殊柰, 甘棠, 僧高 등이 당에 입조함
환왕(環王)의 남쪽에는 수내(殊柰)
주 001가 있는데, 교지(交趾)
주 002에서 바다에 배를 띄워 세 달이면 이른다. 파라(婆羅)와 풍속이 같다. [당 태종] 정관(貞觀) 2년(628)에 사자가 방물을 올렸다. 9년(635)에 감당(甘棠)의 사자가 입조하였는데, 그 나라는 바다 남쪽에 있다. 12년(638)에 승고(僧高) 무령(武令) 가사(迦乍) 구밀(鳩密) 네 나라의 사자가 조공(朝貢)하였다. 승고는 수진랍(水眞臘)과 마주하여 서북쪽에 있는데, 환왕과 풍속이 같다. 그 후 구밀왕 시리구마(尸利鳩摩)는 또 부나왕(富那王) 시리제파발마(尸利提婆跋摩) 등과 함께 사자를 보내 와서 공물(貢物)을 바쳤다. 승고(僧高) 등의 나라는 [당 고종] 영휘(永徽) 연간(650~655) 이후 진랍(眞臘)
주 003
각주 003)
에 병합되었다.眞臘國: 현재의 캄보디아에 있었던 초기 크메르(Khmer) 왕국이다.『眞臘風土記』‘總敍’에서는 “진랍국은 ‘占臘國’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나라에서는 ‘甘孛智’라고 부른다. 지금 聖朝(원나라)에 (돌아와) 살펴보았더니, 西番經에 그 나라의 이름을 ‘澉浦只’라고 하였는데, 대체로 또한 ‘감패지’와 가까운 발음이다”라고 하였다(周達觀, 2000: 15). 전자불전·문화재콘텐츠연구소에서는 진랍에 대하여 注하기를, “‘진랍(chenla, zenla)’은 캄보디아에 대한 중국식 명칭으로서『隋書』卷4 「煬帝」下에 처음 등장하며 명나라 때까지 일관되게 사용되었다. 이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아직 분명한 해답은 없다. ‘점랍’이라는 명칭은『宋史』卷489 「眞臘傳」에 나온다. ‘眞’과 ‘占’은 한자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생긴 이역어로 추측된다. ‘감패지(kam pɔ tʂi)’는 현재 쓰이는 국명인 ‘캄보디아’의 중국식 발음이다. 현재 중국에서 쓰는 캄보디아 명칭은 ‘柬埔寨’이다”라고 하였다(주달관, 2007: 26, 주1). 또 ‘감포지’에 관하여, “‘감포지(kam pu tʂi)’는 ‘감패지’와 마찬가지로 캄보디아에 대한 음사이다. 티베트 경전인 서번경에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캄보디아가 등장한다는 말은 믿기 어렵기 때문에 이 감포지는 부처님 재세시의 인도 16대국의 하나인 깜보쟈(Kamboja) 왕국이 서번경에 나온 표기를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라고 주하였다(周達觀, 2007: 26, 주1). 夏鼐 또한 ‘서번경’과 ‘감포지’에 대하여 기존의 여러 학설을 잘 정리하여 놓았다(周達觀, 2000: 21~22). 첸라의 족원에 관하여, 최병욱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캄보디아는 푸난(扶南)의 영역을 대부분 계승한 국가였지만 푸난과의 민족적 연계성은 없다. 푸난의 민족 기원은 말레이계 해상 민족이었던 데 반해, 크메르인들은 언어 분류상 몬-크메르어로 분류되는 민족이다. 이들은 티베트 쪽에서 내려와 한 집단은 현 태국의 차오프라야 강변 및 버마의 남부인 이라와디강 하류까지 가서 정착했고, 다른 부류는 메콩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정치권력을 만들어 점차 통합되어 갔다. …… 크메르인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민족이며, 내륙에서의 동서 교역을 통해서도 부를 축적했다. 특히, 메콩과 연결되는 톤레삽(Tonle Sap) 湖 주변의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톤레삽 호수의 수산 자원은 인구의 안정된 부양 및 지속적인 증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해상 교역에 기반한 푸난에게 도전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할 수 있었다”(최병욱, 2006: 88). 본문에서도 뒤에 진랍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전통시기 캄보디아 역사 | |
후난(扶南)(1세기~약630년) | |
첸라(眞臘)(약630년~802년) | |
수첸라(水眞臘)(약705년~802년) | 육첸라(陸眞臘)(약705년~802년) |
앙코르왕국(크메르왕국)(802년~1432년)캄보디아(1432년~1864년) |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眞臘國: 현재의 캄보디아에 있었던 초기 크메르(Khmer) 왕국이다.『眞臘風土記』‘總敍’에서는 “진랍국은 ‘占臘國’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나라에서는 ‘甘孛智’라고 부른다. 지금 聖朝(원나라)에 (돌아와) 살펴보았더니, 西番經에 그 나라의 이름을 ‘澉浦只’라고 하였는데, 대체로 또한 ‘감패지’와 가까운 발음이다”라고 하였다(周達觀, 2000: 15). 전자불전·문화재콘텐츠연구소에서는 진랍에 대하여 注하기를, “‘진랍(chenla, zenla)’은 캄보디아에 대한 중국식 명칭으로서『隋書』卷4 「煬帝」下에 처음 등장하며 명나라 때까지 일관되게 사용되었다. 이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아직 분명한 해답은 없다. ‘점랍’이라는 명칭은『宋史』卷489 「眞臘傳」에 나온다. ‘眞’과 ‘占’은 한자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생긴 이역어로 추측된다. ‘감패지(kam pɔ tʂi)’는 현재 쓰이는 국명인 ‘캄보디아’의 중국식 발음이다. 현재 중국에서 쓰는 캄보디아 명칭은 ‘柬埔寨’이다”라고 하였다(주달관, 2007: 26, 주1). 또 ‘감포지’에 관하여, “‘감포지(kam pu tʂi)’는 ‘감패지’와 마찬가지로 캄보디아에 대한 음사이다. 티베트 경전인 서번경에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캄보디아가 등장한다는 말은 믿기 어렵기 때문에 이 감포지는 부처님 재세시의 인도 16대국의 하나인 깜보쟈(Kamboja) 왕국이 서번경에 나온 표기를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라고 주하였다(周達觀, 2007: 26, 주1). 夏鼐 또한 ‘서번경’과 ‘감포지’에 대하여 기존의 여러 학설을 잘 정리하여 놓았다(周達觀, 2000: 21~22). 첸라의 족원에 관하여, 최병욱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캄보디아는 푸난(扶南)의 영역을 대부분 계승한 국가였지만 푸난과의 민족적 연계성은 없다. 푸난의 민족 기원은 말레이계 해상 민족이었던 데 반해, 크메르인들은 언어 분류상 몬-크메르어로 분류되는 민족이다. 이들은 티베트 쪽에서 내려와 한 집단은 현 태국의 차오프라야 강변 및 버마의 남부인 이라와디강 하류까지 가서 정착했고, 다른 부류는 메콩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정치권력을 만들어 점차 통합되어 갔다. …… 크메르인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민족이며, 내륙에서의 동서 교역을 통해서도 부를 축적했다. 특히, 메콩과 연결되는 톤레삽(Tonle Sap) 湖 주변의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톤레삽 호수의 수산 자원은 인구의 안정된 부양 및 지속적인 증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해상 교역에 기반한 푸난에게 도전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할 수 있었다”(최병욱, 2006: 88). 본문에서도 뒤에 진랍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색인어
- 이름
- 당 태종, 시리구마(尸利鳩摩), 시리제파발마(尸利提婆跋摩), 당 고종
- 지명
- 환왕(環王), 수내(殊柰), 교지(交趾), 파라(婆羅), 감당(甘棠), 진랍(眞臘)