甘蒙省(Khammouan)의 首府인 他曲(Thakhek)설(E. Seidenfanden, 1922), ④ 라오스의 萬象(Vientiane)설(A. Bastain; 黃盛璋, 1962), ⑤ 蒙河(Mun) 유역과 占巴塞省(Champasak) 巴色(PakSe) 지역설(G. Coedes; P. Dupont) ⑥ 라오스와 경계지역에 있는 태국의 烏汶府(Ubon Ratchathani)설(謝光, 1997)이 있었다고 소개하며, 자신은 태국의 約梭通府(Yasothon)설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文單國은 100여 년 존속하였는데, 가장 강성했을 때 서쪽으로 지금 태국 영역 내 尖竹汶(Chanthaburi)·巴眞(Prachin Buri)·武里南(Buriram)·柯叻(Nakhon Ratchasima) 등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室貼에 있었던 參半을 속국으로 삼았다고 주장하였다(黎道綱, 2000-2: 57~67). 이에 비하여, 沈福偉는 Ubon Ratchathani설을 지지하여, 문단국의 수도는 烏汶府였으며, 扶南國의 개국 전설에 등장한 1세기 무렵 이미 설립되었다고 하는 吳汶國의 故土라고 주장하였다(沈福偉, 2003: 102~103). 이 가운데 중국 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설은 라오스의 Vientiane설이라고 한다. Vientiane은 한자로 ‘萬象(Van Tuong)’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곳은 루앙프라방과 함께 14세기 중반에 건국된 라오스의 초기 국가 란 창(Lan Chang)의 두 중심지 중 하나였다. 란 창은 ‘100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다(최병욱, 2006: 230). 본문의 진랍국 조에서는 陸眞臘을 文單이라 칭하기도 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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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조금 떨어져 있는데, 엿새쯤 가면 이른다. 적토(赤土)타화라(墮和羅) 주 004
각주 004)
墮和羅國:『太平御覽』에서는 墮和羅國은 남으로 盤盤國, 북으로는 迦邏舍佛, 동으로는 眞臘, 서쪽으로는 大海와 인접해 있으며, 唐 太宗 貞觀 13년(639)과 23년(649) 墮和羅國王이 사자를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고 적었다(『太平御覽』卷788). 즉 6세기에서 11세기 사이 태국 중부에 존재했던 Dvaravati 왕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黎道綱은 이 드바라바티 왕국의 강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태국 중부의 Nakhon Pathom(佛統)의 古城을 중심으로 하여, 남쪽으로는 Ratchaburi(叻丕府 夜功河) 가의 Khu Bua(庫布) 古城을 重鎭으로 삼아 曇陵을 통치하고, 盤盤과 인접하였으며, 북쪽으로는 Suphanburi(素攀府) U Thong(烏通) 고성을 重鎭으로 하여 오늘날 지금의 Sri Thep(室貼) 古城을 도읍으로 하였던 가라사불국 국경의 壁室拉差 고성과 서로 접하였다(黎道綱, 1998: 59). 段立生은 6~11세기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孟人(Mon)이 세운 나라라고 설명하였다(段立生, 2002: 384).『新唐書』에서는 墮和羅와 投和를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비하여,『通典』卷188에서는 投和만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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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풍속이 같다.주 005
각주 005)
『唐會要』卷100에서는 풍속과 산물이 같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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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고종] 영휘(永徽) 연간(650~655)에 [와서] 오색 앵무새를 바쳤다.주 006
각주 006)
拘蔞密國에서 오색 앵무를 바친 것은 唐 高宗 永徽 6년(655) 8월이었다(『唐會要』卷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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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1)
    拘蔞密: 拘蔞密의 위치는 현재 泰國의 Gulf of Siam(暹羅灣) 안에 있었다고 한다(黎道綱, 2005-2: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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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不述: 黎道綱은 불술은 오늘날 태국의 春武裏(Chonburi)를 지칭한다고 하였다(黎道綱, 2005-2: 66). Chonburi는 泰國의 中部 방콕 만의 동안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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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文單國: 文單國의 위치에 관하여 黎道綱은 역사적으로 ① 三波說(Paul Pelliot, 1904), ② 태국 納空帕儂府(Nakhon Phanom) 他烏庭縣(Tha Uthen)의 메콩강 대안인 Pak Hin Bun설(H. Maspero, 1918), ③ 라오스 甘蒙省(Khammouan)의 首府인 他曲(Thakhek)설(E. Seidenfanden, 1922), ④ 라오스의 萬象(Vientiane)설(A. Bastain; 黃盛璋, 1962), ⑤ 蒙河(Mun) 유역과 占巴塞省(Champasak) 巴色(PakSe) 지역설(G. Coedes; P. Dupont) ⑥ 라오스와 경계지역에 있는 태국의 烏汶府(Ubon Ratchathani)설(謝光, 1997)이 있었다고 소개하며, 자신은 태국의 約梭通府(Yasothon)설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文單國은 100여 년 존속하였는데, 가장 강성했을 때 서쪽으로 지금 태국 영역 내 尖竹汶(Chanthaburi)·巴眞(Prachin Buri)·武里南(Buriram)·柯叻(Nakhon Ratchasima) 등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室貼에 있었던 參半을 속국으로 삼았다고 주장하였다(黎道綱, 2000-2: 57~67). 이에 비하여, 沈福偉는 Ubon Ratchathani설을 지지하여, 문단국의 수도는 烏汶府였으며, 扶南國의 개국 전설에 등장한 1세기 무렵 이미 설립되었다고 하는 吳汶國의 故土라고 주장하였다(沈福偉, 2003: 102~103). 이 가운데 중국 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설은 라오스의 Vientiane설이라고 한다. Vientiane은 한자로 ‘萬象(Van Tuong)’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곳은 루앙프라방과 함께 14세기 중반에 건국된 라오스의 초기 국가 란 창(Lan Chang)의 두 중심지 중 하나였다. 란 창은 ‘100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다(최병욱, 2006: 230). 본문의 진랍국 조에서는 陸眞臘을 文單이라 칭하기도 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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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墮和羅國:『太平御覽』에서는 墮和羅國은 남으로 盤盤國, 북으로는 迦邏舍佛, 동으로는 眞臘, 서쪽으로는 大海와 인접해 있으며, 唐 太宗 貞觀 13년(639)과 23년(649) 墮和羅國王이 사자를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고 적었다(『太平御覽』卷788). 즉 6세기에서 11세기 사이 태국 중부에 존재했던 Dvaravati 왕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黎道綱은 이 드바라바티 왕국의 강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태국 중부의 Nakhon Pathom(佛統)의 古城을 중심으로 하여, 남쪽으로는 Ratchaburi(叻丕府 夜功河) 가의 Khu Bua(庫布) 古城을 重鎭으로 삼아 曇陵을 통치하고, 盤盤과 인접하였으며, 북쪽으로는 Suphanburi(素攀府) U Thong(烏通) 고성을 重鎭으로 하여 오늘날 지금의 Sri Thep(室貼) 古城을 도읍으로 하였던 가라사불국 국경의 壁室拉差 고성과 서로 접하였다(黎道綱, 1998: 59). 段立生은 6~11세기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孟人(Mon)이 세운 나라라고 설명하였다(段立生, 2002: 384).『新唐書』에서는 墮和羅와 投和를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비하여,『通典』卷188에서는 投和만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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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唐會要』卷100에서는 풍속과 산물이 같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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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拘蔞密國에서 오색 앵무를 바친 것은 唐 高宗 永徽 6년(655) 8월이었다(『唐會要』卷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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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당 고종
지명
구루밀(拘蔞蜜), 파리(婆利), 적토(赤土), 타화라(墮和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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拘蔞蜜 자료번호 : jo.k_0017_0222_0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